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진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부터 문성근 씨의 ‘100만 민란 프로젝트’와 민노총을 중심으로 한 ‘진보의 합창’, 참여연대 등 좌파 단체 대표자들이 모인 ‘내가 꿈꾸는 나라’ 등 거대 연대 단체를 만든 좌파진영은 최근 ‘이슈별 투쟁 전선’을 만드는 분위기다.
좌파진영은 부산 한진중공업 ‘3차 희망버스’에 10만 명 시위대 동원,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에 연예인 김제동 씨 등 연예인과 122개 단체 연대 투쟁 등으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같은 ‘좌파 대공세’의 시작은 무상급식 논란과 반값 등록금 요구부터다.
무상급식 2탄, 반값 등록금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재선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현재 8% 수준인 무상급식 대상 청소년을 점진적으로 30% 수준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같은 날 당선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오세훈 시장은 “좌파에서 계속 시민, 시민 하는데 그렇다면 주민투표를 하자”고 주장했고, ‘복지포퓰리즘 추방 운동본부’가 나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찬성하는 서울시민 80만1,263명이 서명한 명부를 모아 지난 6월 17일 서울시에 접수했다. 서울시의회 등은 ‘서명부 중 26만7,475표가 무효’라며 ‘주민투표 반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주민투표 발의에 필요한 41만8,005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전면 무상급식에 대한 서울시 주민들의 서명부가 제출될 무렵인 지난 6월 10일 전국등록금네트워크(이하 등록금넷)라는 단체와 한총련의 후신이라 할 수 있는 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이 앞장서 반값 등록금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수십조 원이 드는 4대강 공사를 중단하고 부자감세정책을 철회하면 반값 등록금을 실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시위는 대학 법인화와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던 서울대 학생들의 ‘공부농성(대학본부 점거농성에서 구호와 폭력 대신 시험 준비를 하는 농성)’과 맞물려 화제가 됐다. 등록금 때문에 고통을 겪던 학부모와 대학생들이 관심을 가졌다. 국민들이 관심을 갖자 한대련과 등록금넷 등은 1,000여 명이 참석한 광화문 촛불시위를 주도했다.
자신들에 대한 폭발적 지지가 나오지 않자 좌파진영은 무상급식과 반값 등록금 투쟁 수위를 조절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동원되는 단체 인원들도 크게 줄었다. 대신 새로운 ‘투쟁 장소’를 찾았다. 바로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였다.
1980년대 후반 정부의 조선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라 법정관리에 들어갔던 당시 대한조선공사는 현재 농성 중인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과 같은 노조운동가와 많은 근로자들을 해고했다. 1989년 한진그룹이 대한조선공사를 인수한 뒤 3,00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해 정상화하면서 이름도 한진중공업으로 바꿨다. 한동안 침체기였던 조선업은 21세기 들어 급격히 성장하면서 한진중공업도 호황을 누렸다.
희망버스 타겟 된 한진중공업 사태의 시작
한진중공업 노조는 국내 대기업들이 국내 사업장을 점점 축소시키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한다는 말이 많기에 자신들의 일자리도 조만간 사라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게다가 2009년부터 영도 조선소의 신규 수주량이 ‘0척’이 되면서 이 같은 불안감은 점차 커졌다. 노조는 이때부터 연 평균 4개월 이상 파업을 벌이며 사측과 갈등을 빚었다. 노조는 이런 이유로 2010년에만 140여 일 동안 파업을 벌였다. 때문에 평균 연봉이 6,000여만 원에서 3,900여만 원으로 크게 줄어들기도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민노총 등 좌파진영은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았다. 좌파진영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건 지난 1월 사측이 부산지방노동청에 ‘400명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하면서부터. 계획서에는 ‘먼저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신청자가 모자라면 정리해고를 하겠다’고 돼 있었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노조는 파업을 시작하며 상급노조인 민노총에 도움을 요청했다.
이때 달려온 민노총과 민노당, 진보신당 관계자들은 한진중공업 노조원들과 함께 ‘85호 타워크레인’을 중심으로 사측과 대립하기 시작했다. 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인 김진숙 씨가 여기서 중심에 섰다.
‘최초의 여성 용접공’이라는 타이틀도 갖고 있는 김진숙 지도위원은 1986년 ‘조선업 합리화 조치’ 이후 상급자의 명령을 거부하다 해직된 사람이다. 당시 회사 이름은 대한조선공사, 소유주는 극동해운이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해직된 후 민노총에서 활동했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뒤 해고무효소송을 청구했지만 패소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부산 시민들 제3자 개입에 강한 반발
그런 그가 지금은 ‘선전’에 의해 현재의 한진중공업 사측에 해고된 근로자처럼 둔갑한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을 내세운 ‘선전’에 이어 민노총, 민노당, 진보신당 등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라는 단체를 통해 ‘희망버스’를 조직, 지난 6월 11일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에 난입했다.
한편 파업을 통해 사측과 갈등을 빚어봤자 별 소득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은 하나둘씩 파업현장을 떠났다. 파업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노조원 절반이 작업장으로 복귀했고 4개월이 지나자 80%가 파업현장을 떠났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던 400명 중 230명은 구조조정 계획이 발표되자 희망퇴직을 신청했고,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60명이 추가로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나머지 100여 명은 정리해고에 반발하고 있지만 회사에 남게 된 700여 조합원은 결국 지난 6월 27일 사측과 파업종결에 합의했다.
하지만 김진숙 지도위원을 중심으로 한 민노총과 민노당, 진보신당 등 ‘외부세력’들은 이런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한진중공업 노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9일과 10일 ‘2차 희망버스’를 조직해 한진중공업 난입을 시도했다. 경찰 93개 중대 7,000여 명의 병력이 이들을 저지했지만 ‘외부세력’들은 포기하지 않고 7월 30일 버스 1,850대에 10만여 명의 인원으로 ‘3차 희망버스’를 조직해 한진중공업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민주당까지 포함한 좌파 정치인들과 단체들도 여기에 참여할 계획임을 밝혔다.
좌파진영이 김진숙 지도위원을 핑계로 10만여 명의 시위대를 몰고 올 것이라고 밝히자 한진중공업 노사는 ‘패닉’ 상태다. ‘2차 희망버스’로 15시간 동안 큰 고통을 겪은 영도 주민들은 “절대 오지마라, 오면 우리가 맞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 시민들 또한 “제3자가 왜 끼는 거냐”며 반발하고 있다. 좌파진영은 이에 더해 다른 국내 최고의 휴양지에서 대규모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바로 제주도다.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제주도
지난 5월 30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 KYC 한국청년연합, 나눔문화, 녹색연합, 문화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이하 민언련),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언론소비자주권 국민캠페인(이하 언소주), 원불교사회개벽교무단, 전국농민회총연맹(이하 전농),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 전국여성연대,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이하 범민련), 참여연대, 평통사, 평화네트워크,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한국여성단체연합,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한국진보연대, 한국YMCA전국연맹, 환경운동연합 등 44개 좌파 단체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건설될 제주해군기지 건설 백지화를 위한 연대단체 설립에 합의했다.
이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이하 해군기지 대책회의)’라는 연대 단체를 설립한 뒤 제주도에 본격 개입하려 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서울 중구 정동 동양빌딩의 레이첼카슨홀에서 111개 단체(단체 대표 및 관계자 417명) 명의의 성명을 발표한 뒤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에 나서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이들은 “제주해군기지 건설이 생태자연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으로 주민동의 절차를 무시한 것”이라며 “기지 건설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평화의 섬 제주를 군사 갈등과 패권 경쟁의 섬으로 전락시킬 수 있다”며 “미국의 군사력 확장에 제주해군기지가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한 국제평화단체도 111개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16일에는 모금활동도 벌였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명의의 광고에는 제주해군기지 반대를 위한 광고비 모금, 플래카드 1개에 3만 원 씩 1,000여 개 플래카드 보내기 운동, 강정마을 주민 후원 명목의 모금, 해군기지 건설 저지에 이미 투입된 ‘활동가’를 위한 텐트 100개 보내기 운동 등을 6월 24일까지 한다고 밝혔다.
관련 단체의 사이트와 카페, 블로그 등에 따르면 제주해군기지 부지인 강정마을에는 2~3년 전부터 좌파 활동가들로 구성된 ‘개척자’라는 단체 회원들이 전입신고를 마친 후 공사를 방해하고 있다. ‘해군기지 대책회의’는 지난 7월 1일 배를 빌려 회원 100여 명을 태우고 제주로 향했다. 이들은 배에 ‘평화 크루즈’라는 이름을 붙이고 자신들이 제주를 방문하는 7월 1일부터 2일까지를 ‘해군기지 건설 백지화 촉구 전국시민행동의 날’로 선포했다.
이들은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해 ‘해군기지 백지화’를 주장하고 제주시청 앞에서 시가행진을 벌였다. 오후 7시 30분엔 다시 강정마을로 돌아와 촛불집회를 가졌다. 행사 당시 김희순 참여연대 간사는 “대책회의 출범 이후 꾸준히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해 왔지만 집중적으로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앞으로) 전국에서 모여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강행하고 있는 해군과 제주지사를 규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 때문에 해군기지 공사는 방파제용 테트라포드와 케이슨(방파제 구조물)만 제작한 상태에서 6월부터 중단됐다. ‘환경단체’들의 주장에 따라 희귀 수중생물의 입식을 위한 조사만 진행하고 있다. 이들 때문에 지금까지의 공정률은 14%에 불과하다. 공사 중단으로 한 달 낭비되는 비용은 60억 원 수준이다. 당초 예상했던 공사비는 7,000억 원이었지만 해군기지사업단 측은 9,000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저들이 제주와 부산을 노리는 이유
좌파진영은 지난 7월 초부터 공세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 15일에는 강정마을 대책위원장 등 3명이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좌파진영은 이에 굴하지 않고 지난 18일 ‘해군기지 건설저지 7·8월 비상 투쟁’을 선언했다. 오는 25일엔 좌파 성향의 5개 야당이 공사 현장 인근에 천막을 치고 초·중·고교생을 대상으로 ‘강정평화캠프’를 열 계획이라고 한다.
이들이 4년 동안 잠잠하다 올해 여름부터 공세의 수위를 높이는 이유는 뭘까. 좌파진영의 움직임을 잘 아는 이들과 제주해군기지 건설을 촉구해 온 단체 관계자들은 오히려 이들이 노리는 것이 내년 총선 승리라고 분석한다. 부산과 제주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여 국민들의 여름휴가를 망쳐 정부 비난여론을 조성해 내년 총선에서 좌파단일후보를 대거 당선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 근거로 부산 한진중공업을 대상으로 한 파상공세와 제주해군기지 총력투쟁 기간이 겹치는 것, 민주당 등 정당 인사들이 적극 개입하고 있는 점, 올해 불경기로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겠다는 사람이 크게 증가한 점 등을 들었다.
실제 부산과 제주는 대표적인 국내 휴양지다. 부산은 송정, 해운대, 광안리, 송도, 다대포 등의 해수욕장이 즐비해 있고 고속선만 타면 50분 만에 대마도 여행까지 가능한 휴양지다. 여름철 부산에 몰리는 인파는 300만 명이 넘는다. 제주는 1년 내내 관광객이 몰리는 국내 최고의 휴양지다. 여름철에도 바닷바람이 불고 해안도로는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 중 하나라 가족 여행, 커플 여행지로 제격이다. 반면 두 곳 모두 도로망이 좁고 경찰 인력이 부족하다.
이곳에서 1만 명 이상이 몰리는 대규모 불법시위가 벌어질 경우 지역 경찰이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지역 주민은 물론 휴가객까지 큰 불편을 겪게 된다. 불편을 겪은 사람들은 정부의 무능력을 비판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를 비판하는 여론이 계속 이어지면 사람들은 내년 총선에서 여당을 찍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좌파진영이 내년 총선에서 대승하면 대선에서 여당이 승리한다 해도 그 정권은 시작부터 레임덕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면 좌파진영이 내세운 ‘2017 진보정권 창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이 여의도에서조차 나오고 있음에도 여당은 별 관심이 없는 모습이다. 이래저래 국민들만 고통에 시달릴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전경웅 객원기자·뉴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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