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최측근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제거
김정일, 최측근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제거
  • 미래한국
  • 승인 2011.06.2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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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K리포트 / 지금 북한에서는…

 

지난 19일 류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이 김정일의 호출명령을 받고 김정일 관저로 들어서던 중 호위사령부 친위대에 체포돼 종적을 감췄다.

국가안전보위부는 김일성, 김정일 체제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쳐 온 정치사찰경찰로서 북한에서도 베일에 싸인 조직이다. 초대부장이었던 김병하가 김일성에게 충성하던 중 1983년에 제거됐는데 그때 공개된 사인은 가스중독사고였다. 2대 부장이었던 이진수는 1987년에 사라졌는데 그때도 황해북도의 고속도로 상에서 승합차전복사고로 소문이 돌았었다. 

사실 위의 두 인물 모두 자살 방식의 처형이었다. 북한의 김정일 측근들의 공통점은 생명 마감이 모두 급사였다. 며칠 전까지 정상이던 사람이 갑자기 암으로 사망하고 최대의 경호 속에 사는 인물들이 교통사고로 즉사하곤 한다.

김정일은 측근의 수명 관리를 철저히 하기로 유명하다. 속에 없는 거짓 충성, 강요된 열성의 한계를 잘 이해하는 김정일로서는 측근의 영향력을 차단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류경은 김정일이 직접 앉혀 놓은 심복 중의 심복이었으며 총명하고 판단이 빠른 노련한 정보통으로 2004년 고이즈미-김정일 평양회담을 막후공작으로 성사 시켰고 2009년 여름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만들어 냈다.

그는 국가안전보위부 국장들 속에서 두뇌회전이 빠른 사람, 김정일의 충실한 동지 등으로 회자되면서 노동당 대외연락부의 대남공작사업, 당국제부의 외교활동에도 깊숙이 손을 뻗쳐 왔다.
80년대까지 대남공작사업을 당문화부(3호청사)가 독점 관장하던 것을 90년대 말부터 국가안전보위부의 대외반탐국이 부분 담당하는 지분도 따냈다.

2009년 초 당대외조사부(35호실), 총참모부 대남작전부, 연락소를 통합해 국방위 소속 정찰총국으로 만든 기안자도 바로 류경이다.
2010년부터 김정일에게 호위사령부 친위대 정보실에서 류경에 대한 불편한 자료가 올라 오기 시작했다. 보위부, 보위사, 당, 행정부 등 국가권력의 핵심인물들이 서서히 류경에게 줄을 서기 시작하는 것을 포착한 김정일은 류경을 제거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자는 업무상 2002년 11월 평양의 안가에서 류경을 한번 대면했었다. 그는 말이 적고 보통 키에 비염성 목소리를 가진 구리빛 얼굴이고 국가와 조직에 대한 강한 애착심을 가진 간부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는 업무상 공작을 위해서는 산골 농민과도 마주 앉는 소탈함도 있었다. 그때 그를 경호하는 분위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었다.

이번 김정일의 류경 제거는 호위사령부의 초긴장 속에 거행됐으며 그 여파는 아직 진행 중이다. 호위국은 지금 완전전투태세로 국가안전보위부를 견제하는 상태다. 보위부는 4만여명의 정예 전투지휘관 출신들로 구성된 조직이며 전원 완전무장한 정보관들이므로 이들이 반대세력화되면 체제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당분간 분위기가 정리되기까지는 아직 해결해야 할 김정일의 숙제가 남아 있다. 류경을 제거한 확실한 이유를 보위부 간부들에게 내놓아야 할 것이다. 
류경의 위상은 김정일 다음이었다. 모든 측근들이 류경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류경은 국가보위부의 위상을 국가최고권력기관으로 끌어 올렸다. 김정은 체제 구축도 자신만이 할 수 있다고 소리치곤 했다. 김정은은 엄청난 리더십을 발휘하는 류경이 너무 무서웠다. 장성택도 류경의 잔인함에 떨었던 과거가 있었다.

이번에 류경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일이 약해지고 김정은이 나선다면 류경은 김정은 정도는 병아리 다루듯 할 것이다. 김정은을 앉혀 놓고 훈계를 많이 한 인물도 류경이다.  김정은은 최근까지도 류경 앞에서는 똑바로 쳐다 보지도 못했다고 한다. 류경은 사실상 국방위 권력을 혼자 행사하고 있었다.
장성택과 김정은, 김정일은 류경을 폐기처분하기로 합의하고 즉시 실행에 옮긴 것이다. 북한에서 고위층 간부들은 김정일의 측근 활용의 결말이 잔인하다는 사실을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다. 보위부와 보위사간의 견제를 분명히 설정할 것이다.  

북한 암시장에서 디지털카메라 거래 활발

두만강지구 현지통신원에 의하면 4월부터 주요 도시의 큰 장마당에서 새로운 변화가 눈에 띈다고 한다. 북한의 암거래가 활성화된 대표적 시장인 평양시의 새살림시장, 모란시장, 서성시장, 청진 수남구역시장, 신의주 채하시장에서는 이전의 아날로그방식의 필름카메라가 사라지고 전부 디지털카메라가 거래된다고 한다.

대부분 중국산이며 가격은 120달러, 장사꾼에게 조용히 거래하자고 하면 삼성브랜드도 매매가 가능하며 가격은 500달러라고 한다.
장사꾼들은 이 제품을 신의주와 두만강 교량무역을 하는 보따리 상인들, 두만강과 압록강에서 이뤄지는 밀수 등으로 들여오는 제품이며 대부분 1천만 화소급 이하 제품이라고 한다.

디지털 카메라는 작년까지만 해도 신기한 제품에 속해 당 간부나 외화벌이 관계자들, 사진전문가들만 구입했는데 현재는 평양시 길거리에서 디지털 카메라를 사용하는 중학생들도 흔하게 보인다고 한다. 평양시 가정의 디지털카메라 보급률은 2011년 4월 현재 100세대 당 8세대로 추산된다.

국영 편의종합수리소 사진관에서 옛 소련산 필름식 카메라가 주종으로 사용되던 것이 일부 사진관들은 하이앤드형 캐논, 니콘 디지털 카메라를 비치하고 영업을 한다고 한다. 편의사업소 자체외화벌이 계획을 수행해 상설무역기관으로부터 현금 대신 받은 제품이라고 한다.

중국, 북한 접경 따라 국경도로 건설

현재 중국은 길림성 화룡시 남부 빠이스에서부터 북한 함경북도 회령시까지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다. 총길이 75km에 달하는 방대한 공사에 중국은 자국 근로자 외에 동남아시아 인력도 투입하고 있다.

중국은 몇 년 전부터 북한과 접한 국경연선인 두만강. 압록강변을 따라가며 이 같은 도로를 건설해 오면서도 지금처럼 외국 근로자까지 투입하지는 않았었다.

도로공사에 맞춰 변방 부대도 북한에서 넘어오는 탈북민과 밀수장사꾼들을 집중 단속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중국의 북.중 국경을 따라 건설하는 도로는 중국 쪽의 경제성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현지 주민들은 생각하고 있다. 

오진하 기자 jn683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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