“양원제로 무능 국회 보완하자”
“양원제로 무능 국회 보완하자”
  • 미래한국
  • 승인 2010.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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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관용 전 국회의장
▲ 박관용 전 국회의장


세종시 문제를 놓고 한 지붕 아래에서 격돌하고 있는 한나라당. 박관용 전 국회의장에게 대치 정국의 해법을 듣고자 가는 길에 눈비가 내렸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차갑게 얼어붙어 서로 등 돌리고 있는 친이와 친박을 녹일 비법으로 노장 정치인은 과연 어떤 카드를 제시할까.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실에서 만난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현역 때보다 더 바쁘다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식소사번(食少事煩)이라고, 먹을 건 없는데 바쁘기만 합니다. 왜 이리 바쁜지 모르겠어요. 맡은 일도 많은 데다 결혼식 주례하고 친구 만나고 정말 바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축사해달라고 자주 부릅니다.”

박관용 전 의장은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이사장,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이사장 등의 직함 외에도 서울과 부산의 여러 단체 수장을 맡고 있다. 석좌교수로 재직하는 동아대에서만 월급을 받을 뿐 다른 곳은 돈을 조달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 요즘 여의도 쪽으로 얼굴도 돌리기 싫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전직 국회의장으로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어떠십니까.

“동계올림픽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모든 부분에서 약진을 하는데 국회만은 퇴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민이 선출한 정치인은 국민이 가장 욕하기 쉬운 상대입니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 정치인들은 너무 비난을 많이 받아요. 어디 초대받아 가면 ‘욕만 하는 정치인 출신을 불러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합니다. 18대 국회에 실망했습니다. 현역의원들의 70- 80%는 현대적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처럼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었거나, 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세대가 아닙니다. 새로운 문화가 생성되리라 예상했는데 과거보다 더 못한 국회가 되고 있습니다.”

- 국회가 퇴보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국회의원 충원 과정이 문제고, 정당이 국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회 운영은 의원 총회와 여야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데 아침에 중앙당 간부회의에서 결정되니까 국회가 전투장처럼 변하는 겁니다. 중앙당의 강한 규율로부터 국회가 독립되어야 합니다. 개헌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선거구 개편도 해야 하고 정당인들이 정당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원내대표의 힘이 중앙당을 배제할 만큼 능력을 배가시켜야 하고, 국회에서 정책투쟁을 하면서 정책기능을 강화해야죠.”

- 요즘 야당이 실종되었다고들 합니다. 친박이 야당 역할을 대신하는 양상입니다.

“야당이 현재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이슈를 선점해서 정책 내용을 갖고 부딪쳐야 하는데 그런 부딪침이 없으니까 한나라당 내 친이 친박 싸움에 야당이 희생되고 있어요. 여당이 야당에 결정적으로 흠 잡힐 일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친박 세력이 대권을 향해 만만찮은 도전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렇기도 합니다.”

- 세종시 문제로 계속 대립하고 있는데 이제 보는 국민이 지쳤습니다.

“정부는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고 박근혜 전 대표 측은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건데, 속으로는 각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대선 구상이고, 한 사람은 정책 구상이니 해결 안 될 가능성 높다고 봅니다.”

세종시 국민투표는 나쁜 선례 남길수도

- 결국 국민투표 얘기가 나왔는데요.

“국민투표 얘기는 처음부터 있었죠. 해결 기미가 원체 안보이니까 최종 수단으로 거론되고 있는데 조심해야 할 문제입니다. 법률적 논쟁이 있을 수 있고 나쁜 선례를 남길 수도 있습니다. 국론의 큰 분열이 일어날 가능성도 큽니다. 문제 해결에만 몰두하여 밀어붙이면 그로 인한 부작용은 해결을 못한 채 또 다른 악순환을 거듭하게 됩니다. 유능한 행정가와 유능한 정치가라면 부작용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대책까지도 마련해야 합니다. 세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 국민투표일지 모르나 그게 끝이 아니니 문제죠.”

그는 충청도민을 비롯한 국민 전체가 좀 더 많은 생각을 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찬성의견과 반대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합니다. 현안문제를 표피적으로만 보지 말고 시간을 갖고 내용을 들여다보는 접근 방식이 필요합니다. 친이는 반대세력을 찾아가고 친박은 정부가 토론하자고 하면 응해야죠. 누구를 탓하기 이전에 기본적으로 문제 해결에 접근하는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박 전 의장은 미디어법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되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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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럽기만 했지, 미디어법에 대해 아는 국민이 있나요. 나도 잘 모릅니다. 국회에서 꾸준한 토론을 해야 국민이 알 수 있는데 토론을 안 하니 알 수가 없어요.”

- 미디어법이 합의가 안 되어서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했는데, 국회의장의 리더십이 약하다는 지적도 많았습니다.

“국회 운영을 하면서 문제점이 생길 때마다 반영시키다보니 국회법이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국회의장의 권한 앞에는 각 교섭단체와 협의하여 실행한다는 단서 조항이 있습니다. 협의 안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국회의장 권한이 하나도 없어요. 힘을 안주니까 국회의원이 의장에게 싸우려고 덤비고 의장 단상에 올라오는 겁니다. 영국은 회의 진행을 방해하는 국회의원을 지하에 구금시킬 수 있고, 조용히 하라는 명령을 어기는 의원은 퇴장시킬 수 있습니다. 국회의장이 국회를 대표하고 운영을 책임지려면 상당한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국회의장의 권한을 너무 확대시켜 놓으면 독단적이 될 수 있으니 적절하게 조화를 맞춰야 합니다.”

- 국회의장의 권한이 커지면 폭력국회가 사라질까요.

“국회의장에게 힘을 주고, 국회의원 충원 과정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공천을 하는 중앙당의 지시를 거부하기 힘들죠. 중앙당이 배제된 상향식 공천제가 좋은데 시행이 쉽지 않습니다. 한국 실정에 맞는 공천제도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민의가 반영된 국회의원 선출을 고민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과거 유명 정치지도자 비서 중에 국회의원 안 된 사람이 없어요. 계파정치가 그래서 생기는 겁니다. 정치는 복합적이기 때문에 한두 가지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우리 실정에 맞고, 보다 민주적이고, 보다 투명한 방법으로 국회의원을 공천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 국회의장 퇴임식 때 국회 양원제를 말씀하셨는데, 그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가요.

“국회의장이 되어 의원들의 국정심의 과정을 지켜보니 단원제가 얼마나 위험한 제도인지 알겠더군요. 단원제는 날치기를 해도 수정할 길이 없고 한두 사람의 선동에 의한 잘못된 의결도 재심할 기회가 없습니다. 예산안을 힘 있는 한 두 사람이 나눠먹어도 바로잡을 길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회는 인구 비례원칙에 의해 구성되니까 서울 경기 국회의원이 절반입니다. 미국 상원처럼 전국적 여론을 골고루 수용할 수 있도록 숫자를 조절해야 합니다. 양원제의 문제점은 회의의 완만성인데,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도록 약점을 보완하면 됩니다. 현재 국회의원 정원 299명 가운데 80~90명을 상원으로 뽑고 하원을 210~220명으로 낮추면 새롭게 경비를 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은 국민 주권 발동한 것

- 임기 내에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탄핵은 대한민국 최초의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그 탄핵이 어떤 의미가 있고, 교훈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야 하는데 한 번 쓸고 지나간 정치 쓰나미로 생각할 뿐 아무도 탄핵에 관해 얘기하지 않습니다. 하도 답답해서 2005년에 <다시 탄핵이 와도 나는 의사봉을 잡겠다>는 책을 냈습니다. 얘기를 안 하는 이유는 첫째, 후폭풍을 일으킨 이 나라 공영방송들이 엄청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권력의 시녀가 되었던 것이 부끄러워서 한마디도 안하는 겁니다. 둘째, 당시 여당(열린우리당)은 방송국을 동원하여 후폭풍을 만들어내고, 국회가 다수 의견을 뒤집어 쿠데타를 일으킨 것처럼 조작해서 다음 총선 때 과반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주권을 왜곡시킨 장본인이니 부끄러워서 말 못합니다. 당시 다수당인 야당(한나라당)은 왜 탄핵을 했는지 국민에게 당당하게 외치지 못하고 방송이 떠들자 놀라서 도망갔습니다. 그게 창피해서 지금까지 말 못하고 있습니다. 탄핵이라는 것은 대통령이라도 법을 어기면 의회에서 응징할 수 있다는, 국민주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겁니다. 의회가 행정부를 어떻게 견제하는가에 대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교훈을 준 것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습니다.”

- 당시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국회의원들이 함부로 탄핵할 수 있나, 국회의원들이 너무 심한 거 아닌가, 그런 기류가 형성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잘못된 거죠. 국회는 대의정치입니다. 대통령이 행정을 수행하고, 국회의원은 국정을 심의하고 탄핵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이 탄핵한 것을 ‘쿠데타를 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쫓아냈다’며 국민을 선동한 것은 의회정치를 부정한 겁니다. 한 달 내내 방송으로 선동을 하여 한 달 후 총선에서 국민들이 여당에 투표하게 했습니다. 그건 국민의 주권을 도둑질하는 행위입니다. 이에 대해 아무런 반성도 재논평도 없는 이상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이런 민주주의가 어디 있어요.”

- 두 전직 대통령이 작년에 세상을 뜨셨는데, 특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누구보다 친했고 무척 사랑한 사람입니다. 내가 국회의장 할 당시에 노대통령이 취임했는데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는 데 일조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취임하기 전에 2시간 동안 단 둘이 얘기를 나눴습니다. 대북문제, 대일문제, 대미문제, 국회문제, 청와대 생활 등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오늘 너무 좋은 얘기 많이 들었다. 다 기억 못할지도 모르니 메모를 해서 달라. 수시로 보겠다’고 했습니다. 대통령 되고 난 뒤에도 여러 차례 만났는데 나하고 얘기할 때 동의했던 걸 하나도 지키지 않아 실망했지요. 어쨌든 그렇게 목숨을 버리고 난 뒤에 참 많이 울었어요.”

내가 만난 노무현·이명박 대통령

-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경선위원장이었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정책자문위원이셨는데 이명박 대통령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까.

“알고는 지냈지만 친분 있는 사이는 아니었어요. 경선 때 아침 저녁으로 만나서 많이 싸웠어요. 당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어떻게 하면 경선에서 이길까 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입장을 얘기했고 나는 어떻게 하면 평등하게 적용시키느냐만 생각했지요. 두 사람 다 나를 원망한다는 소리를 듣고 과연 내가 중립을 잘 지켰구나, 그 생각을 했죠.”

-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 시절에 어떤 정책 자문을 했습니까.

“세 번 만나서 얘기를 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에게 했던 얘기를 똑같이 했습니다. 지금 일하는 걸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내 충고를 받아들여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나와 견해를 같이 하는 여러 가지를 발견합니다.”

- 이 정권 초반에 우파 인사들이 이 대통령에 대해 비판을 많이 했습니다. 2년이 지났는데 어떻게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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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인사문제로 비판을 받았죠. 초반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비교적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원이 없는 국가이니 부지런히 일해야죠. 기업을 해본 분이니 상당히 민감하게 잘 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는 없지만 대통령이 손수 일을 많이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대통령은 생각하고 판단하고 이야기를 많이 들어야 합니다. 이 대통령은 직접 뛰어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니 어느 것이 좋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권력은 나누어주면 나누어 줄수록 커진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해야 합니다. 통치 스타일은 다 다르고 좋은 스타일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니까 시대적 역할에 따라, 개인적 성품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당히 공감하는 면이 많습니다.”

- 대통령자문 국민원로회의 위원이신데 이명박 대통령과 몇 번이나 회의를 하셨나요.

“이명박 대통령이 원로들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만든 단체인데 대통령은 두 번 만났고 정운찬 총리를 한 번 만났습니다. 상당히 좋은 취지에서 설치한 기구입니다. 이전 정권에 없던 기구입니다. 문제는 운영 방법인데 정부 홍보에 활용할 것인가, 진지하게 얘기를 받아들이려는 순수성을 갖느냐 하는 겁니다.”

- 세 번 만나서 나눈 의견이 잘 수렴된 것 같습니까.

“그저 그래요.(웃음) 그래도 도움은 될 거예요.”

- 세종시에 대한 국민원로회의의 의견은 어떤 겁니까.

“잘못된 정책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노력에 대해 평가하는 쪽이죠.”

- 이명박 대통령이 앞으로 3년 동안 어떻게 일했으면 좋겠습니까.

“정치 부문을 제외하고는 지금 구도를 그대로 끌고 나가면 좋겠습니다. 다만 경제가 제대로 되려면 정치 안정이 따라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통합입니다. 당내 통합이 국민통합의 가장 중요한 전제입니다. 강자가 양보한다는 것은 통합의 보편적 가치입니다. 힘 있는 자가 통합을 위해 조금씩 양보해야 합니다. 그걸 몸소 행동할 줄 아는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 박근혜 전 대표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보다 폭넓은 대화가 필요합니다. 내 주장이 있으면 남의 주장도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 민주주의적 가치라는 걸 말하고 싶습니다.”

- 통일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하셨고 <통일은 산사태처럼 온다>는 책도 내셨는데 대북문제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대북문제는 우리 민족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국제문제입니다. ‘민족끼리’는 남한에서 외국군대를 철수시키고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전략적 차원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통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입각한 통일이어야 합니다. 북한의 독재체제를 강화시키는 쪽의 대화는 안 된다는 걸 줄곧 주장했습니다. 대통령만 되면 남북정상회담하고 싶어 안달을 하는 병에 걸리는데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해야 합니다. 통일에 도움이 되도록, 북한을 개방 개혁 쪽으로 끌고 나오도록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갖고 만나면 괜찮겠죠.”

한 지역에서 6선 기록

- 11대부터 16대까지 6선 의원을 하시고 국회의장이 되셨는데 비결이 있습니까.

“대한민국 국회가 생긴 이래로 한 지역구에서 연속 여섯 번 당선된 사람은 나와 이한동 씨 밖에 없습니다. 한 우물을 판 게 비결입니다. 민한당으로 출발한 초선 때 제대로 야당하겠다는 각오 아래 양김이 만든 신민당으로 옮긴 이후 한 번도 탈당을 하지 않았습니다. 늘 유권자를 왕으로 생각하여 성심껏 일했고, 초선에서 6선 되기까지 해마다 성장해왔습니다. 그것이 우리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은 이유입니다.”

-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받던 문제가 최근에 무죄로 판명되었더군요.

“국회의장 되면서 의장을 그만두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고, 약속대로 당에서 상임고문하라고 하는데도 마다하고 연구소로 왔습니다. 연구소 후원금 받은 것이 정치자금법 위반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무죄라고 생각했고 괜찮을 줄 알았는데 검찰에서 기소를 했어요. 왜 기소했는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부덕의 소치라는 측면이 있으니 길게 얘기하고 싶지 않지만 정치자금법이 무죄가 된 점을 고맙게 생각합니다.”

- 정치를 그만두시니까 어떻습니까.

“왜 더 빨리 그만두지 못했나 후회했습니다. 국회의원 때는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누구 만나고 어디 가야 하는데, 꽃값 외상값 갚아야 하는데, 그 생각으로 머리가 아팠어요.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고 소화해낼 수 없는 일이 겹쳐서 올 때가 많았죠. 국회의원 하면서 2000번 넘게 주례를 했습니다. 지금은 하기 싫고 가기 싫으면 안할 수 있어서 좋아요.”

21세기국가발전연구원 사무실은 협소했다. 과거 국회의장 시절 국회의장 공관으로 인터뷰를 하러 간 적이 있었는데, 당시 엄청나게 크고 격조 있던 사무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았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식소사번하지만 요즘 무척 행복하다고 했다. 다만 자동차 연료비가 좀 모자라서 걱정이라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시종 웃으면서 얘기하는 그에게 즐겁게 사는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우리 세대는 배고픔 때문에 물욕이 있었고, 일제의 압박을 받아 출세해야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요즘 자라는 아이들은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데, 그것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어야 사회가 안정됩니다. 능력과 상황에 맞춰서 자기 위치를 찾아가고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행복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면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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