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43일 그는 어떻게, 그리고 왜 살아날 수 있었나
북한에서 43일 그는 어떻게, 그리고 왜 살아날 수 있었나
  • 미래한국
  • 승인 2011.07.26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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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로버트 박 재미교포 북한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은 2010년 2월 6일 북한의 역류에서 플려나 베이징에 도착했다

로버트 박은 2009년 크리스마스에 ‘김정일이 자리에 물러날 것’과 ‘북한의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20만명의 정치범들을 풀어 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손에 들고 북한에 들어갔다가 평양 감옥에서 43일을 보냈다. 그는 석방 이후 북한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한 번도 정확히 말하지 않았다.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석방 후 자살 미수까지 가는 극심한 우울증으로 미국에서 정신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고, 지금은 한국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도날드 커크 본지 편집위원이 그를 만났다.

- 요즈음 무엇을 하고 있고, 그것을 왜 하는가.
내가 겪었고 내게 일어났던 일들이 있은 후 나는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해졌다. 북한에서 고통 받고 있는 북한주민들, 특히 수용소에 갇혀 있는 이들을 위한 일들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해 나갈 것이다.     

- 북한수용소과 관련 최근 어떤 사례가 있나.
오늘 아침에 나는 내 친구 어머니가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관리소(정치범 수용소)에 있다. 아무도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그들은 몸에 큰 상처를 입게 된다. 여성은 임신을 시킨 뒤 갓난 아기들은 죽임을 당한다. 탈북민의 많은 수가 수용소에서 자행된 생체의학실험을 알고 있다. 신동혁(북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유일한 사람)은 수용소에서 태어났다. 그의 전체 가족은 가족 중 한 명의 잘못 때문에 그곳에 들어갔다. 나는 이런 일들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다. 내 친구의 조카 한 명과 그녀의 전 가족이 수용소에 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와 나치 나치 유태인 수용소

-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다. 미국의 북한인권위원회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곳 사무국장은 북핵 위협 때문에 우리가 어떤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북한에 변화를 가져올 방법에 대한 것이 나의 관심이다. 지난해 북한에서 수용소가 더 늘어났다는 보도가 있다.

- 개인적으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가.
그리스도는 세상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줬다. 북한당국이 사람들을 그토록 괴롭힐 이유가 없다. 북한 내부에서는 주목할 만한 변화의 움직임이 없다. 북한당국은 국내외에서 주의를 분산시키고 있다. 북한인권에 대한 미 국무부 보고서는 상당히 희석된 것이다.

- 수용소에는 몇 명이 수감돼 있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나.
적게 잡으면 20만 명이다. 아마 25만 명 정도가 있을 것이다. 2002년 이후 100만 명이 수용소에서 죽었다. 탈북한 수용소 경비원 출신의 안명철은 수용소의 상황을 처음으로 공개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자신이 사람들을 죽였다고 자백했다. 또 다른 경비원 출신의 탈북민은 수용소에는 독가스 실이 있다고 증언했다.
- 한국, 미국 및 다른 곳에서 그런 보도에 관심이 부족하다.
나는 사람들이 이것이 집단학살이라는 것을 알도록 노력하고 있다. 아직 대규모 시위가 없었다. 2004년 워싱턴 DC에서는 1000여명이 시위를 했다. 한국에서는 단지 몇 백 명이 모여서 시위를 했다. 우리에게는 이집트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이 대규모로 일어서는 것이 필요하다.

 로버트 박이 2009년 12월 9일 서울에서 열린‘북녁 동포를 위한 자유와 생명 2009’기자회견에서 성명서를 읽고 있다

- 북한에서 이뤄지는 만행에 대한 반응과 2차 세계대전 전후 독일에서 자행된 만행에 대한 반응을 비교해보면.

1939년 홀로코스트 기간 독일에서는 10% 미만의 기독교인들이 항의했다. 교회는 항의하려고 하지 않았다. 가톨릭 역시 순종적이었다. 라울 발렌버그와 같은 기독교인들은 내게 본이 된다. 내 희망은 한국과 여러 곳의 교회가 북한인권에 대해 일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교회들 가운데는 많은 부패가 있다. 사람들은 더 국수주의적이 되고 있다. 수천만의 사람들이 조직됐다면 2차 세계대전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리가 계속 기다리면, 우리가 계속 북한정권을 두려워하면, 수백만 명이 더 죽임을 당할 것이다. 기독교인으로 나는 숙명론자가 되고 싶지 않다. 정부는 다시 ‘대화합시다’로 돌아가고 있다. 2003년 이후 세계 강대국이 핵무기로 협상하는 동안 수만 명이 죽었다. 계산에 보면 하루에 391명꼴로 죽고 있다.

- 구체적으로 당신은 무엇을 도우려는가.
나는 기도운동인 globalprayernetwork.com을 시작했다. 우리는 워싱턴에서 수잔 솔티가 운영하는 북한자유연합과 함께 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사를 1년에 한 번 하는 것보다 이런 기도가 시급하다.

“내가 목격한 탈북민 인권 상황”

- 북한에 식량을 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식량이 주민들에게 정말 간다면 왜 모든 탈북민들이 북한에 원조하는 것에 대해 불평하겠는가?

- 중국이 협력 혹은 협조할 기미가 보이나.
한국으로 가려는 탈북민 10명 중 1명이 중국 당국에 의해 북한으로 보내지고 있다. 중국에 수십만 명의 탈북민이 있다면 우리는 중국이 국제법을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 탈북민들이 북한으로 송환되면 수용소에 수감된다.
그들은 고문을 당한다. 중국 남자의 아기를 임신해서 오면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한다. 중국은 옳지 않다. 중국은 북한당국과의 관계를 중시해 북한이 북한주민들을 죽이는 것을 방치하고 있다.

- 탈북민들에 대한 기독교 영향은 어떤가? 그들이 중국에서 붙잡혀 송환되면 어떤 일이 생기나.
북한에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누구나 사형된다. 중국에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 대신 우리는 조직을 통해 국제사회 앞에 이 문제를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 이런 충돌이 폭력 수준으로 가는데 어떤 단계 쯤인가.
북한이 테러공격 혹은 핵실험을 하면 우리는 개입할 권리를 가질 것이다. 정치적 위험은 크다. 우리는 이것을 정치적 이슈로 만들 수 없다. 집단학살은 우리를 함께 묶는 것이다.

- 우리가 이 문제를 막기 위해 활동하기보다 기다린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이 사람들에게 자행되는 범죄를 우리가 알고도 기다린다면 그것은 공범죄다. 내 희망은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하기 전에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접촉하는 방법은.
탈북민을 통해 우리는 돈과 자원을 보낼 수 있다. 약 1,000만 달러가 매년 북한으로 들어간다. 북한에는 반체제 인사들이 있다. 북한에서는 기독교인들에 대한 집단학살이 있어왔다. 평양은 한때 동방의 예루살렘이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래함과 같은 사람들이 북한정권에 돈을 준 것은 끔찍한 일이다. 미국의 북한인권특사인 로버트 킹은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을 달래주기 위해 간 것이다. 이것을 인권이라고 말하는 것을 잘못된 것이다. 교회와 가족들이 아예 붕괴되고 있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그들의 생명은 위태롭다.

-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된 탈북민들에는 실제로 무슨 일이 생기나.
북한에 들어가기 전 중국에 있을 때 나는 6명의 탈북민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것을 봤다. 많은 탈북민들은 북한 정권에 순진하다. 심문관들은 “자백을 하면 우리는 관대하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자백하면 그들은 죽는다.

- 그런데 왜 사람들은 탈북하는가.
대다수가 생존을 위해 중국으로 간다. 내 친구 대다수는 굶주림을 피해서 왔다. 이것은 인권 이슈가 아니다. 이것은 제네바 협정 하의 집단학살 이슈다. 기다려서는 안 되는 상황이다. 용서할 수 없다.

북한문제는 인권이 아니라 집단 학살 차원으로 다뤄야

- 지금 상황이 얼마나 안좋은가.
위험이 더 커지고 있다. 인권과 집단학살이 판을 치고 있다. 아주 나쁘다.

- 만나본 탈북민들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
많은 탈북민들은 매우 친절하다. 마음도 순수하다. 대다수는 시골에서 온 여성들이다.

- 북한에서 당신이 겪은 어려움을 말해줄 수 있나.
나는 나의 일이 끝나기를 원한다. 나는 북한에서 나온 후 자살 충동을 수없이 느꼈다. 북한에서는 여러 일들이 있었다. 당시 나는 준비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두려움으로 떨게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우리가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아야 되는 이유다.

- 어떻게 그 정권은 수백만 명의 주민을 두려움에 가둘 수 있나.
북한 정권은 의도적으로 사람들이 약해지길 바란다. 그들은 식량지원을 정치적 수단으로 사용한다. 수용소에서는 사람들은 조직적으로 굶주린다.

- 왜 북한이 43일 만에 당신을 풀어줬다고 보는가. 
그들은 내가 다시는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나를 풀어준 이유였다. 또 나로부터 뭔가를 얻어낼 것이 없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내게 평화를 주는 유일한 길은 북한주민들이 더 이상 고문과 폭압을 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갖고 살 수 있는 것이다.

인터뷰 / 도널드 커크 편집위원
번역 /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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