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과학벨트 논쟁, ‘세종시 2탄’ 되나
[이슈]과학벨트 논쟁, ‘세종시 2탄’ 되나
  • 미래한국
  • 승인 2011.04.14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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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이어 경북·울산·대구 연합전선 구축, 경기도도 유치경쟁 가세

정부의 ‘과학벨트 재검토’ 방침이 총선을 1년 앞두고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다. 대부분의 광역단체들의 과학벨트 유치 경쟁은 과열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국제과학벨트는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었던 정책으로, 향후 7년간 3조5,000억 원을 투자해 기초과학 및 기초연구역량의 진흥과 연구 성과의 사업화를 촉진하기 위해 기초과학연구원과 대형 기초연구시설을 설치하는 사업이다. 특별법은 이미 국회를 통과한 바 있다.

자유선진당이 3월 3일 대전시 중구 서대전공원에서 과학벨트 충청권 입지 촉구 결의대회를 하고 있다

국제과학벨트는 기초과학을 획기적으로 진흥시키고 기초과학의 연구 성과가 미래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의 씨앗이 되도록 만들자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를 위해 우선 벨트의 핵심인 거점지구를 조성하게 되는데 거점지구에는 세계적 수준의 기초과학연구원과 중이온가속기 등 대형연구시설이 들어서고 우수한 인적 자원을 육성하는 대학 등 수준 높은 교육시설을 갖추며 IT, BT, NT, GT 등 첨단산업분야의 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할 예정이다.

또한 세계적인 우수 과학 두뇌, 기업들이 들어와 연구, 비즈니스를 영위하도록 국제적인 생활환경을 만들게 된다. 글로벌 과학비즈니스 도시가 되는 것이다.

이 거점지구를 중심으로 연구, 비즈니스 금융, 산업 등으로 특화된 인근 도시와 상호 인력을 교류하고 문화, 예술, 비즈니스 환경을 공유하며 기초연구성과를 공동 활용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된다. 이 인근 도시를 기능지구라고 하는데 거점지구와 기능지구로 이어지는 상호 교류 협력관계는 기능지구간에도 연구성과 상용화, 비즈니스 분야의 활용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거점지구 - 기능지구-또 다른 기능지구간의 상호 교류 협력이 이루어지는 형상을 벨트로 표현하는 것이다.

최초 예정지가 충청권이었던 과학벨트가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2월 신년 좌담회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월 1일 “선거 유세에서는 충청도에서 표를 얻으려고 관심이 많았을 것”이라며 “거기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고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고 말한 바 있다.

충청권은 정부를 상대로 ‘대선 공약을 이행하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과학벨트 논란이 제2의 세종시 수정 논란이 될 조짐도 보인다. 충청도를 지지 기반으로 한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는 지난 3월 3일 대전 문화동 서대전공원에서 열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촉구 결의대회’에 참석해 “충청인들이 정신을 집중해 전력을 다한다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지켜낼 수 있다”고 말했다.

충청권 강력히 반발… 제2의 세종시 논란

이 대표는 “충청은 물론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과학벨트가 충청도에 유치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며 “과학벨트는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세계 최고의 연구센터를 만들려는 것이 애초 목표였는데 지금 정부에서 대구 경북 광주 과천 등에 골고루 나눠주려 하고 있다. 이는 세계 최고의 과학벨트를 포기하는 것은 물론 대한민국을 망치는 일로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2월 1일 청와대에서 열린 신년좌담회에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대전·충남·충북지역연합회도 이날 공동 성명을 내고 “이명박 정부는 대선공약인 과학비즈니스 벨트를 충청권에 조성하라”고 밝혔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명박 정부가 대선공약에서 천명했고 교육과학기술부의 정책연구보고서에서도 명시한 바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인 충청권에 과학벨트를 조성해야 한다”면서 “과학기술인들의 80%는 충청권에 조성할 것을 동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명박 정부가 과학벨트를 정책화할 때의 초심을 잃지 않았다면 정치적 논리에 의한 혼란을 종식시켜 국론분열을 막고 기초과학 발전과 미래유망산업 육성을 위해 과학벨트를 충청권에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충청권 유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높다. 정두언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2월 20일 “정부가 (입지를) 세종시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결정하면 정치적인 책임은 물론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할 것”이라며 “이미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 약속을 했고 관련 내용도 공식 발표한 만큼 과학벨트 입지는 반드시 세종시로 결정될 것으로 믿는다”고 강조했다.

또 정 최고위원은 “과학벨트 입지 문제가 내년 총선을 준비하는 한나라당 충청권 인사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피해는 주지 말아야 하는데, 정말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충청권 공존’의 차원을 넘어 ‘충북 실리론’을 주장하는 여권 인사도 있다. 내년 총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는 정우택 전 충북도지사는 “과학비즈니스벨트 거점지구를 오송·오창으로 유치하려는 노력이 시급하다”며 “충청권 공존이란 명분에 얽매이다 보면 (충북의) 실익을 챙기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 전 지사는 “민선 4기 지사로 재직할 당시 과학벨트 거점지구를 오창으로 유치하는 활동을 한 바 있는데 이제야말로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는 오송·오창을 과학벨트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다시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영진 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광주·전남지역 의원 등이 지난 2월 25일 과학벨트 입지 선정을 원점에서 검토하자는 특별법을 공동 발의하고 있다

‘민주당 텃밭’ 광주도 유치경쟁 합류

민주당의 텃밭인 광주와 전남도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광주시는 3월 3일 실무추진단 회의를 열고 과학비즈니스벨트의 집중 배치 논리에 강력 대응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로 했다.

실무추진단은 과학계 스스로 검증토록 공론화 과정을 뒷받침하고, 정부와 청와대 상대 설득, 국회 차원 특별법 입법활동 지원 홍보, 왜 광주·전남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국민 홍보 등을 병행할 예정이다.
특히, 강운태 광주시장은 지난해 12월 8일 관련 법안이 통과되자 광역자치단체장 중 가장 먼저 국무총리와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 유치 당위성을 설명하는 등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반면 강 시장이 속한 민주당은 내년 대선과 총선에서 충청표를 의식해 ‘충청권 유치’를 공식 당론으로 주장하고 있다. 손학규 대표 등 민주당 주류 진영의 입장에서는 ‘호남은 집토끼고 충청도는 산토끼’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주당 내 호남지역 의원들과의 갈등도 표출되고 있는 양상이다.

반면 전북은 광주·전남과 달리 새만금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유치를 포기하겠다고 지난 2월 25일 밝혔다. 정헌율 행정부지사는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작은 사업에 올인했다가 실패하면 행정력을 낭비하고 도민 상실감도 클 것”이라며 “과학벨트 유치와 관련된 공식 활동은 접고 LH공사 유치에 힘을 모으겠다”고 언급했다.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과학벨트 문제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한나라당의 지지 기반인 영남에서는 경북, 울산, 대구 3개 광역단체가 연합해서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GUD, 즉 경북(G)·울산(U)·대구(D) 등 과학비즈니스벨트 3개 시도 공동유치위원회는 지난 2월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전문가 대토론회를 열고 지역이 과학벨트 최적지임을 강조하는 한편 영남권 유치를 위해 힘을 모으기로 다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이재영 한동대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 소장은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는 서울과는 일정 거리가 떨어져 있고 바다와 접해 있는 원경임해(遠京臨海)의 입지와 기초과학 발전에다 플러스로 비즈니스적인 효과도 거둬야 하는 어망득홍(漁網得鴻)의 전략을 갖춰야 한다”며 “일본 쓰쿠바교육연구단지의 경우 연구원들이 도쿄에서 40분 거리를 출퇴근하면서 정착에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과학벨트는 기초과학 진흥과 함께 녹색성장과의 연계가 목적이기 때문에 산업 기반이 튼튼하고 에너지클러스터가 조성된 경북 동해안이 최적지”라고 강조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도 인사말에서 “과학벨트는 단순히 지방 소외의 보상 차원이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추진돼야 한다. 외국 석학들을 입지 평가에 많이 참여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연창 대구시 정무부시장도 “대구·경북·울산은 전자·철강·조선·섬유 등 국내 산업의 주축으로 연구개발 성과와 산업 발전이란 선순환 체계 구축에 가장 유리하다”며 “GUD 지역 유치는 지역이기주의 차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남권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생각은 다소 유동적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세종시 원안’ 입장을 고수했던 박 전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통령께서 약속을 하신 건데, 이것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를 하신다면 그거에 따른 책임도 대통령께서 당연히 지시지 않겠느냐”는 발언으로 과학벨트의 충청권 유치에 무게를 실은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게 했다.

경기도에서는 과천시가 유치 경쟁에 나섰다. 세종시 원안 강행으로 이전이 예정된 정부청사 이전부지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유치해야 한다는 게 경기도의 입장이다. 특히 정부청사 이전 이후 과천시의 ‘공동화’를 걱정하는 지역 주민들에게 과학벨트 유치는 절실하게 다가오고 있다.

경기도는 지난 2월 10일 “과학기술계와 경제계 등의 의견을 들어본 결과 과천이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최적지로 평가됐다”며 “정부에서 6월께 입지를 발표할 예정이므로 시설 배치 및 타당성 연구 용역을 거쳐 3월 말께 정부에 제안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특히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과천 정부청사 이전이 시작되는 동시에 주변 상권 인프라가 무너져 도시 기반이 무너질 것을 염려하고 있으며, “경기도지사가 관내 기초단체인 과천을 먼저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경기도 관계자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대기업과 연계해 구축되고 해외연구인력도 도입하는 만큼 과천이 적지임을 설득해 나갈 계획”이라며 “과천 정부청사 및 공공기관 이전부지와 관악산 일부 등 160만여㎡를 대상지로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년 객원기자  anubis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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