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다
그림으로 세상을 이야기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0.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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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림꾼 임병두


그림꾼 임병두 씨(29)와의 대화는 ‘그의 직업을 어떻게 정의하는 것이 좋겠느냐’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저는 제 직업을 그림꾼이라고 내세우고 싶어요. 제가 사용하는 ‘그림꾼’이라는 단어는 그림을 그리는 이야기꾼의 줄임말이요.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제 생각을 알리고 전파하는 것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그림꾼이라는 단어가 제 직업을 정확히 대표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07년부터 UCC 그림 활동으로 화제
 
로고ㆍ캐릭터 디자인, 티셔츠 디자인, 그래피티 아트, 벽화 작업, 웹툰 연재, UCC(사용자가 직접 제작한 콘텐츠) 및 플래시 애니메이션 작가 등등. 그림꾼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임병두 씨는 그림과 디자인에 관련한 작업들을 통해 꾸준히 자신의 생각을 세상에 표현해오고 있다.

그의 이름이 대중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는 지난 2007년, UCC라는 새로운 개념의 콘텐츠가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됐을 때이다. 임 씨는 벽에 그림을 그리는 그래피티 작업 과정을 UCC로 제작한 ‘춤추듯 그리는 그림꾼’이란 동영상을 시작으로, ‘당신은 나의 영웅이십니다’라는 제목의 UCC로 네티즌의 관심뿐만 아니라 언론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 임병두 씨가 그린 아버지 그림.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과정을 촬영해 ‘당신은 나의 영웅이십니다’라는 제목의 UCC로 제작했는데, 네티즌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이 UCC는 아버지의 모습을 직접 그리는 과정을 촬영한 것인데, “아버지의 주름을 그리다보니 눈물이 납니다”라는 자막으로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 영상은 임병두 씨가 만든 그 동안의 UCC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림을 소재로 필명을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UCC 작가는 제가 처음이 아니었나 생각을 해요. 그때 저는 동영상이 아닌 제 그림 활동을 강좌형식으로 올리는 활동을 했었어요. 저는 4~5년 동안 옷을 한 번도 사지 않고 어머님한테 물려받는 옷들, 원래 가지고 있는 옷들, 주변에서 버린 옷들을 리폼해서 입거든요. 그런 것들을 강좌에 올리면 사람들이 관심 있게 봐주고 옷을 주문하기도 해요. 그런 활동을 해오다가 당시에 동영상이 한창 유행이었고 제가 보기에는 강좌는 사람들이 딱히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이 뭔가 보여주고 이야기가 있는 것들을 더 좋아했거든요. UCC 작업은 그래피티 벽화 작업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쭉 하게 됐죠. 그리고 많은 사람들한테 저를 보이고 싶은 게 첫 번째였어요.”

▲ ▲숭례문 드로잉. 임 씨는 지난 2008년 불타버린 숭례문을 그리는 과정을 UCC로 제작해 대한민국인터넷미디어 UCC대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 자료사진
현재까지 그가 만든 UCC는 약 300~400여개. 이중에는 각종 공모전 수상작도 상당수다. 지난 2008년 대한민국수다넷미디어 UCC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마음으로 본 숭례문 그리기’를 비롯해 2007년 ‘물음표 청년의 신용카드 이야기’라는 UCC는 금융감독위원회 금융 UCC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의 작품 중에는 사회 이슈에 관련된 것이 많다.

“제가 그림이나 UCC 등을 통해 제 생각을 표현하는 활동을 하다보니까 사회 이슈에 관심이 갔고, 그런 걸 표현하는 게 저한테 잘 어울리고 재미 있더라고요. 또 제가 왜 사회 이슈를 소재를 많이 하게 됐느냐 하면 그림이라는 것은 보이는 거고, 볼 수 있는 거는 상대방이 여유가 있을 때 볼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을 해요. 내가 안정되지 못하고 바쁘고, 여유가 없는데, 그림이나 영화를 볼 수 있는 여유는 당연히 없잖아요. 그들하고 먼저 공감하고 여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관심을 갖도록 하는 활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는 최근 북한인권 개선을 요구하는 길거리 퍼포먼스에 이르기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 ▲임병두 씨가 그린 김정일 만평 / 자료사진
지난 8월 16일 서울 대학로의 만남의 광장에서는 ‘치매에 걸려 비정상적인 김정일’을 표현한 거리 댄스 공연이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20대 젊은이들이 모여 댄스와 함께 선보인 이날 거리 공연에서는 치매에 걸려 벽에 똥칠을 하는 김정일과 밀입북으로 사회적으로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한상렬 목사가 등장했다. 이 퍼포먼스에서 한상렬 씨는 김정일의 개로 표현됐다.

퍼포먼스를 펼친 이들은 임병두 씨가 리더를 맡고 있는 하람꾼이라는 팀. 하람꾼은 하늘에서 내려준 끼 있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으로 임병두 씨가 퍼포먼스나 창의적인 뭔가를 할 수 있는 장(場)을 만들고 싶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제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답답했던 것들을 이런 활동을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고 싶기도 했고요. 이번 공연은 사회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자는 취지를 문화적으로 다가간 거예요. 공연이라는 개념으로 춤을 췄고, 전단지에 이 퍼포먼스의 의의나 의도를 써서 얹어놨었는데 공연을 보는 도중에 시민들이 관심 있게 보더라고요. 공연을 봤기 때문에 이런 것들에 대해 알아야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을 하는 거죠.”


“재미와 철학 있는 애니메이션 만들고 싶어”

다양한 그림 작업 뿐만 아니라 퍼포먼스 활동, 피팅 모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림꾼 임병두 씨는 요즘 틈틈이 웹툰을 만들기 위한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있다. 한 가지 우물만 파도 바쁜 시대에 왜 그는 여러 가지 일에 도전하고 있는 것일까.

“제가 느끼는 것은 한 가지 일만 해서는 특히 그림 쪽은 먹고 살 수 없다는 거예요.(웃음) 그런 현실적인 이유도 있고, 또 다양한 일을 하면서 의미를 담아내는 게 제게 재미가 있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던지고, 돈도 이끌어 낼 수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한다고 해서 여러 가지 길이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제가 만들어낸 말인데, 예를 들어 저는 우물을 파고 싶은 게 아니에요. 큰 바다를 만들고 싶은 거지…. 우물들을 여러 곳에 계속 파면서 꾸준히 깊게 넓게 파다보면, 호수를 만들고, 바다까지 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요?”

그림꾼 임병두 씨의 최종 직업적인 목표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라고 한다.

“저는 행복하게 매일 노력하며 살고 싶어요. 매일 제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죽을 때까지 뭔가를 만들어 내고 싶고요. 저는 SF 드라마 형식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습니다. 소재를 꼽는다면 애니메이션 영화 쿵푸 팬더와 같이 재미와 철학이 있는 작품이고, 두 번째 순위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월리처럼 정확한 이야기를 던져주는 것을 좋아해요.”

하지만 부모님의 반대 등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

“아버지는 제가 하는 일을 싫어하세요. 어머니는 제 끼를 보시고 좋아하시지만, 그림에는 관심이 없으세요. 제가 ‘상 탔어’, ‘방송 나간다’ 그러면 ‘아, 그래’ 하면서 도와주시는 정도에요. 제가 기관지가 별로 안 좋은데 약을 챙겨주시고 작업을 할 때 항상 ‘먹어봐’ 이러면서 밥을 가져다주세요. 제가 작업을 하면서도 그나마 살아 있는 건 어머니 때문이에요.”

그는 자신의 최종 꿈을 실현할 나이를 60세로 정했다고 한다.

“저는 제 어머니를 보고 제 꿈을 실현할 나이를 60세를 정했어요. 어머니께서 판소리를 하시는데 환경적인 이유로 서른 살이 넘어 판소리를 시작하셨어요. 그런 것을 보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고 열정이 중요하고, 하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라고 배우게 됐습니다. 또 인생이란 게 한 치 앞도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좀 멀리 잡은 거예요. (웃음) 더 중요한 것은 가족들에게 잘하고 싶거든요. 현실적으로 외국에 나가는 게 빠른 기술 습득을 위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은 해요. 일단 우리나라 시장 자체가 애니메이션 시장은 죽어 있고, 어린이 시장 밖에 없거든요. 하지만 제 행복을 위해 제가 외국에 나가면 가족들이 힘들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현재 뭘 보여줘야 내 꿈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임 씨는 스스로를 운 좋은 그림꾼이라고 설명했다. 그림꾼이라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미술을 정식으로 공부해 본 적은 없다고 한다.

“대학 진학할 때 원래 미대를 가고 싶었어요. 고 2때 미대에 가고 싶다고 학원을 다 알아본 뒤 한번 울면서 대들었다가 다음날 바로 접었죠. 저는 제 그림을 낙서라고 부르는데, 그렇지만 제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낙서를 시작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건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대학에 가서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로 전과를 한 뒤 현실적으로 장학금을 타야 한다는 목표로 2D 애니메이션, 3D 애니메이션, 플래시 애니메이션, 옷, 그래피티, 벽화, 팬시 아이템 등을 다 해봤어요. 이때 다 해봤기 때문에 결국은 사회에 나왔을 때 다할 수 있게 된 거예요. 저는 대학에서 기술보다는 좋은 습관을 배우고 왔고, 그때 했던 작업들이 결과적으로 제게 큰 자신감을 준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자신이 걸어왔던 길에 대한 믿음이 중요한 거 같아요. 지금의 저와 어제의 저는 별반 차이가 없을 거예요. 그런데 1년 전의 저와 지금의 저는 엄청난 차이가 있거든요. 이건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분명히 자신이 성장해 있음을 보라는 거죠. 지금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가면 분명히 성장해 있을 겁니다.” #

글·사진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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