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드러낸 것
김정일의 중국 방문이 드러낸 것
  • 미래한국
  • 승인 2011.06.19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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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외교안보연구실장

얼마 전 카터가 북한을 방문하는 모습을 보고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는데,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웃기는 비극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주요 신문 사설 중에도 김정일의 중국 방문을 비극이라고 묘사한 것을 보았다. 아무리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해도 한 나라의 국가 원수라는 사람이 언제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모르게, 국민들에게 발표도 하지 않은 채, 몰래 야음을 틈타 외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아마 세계 정치사에 그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일 것이다.

엉터리 언론 보도들

극비리에 중국 방문을 시도한 목적은 일단 달성했다. 김정일이 투먼을 통해 중국에 입경한 5월 20일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들은 김정일의 권력을 계승하기로 내정된 김정은이 중국을 방문했다고 야단법석을 떨었을 뿐만 아니라, 김정은 방중의 의의를 설명하기 위해 온갖 그럴듯한 소설을 써댔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중국 방문 코스는 김정일의 그것과는 반대라는 점, 김정일은 2년여 만에 방중했는데 김정은은 8개월 만에 방중했으니 권력 계승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 모양이라는 설명 등등 온갖 엉터리 뉴스와 해설이 횡행했다. 

김정일의 방문을 김정은의 방문이라고 보도하고, 그 의미를 살피기 위해 온갖 억측을 만들어 내는 대한민국의 언론을 보고 김정일과 중국 당국은 어이없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인공위성을 통해 김정일 전용 열차의 진행 방향을 지켜보고 있었을 한국의 동맹국 미국은 한국 언론의 황당한 보도와 해설들을 듣고 보면서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김정일이 기차를 타고 중국을 방문한 데 대해서도 온갖 이상한 설명들이 제시됐다. 김정일이 며칠씩 기차를 탈수 있다는 건강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있었고, 김정일이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못한다는 설명도 있었다. 김정일이 비행기를 타고 단 몇 시간을 가면 될 곳을 10배도 더 걸리는 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천천히 움직인 이유는 김정일이 스스로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정일은 주민들이 무서웠고, 끝까지 추적해서 결국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한 미국의 공격도 무서웠을 것이다. 기차를 타고 장시간 여행을 했다는 것은 건강을 과시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건강이 불안하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기차는 온갖 의료 장비와 시설을 장치할 수 있기 때문에 신장 투석 등 큰 의료 시술을 받아야 하는 김정일이 이용하기에 더욱 타당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北 구궐 외교를 바라보는 韓美 인식 차이

한국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김정일의 중국 방문에 관해 여러 가지 그럴 듯한 해설을 내놓고 있는 동안 미국의 전문가들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명쾌한 분석들을 제시했다.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심각한 식량난과 경제난에 봉착한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더 많은 원조와 경제협력을 빨리 이끌어내기 위해” 중국을 방문했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보도했다.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Ken Gause) 해외지도부 연구담당국장은 RFA에 “한국과 미국 등으로부터 식량 원조 요청에 대한 반응이 없자 중국으로부터 추가 경제원조를 받기 위해 갑작스럽게 방문한 것”이라고 말했다. 브루킹스연구소의 케이티 오 선임연구원은 “김정일이 지금까지 자리를 뜰 때는 중국에 도움을 청하거나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즉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구걸 방문이었던 것이다. 2010년 3월 천안함 격침 사건을 저지르고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을 저지른 후 북한에 대한 한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조치가 약발을 내기 시작했고 김정일은 천안함 격침 사건 이후 1년 만에 3번씩이나 중국 방문을 단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같은 김정일의 구걸  방문을 ‘경협’이라는 말로 호도했다. 경협이란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협력, 협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협력이 이루어지기 위해 두 나라 경제는 상호 호혜적이어야 하며 두 나라는 모두 자유주의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한국은 북한에 돈을 퍼주기 할 때도 경협이라는 말로 본질을 호도했던 경력이 있지만 이번에도 김정일 방중의 의미를 호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이던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22일 김정일의 중국 방문과 관련, “중국의 발전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들(북한)의 발전에 활용하기 위한 기회를 주려는 목적으로 김정일을 초청했다”고 말했다. 역시 김정일을 초청한 사실이 쑥스러울 수밖에 없는 중국의 변명이다.
김정일처럼 온 세상의 비디오를 다 보고, 온 세상의 뉴스를 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눈으로 직접 보지 않았다고 개혁 개방 및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번영하는 모습을 모른다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 김정일은 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로 북한을 개혁 개방하는 것이 북한이 잘 살게 되는 길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김정일의 딜레마

그런 김정일이 개혁 개방을 극구 반대하고 있는 이유는 개혁 개방이 북한을 살리는 길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정권 유지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개혁 개방을 해야 하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고립과 폐쇄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이 북한이 처한 딜레마의 본질이다.
북한에 자유주의 경제체제가 들어서는 날, 북한 주민들은 북한 정권이 자신들을 수십 년 동안 기만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며, 김정일 정권의 운명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고립과 폐쇄를 지속하고 있으며 그러는 중에 핵무기도 개발해야 하고 선군정치도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핵개발, 선군정치라는 무리수는 천안함, 연평도라는 또 다른 무리수를 창출해 냈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 김정일 정권은 중국의 경제 원조가 절박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김정일의 중국 방문은 실패였다. 중국은 원조를 제공하기 보다는 ‘주고받는’ 식의 경제 거래를 제안한 모양이다. 천안함 문제, 핵문제, 권력 계승 문제 등에서도 중국은 북한이 원하는 돌파구를 마련해 주지 않았다. 이번 방중을 계기로 김정일 정권은 북한의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다시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천안함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하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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