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새로운 정치코드 ‘리얼콘’이 뜬다
미국의 새로운 정치코드 ‘리얼콘’이 뜬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05.13 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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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지출 감소, 균형재정, 감세, 제한된 정부 등 보수 경제원칙 강조

 
지난 4월 29일 미 뉴햄프셔 맨체스터에는 2012년 미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가 되겠다는 5명의 사람이 모였다. 2008년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미트 롬니 전 메사추세츠 주지사, 일찌감치 선거팀을 구성한 팀 폴렌티 전 미네소타 주지사, 미국 풀뿌리 보수운동인 ‘티파티(Tea Party) 운동’을 열렬히 지지해온 미셀 바크만 하원의원 등. 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롬니 전 주지사는 자신이 자유시장 옹호자라고 밝혔고 바크만 의원은 경제학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부채 한도를 올려서는 안 된다며 자신이 정부지출과 미국 빚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진짜 보수적 경제원칙 신봉자라고 강조했다.

참보수주의는 티파티운동에서 시작

이날 관심을 끌었던 것은 폴렌티 전 주지사의 사과였다. 그는 온실효과가스 방출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마다 가스방출량을 정하고 남은 양을 매매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규제정책을 지지했던 것을 사과했다. 이 정책은 정부가 환경보호를 이유로 기업들의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미국 보수주의자들로부터 강력한 비판을 받아왔다. 폴렌티 전 주지사는 “그것은 실수였고 멍청한 짓이었다. 정말 미안하다”고 사죄했다.

그는 사과 후 바로 주지사 시절 세금을 깎고 교사들의 임금을 성과에 연결시키는 등 보수주의에 입각한 정책을 펼쳤고 사회보장연금 수령 연령을 올려 정부지출을 줄여야 한다며 자신이 ‘경제적 보수주의자’라고 역설했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 승리 후 공화당이 표방하는 코드는 이른바  ‘참보수주의(real conservative)’다.
제한된 정부와 정부지출 감소, 균형재정, 감세 등 특히, 경제적인 면에서 보수적 가치를 철저히 준수하고 이행하려는 것이 지금 공화당의 모습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런 보수적 가치들이 정책으로 구체화되기 원하는 유권자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공화당이 2010년 중간선거에서 연방하원 60석, 상원 6석, 주지사 8명을 추가하고 주상하원의원에서 최소 500석을 늘리며 압승했기 때문이다. ‘티파티 운동’으로 대변되는 미국 풀뿌리보수운동의 힘을 공화당 정치인들이 체험한 결과다.

2008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공화당은 2010년 중간선거와 2012년 대선에 대비해 당의 성격을 중도로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30%에 가까운 무소속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는 보수만 고집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기성 공화당 지도부도 이를 수용하면서 민주당 성향이 강한 지역에서는 중도적 후보를 지지했다.

대표적인 예가 2009년 11월 뉴욕 제23지구 연방하원의원 보궐선거. 당시 뉴욕지구 공화당 지도부는 디드 스카자파보 주하원의원이 ‘중도’라며 민주당 성향이 강한 뉴욕에서 승리하는데 적합하다고 그녀를 공화당 후보로 밀었다.

하지만 스카자파보 의원이 오바마 행정부의 경기부양책 및 낙태와 동성애를 지지하는 등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지 않는 이른바 ‘이름만 공화당원’(RINO: Republicans In Name Only)이라는 비판이 세라 페일린 2008년 공화당 부통령 후보 등 보수층에서 터져나왔다. 결국, 스카자파보 의원은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포기했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본연의 색깔을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수천억 달러가 들어가는 전국민의료보험개혁, 천문학적 액수의 경기부양책 등 진보적 경제정책과 비대해가는 정부의 권한에 반대하는 풀뿌리보수운동인 ‘티파티’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커가면서 공화당 내에서는 ‘진짜 보수’만 살아남는 양상이 나타났다.

 2010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후보를 결정하는 당내 경선에서 티파티 운동 출신 혹은 티파티 운동이 지지하는 보수가치 신봉 후보자들이 기성 정치세력들을 물리치고 대거 승리한 것. 그 가운데 랜드 폴, 마르코 루비오 등 40여명의 티파티 운동 지지자들이 연방 상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중간선거 전인 2010년 6월 갤럽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 중 자신을 보수라고 답한 사람이 42%였고 중도 35%, 진보는 20%로 당시 민심은 보수로 이미 경도된 상황이기도 했다.

공화당 지도부는 중간선거 승리 직후 연방정부지출 감소, 정부규모 줄이기, 경제적 자유*개인의 자유*개인의 책임 등 티파티 운동에서 주장했던 내용을 펼쳐나가겠다며 정통 보수의 깃발을 들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두뇌’로 불리는 칼 로브 전 백악관 정치선임고문은 공화당이 티파티 운동이 주장하는 원칙을 어기면서 민주당과 타협하면 유권자들은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은 올해 회기가 시작되자 오바마 행정부와 정면 출동하면서 보수적 가치를 실제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공화당이 민주당과 타협하면 유권자가 봐주지 않을 것

공화당은 지난 1월 19일 오바마 행정부 당시 법으로 채택된 의료보험개혁법 폐지안을 하원에서 채택했다. 미 보수층은 오바마 행정부의 전국민의료보험법이 시행되면 수천억 달러의 정부지출이 소요되면서 막대한 빚을 추가로 양산하고 의료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 등 정부가 개인의료보험까지 간여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해왔다.

여전히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과 오바마 대통령의 거부권으로 이 폐지안이 최종채택될 가능성은 없지만 폐지안이 공화당이 다수인 하원에서 채택된 것은 공화당이 정통보수로 길을 분명히 가겠다는 의지로 평가됐다.

공화당은 최근에는 2012년 예산 삭감을 위해 오바마 행정부와 연방정부 폐쇄라는 극단적 상황을 걸고 한판 붙었다. 공화당은 14조억 달러가 넘는 미국의 엄청난 빚을 줄이고 정부 역할의 제한을 위해 연방정부 지출 삭감이 필요하다며 오바마 행정부에 2012년 예산의 추가 삭감을 요구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거부했고 연방정부 폐쇄를 볼모로 양측은 버티다 예산안 협상 1시간여를 앞두고 극적으로 타결했다. 공화당은 이를 통해 385억 달러 추가 예산 삭감과 낙태지원 프로그램에 대한 연방재정 후원 중단을 성과로 얻었다.

공화당은 연방정부 부채 한도 증액을 두고 다시 오바마 행정부와 부딪힐 예정인데 이를 계기로 연방지출 삭감 등 보수적 경제원칙에 입각한 정책을 밀어붙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런 변화를 두고 미국에 이른바 ‘참 보수주의(real conservative) 운동’이 시작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알빈 라부쉬카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시민사회 전통이 전혀 없는 아랍에 민주주의를 세우겠다며 1조 달러 이상을 들이며 전쟁을 일으킨 신보수주의(네오콘), 정부의 공공지출을 확대하려는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ve)가 가고 지금은 ‘리얼콘’이 등장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리얼콘은 헌법에서 규정된 기능만 수행하는 정부, 제한된 지출, 감세, 균형재정, 미국안보의 실제 위협만 격퇴하는 데 군사력 사용 등을 신봉한다”고 밝혔다.

지난 2월 워싱턴 DC에서 열린 CPAC (보수정치행동위원회) 연례회의에서도 리얼콘은 거론됐다. 기조연설자 중 한 명인 보수 라디오 진행자이자 정치평론가인 잭 헌터는 지금 미국에는 리얼콘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리얼콘은 지난 10년 간의 조지 부시 공화당 행정부에 비판적이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주류 보수주의자가 되는 길은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공화당 대통령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오히려 정부의 크기를 두 배로 확대하고 국가 빚을 두 배로 늘렸다고 비판했다. 부시 행정부 당시 ‘뒤처지는 아이 없게 하기’(No Child Left Behind) 정책으로 연방 교육부의 크기가 두 배로 커졌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대, 오히려 보수적 가치에 반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미국의 가장 큰 과제는 연방지출과 빚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균형재정, 정부권한 제한, 국방예산 감소를 비롯한 지출감소, 엄격한 헌법주의 등 ‘리얼콘’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CPAC 마지막 날 있었던 보수지도자 인기투표에서 그동안 ‘리얼콘’ 목소리를 내어 온 론 폴 하원의원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1위를 차지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후 신보수주의와 온정적 보수주의가 떠난 자리에 ‘참 보수주의’, 리얼콘 바람이 미국 보수층 가운데 불고 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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