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복지국가 타령, 왜?
느닷없는 복지국가 타령, 왜?
  • 미래한국
  • 승인 2011.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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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교수의 세설직론世說直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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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복지(福祉)타령입니다. 야당과 좌파 교육감들이 일제히 들고 나온 무상급식 논란의 소용돌이는 급기야 제1야당인 민주당의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 무상보육과 반값 등록금 당론 확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한편 한나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이 발족되면서 거창한 복지 플랜이 얼마 전 발표됐습니다. 물론 당사자들은 복지 포퓰리즘을 지양하고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맞춤형’을 강조하고 있지만, 집권여당의 강력한 대권주자 캠프에서 마련한 것이어서 복지에 대한 관심과 집착이 얼마나 강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간의 ‘복지타령’을 야당과 친박계 탓으로 돌릴 수만도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초기의 저조한 지지를 이념 없는 ‘중도실용’과 ‘공정사회’를 내걸면서 그 알맹이를 ‘복지’로 채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70%의 해당 가정에 무상보육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야경(?警)국가 역할 수행 못하면 복지국가 자격 없어
 
‘복지’는 늘 선하고 옳다고 합니다. ‘복지’를 이상향으로 내세우는 좌파들이 항상 진보를 자칭하니까요. 1970년대 이후 과도한 복지 지출로 인해 몰락해 간 서유럽국가들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복지정책의 폐해는 많습니다. 여기서 복지정책의 일반적인 폐해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가 과연 ‘복지타령’에 매달려도 좋을 형편인가 하는 점입니다. 혹자는 우리나라의 경제 형편과 민의가 상당한 수준이니 이제는 복지로 가야 한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이에 앞서 야경(?警)국가의 역할부터 내실 있게 수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어려서 야경국가를 초기 근대국가의 부정적인 것으로 배웠습니다. 야경국가는 국가의 역할 수행 미완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야경국가의 역할은 국가 존립의 핵심적인 이유가 됩니다. 따라서 야경국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 국가는 복지국가 자격이 없습니다. 1차방정식도 모르는 아이가 미·적분 문제가 안 풀린다고 투정한다면 그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값 비싼 미·적분 참고서를 사주는 것이 아니라, 1차방정식의 원리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야경국가 노릇 못하면, 아무리 좋은 국가의 역할이 있어도 그것은 모두 공염불에 그치게 됩니다.

정치학 하신 분들이 뭐라 하실지 모르지만, 야경국가의 역할을 얕잡아보면 안 됩니다. 야경국가는 국민의 생명, 재산 그리고 자유를 지켜주는 국가입니다. 여기에다 국가 안위를 위하여 불가피하게 개입할 일이 아니라면 일체의 간섭과 권력을 행사하지 않는 국가입니다. 그러면 현 정부가 야경국가 노릇도 못한 정부냐고 반문하겠지요. 저는 야경국가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봅니다. 우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일부터 보겠습니다. 대북문제에서 2008년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살사건과 작년 3월 46명의 우리 젊은이들을 수장(水葬)시킨 천안함 피격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반응은 어떠했으며, 임진강 댐 방류 사건의 무고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과연 단호하고 적절했던가요. <미래한국>은 천안함 사건이 있고 나서 곧 북한의 도발은 멈추지 않는다고 지적했음(제370호)에도 우리 사회는 오히려 ‘자작극’이라는 허무맹랑한 낭설에 휘말렸지요. 아니나 다를까 작년 11월에는 정전 이후 처음으로 우리 영토에 직접 공격을 가한 연평도 포격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자작극’이라는 루머에 대한 당국의 대응은 ‘대응’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못할 만큼 무대응으로 나갔지요.

대북문제 이외에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는 치안 태세가 잘 돼 있느냐 하면 민의는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최근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70%는 정부를 믿지 못해 불안하다고 응답했습니다. 최근 인기리에 끝난 ‘대물’이라는 드라마가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배출이라는 내용도 한 몫 했지만, 그보다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주지 못했던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여당도 감세 정책 정당성·적극적 설명 안해

재산권 보호에 관련해 현 정부는 집권하는 날부터 지금까지 야당의 ‘부자감세’ 논란에 대해 단 한 번도 제대로 대응한 적이 없습니다. 감세(減稅)가 결국 모두에게 득이 된다고 적극적으로 설득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정부 당국자는 물론 집권당인 한나라당 국회의원 어느 누구도 나서서 감세정책 정당성을 개진한 바 없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많이 거두어 ‘복지’에 쏟아 부으려는 데만 혈안이 돼 좌파 정당을 답습하고 있습니다. 또 좌파정권을 종식시키라고 역대 최대 득표차로 당선시킨 현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국민들의 기대만큼 어떤 성과도 거두지 못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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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의 자유가 신장됐느냐 하면 꼭 그렇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자유’의 핵심은 ‘선택’에 있습니다. 자유를 관념적인 것, 이상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면 ‘자유’와 ‘선택’은 동의어입니다.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많이 완화됐느냐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규제와 선택권의 박탈은 기업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교육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선택권 박탈의 전형은 고교 평준화 정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평준화의 폐해를 지적했습니다만, 전혀 시정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 대통령의 공약인 ‘자율’과 ‘선택’ 그리고 ‘경쟁’은 정치적인 구호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서울에서는 평준화의 일방적 추첨제를 선지원 후추첨으로 바꿔놓고서 일명 ‘고교선택제’라 공언하고 있지만, 이는 기존의 전원 추첨 배정보다 더 도덕적이지 못합니다. 일부는 추첨에 의해 원하는 학교에 진학하고, 나머지는 강제 배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현 정부의 교육정책을 ‘짝퉁 자율’이라고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좌파는 늘 자유와 선택을 배격합니다. 실제로 좌파 교육감들은 평준화의 심각한 폐해에도 불구하고 이를 오히려 확대하고 있습니다. 학교별 전형을 하는 경기도의 의정부와 안산, 강원도의 일부 지역을 강제배정 방식인 평준화로 확대하는 개악(改?)을 좌파 교육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개탄스러운 것은 현 정부가 과연 좌파정부의 폐해를 극복하고 국가 장래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강력하게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현 정부가 복지정책을 내세우면서 좌·우 노선의 구분이나 정강, 정책의 정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한나라당 조차 ‘서민’ 운운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을 내팽긴 채 아예 좌파 정당을 표방한 민주당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서민정책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정책의 내용을 보면 서민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민들을 ‘서민’으로 묶어놓는 정책에 매여 있습니다.


좌우 노선 구분이나 정강 정책의 정체성 없어

야경국가 노릇도 제대로 못하면서 좌파정부보다 ‘복지’에 더 매달리는 현 정권의 여당 대표는 며칠 전 신년기자회견을 하면서 2011년 복지예산이 86조4,000억 원이라고 밝히면서도 그 재원은 어떻게 충원할 것인지, 그로 인해 다른 중요한 국가예산이 얼마나 삭감됐는지는 언급 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정강정책이 어떤 것인지 정체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대통령의 ‘중도실용론’은 이념이 없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중도는 실용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념이 없기 때문에 정도(正道)를 벗어난 외도(?道)입니다.

현 정부의 어긋난 행보에 빼놓을 수 없는 점은 대다수 국민들을 ‘국가 시혜’에 의존하는 기생심리에 매몰시킨다는 점입니다. 이에 관해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합니다. 하나는 세종시 문제입니다. 원래 이 문제는 2002년 대선 당시 충청권 표를 의식해 졸속으로 만들어진 공약이었지만, 2007년 대선에서 문제의 핵심을 모를 리 없는 이명박 후보는 다시 공약으로 들고 나왔습니다. 역시 충청지역 유권자를 의식한 포퓰리즘입니다. 정작 집권하고 보니 원안대로 갈 수도 없어 수정안을 추진하다가 ‘정치인은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당 친박계의 거센 반대로 좌절됐습니다. 그러나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입장에서 볼 때, 추진해선 안 될 사안을 공약으로 밀고 간 현 대통령이나, 정치적 신의를 명분으로 수정안을 반대한 친박계나 모두 포퓰리즘에 탐닉해 국민들을 국가 시혜의 의존 심리를 조장하고 심화시킨 결과를 낳았습니다.

다른 하나는 2007년 대선의 ‘대학등록금 반값 공약’ 문제입니다. 당시 이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추진한 장본인은 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입니다. 현 정권의 실세인 교과부 장관 조차 대선 당시와는 입장이 180도 바뀌어 야권으로부터 이 공약 시행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의 살림을 어떻게 하라고 반값 등록금을 대학당국에 강요합니까. 공산주의 국가처럼 국·공·사립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에 국가재원을 투여할 모양이 아니라면 애초에 하지 말았어야 할 공약입니다. 교육당국의 변명이 참으로 궁색합니다. 등록금의 절반이 아니라 ‘등록금에 대한 가계부담의 절반을 경감시킨다’는 것입니다. ‘등록금에 대한 가계부담의 절반 경감’이 의미하는 바가 도대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제가 회계학이나 재정학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안인지는 잘 모르지만, 견강부회(牽强附會) 격으로 일명 ‘든든장학금’이라고 하는 ‘취업후 학자금상환제(ICL)’를 들고 나왔습니다. 이 역시 학생들의 장래 사정이나 우리 사회 관행에 비추어 그 성공 여부가 매우 불투명한 정책입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이미 떼인 돈’이거나 ‘학생들의 미래를 담보로 한 포퓰리즘’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가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 하면서 복지국가 타령에 ‘국가시혜’에 의존하게 세태를 낳은 연유는 무엇인가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세 가지만 간단히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는 민주화를 지상 최대의 명제로 삼고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화가 절실했던 30∼40년 전과 지금은 사정이 판이합니다. 그렇다고 민주주의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일 처리를 ‘민주화’, ‘민주적’이라는 수식어로 제한하면 포퓰리즘에 빠지게 되고 나아가야 할 방향타를 상실하게 됩니다. ‘민주화’는 모든 관직을 ‘선출’해야 한다는 발상에 닿아 있습니다. 일례로 교육민주화, 교육자치의 명분으로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는 무엇을 위한 직선제인지 조차 망각하게 합니다.


공적 영역은 사적 영역 보호할 때만 정당화

다른 하나는 과도한 공(公)개념 도입입니다. 개인사나 세상사가 공적인 일로 이루어져 있다고 잘못 각인돼 있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사적(私的) 영역입니다. 앞서 지적한 자유민주주의의 핵인 생명, 재산, 자유의 세 가지 가치는 모두 사적 영역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공적 영역의 정당화는 사적 영역을 보호하기 위한 경우에 한정됩니다. 국가, 공권력, 의무 등은 일차적으로 사적 영역을 제한하지만, 궁극적으로 사적 영역을 보호할 수 있을 때만이 정당화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자유’의 왜곡입니다. 자유와 방종(libertine)은 엄연히 다른 데도 불구하고 좌파들의 정서는 늘 자유를 방탕한 악덕으로 왜곡시킵니다. 그래 놓고는 자신들은 ‘무제한의 자유’를 주장합니다. 표현의 자유라고 하여 특정인의 사생활 파괴는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인하는 언행을 일삼습니다.

복지국가에 앞서 우리가 국기(國基)를 튼튼히 하려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 없이 ‘야경국가’의 책무를 다 하는 것입니다. ‘야경국가’는 분명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지닌 말입니다. 이 말은 독일의 한 사회주의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당시의 영국 부르주아 국가관을 비판하고자 채용한 말이니까요. 즉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자 만들어낸 말입니다. 그러나 경위야 어찌 됐든 그 의미가 ‘국가는 외적의 침입을 막고 국내 치안을 확보하며 개인의 사유재산을 지키는 최소한의 임무를 수행하며, 자유와 번영의 초석이 되는 국가관’이라는 점에서 저는 주저 없이 국가의 일차적 책무는 야경국가에서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꽤 오래 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대신하지만 잇몸이 없으면 이가 씹을 수 없다’는 광고 카피가 있었습니다. 잇몸이 튼튼해야 이[齒]가 있듯이 국기가 튼튼해야 복지국가 타령을 할 수 있습니다. #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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