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엽 선생이 대한민국 원로가 될 수 없는 이유
황장엽 선생이 대한민국 원로가 될 수 없는 이유
  • 미래한국
  • 승인 2010.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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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편집인·세이브NK 집행위원장


필자는 개인적으로 황장엽 선생을 존경한다. 1997년 한국으로 귀순한 황 선생이 DJ정권 내내 감금생활을 하다가 2003년 6월 국정원보호에서 경찰보호로 전환돼 제한적 활동을 시작하게 되면서 여러 차례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이제 나도 휴대폰을 가진 국민이 됐다”며 좋아하던 모습이나, “또 왔어?”라며 필자를 반겨주던 말에서 황 선생의 깊은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몇 차례의 만남과 저서를 통해 접한 황 선생은 늘 초인(超人)과 철인(哲人)의 이미지였다.

황 선생이 최근 다시 국내외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북한의 남파공작원이 인민무력부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황 선생을 살해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사실이 지난 4월 밝혀졌기 때문이다.

황 선생은 앞선 3월 말에는 2003년 10월 이후 두 번째로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 정관계 요로에 북한정권의 실상을 폭로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한 그를 국가급 지도자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일각에서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황 선생이 미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북한 급변사태가 온다’는 커버스토리가 실린 <미래한국> 한 부를 황 선생에게 직접 전달했다. 그런데 황 선생은 워싱턴 강연에서 “북한에는 김정일을 반대할 만한 세력이 없고 북한 체제의 내부 분열을 기대할 수 없다”며 “중국이 지지하는 한 북한의 급변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주장은 현실과 가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미래한국>이 현실과 먼 분석을 내놓은 것인가. 필자는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황장엽 선생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창시한 인물이다. 1923년 평남에서 출생한 황 선생은 1946년 조선노동당에 입당한 이후 승승장구 하면서 김일성 종합대학의 철학강좌장과 총장, 최고인민회의 의장, 주체사상연구소 소장, 국제주체재단 이사장, 조선노동당 국제담당비서 등 북한사회의 최고위직을 두루 역임했고 김정일의 개인교사 역할도 했다. 그 과정이야 어떻든 현 북한공산독재 수령체제 건설의 1등 공신이었던 셈이다.

황 선생은 자신의 사상을 ‘인간중심철학’이라는 한마디로 표현한다. 그는 1997년 4월 귀순 직후 쓴 저서에서 자신이 “1968년말 마르크스주의의 계급적 입장을 버리고 새로운 생명관에 기초한 인본주의 입장으로 바뀌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이어 “나는 온갖 형태의 불평등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이 잘 사는 사회를 건설하는 사회주의 이상을 지지한다. 그것은 내가 사회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주의 이상이 인본주의 사상에 맞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에게 충실할 것을 맹세한 인본주의자이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 황 선생은 사회적 평등과 공동체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회주의의 신봉자이며, 신본주의에 반해 인본주의를 강조하는 유물론자이다.

황 선생의 한반도 통일방안은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아니라 중국식 사회주의와 개혁개방에 의한 일종의 연방제 통일안이다. 그것이 김정일이 모든 권력을 완벽히 장악한 북한의 실상을 반영하는 유일한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동시에 황 선생의 사상적 궤적과 연대감을 반영하는 방안이기도 하다.

북한에 급변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도 그러한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1997년 그의 중요한 귀순 이유가 김정일정권의 조속 붕괴 가능성 때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생각의 자유가 허용되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황 선생의 사상이 탄압을 받거나 비판 받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민족의 생명이 개인의 생명보다 귀중하다’며 혈육을 희생하면서까지 남한을 찾은 황 선생은 비록 이념이 다를지라도 분명 민족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이자 전략가이며 고귀한 인격의 소유자이며 실천가이다.

이것이 황 선생을 개인적으로는 존경하지만 대한민국과 향후 통일한국의 지도자로 인정할 수는 없는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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