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의 중동, 韓·美에 던지는 과제
격변의 중동, 韓·美에 던지는 과제
  • 미래한국
  • 승인 2011.04.14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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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드 커크 편집위원[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아랍 수도들에서 터져나오는 혁명과 격변의 상황은 미국 및 한국에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민주주의가 정착돼 시민들의 복지와 기본적인 자유가 신장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등장하는 것을 기대한다. 하지만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한때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정부와 사회를 장악할 것이 우려된다.

이럴 경우 문제는 반미 정권이라는 망령의 부상 이상이다. 아랍세계와 이란,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등 비아랍국가들에 급진적 이슬람이 확산되면 그것은 테러, 내전 등으로 수억명을 계속 공포에 떨게 하는 위협이 될 것이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같이 싸움이 계속되는 곳 뿐 아니라 태국 남부, 필리핀, 인도네시아 남부와 같이 상대적으로 갈등이 경미한 곳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가 불화를 야기하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도로변에 지뢰를 설치하고 자살폭탄테러를 자행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대량살상무기(WMD)가 확산돼 이들이 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궁극적인 위협에 비해서는 부차적인 것 같다.

북한은 파키스탄 ‘핵폭탄의 아버지’ A. Q. 칸으로부터 핵기술 대부분을 얻었다. 칸이 파키스탄을 대표해서 핵무기를 개발한 것은 인도의 핵위협에 맞서는 차원에서 괜찮다는 면에서 일부에서는 용납되고 있다. 그러나 칸의 근본 동기는 막대한 돈을 받는 대가로 핵비밀을 맞바꾸는 탐욕이었다. 

이집트와 북한 간의 모종의 관계는 똑 같은 수준의 위협이다. 미국 정책결정자들이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후 이스라엘과 관계 수립에 나선 이집트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가는 사이 이집트는 북한과 무기 거래를 확대해갔다.

당시 이집트 공군참모총장이었던 호스니 무바라크는 유대 절기인 욤 키푸르(Yom Kippur) 휴일을 보내던 이스라엘을 침공하기 전 북한으로 하여금 전투기조종사들의 훈련을 맡도록 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침략자들을 몰아냈지만 무바라크는 북한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부통령이었던 무바라크가 1981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 암살로 대통령직에 오르면서 북한과의 관계는 더욱 확대됐다. 

무바라크는 1983년부터 1990년 사이 북한을 네 번 방문하면서 김일성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은 소련제 스커드 B 미사일을 이집트에 팔고 이집트인들이 이를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그사이 카이로 주재 북한대사관은 이 지역에 북한무기를 수출하는 중심지가 됐다. 북한은 1980년대 이라크와 전쟁을 하던 이란에 30억 달러 어치의 무기를 수출했다.

이집트와 북한 간의 관계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사이 무바라크는 워싱턴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북한은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버마 국빈 방문을 수행하던 17명의 한국인들을 죽인 폭탄테러와 1987년 인도양 상공에서 대한항공을 폭파시켜 115명을 죽이는 등의 끔찍한 테러를 1980년대 자행했다.

중동의 불확실함은 새로운 두려움을 야기하고 있다. 북한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게 무기수출을 확대하고 싶어할 것이다. 한 가지 바라는 것은 과거 미국의 친구인 호스니 무바라크에 속았던 미국인들이 이번에는 쉽게 속지 않는 것이다.
영어 원문_www.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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