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대한민국은 왜 건국을 기념하지 않는가?
  • 미래한국
  • 승인 2011.08.2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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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 뉴데일리 이승만연구소 포럼,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1948년 8월 15일 독자의 주권과 영토와 국민을 확보한 국가로서 대한민국이 성립했다. 역사적으로 건국 또는 독립이라 할 사건이었다. 1945년 8월 15일 한국인은 일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됐다. 1946년 8월 15일은 제1회 해방절로 기념됐다. 그러면서 건국과 독립을 이루자고 했다. 그 서원이 1948년 8월 15일에 성취된 것이다. 1949년 8월 15일은 제1회 독립기념일로 성대하게 경축됐다. 그 전에 건국공로훈장령과 포장령이 공포됐다. 동년 12월에는 국방비의 충당을 위해 건국공채가 발행됐다.

1949년 9월 ‘국경일 제정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그 과정에서 초안의 독립기념일이 광복절로 명칭 변경됐다. 경축의 대상은 동일한 것으로, 곧 1948년 8월 15일의 독립으로 당연시됐다. 그러나 이 복고풍의 개칭은 머잖아 한국의 정부나 국민이 그들의 건국 또는 독립을 잊게 하는 중대 계기를 이루었다.
1950년 8월 15일은 제2회 광복절로, 1951년 8월 15일은 제3회 광복절로 경축돼 당초의 건국 기억이 보전됐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1953년부터 혼란이 발생했으며, 1955년부터는 정부나 민간이나 광복절의 기점을 1945년 8월 15일로 당연시하게 됐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는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성립했다는 건국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았다.

대한민국 건국에 비판적인 정치 이념 계승

1960년 이후 장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대한민국의 건국 또는 독립을 경축하지 않았다. 그들은 망각의 방식으로 사실상 대한민국의 건국을 부정했다. 역대 정부와 대통령은 그들이야말로 진정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있다는 정치적 소신과 역사적 이해에 충실했다. 그 37년간 건국에 대한 기억은 건국에 참여했던 일부 민간사회에 의해 희미하게 이어졌다.

망각의 세월이 오래 이어지는 가운데 두 가지 대안적 경향이 나타났다. 1980년대 이후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둘러싼 국제적 갈등이 거듭되면서 민족주의가 한국에서 지배적 풍조로 성립했다. 노태우, 김영삼 정부는 독립운동에 대한 국가적 현창과 보훈을 강화했다. 이 같은 추세를 타고 대한민국은 그들이 세운 나라라고 주장하는 제3의 세력이 대두했다. 광복회를 그 좋은 예로 들 수 있다. 그에 따라 대한민국의 元 건국은 1919년 중국에서 성립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의해서라는 이해가 널리 퍼졌다. 1987년의 헌법 개정이 그 중요 계기였다.

다른 한 가지 경향은 당초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에 비판적이었던 정치이념의 계승으로 나타났다. 1985년 학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되자 마르크스·레닌주의나 모택동주의에 의해 한국 근·현대사를 해석하는 사조가 부활해 큰 세력을 형성했다. 그들은 대한민국을 친일·친미 반민족세력이 세운 반식민지의 나라로 간주했으며, 이 같은 국가의 속성은 이승만과 박정희를 이어 전두환 정부까지 이어진다고 했다. 그들은 국가다운 국가가 성립하는 것은 4·19혁명, 5·18광주사태,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족·민주운동에 의해서라고 주장했다.

1997년에 성립한 김대중 정부가 제2건국운동을 벌이면서 1998년 8월 15일을 정부수립 또는 건국 50주년으로 경축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거기에는 다층의 모순적 경향이 미묘하게 공존했다. 제1건국은 한편으로는 긍정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정됐다.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최초의 공화국으로 받들어졌으며, 그 일환으로 2002년 백범기념관이 건립됐다.
동 정부가 열정적으로 추진한 통일정책의 기저에도 대단히 복합적인 경향이 깔려 있었다. 남북이 공동으로 개최한 통일제에서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체성은 사실상 부정됐다.

 

건국세력, 반공노선은 같았으나 건국 주도권 놓고 대립

뒤이어 성립한 노무현 정부는 이전 정부보다 한국 근·현대사의 급진적 해석에서 보다 정직한 편이었다. 대통령은 한국 근·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한 기회주의의 역사로 규정했으며, 대한민국을 그저 세워진 나라라고 했다. 미완의 역사적 과제를 청산하기 위한 작업이 정부의 의지로 추진됐다. 대한민국이 국민의 통일에 대한 열망을 억누르고 세워진 나라라는 교과서가 역사 교육의 헌장에서 널리 보급됐다. 대한민국은 이승만 일파의 반공 파시즘체제로 성립했으며 처음부터 민주적 시민이 저항하는 대상이었음을 전시하거나 상징하는 공간과 기념물이 곳곳에 건립됐다.

대한민국은 어찌하여 그의 건국 또는 독립 사건을 잊어버렸는가? 지난 62년간 해마다 광복절을 맞아 미국, 영국 등의 우방은 한국의 독립을 축하하는 전문을 보내왔다. 그들은 광복절이 한국의 독립기념일(Korean Independence Day)이라는 당초의 기억을 충실하게 보존했다.
예컨대 작년 광복절을 맞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의 독립기념일을 맞아 미국인을 대표해 축하의 인사를 전한다고 했다. 1968년의 일이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국왕은 한국의 건국 20주년을 축하한다고 했다. 그런데 왜 한국은 정부고 국민이고 그들의 건국을 잊어버렸던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요컨대 건국의 기억을 보전하고 기념하는 정치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크게 보아 대한민국은 미국에 의한 일본제국주의 해체와 처리의 과정을 본래의 계기로 했다. 그 점에서 건국은 무임승차의 과정이기도 했으며, 이에 처음부터 위선의 계기를 안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은 처음부터 분열의 계기를 안고 있었다. 그들은 반공노선에서는 이해를 같이 했지만 건국의 주도권을 둘러싸고서는 대립했다.

한독당과 한민당의 갈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승만은 대동단결을 주장했지만, 혼자 힘으로 역사가 남긴 부채를 다 감당할 수는 없었다. 당초 정부가 독립기념일로 제정하고자 했던 국경일이 광복절로 개칭된 데에는 임시정부 또는 광복군 출신의 제헌의원들의 작용이 있었다고 보인다. 이승만 대통령은 광복절 개칭을 수용하지 않았던 것 같으며, 그 같은 갈등은 혼란과 망각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역사를 집권의 명분으로 정치화했던 역대 정부의 책임도 크다. 이 점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 헌법의 제4차 개정에서 자신이 불과 2년 전에 주도한 5·16혁명으로 새로운 공화국이 건립됐다고 선포한 것이 나쁜 선례를 이루었다. 이후 헌법이 개정될 때마다 전문의 개정이 이루어졌으며, 1987년 헌법 개정에서는 대한민국이 임시정부의 법통을 잇는다고 하여 1948년의 건국 사건을 사실상 부정해 버렸다. 헌법은 살아 있는 사람들의 정치적 약속이다.

헌법에 임시정부 법통 계승 명시해 건국을 사실상 부정

거기에 역사를 표방하는 전문이 붙을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많은 나라의 헌법에 전문이 있는 것은 그 나라가 역사를 정치화하는 데 익숙한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헌법 전문을 제헌헌법의 것으로 되돌리거나 아예 폐지하는 개헌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한국인의 역사의식이나 정치의식에서 그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제약은 한국의 역사학을 포함한 인문.사회과학의 경향에 내재한다고 할 수 있다. 19세까지는 성리학의 나라였다. 그 나라가 패망한 뒤 일제의 지배를 받는 시기에 근대문명이 유입됐다. 전후 미국체제의 세계질서가 성립하는 과정에서 이 땅에 자유민주주의의 나라가 성립했다. 한국의 대학과 지식인사회는 이 세 가지의 인식이나 종합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언제가 필자는 도서관에서 한국정치사와 한국사회사에 관한 통사의 책을 찾다가 실패하고는 크게 놀란 적이 있다. 그러한 몽매 상태에서는 오늘날의 한국이 향유하고 있는 문명의 원리는 무엇이며 어디서 왔는가 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당연히 새로운 정치이념에 의해 새로운 국가가 세워졌다는 인식이 성립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놀랍게도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인간 자유란 한국사에서 오래 전부터 있어 온 것이라는 인식을 일반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이 나라가 이 같은 문화적 제약을 극복해 건국의 기억을 회복하고 발전시킬 수 있을지는 장래의 불확실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서울대 경제학 박사
교과서포럼 공동대표


8·15 건국일 맞아 애국단체 집회 성황

애국단체총연합회, 재항군인회, 라이트코리아 등 애국시민단체들과 바른교육전국연합, 서울자유교원조합 등 교육 관련 시민단체들이 15일, 8·15광복과 건국 기념일을 맞아 서울 시청 앞에서 대규모 집회를 가졌다.
이날 열린‘종북세력 척결 및 교육바로세우기 8·15국민대회’에 참여한 주요 인사들은 흥남철수작전의 전쟁 영웅 김백일 장군의 동상 훼손과 최근 법정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친 국가보안법 범인사건, 북한의 지하당 왕재산 간첩사건 등을 지적하며 “진보라는 가면을 쓰고 민주를 외치면서도 정작 북한의 세습독재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비판도 못하는 종북세력들이 넘쳐나고 있다”며“국가보안법의 무력화로 대한민국은 간첩들의 자유무대가 돼 버렸다”라고 주장했다.

이날 연설에 나선 한 인사는“종북 반국가세력들은 김정일이 좋아하는 일만 골라한다”며“국가가 망하든 말든 촛불, 횃불에 심지어 죽창마저 들고 나서서는 희망버스, 백만민란 운운하며 국민을 편가르고 난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규탄했다.
한편 집회에 참가한 교육단체 인사들은 “이달 24일에 있는 서울시민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적극 참여해서 무상복지 포퓰리즘을 끝장내야 한다”며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시민들이 적극 참여해 줄 것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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