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좌파는 정체성을 잃었다”
“대한민국 좌파는 정체성을 잃었다”
  • 미래한국
  • 승인 2011.11.2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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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인터뷰]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진보좌파 진영에 강태공 같은 인물이다. 그에게는 세력도 조직도 없다. 하지만 종북을 버리고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그리고 대한민국을 인정하자는 그의‘사회민주주의’노선은 대한민국 진보의 시대정신이 건너올 수 밖에 없는 강나루라는 생각이다.

오늘도 그는 거기에 앉아 바늘 없는 낚싯대를 드리운다.  그래서일까 주 대표에게 조급함이라든지 분노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최근에는 큰 아들에 이어 해병대를 제대한 둘째 아들을 어떻게 제압(?)할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다는 주 대표를 <미래한국>이 11월 14일 그의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났다.

- 사회민주주의자인 주 대표님이 미국 민주당을 좌파의 모델로 삼으시는 배경이 궁급합니다.
일단 사회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 같군요.사회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필요한데 가장 단순화시켜 말하자면‘반공좌파’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개념은 탁상공론에서 나오거나 전략적 개념으로 도출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경험과 세계사적 흐름에서 형성된 정체성이죠. 공산주의와는 형제였지만 그 형제가 분리돼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고 할까요. 처음에는 조금씩 간극이 벌어졌지만 나중에는 완전히 서로 적이 돼 버렸죠. 결국은‘민주주의’라는 문제로 귀결됐는데‘민주주의’냐‘독재’냐의 문제로 대립됐습니다.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치열한 투쟁과 갈등을 겪으며 분화됐고 어느 한사람의 힘으로 된 것도 아니죠. 내가 사회민주주의를‘반공좌파’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결과적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고통은 우파진영 내에서도 있었죠. 과거 파시즘이나 나치즘과 투쟁했던 우파들이 결국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을 정립하게 된 것입니다.

서구의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 이 두 진영은 과거 양차 세계대전에서 커다란 희생을 치르고 정립됐는데 이 두 개의 기둥이 튼튼하게 버티고 서 있으면 양쪽의 극단에 있는 공산주의나 파시즘, 때로는 녹색당과 같은 세력이 등장해도 커다란 흔들림이 없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돼야 한다는 의미죠.

사회민주주의는 한마디로 ‘반공좌파’

-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이해가 됩니다만, 그것이 어떻게 미국의 자유세계에서 가능할까요?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초기에 대중의 지지를 받기 어려웠고 그래서 영향력이 없었죠. 영국의 경우 자본주의 발전으로 인해 노동조합이 있었습니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이 노조였죠. 노조는 이념단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민주의자들이 노조에 제안을 한 것이죠. 그 결과 영국의 노동조합 자체가 하나의 정당이 됐습니다. 그것이 오늘 영국의 노동당입니다. 300만 조합원이 당원이 됐는데 이로써 영국에 노동당과 보수당이라는 양당체제가 들어섰죠. 미국의 경우 노동당과 자유당이 합쳐‘민주당’이 됐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미국의 사회민주주의 세력은 이 민주당 안에 존재한다고 볼 수 있지요. 미국 노총과 민주당의 관계는 매우 밀접해서 당의 지분 절반을 노동조합이 가지고 있습니다.

한미 FTA에 대해서 오바마 대통령이 재협상을 했던 배경에는 바로 이런 정치세력화된 노동조합이 사회민주주의의 정체성을 가지고 민주당에 포진해 있기 때문이죠. 물론 민주당에는 자유당 사람들도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델을 나는 한국의 진보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의 노동당과 자유당의 결합을 통해 미국의 민주당과 같은 건강한 정치세력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갖고 있는 것이죠.

- 노동당이라고 하면 한국에도 민주노동당이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민주주의와 다른 이념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민주노동당은 표면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걷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이 폭력이 아닌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죠.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전술적으로 민주화된 한국사회에 적응하면서 그 내면에는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도‘너희가 진정 원하는 게 뭐냐’고 물으면 그들도 딱히 대답하지 못합니다. 나에게 규정해 보라고 하면 ’민족 공산주의의 유산‘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민족주의적인, 다시 말해 동아시아적이면서 후진적인 공산주의, 그러니까 과거 독립운동할 때의 그런 공산주의가 있는 겁니다. 그런 이유로 소위 ’조선인민민주주의 공화국‘에 대한 동정심이 있죠. 과거에는 선망까지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이 없지만 역시 가난하고 망했어도 ’종갓집은 종갓집이다‘라는 존경과 연민이 남아 있는 것이죠. 그래서 ’언젠가는 내가 돈 벌어서 같이 살림 차려야지‘ 하는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진영에 깊이 들어가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자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죠.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사회민주주의를 거부합니다.

- 그래서 진보신당이 갈려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국민들 눈에는 초록이 동색인 것처럼 진보신당과 민노당이 구별되지 않을까요?

민노당의 내면은 공산민족주의

바로 그게 문제점이죠. 그들이 종북주의를 버리고 민노당에서 나왔으면 자신들의 노선과 가치를 분명하게 해야 하는데 지난 3년 동안의 터전을 다 잃었고 지금 다시 합당 논의를 하고 있어요. 그 이유에는 그들이 사회민주주의를 분명히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은 민주노총이라는 공통기반을 가지고 있죠. 동시에 사회민주주의자라는 것은 다시 말해 공산주의자와 투쟁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치열한 노선투쟁을 했어야 맞지 않습니까? 문제는 그들이 사회민주주의를 개량주의로 본다는 것이고 그러한 배경에는 그들 내부에 옛날 민중주의 즉 PD의 마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들 마음에는‘도대체 저 친구들은 뭐야?’하는 분명치 않은 느낌이 있는 거죠. 민주노총이라는 노동자 세력의 기반이 있고 거기에 많은 사람들이 민노당의 종북주의에 반대하고 있다면 그들과 투쟁을 통해 진보신당은 지지를 얻을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민노당에서 뛰쳐 나왔을 때 바로 3%라는 지지를 받지 않았나요?. 그런데 그냥 주저 앉고 말았죠. 모두들 철학자의 얼굴들을 하고 다니지만 말과 행동이 일치를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이론과 철학으로 무장돼 있는데 나는 이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공부를 하려면 좀 더 깊이 하라.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낭떠러지가 나올 것이고 할 수 없다면 떨어져라. 그러고 나면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사회민주주의다’라고 말이죠. 그들에게는 시장경제를 인정하고 자본주의를 인정하며 대한민국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처럼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 진보도 대한민국을 인정해야 한다는 말씀이 와 닿습니다. 그런데 최근 보수진영에‘국가보안법 폐지’논의를 요청한 것은 어떤 배경입니까?
보수와 진보 진영에 대해 조심스럽게 권고를 하자면 이미 체제 경쟁은 끝난 것이죠. 진보동맹에도 일부 빼고는 대부분 대한민국이라는 국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류입니다. 문제는 진보와 보수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주장이죠. 보수는 진보진영에‘왜 종북주의자들과 결별하지 못하느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진영 역시 보수 극단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의혹을 접지 못하는 것이죠.‘소수에 불과한 종북주의자들을 핑계로 반공 수구 꼴통의 모습을 버리지 못하는 것 아니냐’라고 비판하는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 양 극단의 문제

그래서 내가 국가보안법 문제를 들고 나왔죠. 건강한 보수와 극우를 가를 수 있는 기준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정한 자유민주진영이라면 체제 경쟁에서 끝난‘반공 이데을로기’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만일 보수진영에서 반공주의로 상징되는‘국가보안법’을 개정하거나 폐지하는 논의가 생기면 진보진영에서도 본격적으로 종북 비판과 철폐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서로‘너희들이 먼저 해 봐라’라는 게임으로 갑니다. 보수는‘너희들이 먼저 주사파들과 먼저 확실히 구분을 해라’라고 요구하는 것이죠.

지난 서울시장 재보선에서도 박원순 캠프 진영에 누가 봐도 종북이라고 할 수 있는 세력들이 다 끼어 있으니 의심하는 거 아니냐 이렇게 말합니다. 상대를 그렇게 몰아붙이면 편안해서 좋은 점은 있죠. 문제는 그러한 이념공세를 바탕으로 진보나 보수 모두 도덕적 우위까지 가지려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문제까지도 정당화 시키려 한다는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 거죠.

- 건강한 정치사회를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 진영 내 양 극단을 배제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만.
이념의 지형을 그려본다면 좌의 전체주의, 즉 공산주의와 우의 전체주의,즉 파시즘사이에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박세일 씨의 공동체자유주의 등은 파시즘이라기 보다는 자유민주주의 범위 안에 있다고 생각되는 거죠. 마찬가지로 좌파진영에도 전체주의자들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세력이죠.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좌파의 공산주의든 우파의 파시스트든 자신이‘그런 사람이다’라고 하는 자는 아무도 없다는 겁니다. 양쪽의 극단주의자들이 마치 쌀과 보리, 모래와 자갈처럼 섞여 있어요. 구별되면 양쪽 모두 힘들어지기 때문에 섞여 있는 거죠. 이러다 보니 보리밥도 못해먹고 쌀밥도 못해 먹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서 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와 같은 개념들이 확립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렇게 정립이 이뤄지면 사회민주주의 진영에서도 공산주의와 3대 세습을 추종하는 종북주의자들을 골라내고 추방할 수 있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보수진영 내에서도 자유민주주의와 우익 전체주의 간에 서로를 구별할 수 있는 논쟁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리트머스가 바로 국가보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한 과정을 통해 개인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집단도 생각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러한 것이 지금쯤은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죠.

풍요 속의 신세대 진보·보수로 구분할 수 없어

- 최근 불고 있는 안철수 신드롬도 그러한 문제로 보아야 할까요?
그렇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연장선에 있다고 보아야 하죠. 신세대 젊은이들이 진보, 보수로 나뉘어 싸우는 모습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겁니다.‘우리를 진보, 보수라는 틀에 끼워 넣지 마라’이런 생각이 젊은층들로 하여금 안철수 바람을 가져 온 것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중도’라는 개념은‘가운데’라는 의미보다는 진보와 보수를 긍정하면서도 때로는 거부하는 그러한 의미가 아닌가 싶군요.

문제는 이 신세대인들이 선진국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우리 세대는 후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지만 이들은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이죠. 그래서 후진국 사람들은 선진국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기성세대는 신세대를 가르칠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 그래서 진보든 보수든 거부당하고 있다는 것이죠. 신세대 그들에게 아무리 6·25가 어땠느니 70년대 가난이 어땠느니 이런 이야기 해봐야 그들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거죠.‘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지 않느냐’이런 대답이 돌아옵니다. 진보진영에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죠. 기성세대가 과거 민주화가 어땠느니 저땠느니 해봐야 돌아 오는 대답은‘민주화에 왜 목숨을 거느냐?’이런 의문입니다.

이런 세대들을 어떻게 낡은 보수와 진보가 이끌어 갈 수 있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이는 행복한 고민이죠. 그만큼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풍요롭게 된 까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는 과거의 진보, 보수 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재정립이 필요한 단계도 되지 않았나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 당연해야 하겠죠.

- 이제 전체적인 감이 오는군요. 마지막으로 보수가 아닌 진보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나는 늘 조봉암 선생을 이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의미를 이야기하죠. 당시 사회주의자들은 세계대전을 거치고 난 후 공산주의에 대한 미련을 깨끗이 접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와 인권, 언론의 자유 등이 인류 역사를 발전시켰다는 것을 확인했고 시장경제, 자본주의는 인류의 기본 속성이라는 것도 깨달았죠. 그래서 이들은 이러한 체제 내에서 인류의 평등을 계속 확산시켜 나가자고 정리했던 것입니다.

당시 조봉암에 대한 공산주의자들의 비난은 신랄했죠. 하지만 조봉암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가치를 얻었고 그러한 가치를 가지고 건국의 아버지 가운데 하나로 참여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저는 그러한 것들이 오늘 다시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죠. (인터뷰 /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사진 / 미래한국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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