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에서 탈피해 자유주의 사학을 천명하자
민족주의에서 탈피해 자유주의 사학을 천명하자
  • 미래한국
  • 승인 2011.09.0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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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史) 교과서 문제의 해법 / 이 주 영 건국대 명예교수. 교과서포럼 고문

 
6개 출판사가 펴낸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韓國史)> 교과서들을 보면 대한민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단원에 북한사가 여기 저기 끼어들어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각기 유엔에 가입한 엄연한 독립국가들인데도 불구하고, 하나의 역사책에 한 국가인 것처럼 나란히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섞어찌개’식의 교과서가 나오게 된 것은 정부가 만든 ‘교육과정’과 ‘집필기준’ 때문이다. 그에 대한 반발로 나온 대안교과서들인 <한국현대사(기파랑출판사)>나 <한국현대사 이해(경덕출판사)>는 북한역사 부분을 따로 떼어 ‘부록’과 ‘보론’으로 다루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당장이라도 남북통일이 될 것처럼 흥분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민족주의적인 풍토가 강하다. 그러나 통일은 그렇게 쉽지 않을 것임이 현실이다. 우선  북한에는 ‘한민족’이 아닌 ‘태양 민족’, ‘김일성 민족’이 있을 뿐이므로, 통일의 대상도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지난날 우리는 오랫동안 일본의 지배 밑에 있으면서 독립을 갈망해 왔기 때문에 민족의 독립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민족주의의 명분이 절대로 옳다는 분위기 속에서 살게 됐다. 그 때문에 ‘민족주의 사관’이 역사학계에서 우세하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의 한국사 교과서들이 민족주의 사관을 토대로 쓰이게 된 것도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그러나 이제는 독립운동 당시의 낭만적이고 추상적인 민족주의로부터 벗어날 때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두 국가는 제각기 애국심을 가진 두 국민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대한민국 국가주의와 국민주의의 개념을 가지고 남북 문제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 논쟁, 민중-민주-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그러한 현실을 알게 하는 한 가지 본보기가 최근에 일어난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쟁이다. 논쟁이 시작된 것은 한국현대사학회의 자유주의적인 학자들이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란 단어 대신 대한민국 헌법에서 명시하고 있는 ‘자유민주적 질서’의 정신에 맞는 ‘자유민주주의’란 단어를 사용해 달라고 교과부에 건의했기 때문이다. 교과부가 그 건의를 타당한 것으로 판단하자 새로 제작될 교과서의 ‘교육과정’과 ‘집필기준’을 준비하고 있는 교수들과 교사들 대부분이 반대한 것이다.

해방 이후 남북한에서 민주주의란 말이 수없이 사용됐지만 그것이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민중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교도민주주의 등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분명치 않았다. 해방 직후에 북한에서는 주민의 반감을 고려해 공산주의를 민주주의로 바꾸어 부르고, 공산당도 복지정당 냄새를 풍기기 위해 영국인들의 용어인 노동당으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므로 이런 용어의 혼란을 벗어버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의 구체적 의미를 분명히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자유선거제도를 중심으로 해서 개인의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의미의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을 분명히 밝힐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1948년의 건국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서술해야

현행 <한국사> 교과서들을 보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 과정에 대해서는 아주 짧게 설명하고 있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어떤 과정을 거쳐 세워졌는지 그리고 그 성격은 어떤 것인지를 잘 알 수 없게 돼 있다. 그러면서도 임시정부와 그 활동 및 독립운동 전반에 대해서는 아주 길고 자세히 언급돼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대한민국이 1948년이 아닌 1919년 상해에서 세워졌다는 이른바 ‘1919년 건국설’은 아직 교과서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과서가 임시정부의 수립을 ‘대한제국에서 대한민국으로’라는 제목으로 설명함으로써 그것을 인정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고조선,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의 탄생에 대해서는 건국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대한민국의 탄생에 대해서는 건국이란 말 대신 정부수립으로 쓰고 있는 것이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소지를 갖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48년의 건국은 유엔의 결의에 의한 것이었고 따라서 총선거, 국회 구성, 헌법 제정, 정부수립의 4 단계를 거치도록 돼 있었다. 그러므로 정부수립은 그 과정을 완료한 마지막 단계이기 때문에 곧 건국과 같은 말이 된다. 그런데도 교과서가 유독 대한민국에 관해서는 건국이 아닌 정부수립을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정신에 맞는 ‘자유주의 사관’을 교과서에 반영해야

이처럼 건국문제에 대한 애매모호한 입장이 나타나게 된 데는 역사학계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책임이 크다. 그 한 가지 본보기가 노태우 민정당 대표의 6.29선언 후에 이루어진 1987년의 개정 헌법 전문(前文)이다. 1948년의 건국 당시 건국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이 기미독립운동의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해 세워진 것이라고 돼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1987년에 개정된 현행 헌법 전문에서는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해 세워진 것으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국가 정체성과 관련해서 상당히 위험스러운 변화이다. 왜냐하면 반공국가인 대한민국이 좌우합작적인 임시정부 법통을 계승했다는 것은 논리상 맞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좌우합작 국가로 생각할 수도 있게 된 대한민국은 공산주의자들을 포용하도록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한국사 교과서들의 근본적인 개편은 필자들을 포함한 제작 관련자들이 ‘자유민주적 질서’를 추구하는 대한민국과 그 국민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것을 국민교육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자세가 확고해질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대한민국은 한말 이후 위정척사파에 맞서 근대화를 추구했던 개화파 전통 위에서 세워진 나라인 동시에, 중국 중심의 대륙문명권에 속한 북한과는 달리 미국 중심의 해양문명권에 속한 새로운 종류의 나라임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민족주의 사학, 민중주의 사학을 대신할 ‘자유주의 사학’의 천명이 필요하다.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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