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쓰나미 사태의 경영학
[칼럼] 쓰나미 사태의 경영학
  • 미래한국
  • 승인 2011.04.22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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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 (사)바른경제동인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경영학 박사(국제마케팅 전공)
전 펩시콜라 한국 사장.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사장

20세기에 들어 지구상에서 인명 피해가 1만명을 넘었던 큰 지진이 14건 이상이 있었다고 한다. 평균 7~8년에 한 건씩 있었던 셈이다. 지진에 희생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죄가 있었거나 평소 자연보호 같은 일을 소홀하게 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그냥 일어난 자연 현상 때문이지만 너무도 참혹한 현장에 환경보호를 외치던 입으로 “이제는 환경이 인간을 보호해 주세요” 하고 호소해 보고 싶어진다. 해수욕을 즐기던 그 바닷물이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것을 보면서 평소 익숙하게 지내던 자연의 무심함이 문득 낯설어 보인다.

지난 3월 11일의 일본의 지진 상황은 실제 상황이면서 영화에서 보다 더 두렵고 무서운 장면들이라 피부에 소름이 돋고 몸서리가 쳐졌다.
하지만 더욱 무서운 것은 이어서 터져 나온 원전의 방사능 누출 소식이다. 쓰나미 직후 초기에 바닷물을 원자로에 주입했다면 원전을 보존하는 데는 문제가 됐겠지만 방사능 누출 위험이 이 정도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라 한다. 원자로는 잃어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지 않고 생명과 건강은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만 의사결정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돈이 들어간 원자로 설비를 못 쓰게 만들 것이 확실한 의사결정을 그 누가 어떻게 제 때에 내릴 수 있었을까. 특히 전력회사 같이 큰 조직에서 빠른 시간 안에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했을까.

예측 가능한, 그러나 경험하지 못한 재양

문제가 생기면 우선 ‘대책위원회’ 같은 것부터 만들도록 길들여진 대기업의 체질상, 아무리 시급한 사안이라도 엄청난 자원이 소요되는 중요한 결정을 빠르게 내리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간다.

우리도 남대문이 불 탈 때 그랬다. 건물의 구조상 기와를 깨고 물을 뿌려야 화재를 진압할 수 있었는데 중요 문화재의 기와를 깨야 하는 의사결정을 제시간에 못 내리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 그 결정이 내려졌을 때는 소방 호스를 통해 뿌려지는 물이 화재 진압에 충분했음에도 결국 국보 1호를 보호하지 못하고 잿더미로 만들었던 것이다.

사실 일본의 이번 초대형 지진 같은 것은 사전에 어느 정도 예측됐던 일이다. 일본에서는 큰 지진만도 1928년에 14만 명이 생명을 잃은 도쿄 대지진과 1995년에 6,300명이 생명을 잃은 고베 지진이 있었다. 큰 지진을 겪으면서 아마도 지진으로 인한 화재 대책과 건물의 내진설계 같은 것은 잘 대비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지진 때에는 원전이 없었고 고베 지진 때에는 원전이 직접 피해를 받지 않았다.

큰 재앙은 언제나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일에서 일어난다.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상황 파악이 빨리 안 되고, 따라서 아무 결정도 내릴 수 없다.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우선순위에 극심한 혼돈이 오면서 외부에 무엇을 발표해야 할지도 모르게 된다.

결국 사실을 숨기고 축소해서 발표하는 것 아니냐는 거센 비난을 받게 된다. 때문에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위기 상황에서는 통상적이고 과거의 경험에만 근거한 훈련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모호한 상황 속에서 판단이 어려울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최고 우선순위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에 대한 임직원의 평소 가치체계확립이 확실히 돼 있다면  빠르고 옳은 결정이 가능해진다.

의사결정상 권한 위임이 어느 정도 돼 있더라도 어떤 사안들은 아래로 위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이번에도 일본 원자로의 방사능 누출을 초기에 막을 수 있게 하는 핵심 조치 결정들은 위임하기가 어려운 것이기에, 그 같은 결정 권한은 최고 경영자들의 몫이었다. 그러한 순간에 올바른 결정을 내리게 하려고 높은 급여와 대우를 해주면서 사장이나 회장을 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그들이 그 책임을 일본식 방법으로 끝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비슷한 재해를 막기 위한 사례연구의 대상으로 각국 정부나 기업들의 재난 대비 체질 개선에 도움을 주었으면 좋겠다.

기업 세계의 지진과 쓰나미

사실 기업의 세계에도 지진이나 쓰나미 같은 것이 있다.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커다란 경제적 재앙은 어느 한 기업에서 감당하기 벅차다는 점, 그리고 구체적인 시점을 알기 어렵다는 점과 사전 대비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 등 쓰나미와 비슷하다.

하지만 자연적 재해와 달리 기업에서의 쓰나미는 상당한 부분 사전 대비를 할 여유가 있다. 물론 최고 경영자의 결단이 필요하다. 다행히 취약점의 소재가 비교적 뚜렷하고 결과가 즉각 눈에 보이므로, 기업으로서 더 큰 재해를 사전에 막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가 보다 알기 쉽다.

경영자의 눈에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장기적으로 중요한 것을 소홀히 하다 나중에 큰 일을 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즉 지금 상황은 괜찮아 보이지만 길게 볼 때 그 기업에 치명적일 수 있다면 지금 시점에서 주저하지 말고 새로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예컨대 IMF 사태 이전의 많은 기업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던 높은 부채비율 같은 것이다. 이제는 달라졌지만 높은 부채비율을 가진 회사들을 한국적 경영이라 해서 정상인 것으로 받아들이던 때가 있었다.
그 때문에  IMF 위기 시에 많은 기업들이 쓰러졌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잘 살펴보면, 기업의 윤리와 정의 같은 바른 경제 관념도 그런 것들 중 하나이다. 지금은 예전에 비해 기업이 관행으로 뒷돈을 주는 일 또는 비자금을 조성하거나 탈세를 하는 일 같은 저개발국가형 부조리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부정한 수익모델이나 왜곡되고 불투명한 경영정보제공 또는 하청업자들에 대한 부당한 거래조건같이 정의롭지 못한 경영마인드가 결국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것임은 이미 선진국 기업에서 많이 보아 왔다.

지금부터라도 투명하고 바른 경영을 추구해서 기업의 체질을 개선을 해놓지 않으면 언젠가 경험해보지 못한 경제 쓰나미에 당할 수도 있다. 기업을 하는 친구들에게 필자가 관여하는 ‘바른 경제를 위한 기업가 운동’에 동참하자고 권유를 해보면 ‘바른 경제하다 회사 망한다’고 대꾸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투명한 회계, 성실한 납세, 깨끗한 영업활동을 하면서도 회사를 크게 성공시킨 훌륭한 기업가들이 이 모임에는 많이 있다. 예상 못했던 위기 상황에서 회사를 구하거나, 회사를 투명하고 정의로우며 바르게 만들려면 우선 최고경영자가 사람의 목숨, 신뢰, 정의, 균형 같은 것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가치의 우선순위를 확고하게 하는 것이다.

그 같은 가치체계가 기업문화로 회사 내에서 정착될 때  타이밍 맞는 바른 결정이 가능하게 된다. 이번 일본 지진에서 올바른 의사결정의 타이밍에 대한 교훈을 얻었다면 불행 중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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