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기원
포퓰리즘의 기원
  • 미래한국
  • 승인 2011.09.14 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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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래 교수의 세설직론 / 김정래 편집위원·부산교대 교수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무상급식, 무상보육, 무상의료의 무상시리즈 3종 세트에다가 반값 등록금을 모두 포퓰리즘 행태라고 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포퓰리즘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잘 모르는 듯합니다. 먼저 포퓰리즘의 의미부터 확인하고 그 형성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포퓰리즘(populism)은 일반적으로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정의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 판단, 옳고 그름 등의 본래 취지와 목적을 외면하고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고 정책의 일관성과 실효를 망각하는 정치행태를 지칭합니다. 그리고 일반대중의 인기에 집중한다는 것은 대중의 요구(popular demand)를 면밀하게 검증하지 않고 추종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이 심사숙고의 결과로 선택한다는 ‘자유’의 의미가 무절제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방종’을 조장하게 돼 포퓰리즘은 ‘자유로운 선택을 가장한 방종을 조장하는 의사(擬似)민주주의의 한 형태’가 됩니다. 실제로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탄생과 함께 나타났습니다.

즉 포퓰리즘은 모든 결정을 주민이 직접 참여해 내린다는 직접민주주의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직접 참여가 그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포퓰리즘은 ‘과잉민주화’로 야기된 직접민주주의의 변형입니다. 

‘과잉 민주화’로 야기된 직접민주주의의 변형

포퓰리즘과 관련된 직접민주주의의 형태는 고대 희랍의 도시국가 민주주의, 루소의 일반의지에 따른 직접민주주의, 마르크스의 인민민주주의, 그리고 현대의 참여민주주의 네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고대 희랍의 도시국가 민주주의는 인류 역사상 민주주의의 기원이 되기도 하지만, 불행하게도 포퓰리즘의 원형을 제공합니다. 이러한 형태의 도시민주주의의 특징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안이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고, 이로 인해 나타난 폐해를 지적한 플라톤의 경고를 살펴 보겠습니다.

 플라톤

플라톤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아테네의 몰락을 보면서, 그 심층적인 원인으로 본 것이 바로 ‘과잉민주화’가 가져온 포퓰리즘입니다. 이 병폐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대중적 인기에 집중하고 대중적 요구에 무조건 부응하는 아테네 말기의 사회적 병리 현상이 나타납니다.

둘째, 아테네 초기 시민에게 동등하게 주어졌던 평등한 투표권과 참정권은 개인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기여도 등에 관계없이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형태로 변질된 그릇된 평등관이 나타납니다.

셋째, 고삐 풀린 욕망의 정치행태를 들 수 있습니다. 개인의 동등한 참여를 골자로 한 민주주의는 역시 개인의 심사숙고와 행위의 절제를 전제로 하지만, 후기 아테네에 이르러 개인은 절제와 시민적 덕목(civic virtue)을 경시하고 무절제와 방종을 종용하는 사회 병리현상을 드러내게 됐습니다.

넷째, 과도한 민주화는 엘리티즘을 부정해 다중(多衆)의 정치로 흘러가 사회의 지도자이자 전문가 집단인 엘리트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묵살하는 중우정치(衆愚政治)의 양태로 변질됐습니다.

그 다음으로 루소의 낭만주의에 근거한 직접민주주의는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의 폐해인 기존 제도와 권위의 부정이 근대 사상에서 재현된 것입니다. 루소의 낭만주의에 따르면 ‘사회’, ‘제도’와 같이 인위적인 것은 악의 대상이며 동시에 ‘사회적(social)’이라는 말은 ‘사악한(evil)’이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반대로 ‘자연적(natural)’이라는 말은 ‘좋은(good)’이라는 말과 동의어이며 이 맥락에서 루소에게 ‘자연 상태’는 선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엄밀하게 보면, 원시사회를 동경하는 ‘문명퇴행’과 다름이 없습니다.

기존 질서를 무시하고  대의기구 부정

여기서 포퓰리즘과 관련해 두 가지 논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 제도와 질서를 부정한 맥락에서 대의기구를 인위적인 것, 즉 도덕적으로 나쁜 것으로 보고, 직접민주주의와 추첨 방식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변형된 점입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을 선하게 태어난 존재로 보지만 사회의 물이 들어서 악한 존재로 변형되는 한, 개별 존재인 개인의 의지를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일반의지(general will)를 도입한 점입니다. 일반의지는 직접민주주의와 결합해 “어느 누구도 모든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는 평등관으로 발전하고, 이 생각은 다시 집합주의로 변질되면서 동시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으로 발전할 논거를 제공합니다.

직접참여라는 포퓰리즘적 요소의 잉태와 더불어 루소의 낭만주의 사상은 일반의지 이론이 문명을 부정하는 논거로 악용됩니다. 이른바 ‘문명파괴(iconoclasm)’를 조장하고 있습니다. 자연 상태를 도덕적으로 또는 절대적으로 선한 것으로 보는 관점은 학생인권조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학생들이 학교당국과 교사와 ‘사회계약’과 유사한 모종의 ‘계약’을 체결하는 존재로 부당하게 치환합니다.

 루소
학생은 ‘학교’라는 문명이 낳은 제도에 공부하러 온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의사를 직접 표명하고 모종의 계약을 통해 ‘자치’를 영위할 수 있는 존재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 논점은 다시 학교, 사회적 관습, 부모와 교사의 지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자기지배(self-rule)’라는 매력을 학생들에게 제공함으로써 포퓰리즘의 또 다른 기제를 제공합니다. ‘직접 참여’와 ‘의사표현 및 결사의 자유’는 좌파교육감들이 추진한 ‘학생인권조례’의 핵심적인 내용인 학생참여위원회가 그 경우입니다.

마르크스의 인민민주주의는 대중선동을 주무기로 하는 파괴적인 포퓰리즘 전형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개인이 구체적인 상황에서 향유하고 행사하는 ‘자유’의 의미가 ‘해방(liberation)’으로 부당하게 치환됐다는 점입니다.

그가 상정하는 진정한 자유는 자본가, 기업가들의 ‘착취’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해방’일 뿐입니다. 해방으로 표현되는 ‘자유’는 다름 아닌 가진 자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완수를 위해 반드시 요구되는 수단에 불과합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기존의 자본주의 제도와 질서를 전복해 ‘계급 없는 사회’를 실현함으로써 이룩됩니다. 선동 기제로서 ‘적개심’은 오늘날 좌파 운동권들이 즐겨 사용하는 ‘투쟁동력’에 해당하며, 그것이 선동 기제로 작동하는 한, 마르크스 사상이 포퓰리즘 요소를 생태적으로 안고 있다는 점을 입증합니다.

경제적 평등 추구해 증오심 일으켜

민주주의의 주 특징 중 하나인 ‘평등’은 마르크스의 사상에 이르러 경제적 평등으로 치환됩니다. 아테네의 민주주의나 루소의 사상적 맥락에서 강조된 참정권과 의사표현의 평등한 권리가 경제적 재화의 동등한 분배를 의미하는 ‘경제적 평등’에 대한 권리로 둔갑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평등은 언어상 평등의 실현처럼 보이지만 개인적 가치의 몰수를 통한 재화 및 생산수단의 공유, 즉 공산화라는 극약 처방을 수반합니다. 이는 곧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한 시장경제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인민민주주의가 내세우는 대중인기영합방식이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전복을 전제한다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경제적 평등’을 내세운 부자 때리기, 불평등에 대한 시기심 조장이라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전략이 무서운 결과를 의도하고 있습니다.

경제적 평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대중 선동에 곧잘 동원되는 것이 ‘사회정의관’이고, 이를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 ‘분배 정의’입니다. 분배 정의를 내세우는 데 동원되는 준거 또는 잣대가 ‘공과’와 ‘필요’입니다.

필요는 마르크스의 경구 ‘능력에 따른 부담과 필요에 따른 분배’에서 잘 알 수 있듯이, 노동자들의 필요에 따른 분배가 평등을 실현한다고 봅니다. 일은 능력에 맞춰 해야 하지만, 분배는 능력과 무관하게 노동자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정의로운 것으로 봅니다.

 

반면 ‘공과’는 개인이 능력과 노력에 따른 개인적 변인에 의존한 결과라는 의미가 아니라 생산을 하는 데 있어서, 또는 생산물에 투여한 단순한 시간의 측면에서 자본가, 전문가, 노동자 등 모든 계층이 똑 같은 기여를 했다고 보는 공과입니다.

극단적인 예로 허드렛일을 하는 단순노동자와 고부가가치의 일을 하는 전문가가 같은 시간의 노동에 투여한 것이라면, 그것은 똑 같은 기여로 보는 것입니다. 이 점은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인기영합을 도모하는 좋은 논거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노동관에 비춰 보면 개인이 지니는 장점이나 기여도 등을 총괄하는 개인적 가치(personal worth)는 실종되고 맙니다. 개인이 지니는 내재적 가치에 우선해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대우해야 한다(equal treatment)는 평등관이 심하게 왜곡됩니다.

또한 마르크스의 인민민주주의가 포퓰리즘의 백미를 이루는 것은 프롤레타리아에 의한 ‘민중의 지배’입니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인민민주주의에 의한 ‘민중의 지배’는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출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실제로 인민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의 이름’으로 공산당이나 국가사회주의에서 국가기구가 권력을 독점하고 전횡을 저지릅니다. ‘인민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무소불위의 권력은 형체를 확인할 수 없는 루소의 ‘일반의지’와 맥을 같이 합니다.

어떻게 보든 간에 ‘인민재판’을 공정한 재판이라든가 인민의 의사에 따른 민주주의 실현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르크스의 ‘인민의 지배’에 따른 변종된 형태의 포퓰리즘이 좌파교육감이 단행한 ‘체벌금지조치’입니다. 체벌은 여러 가지 면에서 폐지돼야 할 악폐라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그 방식에 있어서 체벌을 하는 교사를 단죄하는 형태가 ‘인민의 지배’를 흉내낸 ‘인민재판’과 유사합니다.

참여민주주의는 개인의 무한 권리를 주장하는 허구

끝으로, 현대의 참여민주주의(participatory democracy)는 앞서 소개한 마르크스의 인민민주주의와 현대사회의 가치다원주의의 두 가지 사조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민주주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전자로부터는 개인의 ‘직접 참여’의 가치를, 후자로부터는 모든 개인의 동등한 권리 존중이라는 가치를 이어받아 이를 통합한 유형입니다. 참여민주주의는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모든 개인의 동등한 권리를 강조하고 이에 따라 ‘권리’의 그릇된 확장과 남용을 막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개인의 동등한 권리를 강조한다는 특징은 고전적 자유주의 사상의 전통을 이어받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적 권리는 자유와 권리를 책임과 의무의 상관개념(correlatives)으로 보지만, 참여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상관개념으로 보지 않고 일종의 절대적 권리로 간주합니다. 이는 개인이 무한 권리를 향유하고 행사할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줘 결과적으로 전면 무상급식 주장과 같은 포퓰리즘에 빠지는 우(愚)를 범하고 있습니다.

둘째, 참여민주주의가 인민민주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은 ‘직접 참여’는 정부기관 및 권력기관 감시를 명분으로 한 ‘국민 참여’를 내세우게 됩니다. 참여를 내세우면서 각종 감시가 성행하고 합리화되는 폐단이 발생합니다. 좌파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논거가 이에 해당하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학생참여위원회’가 이에 해당합니다.

셋째, 다원주의 표방은 ‘관용’, ‘가치중립’, ‘중도노선’과 같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이것 자체가 포퓰리즘적 요소이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기제로 동원된다는 점입니다.
 즉 ‘다원성’으로 포장하면서 자유민주주의와는 양립할 수 없는 인민민주주의를 등장시킵니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국가기반과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합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언어의 조작으로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 ‘민주화’를 외치다가 나중에 가서 포퓰리즘적 선동을 하면서 ‘인민민주주의’로 은근히 치환해 버리는 경우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보호막인 반공(反共)을 강조하면 냉전수구논리로 몰아붙이면 됩니다. 그 다음에 ‘민주’, ‘인권’, ‘참여’, ‘공공성’, ‘보편적 복지’ 등의 기치를 내세우면서 용공(容共) 사상을 은밀하게 전파시킵니다. 그 의도하는 종말이 무엇인지 안다면, 참여민주주의를 내세워 선동하는 포퓰리즘의 정체가 무엇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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