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안보는 우리가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
"외교 안보는 우리가 한나라당보다 더 보수적"
  • 김범수 발행인
  • 승인 2010.04.0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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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지상욱 자유선진당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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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포털사이트에서 ‘지상욱’을 검색하면 대부분의 관련기사에 ‘정치인 지상욱으로 봐 달라’는 제목이 달려 있다. 분명 정치인인 지상욱 자유선진당 대변인이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당부를 하는 것은 그가 영화배우 심은하 씨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3월 26일, 요즘 날카로운 논평을 쏟아내는 자유선진당 대변인 ‘정치인 지상욱’을 만나러 갔다.

   
 
  ▲ 지상욱 자유선진당 대변인  
 

“대변인 논평 잘 보고 있다”고 인사하자 그는 장기전세주택에 억대 연봉자들이 수두룩하게 입주한 것을 비판하면서 “건축 토목을 해서인지 그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1965년생인 지상욱 대변인은 연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뒤 스탠퍼드대에서 토목공학 석사, 도쿄대에서 건설관리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정치권에서 보기 드문 이공계 출신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4년간 연구원으로 활동한 건설토목 전문가인 그에게 4대강 사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물었다.

“수질을 개선하고 환경을 지키고 생태를 보존하는 좋은 뜻에서 하는 거라면 이렇게 가면 안 됩니다. 4대강 문제는 우리나라의 커다란 역사이고 대토목공사인 만큼 오랜 기간 기획과 각종 평가를 하여 대국민 설득을 거친 뒤 시작해야 합니다. 외국의 경우 10년 공사를 한다면 5~6년은 그런 전 단계를 거칩니다. 그런 준비를 하지 않으면 결국 시행착오를 겪다가 시간과 돈이 더 많이 들게 됩니다. 4대강 사업이 순수한 목적에서 하는 거라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 때는 계획과 조사, 대화와 설득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이 설득되면 차기 정부도 안할 수 없을 겁니다. 임기 내에 완공테이프를 끊어 성과를 보여주기 보다 국가 백년대계를 착안하여 차근차근 진행하면 국민에게 어필하는 신세대 지도자가 될 겁니다.”

- 세종시 문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세종시는 국민과의 계약 문제입니다. 책임, 비효율 얘기가 나오는 건 일부 인정하지만 30년이 지나야 정착되어 기능이 돌아갈 겁니다. 1980년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지 생각해 보십시오. 현재의 잣대가 아닌 엄청나게 발전할 미래의 잣대로 보셔야 합니다. 행정복합도시가 들어서면 서울이 손해 보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수도권 과밀화가 해소되면서 지방균형 발전이 일어나는 윈윈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 이회창 대표가 한나라당 대선후보 시절 수도 천도를 반대했는데 입장에 따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이 많습니다.

“당시 상황을 잘 몰라서 2002년 한나라당 대선공약집을 봤습니다. 노무현 후보가 수도이전 발표를 한 다음 이회창 후보가 반대를 천명하면서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을 위해 서울에 있는 행정기관과 국가연구소기관을 지방에 분산시키고, 민간기업에 인센티브를 주어 지방분산을 유도해야 한다고 했더군요. 과밀화해소와 지방균형 발전이 당시 공약이었습니다. 세종시로 다 가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지역특성에 맞게 수도권을 분산하여 이전해야 한다는 안이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청와대가 가는 것부터 시작하여 수도가 천도하는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지상욱 대변인은 ‘정치적 책임’이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수도이전은 위헌으로 판명났지만 행정복합도시는 합헌으로 결론났고 특별법까지 만들어졌습니다. 법을 뒤집는 세상이면 민간기업과의 계약, 개인끼리의 약속은 어떻게 됩니까. ‘아, 이렇게 했더니 이런 문제가 있어서 안 되겠구나’하는 학습효과를 한 번은 겪고 지나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론이 분열되면서 혼란이 생깁니다.”

- ‘대변인’ 하면 독설가라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릅니다. 어떤 각오로 임하셨습니까.

“박희태 한나라당 의원이 쓴 ‘대변인’이라는 책을 봤습니다. 그 분은 워낙 출중하시지만 저는 이공계 출신이어서 언어 구사력이 떨어집니다. 당장 제가 하는 논평이 빛이 나거나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 않을지 모르나 잔상이 남고 공감할 수 있는 대변인이 되고 싶습니다.”

언어 구사력이 떨어진다는 자평과 달리 그는 진지한 달변가였다.


“외교·안보는 한나라당보다 보수적”


-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동시에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더군요.

“양쪽을 다 비판할 때도 있고 한나라 옳을 때 힘을 실어주거나, 한나라만 놓고 비판을 가한 적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치와 맞지 않으면 어떤 사안이든 말할 수 있습니다.”

- 양당을 공격하는 자유선진당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보수층에서는 선진당이 확실한 보수의 역할을 맡아줄 것을 기대했으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입니다.

“우리나라 보수우파는 좌파와 싸울 때 겁이 많아서 비겁하고, 도망가기에는 뚱뚱하다는 비난을 받습니다. 건강한 사회, 낮은 보수, 공동체주의를 실현하려면 좀 더 비우고 남을 배려하는 박애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 탓, 내가 죄인’이라고 자복하는 마음 자세가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정직하게 약속을 지켜 믿음을 주자는 것이 우리 당의 생각입니다.”

- 보수를 표방하고 있는데 한나라당과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이 많겠지만 외교 안보 북한 문제에 있어서는 한나라당보다 보수적입니다. 인도적인 지원은 좋지만 대북문제에 있어서는 전략적인 상호주의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우리 관광객이 총 맞아 죽었는데 항의도 제대로 못하고 개성공단과 별개라고 합니다. 국가의 기본적인 틀조차 갖추지 못한 북한을 너무 점잖게 대하고 주기만 하는 게 옳을까요. 주더라고 변화의 틀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국가 안보는 힘의 균형에서 오기 때문에 초기에 다잡아서 적절한 파워를 유지해야 합니다.”

- 자유선진당은 출범 한 달 만에 교섭단체를 이룰 정도로 지지도가 높았으나 요즘 민노당 보다 지지도가 낮은데 이 상황을 어떻게 보십니까.

“세상은 빨리 변하는데, 따라가지 못한 거죠. 좀 더 젊고 혁신적으로 끌고 갈 기회가 있었지만, 한 달만에 성공적으로 당을 만들고 18석을 획득한 다음 좀 안주했던 게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이회창 대표 한 인물이 당을 끌고 왔다는 평이 있지만 다른 분이 말을 하면 기사가 나오지 않을 정도였으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점도 있습니다.”

- 이회창 대표께서 2012년 대선에 또 나오는 거 아니냐는 예측과 후진을 양성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이 대표님이 대통령의 꿈을 갖고 정치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 그동안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자 하는 마음, 이 나라가 올바로 가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후진, 외부인을 많이 챙기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6·2 지방선거에 서울시장으로 출마할 거라는 예측에 대해 “머지않은 시기에 어떤 입장 정리가 있을 것”이라는 답변만 했다.

- 자유선진당은 충청지역 이외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는데 이번 6·2 선거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충남과 대전은 석권하고 충북까지 진출할 것을 예상합니다. 전국 각 지역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야가 싸우는 것에 식상한 분들이 많은데 색다르고 참신한 캠페인과 구호를 들고 나갈 겁니다. 자유, 개방, 공동체 이 세 가지 가치를 추구하는 우리 당이 전당대회를 통해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선거가 시작되면 달라진 모습을 보게 되실 겁니다”

- 국민중심연합이 창당되었습니다. 자유선진당을 탈당한 심대평 의원이 대표인데 창당할 때 따로 논평을 하지 않았더군요.

“국민화합, 지역통합의 정치를 하기 위해 창당한다고 했더군요. 그 분을 모시던 분이 한 분도 안 나갔습니다. 거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회창 대표께서 초창기에 시대에도 맞지 않는 총재 직함을 단 것은 심대평 의원을 대표로 모시기 위해서였습니다. 한때 뜻을 합쳐서 창당을 같이 하고 대선을 치렀고 대표 역할을 하신 분인데…”


독특한 정치 입문 과정


- 심대평 의원은 이회창 대표께서 국무총리 길을 막은 사실을 섭섭하게 여기더군요.

“야당의 대표가 세종시를 수정하겠다는 현 정부의 총리로 가는데, 쉽지 않지요. 본인은 가면 원안을 지킨다고 하지만, 공조의 틀이라는 게 기반이 되어야 가능한 겁니다. 공조의 틀이 없는 상태에서 어떤 당의 대표를 그냥 뽑아가서 총리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서 반대한 건데 그 분은 섭섭했던 것 같습니다.”

 - 정치 입문 과정이 독특하더군요. 2002년 대선에 실패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정계 은퇴하면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구요.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기술정책연구 그룹장을 할 때인데 그때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 분의 법철학 원칙과 대쪽이라는 마음이 좋았습니다. 정치를 다시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국가의 어른으로 잘 받들어서 큰 역할을 하시게끔 해드려야 하는데 떠나신다니 암울하더군요. 2003년에 도와줄 수 있겠느냐는 요청이 왔어요. 하루 만에 결정하고 따라나서니까 주변에서 왜 어렵게 살려고 하느냐면서 만류하더군요. 가장 외로울 때 제가 함께 해서 이회창 대표 내외분께 사랑을 많이 받았죠.”

- 이회창 대표와 가까이 지내면서 당시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나요.

“실망했으면 떠났겠죠. 장점도 많고 단점도 많은 분입니다. 밖에서 아는 것보다 훨씬 개혁적이고 부드럽고 자상하십니다. 속 깊고, 농담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시는데 사람들이 그런 걸 잘 몰라요. 수줍어하시고 속이는 걸 못합니다. 정치를 하려면 어떤 사안은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하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하세요. 2007년 대선 기간 어느 날 오후 한 때 이회창 후보가 사라졌어요. 박근혜 대표를 만났다는 얘기가 돌았어요. 다음 날 다른 건으로 기자회견을 하게 되었는데 ‘오늘 기자들이 어제 어디 갔느냐고 하면 나중에 밝힐 때가 있을 거라고 하십시오’라고 건의했습니다. 그런데 기자가 질문을 하자 1,2초만에 얼굴이 빨개지더니 ‘만나려고 했는데 못 만나고 전화통화만 했습니다’라고 하는 겁니다. 곧이곧대로입니다. 너무 꼬장꼬장하고 빈틈없는 것, 너무 똑똑하신 것이 흠이 될 때가 있어요.”

- 이회창 대표가 대선에서 두 번 실패한 건 특정 정치인과 교류를 하지 않아서라는 평이 있습니다. 이 대표가 ‘정치를 몰랐다, 요즘 달라졌다’고 하셨다는데 실제로 어떻습니까.

“그게 어디 가겠습니까. 정직하기 때문에 신뢰합니다. 대선 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손을 잡으려고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대정당이니만큼 주변에 많은 사람이 후보를 에워싸고 있어서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틀어진 일이 많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 건설분야 연구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했는데, 어떤 점이 달라졌습니까.

“토목, 엔지니어링, 건설관리를 과학적으로 공부하고 연구원으로 입문하여 국가의 중요한 건설기술을 연구했습니다. 정치도 국가적인 차원에서 생각하는 분야여서 미리 학습이 되었어요. 이공계는 뜬구름 잡는 것이 아니라 숫자와 논리적 근거, 통계를 중요시합니다. 기본이 쌓여 있어 이공계 출신인 점이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나라를 기술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이공계를 우대하고 R&D를 지원하는 게 필요합니다. 정치인이 되어 달라진 점이라면 말을 많이 한다는 겁니다.”


4대째 기독교 집안 출신
 

지상욱 대변인은 외가 쪽이 4대째 기독교를 믿는 집안에서 자랐다.

“외증조할머니가 한경직 영락교회 목사님과 소꿉친구셨어요. 월남하셔서 필동에 사셨는데 매주일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들 50분씩 그 댁에서 떡국을 드셨죠.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나신 뒤 교회에 다니셨어요.”

‘정치인 지상욱’으로 봐달라는 그에게 ‘정치인의 아내 심은하’에 대해 질문했다. 요즘 신혼은 3개월이고, 3년이면 애정이 식는다는데 두 분은 어떠냐는 우문을 하자 “아내의 얼굴에 반한 게 아니라 마음에 반해서 결혼했다”는 현답을 내놓았다. 결혼 6년 차인 그에게 아직도 신혼이냐고 묻자 “그건 비밀로 할게요”라며 웃었다.

- 가족들과 함께 지낼 시간이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밤늦게 들어갔을 때 집사람이 애들과 자고 있으면 안 깨웁니다. 일찍 나가는 저를 위해 아내가 새벽에 먹으라고 마즙을 갈아서 냉장고에 넣어둡니다. 가끔 집에 일찍 가면 애들이 흥분합니다. 자주 못 보니까. 대신 일요일은 온가족이 교회에 갔다가 본가에 가서 부모님과 형제 가족들과 지내죠.”

요즘 심은하 씨는 어린 두 딸을 돌보며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심은하 씨는 지난해 통신으로도 가능한 출석 수업을 꼬박 참석했다고 한다. 출석 수업은 한 학기에 3일 간, 아침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진행된다.

- 정치인은 아내의 내조가 중요한데, 심은하 씨는 어떠신가요.

 

“제가 밖에서 마음껏 일하도록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게 해주는 것이 가장 큰 내조이고 후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밖에서 일하기 쉽지 않죠. 아내는 저를 존중하고 무슨 일이든 항상 저의 의견을 묻습니다. 어떨 때는 ‘그런 건 혼자 알아서 해도 되지 않나’라고 말할 정도로 의논을 많이 해옵니다. 저도 상황이 되는 한도 내에서 도와줄 건 도와 줍니다. 아내는 특히 애들한테 아주 철저합니다. 만날 집에서 애들하고 뒹굴고 놀아요. 밖에 나갈 때도 애들 데리고 나가고 친구들도 잘 안 만나요. 생활 반경이 굉장히 좁아요.”

-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아내는 어떤 의견인가요.

“최근에도 집사람이 정치하는 걸 많이 걱정했어요. 세파에 휘둘리고 사생활도 없었던 게 싫어 배우에서 인간 심은하로 돌아온 건데 제가 정치하면 또 시끄러워질까봐 걱정하는 게 사실입니다. 초창기에는 ‘정치하지 말고 재미나게 살 수 없느냐’고 했습니다. 지금은 자기 남편이 신념이 투철하다고 보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오빠 좀 약게 살 수 없어?’라고 하더군요. 제가 워낙 외통수고 신념을 꺾지 않으니까 그런 얘기를 한 거 같아요. 요즘은 사회 돌아가는 게 험하고 사건 사고가 많이 생기니까 애 키우는 엄마로서 걱정이 되는지 ‘오빠 기왕에 할 거면 제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영화배우 심은하를 돌려달라"

- 어떤 칼럼리스트가 ‘정치인 지상욱’으로 불리길 원하면 ‘영화배우 심은하’를 돌려달라는 글을 썼더군요. 심은하 씨가 영화배우로 돌아올 전망은 없을까요.

“아내는 지금도 영화를 사랑하고, 저랑 영화도 많이 보러 다닙니다. 얼마 전에 아내가 ‘나는 당신의 아내로, 두 딸의 엄마로 사는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고 하더군요. 지금 아이들이 만으로 두 살, 네 살입니다. 그림도 잘 그리고 붓글씨도 잘 쓰는 아내가 요즘 애들 스케치북에 같이 그리는 정도 밖에 못하면서도 만족하고 있어요. 애들이 엄마가 그림 그리게 놔두지 않습니다. 다시 연기를 한다는 가정에 대해 지금은 말할 수 없습니다. 애들이 클 때까지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에요. 아내가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회가 오면 가족이 신중하게 상의하고 환경에 맞춰 생각해볼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는 거겠지요.”

지상욱 대변인은 아내 얘기가 길어질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차단하려고 애썼다. 그가 꼭 하고 싶다는 얘기는 옛날 가치에 관한 것이었다.

“법도 권위도 신의도 없고, 거짓과 공짜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정신적 가치운동을 시작할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결과보다 과정, 보이지 않게 참여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국가를 위해 고생하신 분들을 예우하고,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과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기리는 일을 시작해야 합니다. 국가가 나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인 지성한 한성실업 회장에 대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오늘날 제가 있기까지 부모님의 역할이 가장 큽니다. 나이 들면서 의견이 달라 아버지께 잘못한 적도 있습니다. 올해 78세인 아버지는 요즘도 신문 스크랩을 해서 저한테 보라고 주십니다. 본가에 형제들 나무가 한 그루씩 있는데 제 딸들이 가면 제 감나무에서 손수 감을 따서 ‘아빠 나무’라고 세심하게 일러주십니다. 일에는 무섭고 철저하신데 잔잔한 정이 넘치는 분입니다. 예전에 아버지학교에 입학하여 저한테 편지를 보내셨는데 ‘난 널 사랑한다. 네가 자랑스럽다. 세상에 나가 귀감이 되라’는 내용이었어요. 그 편지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이 자리를 빌려 아버지께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지상욱 대변인은 2008년 4월 제18대 총선 때 비례대표 신청을 하지 않았다. 당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고 한다. 앞으로도 자리가 아닌 가치를 위해 일할 것이라는 각오를 밝혔다.

“노자는 ‘어진 군주는 백성들이 그 이름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정치인들이 국민을 피곤하게 합니다. 제가 한다면 졸졸 흐르는 샘물 같은 감동을 주면서, 정직하고 진실한 가치를 꾸준히 제공하고 싶어요. 화려하지 않더라도 할 일을 하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초심을 버리지 않겠다는 고집으로 8년을 살았습니다. 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 되고 싶습니다.”  #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글/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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