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제 다뤄야 노벨문학상 수상”
“북한문제 다뤄야 노벨문학상 수상”
  • 김민정 미래한국 기자
  • 승인 2010.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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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길원 시인·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장


한국 문학계에서는 유일하게 국제회의장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문학단체가 있다. ‘문학을 신장시키고 표현의 자유를 지켜간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국제펜(PEN)클럽 한국본부(이사장 이길원)가 그 단체이다. 1921년 영국 런던에서 창립된 국제펜클럽은 ‘어떤 형태로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데 반대할 것을 선언한다’는 헌장 아래 현재 104개국에 145개의 센터를 두고 10만여 명의 문필가들이 참여하는 세계적인 문학단체이다. 한국 문단도 변영로, 주요섭, 모윤숙 등 작가들의 주도로 1954년 국제펜클럽 회원국으로 가입해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학계와 교류해오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 2008년 9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에서 개최된 세계 펜대회의 평화위원회에서 한국펜클럽 현 이사장인 이길원(66·李吉遠) 씨가 ‘분단 한국의 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때 이 이사장은 “탈북한 북한 주민의 인권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세계의 문인들에게 호소했으며 이듬해에는 오스트리아 린스에서 열린 국제펜대회에서 국제펜클럽의 이름으로 ‘굶주림에 지쳐 생존하기 위해 인접 국가로 탈출한 북한 주민들의 개탄스런 인권상황에 분노한다’는 ‘북한 인권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미래한국>은 9월초순 평소 북한 주민들의 가슴 아픈 현실을 돌아보며 창작활동을 해왔다는 이길원 이사장을 그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이사장은 ‘하회탈 자화상’, ‘은행 몇 알에 대한 명상’ 등 여러 권의 시집을 냈으며 천상병 시문학상을 비롯해 윤동주 문학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등을 수상해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는 시인이다.

‘문학과 미디어’라는 주제로 오는 2012년 서울 펜대회를 앞두고 벌써부터 마음이 분주하다는 이 이사장으로부터 ‘진보’라는 이름의 좌파문학이 극성을 부리는 문단 분위기 등 한국 문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북한 동포를 외면해온 한국 문단

- 독자보다 문인이 더 많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최근 나오고 있습니다만, 통상 한국의 문인은 얼마나 된다고 보는지요. 또 국제펜클럽에 가입한 한국 문인은 얼마나 됩니까.

2000년대 이후 문학의 성역이 무너졌다고 할까요, 온갖 문학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창간돼 거의 300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 문학지들이 저마다 신인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 한국의 문인은 1만 명은 족히 넘을 듯합니다. 그중에 6,000명 이상이 시인입니다. 우리 국제펜클럽에 가입한 한국 문인은 현재 모두 3,088명입니다. 물론 양적 증가와 질적 향상이 반드시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요.

- 국제펜클럽이 지향하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국제펜클럽 헌장에 명기돼 있지만 크게 두 가지 목적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표현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표현을 막는 온갖 형태의 정치적 압제와 구속을 배격하고 이를 위해 국제적 공조를 하자는 것입니다. 둘째는 여러 언어와 여러 인종, 여러 문화 속에서 문학을 통해 민족 간의 갈등을 타파하고 평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결국 인류를 위한 표현의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문학단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 이러한 창립 목적이 한국에서도 구현될 기회가 있었는지요.

그럼요, 바로 군사정권 때입니다. 김지하 씨나 황석영 씨 등 소위 반정부 작가들이 당시 군사정부로부터 표현의 자유를 제재를 받고 있을 때 국제 펜클럽이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해 항의 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국제 활동을 통해 그들의 문학 활동을 지원했었어요. 그런데 국제펜클럽의 항의에 대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1970년 국제펜클럽 대회를 서울로 유치해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또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8년 올림픽 직전에 국제 펜대회를 서울에 유치했지요. 그 결과 성공적으로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이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임을 보여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우리는 2012년에 세 번째 서울대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 군사정부가 물러간 지난 10년, 좌파정부 시절에는 어떤 문학적 이슈가 있었습니까.

겉으로는 아무런 이슈도 없어 보였어요. 독재의 상징인 군사정권이 무너지고 소위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문학적 목표가 다 성취된 것 같았지요. 국제펜클럽 한국본부는  국제 활동에 관심이 컸습니다. 이를테면 우랄알타이어계의 국가들과 만나는 펜 대회, 또 아시아 펜 대회에 참가하는 등 나름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우리 한글을 소개하고 한국문학을 알리는 일에 주력했지요.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이슈를 놓치고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동토의 땅 북한에서 말할 수 없이 고통당하고 있는 북한 동포에 관한 문제를 외면한 것이지요.

-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니 노벨평화상 수상이니 하는 굵직한 사건들이 한반도를 평화시대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게 했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그 무렵 우리 문학계의 관심은 온통 노벨문학상에 기울어 있었어요. 당시로서는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으면서 노벨문학상이 한국 작가에게도 올 차례가 됐다는 여론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작가도 받았는데, 우리도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이었지요. 마치 노벨문학상이 한국에 배정이라도 된 것처럼 들떠 있었습니다.

-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에 한국 작가가 올라 있다는 보도가 나오곤 했었지요.

그런데 실상은 달랐습니다. 국제펜클럽 본부에서는 한국본부에 매년 노벨문학상 추천작가를 요청해옵니다. 이것은 104개 회원국 모두에게 요구하는 연례행사일 뿐이지요. 제가 한 번은 스웨덴의 노벨문학상 심사위원인 한 작가에게 “노벨문학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인가?”라고 물어 봤어요. 그 분 얘기가 충격적이었습니다. “노벨문학상이 작품성 때문에 주는 것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노벨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인류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그런 폭력과 고통을 제거하려고 노력하면서 인류에 평화를 가져온 사람, 그 평화에 공헌한 사람을 기리고자 하는 것이 노벨상 제정의 취지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노벨문학상도 그런 기준을 참작한다는 것입니다.


‘북한’은 노벨문학상 소재

- 그렇다면 그런 기준에 맞는 한국 작가가 있을까요.

유감스런 일이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작가가 없는 듯합니다. 그동안 이런 저런 중진작가들이 거론되고 마치 최종 수상대상자인 것처럼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만 언론이 환상을 만든 셈입니다. 우리 국제펜클럽은 한국 언론에서 거론하는 그런 시인이나 작가를 추천한 일이 없습니다.

- 한국 작가로서 조만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한국 문인들은 그 어느 나라 문인들보다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우리 시대에 요구되는 문제의식을 얼마나 가졌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한국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북한 때문입니다. 북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 동포의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작가가 나온다면 그는 틀림없이 노벨문학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 소련의 정치적 압제를 다룬 솔제니친의 ‘암병동’, ‘수용소군도’가 바로 그 예입니다. 자유도 희망도 없이 철저히 노예로 살아가야 하는 북한 동포의 비인간적 현실, 더구나 이런 정권을 비호하는 중국에서 목숨을 연명하는 탈북자들의 비극적 상황, 이보다 리얼한 문학소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 하지만 대부분 작가들이 비인도적 포악자인 김정일을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것을 꺼려 합니다. 표현의 자유가 없는 북한을 향해 자유와 인권의 문제를 제기하는 용기 있는 작가를 만나기가 어려운 까닭이 무엇일까요?

진보주의가 지배하는 한국사회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60, 70년대 우리 문단에는 소위 순수파냐, 참여파냐 하는 문학관의 대립이 있었는데 80년대로 들어서면서 민주화 세력이 문학의 주류로 등장함으로써 문학계 판도가 크게 달라졌어요. 이른바 진보적 문학관을 가진 이들의 좌파문학이 득세하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특히 많은 문학적 담론을 생산해낸 평론의 흐름이 좌파적 시각을 옹호했고 국가적 체제와 정체성을 파괴하는 반미, 반정부 사고를 부추겼습니다. 이들은 북한을 인권이 말살된 현장이 아니라 사회주의 낙원으로 미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진보주의와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문인은 보수 꼴통에 불과한 시대의 낙오자로 낙인찍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에 강하게 대응하고 나설 문인은 별로 없었지요. 그나마 특별한 일이지만 이문열 씨 같은 분이 자신의 책을 분서(焚書)당하면서까지 자신의 문학관을 굽히지 않고 분투했던 일은 한국문학사에 오래 기억될 사건입니다.

-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순수한 문학을 주장하는 작가들은 많이 있지 않을까요.

6년 전 얘기입니다만 당시 펜클럽 회원 1천 명에게 북핵과 대북지원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조사 결과는 회원 대부분이 아주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북핵과 대북지원에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회원은 20%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았습니다. 80% 이상이 진보적 이념과는 거리가 멀었고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문인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셈이지요. 그러나 이분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가진 국가관이 있느냐 하는 점은 의문입니다. 문학적 순수를 지향하지만 좌파문학의 행동에 대응하는 행동이 없다는 점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우리 문인들의 현주소이고 문학적 과제라고 봅니다.

- 국제펜대회에서 ‘북한인권 보고서’를 발표했다고 하는데 그 때 얘기를 들려주시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너무도 안타까운 북한 동포의 현실을 듣고도 남한의 문인들이 외면하는 분위기에 작가의 양심으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시를 통해 탈북민의 현실과 북한 동족의 고통을 노래했더니 주위에서 들려오는 얘기가 나더러 ‘보수 꼴통’이랍니다. 그런 소리에 실망할 사람도 아닙니다만, 그때부터 더욱 이 문제를 세계 문인들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게 됐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북한인권단체들로부터 이런 저런 자료를 받아 아주 기본적인 인권 상황을 보고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분단 한국의 인권 보고서’입니다.


펜대회에서 ‘북한인권선언문’을 공식 채택

- 당시 회원국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모두들 놀라워했지요. 그리고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과 행동이 필요하다고 공감했고 국제적 공조를 위한 선언문이 그 다음해인 오스트리아 린스의 국제펜대회에서 채택됐습니다. 이 선언문에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를 회원국의 국가에서 공식적인 이슈로 제기해주기를 바라고 북한인권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외교부 대표에게 호소해주기 바란다, 정치범수용소를 비롯한 북한인권 문제를 기사로 다루도록 회원국의 언론에 호소해주기 바란다” 등을 주장했습니다.

- 앞으로도 북한인권 문제를 계속 다룰 생각인가요.

그렇습니다. 2012년 국제펜클럽 서울대회에서도 북한인권 문제를 직접 거론할 계획입니다. 세계적 문인들이 대거 참석할 것으로 보이는 서울대회는 그 어느 대회보다 북한 인권을 다루기 위한 절호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 북한에도 개인의 감상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문학이 존재할까요.

북한에는 조선문학, 청년문학, 통일문학 등 문학기관지가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순수문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앙당 문학과에서 매번 문학 주제를 내려 보내 그 주제에 의해 북한 문인들이 창작합니다. 당에 충성하는 글만 써야 합니다. 그러나 중앙당도 개인의 감정이나 생각을 통제하기는 어려운 모양입니다. 1999년에 탈북한 최진이 시인의 얘기를 들어보니 북한에 ‘지하문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어떤 내용의 문학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개인적인 감정과 의견을 표현한 자유문학의 한 형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 다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분이 있습니까.

깊이는 알지 못합니다만, 우리 펜클럽 문학지에도 소개한 중국 위구르의 ‘누르무헴메트 야신’이라는 작가가 다음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 중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람의 대표작인 ‘야생 비둘기’를 펜문학 작년 겨울호에 소개했어요. 야신은 이 작품을 발표한 2004년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돼 10년 감옥형을 받고 지금 우루무치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둘기를 위구르인으로 비유한 이 작품은 위구르인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잃지 말라는 절박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이를 위해 꾸준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만 몇 개의 작품을 영어나 불어로 번역, 소개한다고 해서 세계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보다 근본적인 문학 인프라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 대학에 한국어 또는 한국문학 관련 학과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또 한국 대학에 한국문학에 관심을 가진 좀 더 많은 외국학생들이 찾아오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가 보다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이러한 장기적인 인프라가 구축돼야 비로소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결국 현지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한국문학 전문가들이 많이 양성돼야 해요. 특히 노벨문학상을 목표로 한다면 스웨덴어로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심사위원들이 모두 스웨덴 사람들이니까요.

- 앞으로 국제펜클럽 한국본부를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입니까. 포부를 들려주시지요.

이달 말에 동경대회를 참석하고 2012년 서울대회를 구체화할 계획입니다. 문학과 미디어라는 주제에 맞게 우리의 미디어 기술을 소개하는 자리가 되고 문학과 미디어가 융합하는 선진세계를 보여주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그러나 북한인권 문제와 함께 고통받는 북한 현실이 세계 문학계의 이슈가 되고 주제가 되는 자리로 만들고 싶습니다. 이를 계기로 회원 간의 친목과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도 기여하는 한국펜클럽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이길원 이사장은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외에도 현재 ‘(주)태평양 그랜드’라는 포장재 및 산업재를 위한 특수인쇄회사를 성공적으로 경영해오고 있으며 시 창작과 여러 문학단체 봉사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해오고 있다. 그러나 그는 “시인이라는 명칭 하나로 만족한다”며 시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다. 국제펜클럽 회지인 ‘펜인터내셔널’ 작년 겨울호에는 ‘아버지가 남긴 은행 알에 관한 명상‘이라는 시가 실려 회원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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