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찾아 목숨 건 나의 여정'
'자유 찾아 목숨 건 나의 여정'
  • 미래한국
  • 승인 2011.04.25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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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이야기] 이영철 /2002년 입국

 

 몽골의 사막
나는 정확히 10년전인 2001년 3월 하순 죽음의 땅, 독재의 소굴 북한을 탈출해 밤중에 두만강을 건넜다. 두만강 맞은편 중국 농촌 부락의 어느 민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다음날 아침 도문시로 나가 버스로 연길시에 갔다.

경직된 북한에서 살다가 보는 이국의 풍경은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한편 중국에 아무 연고도 없었던 나는 울적한 기분만이 들었다.

나는 거리에서 알게 된 한 탈북민과 함께 흑룡강성 상지시로 들어갔다. 그곳 농촌에서 2개월 동안 일해 보수로 받은 1,200위안을 밑천으로 한국으로 오게 됐다.

내가 일하던 농촌에는 북한에서 팔려온 여자들도 3~4명 있었는데 그들 중 20대 중반 한 명이 한국으로 데려다 달라며 우리를 따라 나섰다. 한국으로 가는 데 아무 연고도 없었다. 그렇다고 중국 공안에 체포될 것이 두려워 언제까지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도 없었다. 일단 떠나고 보자는 막연한 생각으로 중국 몽골 국경지도와 나침반을 구입한 다음 탈출을 결행했다.

우리 일행은 중국 국경도시까지 열차로 가서 버스를 이용해 국경마을로 들어갔다. 조선족 한 사람을 만나 그 마을에서 중국 몽골 국경까지의 거리와 다른 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알아봤다. 그후 음식과 음료수를 준비한 다음 그날 저녁 날이 어두워지자 사막을 행군하기 시작했다.

길을 알려준 조선족 말에 의하면 그 사막을 걸어서는 못간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어떤 사람들이 걸어서 그 사막에 들어섰다가 죽은 경우도 있다고 했다. 그때 문득 북한의 독재자가 북한 주민들을 기만해 써먹던 말이 떠올랐다. ‘죽음을 각오한 자 두려울 것 없다’는 말이다.

자유를 찾아가는 길에 죽음이 앞을 가로막아도 우리는 가야 했다. 그만큼 우리는 자유가 그리웠고 문명이 그리웠다.
국경까지의 거리는 90킬로미터. 그곳에서 몽골의 한 도시까지는 120킬로미터이다. 우리는 거의 쉬지 않고 꼬박 걸어 24시간만에 즉 다음날 밤 10시경에 중국 몽골 국경인 철조망에 도착해 무사히 철조망을 넘었다.

그러나 무서운 시련이 기다리고 있을 줄 그때까지 몰랐다. 그래도 중국쪽 사막을 걸을 때는 유목민들의 인가가 20,30리에 하나씩 있었기에 몽골쪽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몇 십 리를 걸어가도 인가가 나타나지 않았다.

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고 뜨거운 햇볕 속을 걸으니 우리 일행 중 남자 한 사람이 먼저 쓰러졌다. 인가를 빨리 찾아 그를 구할 목적으로 쓰러진 그 사람을 뒤로 하고 계속 걷던 중 이번에는 내가 쓰러졌다.
나는 그동안 내가 보관했던 나침반을 홀로 남은 여자에게 주며 이제 몇 십 리만 더 가면 인가가 있을 테니 반드시 살아 인가를 찾으라고 부탁했다. 나는 울면서 멀어져가는 그녀를 바라보다 정신을 잃었다.

다음날 새벽 정신을 차렸으나 더 이상 걸을 수 없기에 그냥 사막에 쓰러져 있었다. 날이 밝은 지 한참 되자 홀로 떠났던 그녀가 몽골 유목민과 함께 말 타고 나타났다.

꿈처럼 생각되는 그때 일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롭다. 나는 지금도 한국 정착 과정에 난관이 있을 때면 그때 일을 종종 회상한다. 그러면 어떤 힘이 내 연약한 의지를 강하게 하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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