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운동선수 양성해야”
“공부하는 운동선수 양성해야”
  • 미래한국
  • 승인 2010.10.0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인터뷰] 정동구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
▲ 정동구 체육인재육성재단 이사장


벤쿠버 동계올림픽 5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 우승. 올해 우리 국민들은 태극 전사ㆍ태극 소녀들이 전해오는 낭보에 행복했다. 특히 여자축구 대표팀의 우승은 전체 선수가 1400여명 밖에 없는 여건 속에서 이루어낸 결실이어서 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자축구대표팀의 우승과 동시에, 이제는 소수의 엘리트 선수들에게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체육 특기를 가진 학생들을 발굴해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선진국 스타일의 체육을 우리나라에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존하고 있다.

<미래한국>은 태극 소녀들의 낭보가 전해진 다음날, 체육인재육성재단의 정동구 이사장(68ㆍ한국체대 명예교수)을 만나 우리나라 체육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첫 번째 화두는 단연 여자축구 우승에 대한 이야기였다.


- 여자축구대표팀이 이렇게 잘 할 수 있었던 배경이 뭘까요.

▲ 지난 9월 26일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17세 이하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대표팀
“이번에 대회 MVP와 득점왕에 오른 여민지 선수는 경남 함안에 있는 고등학교 출신이더군요. 시골학교지만 학교축구팀이 잘 가르쳐 줘서 재목이 됐고, 대표팀에서도 주축이 된 겁니다. 우수한 선수들을 보면 그 뒤에는 항상 훌륭한 지도자가 있습니다. 훌륭한 영화가 만들어지려면 감독이 중요한 것처럼, 스포츠에서도 지도자는 그렇게 중요한 거죠. 물론 거기에는 독지가들의 도움이 있었을 겁니다. 거기까지 국가의 도움이 미치지 않았을 테니까요. 또 축구협회가 이미 4~5년 전부터 소질 있는 인재를 발굴했고요. 지도자와 독지가와 협회에서 사업을 잘 전개함으로써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난 거죠.”

- 동계올림픽, 월드컵의 좋은 성적도 같은 이유 때문일까요.

“우리나라 근대 스포츠가 도입된 지는 백 년이 넘었지만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 시기는 30~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제까지 우리 성적은 국가적인 체육정책 보다는 분야별로 헌신적인 지도자와 독지가, 협회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 즉 리더들에 의해 좋은 성적이 나왔죠. 앞으로는 이런 것들이 국가적으로 진행될 때 그야말로 우리나라가 스포츠 선진국에 걸맞는 위상을 갖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우리 정부에서는 체육진흥법에 의거해 지난 1964년부터 우수선수를 육성해왔다. 200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에 체육인재육성재단이 설립돼 체육인재 양성을 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우리나라에도 선진국형 체육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동안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국제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우승도 하고 좋은 성적을 거뒀습니다. 올림픽은 10위 안에 늘 들고 있고, 지난 서울올림픽 때는 4위를 했었죠. 올해 초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는 과거에는 쇼트트랙에서만 메달을 따던 것이 이제는 피겨스케이팅, 스피드스케이팅에서도 금메달을 땄죠. 지금까지는 정말 운동할 수 없는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승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자축구도 운동하는 인원이 1400명 정도 밖에 안 되는 현실에서 외국의 몇 십만, 몇 만 명 중에서 뽑힌 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지 않았습니까. 이런 것들은 과거에도 그랬어요. 앞으로는 정상적으로 체육 특기를 가진 사람을 발굴해서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는 조화로운 선수들을 양성해 내야 합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은 선진국 스타일의 체육을 우리나라에서도 해보자는 취지에서 정부에서 시작을 한 겁니다.”


‘공부하는 운동선수’가 훌륭한 지도자 돼

체육인재육성재단은 체육에 소질이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발굴하는 체육영재 양성, 지역 체육인재 육성, 차세대 코치 및 심판ㆍ스포츠 전문가를 기르는 글로벌 스포츠 리더 양성 사업을 하고 있다.

또 학생 선수 역량 강화를 위해서 학교 운동부 지도자 재교육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재단 설립의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 학교를 설립해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계획도 있다.

체육영재사업은 수영, 육상, 체조 세 분야에서 선수를 뽑아 교육하는 것으로, 운동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체육 영재들에게 스포츠 과학, 인성, 영어도 함께 가르치고 있다. 글로벌 스포츠 리더 양성 사업은 우리나라 스포츠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의사소통능력 즉 영어교육 부터 시작해서 각종 종목의 강습회에 지도자들을 파견하고, 그 종목의 우수한 지도자들을 초청해서 우리나라 지도자들에게 강습회를 하는 사업이다. 경기의 메커니즘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주로 선수 출신 지도자들이 지원 대상이다.

재단에서는 20여 명에 가까운 인턴들을 스포츠 관련 국제기구에 파견하는 한편, 국비로 스포츠 지도자들의 해외 석사 과정 취득도 돕고 있다. 한마디로 공부하는 체육 인재, 국제 사회에서 의사소통능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활약할 수 있는 전문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운동선수는 운동만 해야 한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도자가 그런 생각을 한다면 선수 인생을 아주 잘못되게 하는 거예요. 운동선수는 10년 이상 못합니다. 학교 와서 공부하는 시간에 운동장에 가서 운동만 시키면,  은퇴한 후 기술 밖에 모르기 때문에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지도자는 기술만이 아니라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늦었지만 정부에서 추진하는 ‘공부하는 운동선수 사업’은 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김연아 선수가 F학점 2개를 받아서 쌍권총을 찼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는데요.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운동을 잘하면 공부는 좀 부족해도 된다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출석을 안했는데 어떻게 학점을 줍니까. 엄격히 보면 다 F학점을 줘야죠. 선진국에서는 학교에 안 나오면 학점을 안 줍니다. 그런 원리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인식이 아직 부족하죠. 신체 활동과 지식 수업이 조화를 이루어야 교육이 됩니다.”

- 예전에는 ‘체력이 곧 국력’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요즘에는 체육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저는 체육이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봅니다. 체육을 함으로써 과학자도 더 좋은 연구를 할 수 있고, 공장의 생산력을 더 높일 수 있고,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서도 탈선하지 않고, 주어진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체육을 통해서 정신적인 훈련, 단련, 인간다움이 길러집니다. 저는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체육 시간이 부활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찍이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을 강조한 영국은 대영제국을 이루었고, 근대 강대국들은 거의 체육을 국민운동화 시켰어요. 우리도 하루빨리 학교에서 체육이 필수가 돼야 합니다.”


양정모 금메달 이후 체육 인재 육성 위해 한국체대 설립


▲ 해방 이후 첫 금메달을 따낸 양정모 선수와 함께. 우편에 정동구 당시 코치가 카퍼레이드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레슬링 국가대표 출신인 정 이사장은 금메달리스트 양정모 선수를 길러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양정모 선수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따낸 금메달은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에 딴 첫 금메달이었다. 정 이사장은 당시 양정모 선수의 전임코치였다.

“1961년부터 대표선수를 10여 년간 하면서 아시안게임,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등 세계적인 큰 대회를 다 나갔어요. 그런데 메달 따는 직전에 늘 아쉽게 집니다. 뭔가 부족한 거죠. 체력, 작전, 기술이 부족하고 코치도 무능력하니까 선수를 이기게 할 수 없죠. 제가 그때 국가대표 전임 코치를 담당한 것은 그런 것을 다 느끼고 아니까 내 설계도대로 하면 ‘금메달을 따겠다’고 생각해서 코치를 했고, ‘레슬링 금메달 목표 4개년 계획’을 실행해서 결국 달성을 하게 됐습니다.”

- 그때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양정모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귀국했을 때 시청 앞에서 카 퍼레이드를 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체육을 했고, 체육을 전공했고, 코치를 해서 금메달을 따니까 성취감도 있고 기뻤죠. 그때 박정희 대통령께서 환영 리셉션에서 한국체육대학(한체대)을 설립하도록 지시를 했습니다.”

서울 송파구 오륜동 올림픽공원 안에 자리잡은 한체대는 당시 정동구 코치가 박정희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비인기종목과 엘리트 선수 육성을 위해 국가에서 체육대학을 설립해야 한다고 건의해 탄생했다.

이번 밴쿠버 동계올림픽까지 역대 동ㆍ하계 올림픽 금메달의 30%(금 28개, 은 28개, 동 20개)를 한체대 재학생 또는 졸업생이 따냈다. 정 이사장의 체육인재육성재단 사무실에는 밴쿠버 동계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차지한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선수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체대 학생들이다.

정 이사장은 한체대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다고 말했다.

“한체대에서 77년에 교수 생활을 시작해 총장을 했고, 31년 동안 교수로 봉직했습니다. 레슬링도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한국체육대학은 저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죠. 처음부터 한체대에서 금메달이 많이 나왔던 건 아닙니다. 첫 10년 동안은 참 많이 고생했는데, 10년이 넘어가면서 열매가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대한체육회 이사, 대한올림픽위원회 상임위원, 아시아대학스포츠연맹(AUSF) 회장 등을 역임하고, 현재 태평양아시아협회(PAS) 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태평양아시아협회는 지난 1994년 창립된 이래 민간교류협력 차원에서 태평양ㆍ아시아 지역에 청년 봉사단을 파견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오고 있다. 정 이사장은 사회적으로 위치가 있는 사람이 봉사를 하면, 이 사회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했다.

“저는 체육인재육성재단 일도 봉사이고, 태평양아시아협회 일도 봉사라고 생각합니다. 체육인재육성재단은 앞으로 임기가 3년 남았는데 많은 체육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보람 있도록 노력해야 되겠고, 청년 봉사단도 제가 힘 있는 데까지 계속 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모든 일을 왕성하게 시작할 때가 아니라 정리할 때니 지혜롭게 잘 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죠.” # 

서은옥 기자 seo0709@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