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준의 BOOk &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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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1.06.20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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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손들(Invisible Hands)’을 읽고

 
킴 필립스 - 페인 著 (2009)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만큼 대한민국 보수우파가 좋아하는 말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 말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이 순간에도 온 몸을 바쳐 헌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최근 보수우파 모임에 나가면, MB와 한나라당 비판이 넘쳐난다. 아니, 이제 대한민국 보수우파는 反한나라당이 된 것 같은 분위기마저 느껴진다. 이러한 분위기를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나, 어찌 보면 상대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우리 스스로가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사실 감정의 문제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진짜 문제는 현재 노정되고 있는 ‘보수우파 위기’에 대해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대한 올바른 대책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현재 우리 보수우파의 문제점은 단순히 MB의 ‘실용주의’ 노선이나 한나라당의 기회주의 노선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 MB의 실용주의나 한나라당의 기회주의는 보수우파 위기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에 가깝다. 즉 보수우파가 MB나 한나라당을 견인할 동력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 보수우파 위기의 본질은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좌파진영에 빼앗기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인정하기 싫지만, 불행하게도 우리 보수우파 진영은 오래 전에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좌파에 빼앗겼다. 특히 젊은이들의 ‘두뇌’와 ‘심장’을 사로잡는 데 보수우파는 실패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대학가에서 진행되는 사회과학 강의 내용과 대형 서점에 진열돼 있는 인문 사회과학 서적들의 목록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좌파의 문화적 이데올로기 전선에서의 승리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랜 시일에 걸쳐(최소한 1980년대 초부터) 끈질기게 벌여온 그들의 문화 사상 투쟁의 결과였던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시간은 저들의 편이고 우리의 전략 전술은 제갈공명이 환생해서 세운다 하더라도 ‘임시방편적 땜질’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럼 보수우파는 어떻게 젊은이들의 두뇌와 심장을 다시 되찾아 올 수 있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씨름하는 와중에,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킴 필립스-페인(Kim Phillips-Fein) 著, ‘보이지 않는 손들(Invisible Hands)’이란 책이다. 이 책은 1930년대 루스벨트 대통령의 뉴딜정책으로 ‘파라다이스’(?)를 상실한 미국 시장 보수주의자들이 어떻게 1980년대 레이건 보수혁명을 이룩했는지에 대한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1930년대 뉴딜 이후 이른바 ‘리버럴 컨센서스’(liberal consensus)가 미국 정치를 지배하자 이에 절망한 보수주의자들은 “미국이 직면한 위기는 본질상 지적(intellectual), 아니 정신적(spiritual)”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이념 전투(the battle of ideas)”를 시작한다. 이들이 제일 먼저 손을 댄 것은 경제교육재단(the Foundation for Economic Education, FEE)과 같은 ‘이념 교육 기관’을 설립한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운동의 주도자였던 리드(Read)도 레닌과 마찬가지로 ‘잘 훈련된 소수정예’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또 리드는 운동의 성공 여부는 ‘자유 시장(market)’에 달렸다고 역설했다. 즉 기부금 모금은 운동의 성과를 반영하는 것이며, 기부금 모금에 성공하지 못하는 운동은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항상 돈이 부족하다고 푸념하는데...)

또 ‘싱크 탱크’ 설립 운동에도 박차가 가해진다. 바루디(Baroody)는 “좌익운동은 미국사회의 이른바 지식 부분의 독점에서 나온다. 좌익이 대학가를 장악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대안적 지적 저수지’(alternative intellectual reservoir)를 건설할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으로 헤리티지, 미국기업연구소(AEI) 등과 같은 보수주의 싱크 탱크들이 속속 조직돼 ‘지적 고지’를 하나씩 탈환해 나간다.

1964년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의 한 분수령이었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 진영은 베리 골드워터라는 보수주의 후보를 내세워 이른바 온건파 넬슨 록펠러 후보를 물리치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시킨다. 비록 본선에서 민주당에 완패당하지만, 골드워터의 등장은 미국 보수주의 운동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레이건 대통령 자신이 바로 골드워터 운동원으로 시작해 정치에 입문했으며 바로 골드워터 시절의 청년 보수주의자들이 세운 정권이 레이건 정권이었던 것이다.

골드워터의 ‘한 보수주의자의 양심’(진짜 저자는 보수주의 운동 이론가였던 브렌트 보젤이었다!)은 당시 청년 보수주의자들에게 모택동의 홍위병에게 모택동 어록집이 했던 역할과 유사한 역할을 했다. 이 소책자를 손에 들고 열광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에 놀란 당시 공화당 주류파는 이들을 ‘극단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골드워터의 답변은 통쾌했다. “자유를 수호하는 데 있어서 극단주의는 악이 아니고, 정의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온건한 것은 덕이 아니다.”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다. 루이스 파웰(Lewis Powell)이다. 그는 1971년 ‘파웰 메모’라 불리는 ‘자유기업체제에 대한 공격’이란 소책자를 써서, 미국 기업인들에게 돌렸다.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퍼진 反자본주의 정서를 구체적으로 파헤친 책자이다. 이 책자는 미국 주류사회에 경종을 울렸으며, ‘이념 전쟁’의 필요성을 부각시켰다.(파웰 메모를 읽어보면, 어떻게 우리 상황과 그리도 유사한지!)

사실 이 책의 저자의 코멘트는 마음에 안 든다. 저자는 리버럴 입장에서 보수주의 운동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객관적인 측면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현재 어느 단계에 있는가? ‘레이건’을 기대해야 하는가 아니면 ‘골드워터’를 기대해야 하는가? 좌우간 소수라도 ‘아이디어 전투’를 지금 당장 수행해야 할 것이다. 

황성준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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