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가 보는 중국의 오늘
선교사가 보는 중국의 오늘
  • 미래한국
  • 승인 2011.08.31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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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 / 유바울 중국선교사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중국의 기독교인 인구는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는 5천만 명에서 인구의 8%를 차지하는 1억 명 가량으로 성장해 왔다. 세계 기독교 미래학자인 하워드 스나이더는 15년 전 펴낸 ‘21세기 교회의 전망’에서 세계 기독교에 미칠 영향력 있는 사건 중 하나로 중국 기독교의 부흥을 꼽았다. 중국 내 기독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향후 중앙공산당 정부의 억압과 외국 문물로 인한 세속주의, 깊게 뿌리 내린 무신론과 현세론을 극복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미래한국>이 지난 23년 간 중국을 포함, 아세안 4개국에서 선교활동을 펼쳐온 유바울 선교사를 만나 현재 중국내 기독교 현황과 인민들의 삶, 향후 국가적 전망 등에 대해 들어보았다. 

 


삼자교회, 가정교회, 제3의 교회 신도 1억명

중국의 교회는 특성상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먼저 중국정부가 허락한 교회인 ‘삼자교회’, 중국인 스스로 자생해 만든 ‘가정교회’, 외국에서 신학 공부를 마친 사역자들이 목회하는 이른바 ‘제3의 교회’다. 삼자교회는 정부의 간섭이 심하다. 최근 중국 기독교 삼자애국운동위원회에서는 옥외 또는 무허가 예배의 참여를 금지시켰다. “국가에 대한 사랑은 종교에 대한 사랑과 배치되지 않고 기독교의 윤리는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바와도 여러 방면에서 일치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중국 정부는 베이징의 옥외예배에 참가하려던 가정교회 신도 수십 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 먼저 중국 정부의 통제 하에 있는 삼자교회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문화대혁명 때 기독교 말살 정책으로 많은 교회가 문을 닫았고 순교를 하신 분들도 있었죠. 이후 등소평은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이 하는 이야기를 많이 경청했습니다. 이때 화교와 리콴유 싱가포르 총리가 개방을 하려면 기독교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건의하자 등소평이 이를 수용한 것이죠. 막상 등소평의 개방정책으로 뚜껑을 열어보니 기독교인들이 많이 살아 있었습니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숨어서 믿는 기독교인들이 많았던 것이죠. 삼자교회는 140여년 전 중국에서 선교한 미국인 선교사 네비우스의 토착화 선교 전략인 삼자(자치, 자양, 자전) 원리에서 시작된 말입니다. 현재 중국 기독교는 이 세 가지에 묶여 있습니다. 당국이 기독교를 허용할 때부터 공산주의 체제 안에 넣어서 통제하도록 한 것입니다.

- 가정교회는 어떻습니까?

가정교회는 삼자교회가 생기기 전부터 있었습니다.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신학교도 있죠. 문화대혁명 시절 기독교인이 지하로 숨겨 버리며 생긴 것이 지하교회죠. 지하교회에서 가정교회라는 이름으로 바뀐 것이 2007년입니다. 2007년, 종교를 관리 감독하는 중국 국무원에서 지하교회 지도자 일곱 명이 삼자교회와 회의를 했습니다. 지하교회 대표들이 정부에게 7가지 조항을 요청했지만 정부 측에서는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죠. 그때 지하교회 지도자들끼리 ‘우리는 정부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제는 정부의 요구를 들을 차례다’라며 ‘지상으로 나왔다’는 뜻에서 ‘가정교회’라는 명칭으로 바꿨습니다.

- 중국의 교회수와 교인수는 얼마나 됩니까?

가정교회 교인이 8,500만명, 삼자교회가 1,500만명입니다. 이와 별도로 외국인 선교사가 세운 제3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 교회들은 교인수가 아직 많지는 않지만 외국에서 신학을 공부한 목사님들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 커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에서 공식적인 허용은 하고 있지 않지만 묵인하고 있기도 하구요. 천주교인도 500만이 있고 이를 모두 합하면 기독교인이 1억명 정도 됩니다. 정부에서 천주교를 허락했기 때문에 교회는 있지만 대신 로마교황청의 지도를 받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의 지도를 받는다고 합니다.

 

빈부격차 문제와 변화하는 중국인들 

- 최근 중국 내 빈부격차 문제가 부각되고 있습니다. 중국 인구의 4%에 해당하는 6천만 정도가 우리나라 국민의 소득수준을 갖는 상위계층이고 나머지 대다수인 10억 인민들은 아프리카 국가 수준의 소득으로 살고 있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이들의 시위가 1년에 20만 건 정도가 된다고도 하는데요. 실제 인민들의 삶은 어떻습니까. 

인민들 간의 빈부격차와 삶의 모습의 차이는 실로 엄청납니다. 향후 국가적 문제가 될 소지가 크지요. 빈번한 시위와 관련해서는 많이 목격하고 있습니다. 공장이나 아파트 부도로 인해 시위하는 경우도 봤고 그 중에는 매우 과격한 장면도 있었습니다. 또한 시위까지는 아니지만 일례로 비행기가 연착돼도 과거와는 대응이 다릅니다. 중국에서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살다 보니 눈에 들어오는 차이점인데 예전에는 중국인 특유의 ‘만만디 정신’으로 묵묵히 참았지만 요새 젊은 세대는 참지를 않습니다. 공산주의보다 자유로운 신공산주의를 접했기 때문에 세대 간에 갈등이 큽니다. 자식을 한 명만 낳게 하는 정책이나 농촌과 도시간의 빈부격차도 문제입니다.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젊은 부부들이 도시에서 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시골에 보내고 있습니다. 외동으로 태어난 데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점이 되면 얼마나 더 독선적인 리더가 될지 우려가 됩니다.

- 한족과 소수민족 간의 갈등도 향후 중국이 안고 있는 문제입니다.

한족은 대부분 잘 살고 소수민족은 오지에 살기 때문에 경제적, 문화적인 차이가 많이 납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중국인들의 인식이 바뀌고 민족 정체성이 커지면서 생긴 갈등이기도 하죠. 한족이라는 거대한 민족이 중국 전체를 컨트롤 하고 있기 때문에 소수민족에게는 보이지 않는 반감이 잠재합니다. 정부에서 소수민족이라 칭하게 되면 그만한 혜택을 줘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격이 되는 민족에만 소수민족이라는 호칭을 부여하고 있고 소수민족은 잘못된 사회 정책에 반대하는 등 반감을 드러내고 있죠.

- 현지에 계시면서 느끼신 중국이라는 나라는 어떻습니까?

상당한 잠재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아프리카와 동남아, 심지어는 소련까지 중국 인근의 국가는 중국 공산품을 공급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미국이 이슬람권 국가를 적대시할 때 중국에서는 이슬람 국가에 우호정책을 펴서 관계가 좋기도 하구요. 중국의 기독교를 세계 무대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중국이 자체적으로 나름의 신학을 가지고 세계 선교를 하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되면 많은 인력이 쏟아져 나올 텐데 이것을 중국이 담당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가 함께 도와줘야 합니다.

기독교 정신 없는 자본주의는 오만해질 것

- 미래의 중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력한 중앙정부의 지도 아래 아시아의 패권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내부 문제로 인해 분열의 길을 걷게 될 것인가하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선교사의 입장에서는 중국이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문명을 거치면서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설령 중국식 공산주의를 계속 하더라도 기독교로 걸러지게 되면 조금 더 건전해질 것입니다. 지금의 경제성장을 계속할 수 있다면 세계경제를 컨트롤 하는 나라도 될 수 있을 텐데 기독교 정신이 없다면 돈 밖에 모를 것이고 특히 아이를 한 명 밖에 못 낳기 때문에 자기 밖에 모르는 오만하고 위험한 나라가 되기 쉽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지원해서 중국이 건강한 국가가 될 수 있게 도와줘야 합니다. 동반자로서 함께 성장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중국 내 외국인 선교가 금지된 상황에서 유 선교사는 직업을 가지고 활동하는 ‘전문인 선교사’로 일해 왔다. 초반에는 문서사역과 제자훈련 정도만 했지만 미국인 회사 지사장이라는 위치를 활용해 사역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공장에 교회를 세우자 일이 끝난 후에도 예배를 드리고 새벽기도를 빠트리지 않는 등 성도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결국 공장교회는 11곳으로 늘어났고 세 명의 성도를 신학교에 보냈으며 찬양단을 조직해 절기 때마다 공연을 하기도 했다. 이 공로로 유 선교사는 한국의 예장 대신교단에서 주는 해외선교부문을 수상했다.

- 제약이 많으실 텐데 전문인 선교사로서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외국인으로서 중국 법을 준수해야 하지만 그 법 자체가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어려웠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제가 거래했던 공장에 교회를 세워 중국 사람이 전도할 수도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중국인끼리 복음을 전하는 것은 허용이 되니까요. 다행히 제가 미국인 회사 지사장으로 있었기 때문에 재량권이 있었습니다. 저는 목양이나 교회 방향을 지시해주는 역할을 해주었죠. 종교법에 저촉이 안 되는 사역을 찾아 복음을 전하려고 하다 보니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습니다.

때문에 자구책으로 장학금 재단, 양로원, 고아원 등 사회사업을 합니다. 저 같은 경우, 장학생들을 모아 수학여행도 시켜주면서 마음을 열고 다가가니 아이들도 저에게 마음을 열었습니다. 직접 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삶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보통 중국에 간 한국 사람은 술 담배 즐기고 여자 좋아한다는 인식이 있는데 저희 사역자들의 삶을 보니 다른 한국인들과 달라서 의구심과 더불어 호감을 갖는 것 같습니다. ‘외국인 지사장 정도 되면 오락이나 유흥 문화에 젖을 수 있었을 텐데?’하면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니 삶으로 전도하게 되는 것이죠.

- 중국 선교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한국의 선교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전략적인 부분이 조금 약한 편입니다. 특히 중국에 대한 정보력이 부족합니다. 땅도 넓은데다 소수 민족이 55개나 되니 그럴 만도 하지만요. 지역별로 문화가 다른데도 선교사들은 이에 대한 충분한 정보와 훈련 없이 나가기 때문에 효율적인 선교가 되기 어렵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교단이면서 선교사를 많이 파송하는 미국 남침례교단 같은 경우에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교사를 무조건 파송하는 것이 아니라 300가지가 넘는 항목을 검토, 체크한 후 부족한 것은 채워서 보낸다고 합니다. 한국 교회도 그런 시스템을 도입해야 합니다.

중국에 대한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

- 중국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별로 좋지 않습니다. 첫 번째 원인이 중국으로 유학 간 학생 중 일부 문제아들 때문입니다. 부모가 우리나라의 문제 있는 아이들을 전부 중국에 보내요. 팽개치듯이 보낸 아이들이 술 먹고 학교에서 행패를 부리면서 중국 사회에 충격을 줬습니다. 두 번째는 한국 기업이 어려워지자 야반도주를 하면서 중국에 피해를 줬습니다. 한국 사람도 손해를 본 것은 마찬가지지만 중국인도 봉급을 못 받는 상황이 되자 감정이 좋지 않게 됐습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그 감정이 확연히 드러났는데요, 쿠바와 한국의 야구 결승전 때 중국 사람들이 같은 아시아권에 이웃 나라인 한국을 응원하는 것이 아니라 쿠바를 응원했습니다. 술과 퇴폐 문화로 인해 이미지가 실추된 것도 있고 우리 민족이 조금 다혈질적인 면이 있어 좀 더 겸손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 중국을 통한 북한선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희는 수년 동안 공을 들여 북한의 지하교회 지도자 127명을 교육했습니다. 현재는 경비 때문에 못 하고 있지만 지금은 그 분들이 십일조를 보내옵니다. 북한 돈으로 30만원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8만원이니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분들 입장에서는 엄청난 것이지요. 이처럼 북한의 기독교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돈은 안 주되 먹고 입는 부분은 지원해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십자 쌀이 장마당에서 유통되고 있고 북한 주민들이 옛날 같지 않게 한국 잘 사는 것 다 알고 있습니다. 군인이 탈북한다는 것 자체가 체제가 막바지에 왔다는 신호입니다. 

인터뷰 /강시영 기자  ksiyeong@futurekorea.co.kr
정리·사진/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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