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전제, ‘중국의 성장이 계속된다면…’
이상한 전제, ‘중국의 성장이 계속된다면…’
  • 미래한국
  • 승인 2011.08.30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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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준의 BOOk & World /‘붉은 자본주의’를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전 조선일보 모스크바 특파원
1991년 가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러시아어를 배우고 있을 때 이야기다. 함께 공부하던 친구 가운데 데이비드라는 미국인이 있었다. 미국에서 컬럼비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조지워싱턴대학 대학원에서 러시아 정치를 공부하다가 러시아어 어학연수 온 학생이었는데, 키가 크고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쾌활해 주변 러시아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다. 

어느 날, 러시아 남녀 학생들이 데이비드를 찾아 기숙사로 놀러왔다. 필자도 이 자리에 합석했는데, 한 러시아 학생이 말했다. “데이비드, 너 왜 러시아어 배우니? 조금 있으면 우리 러시아인들도 모두 영어로 말할 텐데…” 이에 데이비드가 대답했다. “그래? 그럼 영어 배우지 마! 아마 우리 미국인들은 곧 일본어를 사용하게 될 거야.”
왜 갑자기 20년 전의 이 ‘썰렁한’ 농담이 생각날까. 당시 일본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일본이 곧 미국을 추월한다’는 명제가 당시 지식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였다. 일본의 부상에 대한 미국의 경계심도 만만치 않았다. 스타워즈를 비롯해 많은 미국 공상과학 영화에서 착한 세계를 공격하는 악의 무리들의 복장은 왠지 일본 사무라이 복장을 닮은 느낌을 주곤 했다.

일본이 미국을 추월할 것이라던 옛 이야기

 

‘서구식 자본주의는 한계를 드러냈으며, 이를 유교적 가치와 결합한 아시아식 자본주의가 대체할 것’이라는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론’이 크게 유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의 모습을 보면 과연 언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중국 경제성장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곧 미국 경제를 앞지를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중국 경제성장률은 눈부실 정도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대로 계속된다”는 전제이다. 하지만 연 10%에 가까운 중국 경제성장률이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을까?

고등학교 다닐 때 학급 60명 중에서 56등 하던 친구가 있었다. 공부와 담쌓고 있던 이 친구가 마음잡고 공부를 시작하니 쉽게 40등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기세를 몰아 30등, 20등, 15등까지 계속 올라왔다. 그 추세대로라면 곧 1등으로 올라갈 것 같았다. 그러나 15등부터 상승속도가 대폭 줄어들더니, 10등에 들어온 이후에는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
공부를 덜했기 때문일까? 아니었다. 문제는 기초였다. 이 친구의 성적 상승 동력은 이른바 ‘암기과목’이었다. 죽도록 공부했더니, 이러한 과목들의 성적이 만점 수준으로 급상승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영어와 수학이었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쉽게 성적이 오르지 않았다. 결국 이 친구는 5등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다행히 자신이 원하던 서울 명문대에 입학할 수 있었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에 중국이 처해 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이야기일까? 사실 필자는 경제, 특히 중국 경제에 대해 문외한이다. 그러나 ‘중국의 미국 추월론’을 들을 때마다, 중국 경제 성장동력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기초산업 성장동력이 존재하는지? 기초산업 없이 세계 1등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미국 경제가 붕괴한다면, 미국을 시장으로 삼아 수출주도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중국은 어떻게 될까? 또 중국이 상당량의 미국 국채를 가지고 있으니, 중국이 미국 경제의 앞날을 쥐고 있다고 하는데, 거꾸로 중국이 미국 국채를 구입하지 않는다면, 중국은 수출로 벌어들인 잉여 달러를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화려한 중국 경제의 성장 이면에는 결정적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취약한 금융산업과 은행의 부실이다.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중국의 은행 부실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면, 중국은 물론 세계경제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올 1월 미국 블룸버그 통신 조사에 따르면 세계 투자자 및 경제 분석가의 45%는 “중국이 5년 안에 금융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중국 정부 통제 아래 이뤄지는 은행의 과잉 대출과 부실 및 투기적 자산투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중국 금융 시스템 붕괴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경제의 아킬레스건, 은행 금융 부실

‘붉은 자본주의’는 20여 년간 중국 금융 현장에서 직접 일해 온 칼 워터와 프레이저 하위가 공저한 책으로서 바로 중국 금융 시스템의 문제를 파헤치고 있다. 저자들은 중국 공산당이 은행의 역할을 “국영기업에 무제한 자본을 대주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그 결과 중국 은행들은 엄청난 규모의 부실채권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중국 정부는 이러한 부실채권이 폭발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줬다. 그러나 그 능력이 보여준 방법은 본질적인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폭탄 돌리기’ 혹은 ‘피라미드 쌓기’였던 것이다. 1980년대 중국 은행들은 지방정부의 압력으로 상환 능력을 따지지 않고 무분별하게 대출을 해줬다. 통화량이 급증하면서 물가가 치솟고 자산 거품이 심각한 문제로 부각했다. 그 결과 대출을 갚지 못하는 개인과 기업이 속출했다. 10여년 후 중국 4대 은행의 대출의 40%가 부실채권이었다.

솔직히 ‘붉은 자본주의’는 그리 재미 있는 책은 아니다. 조금 생소한 경제용어들도 많이 등장할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많은 수치와 도표가 필자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가 제시한 수치를 꼼꼼히 쫓아가다 보면 “중국 지도부도 참 걱정이 많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사망까지는 이르지 않더라도 심한 홍역은 한번 치러야 하는 것이 중국경제의 운명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난 것은 부산저축은행 사건이었다. 부산저축은행에서 중국 4대 은행의 미래를 보았다면 지나친 것일까? 아무튼 중국에서 부실채권 폭탄이 터지거나 금융 피라미드가 무너지는 상황이 온다면? 과연 우리는 이에 대비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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