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무상급식’ 여부를 가리는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공식 발의가 임박했다. 7월 말 현재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법원에 따르면 주민투표 실시를 위한 법적 절차는 마무리 단계다.
서울시는 주민투표청구심의회에서 주민투표 청구가 법적 요건을 갖춘 것으로 결론이 남에 따라 7월 26~27일 ‘전면 무상급식’과 ‘단계적 무상급식’ 중에서 선택하는 주민투표를 공식 발의하고 8월 23~25일 중 하루에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투표 참여를 적극 홍보하겠다는 방침이다.
반면 민주당 등 좌파진영은 주민투표 자체를 저지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 야당 측은 주민투표 청구 서명의 위법성을 주장하면서 지난 7월 15일 청구 서명부에 대한 증거보전 신청을 낸 바 있다. 이어 19일에는 주민투표 청구를 시가 받아들이는 것을 중지시키기 위한 수리처분 집행정지 신청도 제출했다. 뿐만 아니라 주민투표청구심의회가 주민투표 청구가 법적 요건을 충족했다는 판단을 내리자 21일에는 주민투표 청구 수리처분 무효확인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특히 친 전교조 성향의 곽노현 교육감이 있는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를 상대로 ‘무상급식 사무에 대해 결정할 권한이 없다’는 내용의 권한쟁의심판을 헌법재판소에 청구하고, 무상급식투표 집행 정지 신청까지도 낼 태세다.
서울시 단계적 무상급식안 지지도 앞서
좌파진영이 ‘투표 저지’에 이처럼 결사적인 이유는 무상급식 실시 여부와 관련해 대다수의 서울시민들이 오세훈 시장의 입장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월 23일 서울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제안한 ‘소득 하위 50%의 학생을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한다’에 대한 지지는 58.8%, 서울시의회가 주장하는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까지, 중학교는 2012년까지 전면적인 무상급식을 한다’에 대한 지지는 39.1%로 각각 나타났다. (서울시 유권자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YTN이 중앙일보, 동아시아연구원 등과 지난 7월 23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서울시 주민투표청구심의회가 최근 확정한 두 가지 방안 가운데 어느 쪽 입장에 가까우냐는 질문에 ‘소득 하위 50%를 대상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는 방안’을 선택한 응답이 과반인 53.2%로 나타났다. 소득 구분 없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는 2011년부터, 중학교는 2012년부터 전면 실시하자는 입장은 38.1%에 그쳤다.
단계적 무상급식 방안에는 50대의 찬성률이 가장 높았고 전면 무상급식에는 30대의 지지가 가장 많았다. 또 주민투표 실시 자체에 대해서는 60.9%가 찬성한다는 입장이었고, 반대는 27.7% 였다. (서울 지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p)
그러나 서울시가 유리한 여론 흐름에도 불구하고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는 투표율이 낮을 경우 주민투표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미디어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유권자는 전체의 3분의 1을 약간 넘는 34.6%에 그쳤다.
‘웬만하면 투표하겠다’는 36.7%였고 ‘별로 혹은 전혀 투표할 생각이 없다’는 25.8%, ‘잘 모르겠다.무응답’은 2.9%였다. 주민투표 법안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의 3분의 1(33.3%)이 투표를 해야 투표함을 개봉할 수 있고 유효 투표수의 과반수가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역대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3~4주일 전 여론조사에서 최종 투표율이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적극투표층의 비율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서울시로서는 주민투표 실시 여부를 더 많은 유권자들에게 알려야 하는 입장에 놓인 셈이다.
YTN-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도 투표에 참여할 생각이냐는 질문에 ‘참여하겠다’는 응답이 63.4%, ‘참여하지 않겠다’ 25.3%로 각각 조사됐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일각의 주민투표 보이콧 주장에 대해서는 ‘공감한다’ 33.4%, ‘공감하지 않는다’ 59.7%로 나타났다.
야당의 집행정지 신청에 대한 법원 판단이 최종 변수
야권의 집행정지 신청 등에 대한 법원의 최종 판단 또한 결정적인 변수다. 법원은 이번 집행정지 신청이 주민투표 일정 진행을 정지시켜달라는 것인 점을 고려해 8월 주민투표일 이전까지 기각 또는 인용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혹시라도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는 인용 결정을 한다면 서울시 주민투표 진행은 중단되고 내달 투표는 오는 10월 이후로 연기된다. 이어 법원이 집행정지 신청에 대해 기각 결정을 내린다 해도 무효확인 소송은 여전히 진행된다.
누구보다도 ‘투표 저지’에 결사적인 사람은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다. 곽 교육감은 지난 7월 24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무상급식 예산액을 사실상 정하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적법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곽 교육감은 “2012년 중학교 ‘전면’실시안이 주민투표에서 다수를 얻을 경우 교육감이 재정 여건을 내세워 ‘단계’실시를 결정할 수 있을까요? 예산 관련 주민투표를 금지한 법 취지에 비춰볼 때 주민투표는 적법할까요?”라며 “주민투표의 문안을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정했다. 주민투표 승리는 당연하지만 문안대로라면 이겨도 문제다. 교육청이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하기로 계획한 중학교 무상급식을 내년에 전면 실시하라는 것이니까. 교육감이 졸입니까?”라고 항의했다.
이어 그는 “교육청이 무상급식 재정의 50%를 분담하겠다고 한 것은 오세훈 시장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지금처럼 주민투표로 정할 바에야 재정분담률도 부자 서울시가 더 많이 내도록 다시 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투표 결과에 서울시장직을 연계하는 방안까지 고려하며 ‘배수의 진’을 치겠다는 방침이다. 오 시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회 원로와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 조언을 구하고 있는데, 직(職)을 걸어야 투표율을 높이고 진정성을 보일 수 있다고 하는 분도 있고 정책에 대한 주민투표를 하는데 결과에 자리를 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분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장직을 거는 일은 한나라당 입장에서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점에서 쉽지 않은 결정이다. 만약 시장직을 걸었음에도 투표율 미달로 선거가 무효처리 될 경우, 당장 오는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열리게 된다. 당에 엄청난 부담을 안겨주게 되는 것이다.
2012년 4월 총선 앞두고 최대 승부처
이와 관련해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지난 18일 “오 시장이 ‘주민투표에 정치적 진퇴를 걸어 한나라당에 부담을 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언급했고, 주민투표 실시와 관련해 오 시장에 협조적인 홍준표 대표와 나경원 최고위원 등도 시장직을 거는 것에는 난색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주민투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사실상 마지막 남아 있는 큰 선거다. 지난 4월 재보선에서 참패한 한나라당으로서는 이번 주민투표에서 패배하면 총선이 어렵고, 총선에서 참패하면 내년 12월 대선은 더욱 힘들어진다.
지난 4·27 재보선 이후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지지도는 경기 성남 분당을에서의 승리에 힘입어 급상승했고,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지지도 격차도 좁혀졌다. 이는 중요한 선거에서 승리한 정당과 후보의 지지도가 상승하는 ‘꽃가루 효과’가 극대화됐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하면 서울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가 내년 총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주민투표 패배가 총선 참패로 이어질 경우 내년 대선은 해보나 마나 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당선은 그해 4월 민주자유당의 총선 승리의 연장선이었다. 97년 대선에서 이인제 후보가 탈당하기 전까지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가 압도적인 리드를 확보했던 계기는 96년 4월 총선에서 신한국당이 승리했기 때문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선거 중반 ‘노풍’을 극복하고 선두에 올랐던 결정적 계기 또한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의 한나라당 압승과 무관하지 않았으며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압승한 것도 2006년 5월 지방선거 승리의 연장선상이었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실시될 4월 총선과 올해 8월 서울시 주민투표에 한나라당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한나라당, 정국 주도권 잡는 계기 될 수도
만약 오 시장이 이번 주민투표에서 승리할 경우 한나라당은 지난 4월 재보선 패배로 인한 패배의식을 떨쳐버리고 여론을 급반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포퓰리즘에 브레이크를 걸며 정국의 주도권을 잡을 수도 있다. 6·25 당시 낙동강 전투 이후 국군과 유엔군이 대대적인 반격에 나섰던 것과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2012년은 북한이 ‘적화통일 달성’을 선언한 해이기도 하다.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 2009년 8월 1면에 실린 ‘위대한 수령님의 강성대국 건설 염원을 조국 땅 우에 활짝 피우자’ 제하 사설에서 “수령님(김일성)의 조국통일 유훈을 가슴 깊이 새기고 6·15 기치 밑에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싸워 나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남 선전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어버이수령님의 통일유훈을 받드시고’ 제하 보도기사에서 “장군님(김정일)이 있기에 멀지 않은 앞날에 수령님의 필생의 위업, 절절한 염원이었던 통일강성대국의 그날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지난 2009년 3월 25일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문건을 통해서도 ‘2012년 적화통일’ 달성을 주장한 바 있다. 이는 2012년에 남한에서 총선과 대선이 연달아 열린다는 점을 고려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서울시에서만 열리는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2012년 적화통일’ 여부를 가늠하는 ‘낙동강 전선’으로까지 격상된 셈이다.
김주년 객원기자 anubis00@naver.com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