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을 어찌할까
한나라당을 어찌할까
  • 미래한국
  • 승인 2011.06.0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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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서울대 정치학 박사/ 공정언론시민연대 고문

지금은 보수정권 재창출 가능성의 위기다. 2012년 좌파가 다시 집권하면 그 정권적 위기는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기로까지 연결될 수 있다. 그것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부터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엇이 오늘의 위기를 불렀는가? 500만 표 차로 당선된 이명박 대통령, 원내 압도적 다수파인 한나라당-이런 고지를 점령하고서도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과 보수세력이 비실비실 하고 있는 까닭이 대체 무엇인가? 대중의 삶이 고달파서? 중산층이 무너져서? 그래서 경제 때문에? 경제는 물론 엄청 중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항상 배경적 요인이었다. 경제주의적 진단은 절대로 빠뜨려선 안 될 필요조건이면서도 충분조건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고립무원이 된 이유

충분조건은 무엇인가? 정치적 리더십이다. 정치적 리더십의 핵심은 진정성, 커뮤니케이션(프로파간다) 능력, 그리고 ‘내 편 짜기’다. 진정성으로 국민의 마음을 사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말싸움(담론투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내 편 짜기’로 동맹군을 튼튼히 짜나가기만 하면, 경제위기를 포함한 전반적인 위기가 있더라도 그런대로 버텨 낼 수 있다. 그게 정치력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그 점에서 빵점이다.
진정성이란 무엇인가? 쩨쩨한 사심(私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다. 한나라당 위인들은 나라와 정권과 대한민국 진영 아닌 제 살길에만 온통 들러붙었다. 국민 일반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그런 공(公) 아닌 사(私)를 일찌감치 알아차리고 떨어져 나갔다.

커뮤니케이션(프로파간다) 능력이란 무엇인가? 말의 휘몰이 능력이다. 상대방의 말을 압도할 말을 만들어 각종 매체를 통해 왕창 쏟아 붓고 널리 확산 시키는 재주다. 상대방이 “미국산 쇠고기 먹으면 구멍 탁, 뇌 송송” 하고 나오면 즉각 시청 앞 광장에 수천 명 모아 놓고 ‘미국산 쇠고기 구어 먹기 노천(露天) 파티’라도 열어 이를 TV 생중계라도 하는 게 말하자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그래 놓고 며칠 후 “어, 미국산 쇠고기 먹었는데도 여태 왜 한 사람도 안 죽지?” 하고 능청을 부릴 줄 아는 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이명박-한나라당은 그러기는 고사하고 ‘아침이슬’ 타령이나 하며 뒤로 꽁꽁 숨어버렸다.

‘내 편 짜기’란 무엇인가? 적이 누구인지 동지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가려서 핵심 동지그룹, 동조세력, 연합세력을 꾸려나가는, 정치의 1장 1절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오만한 탓인지 무감각한 탓인지 이것 알기를 우습게 알았다. 지금 그는 사면초가다. 한나라당 원내대표까지 그를 외면했다. 그에게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동맹군이 없다. 그가 자초한 고립이다. 문제는 그의 고립무원이 정권 재창출의 위기, 대한민국 진영의 위기, 대한민국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위인들은 좌파 포퓰리즘(남의 장단)에 휩쓸려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유권자로서는 좌로 갈 바에야 ‘좌 본당(左 本堂)’인 범야(汎野)를 선택하지 왜 조잡한 모조품 한나라당을 선택할 것인가?
얼마 전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주관한 세미나에서 한나라당을 질타하는 발제와 토론이 있자, “속이 다 후련하다”는 반응과 “그래도 한나라당을 그렇게 때리면 어떡하자는 거냐?”는 엇갈린 반응들이 있었다고 한다. 당연한 반응들이다. 전자의 반응도 충분히 있을 수 있고 후자의 반응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양쪽 다 나라를 걱정하는 충정임에 틀림없다. 필자는 전자에 속한다.

지금의 한나라당 그 모습으로는 그들이 결코 보수진영이 지향하는 가치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지금의 한나라당은 정당 값에도 미치지 못하는 오합(烏合)의 무리라 할 수밖에 없다. 이게 정작 더 큰 문제다.

한나라당의 한심한 현주소

보수니 진보니 운운하기 전에 한나라당은 무엇보다도, 특정한 가치를 중심축으로 해서 모인 동지적 결사체도 아니고 그런 가치를 목숨 바쳐 수호하고 쟁취하려는 투쟁집단도 아니다. 한나라당은 그저 금배지 달고 1류 직장 다니는 상이(相異)한 종류의 개인들의 집합소에 불과하다. 그건 정당 본연의 모습이 아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정당엔 싸움꾼들이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한나라당이 맨 공부 잘 한 출세파 고급 전문직 출신이라는 데 주목했다. 그런 구성으로는 정치의 주전장(主戰場)인 가치투쟁, 이슈 파이팅, 힘 싸움, 담론 싸움, 국면돌파, 국면전환, 위기대응, 악전고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한나라당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한나라당이 신념과 가치관으로 불타는 범야 이념집단의 맹수 같은 공격 앞에서 이빨 드러내고 “으르르, 으르르…” 맞대응 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민주당 민노당에 줘 버리잔 말이냐?”는 걱정 어린 반론에도 그만한 논거는 있다. 여기에 “보수, 너희들이 우리 말고 갈 데가 어딨어?”라고 하는 한나라당 위인들의 무례하고 못된 행티가 터 잡고 있다.

시민사회의 보수우파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우선 시민사회의 자유주의-보수주의 지식인 선언 같은 것을 통해 한나라당 배척을 공식 천명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통해 한나라당은 보수우파의 대변정당이 아니라고 규정하고, 한나라당이 보수우파가 당연히 그들을 지지할 것이라 여기는 오만을 없애야 한다. 그리고 비(非)좌파 국민을 향해 한나라당을 더 이상 자신들의 대변정당으로 간주하지 말 것을 호소해야 한다.

한나라당을 제치고 새로운 보수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론은 있으나 그게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정당’을 표방하면 오히려 지식인들이 기피할 가능성도 크다. 그래서 우선은 지식인들의 집단적 ‘한나라당 배척’ 의사 표출을 널리 지속적으로 확산시켜 한나라당을 여론의 기아(棄兒)로 만드는 전법(戰法)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일 듯싶다.

그렇게 하다가 한나라당이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정도가 되면 한나라당 내부에 대판 싸움이 붙을 수도 있고, 그 싸움 끝에 한나라당이 환골탈태를 하든가, 자폭을 하든가, 죽도 밥도 아니게 지리멸렬 찢어지든가 하기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보수 기사회생의 전기가 생겨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썩어도 준치…”라는 생각에서 보수우파는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결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별수 없이 표를 주곤 해왔다. 마치 배신당한 조강지처처럼. 조강지처는 “그래도 우리 집안 망할까 보아…” 하며 그 배신을 참아 주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노(No)라는 게 지금 우리의 생각이다. 분당을구 재보선 때 이미 그것은 현실화됐지만.

어젠다는 나온 셈이다. “보수우파가 한나라당을 버리자”로. 지식인 사회의 후속적인 메아리가 뒤따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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