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논쟁의 전략전술론 vs 홈그라운드론
보수논쟁의 전략전술론 vs 홈그라운드론
  • 미래한국
  • 승인 2012.01.16 16: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인노트] 편집인 김범수

 
최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당의 정강정책에서 ‘보수(保守)’라는 용어를 빼겠다고 하여 논란이 불거졌다. 겉으로 보면 비대위가 보수진영의 면상에 먼저 한방을 날렸고 이에 휘청거리던 보수진영이 한나라당내 반대세력과 일시적으로 힘을 합쳐 한방을 되돌려주면서 보수삭제 논란은 일단 사그라진 모양새다. 

만약 이번 싸움이 이념과 정책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노선투쟁이었다면 비록 한방 맞은 자리가 얼얼하긴 하지만 보수진영에서도 환영했을 것이다. 그 정도 배포는 있다. 지금까지 한나라당에는 당리당략적 밥그릇 싸움만 있었지 정책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정한 사상논쟁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논쟁도 결국 당내에선 정책대결이 아닌 기득권과 공천권을 둘러싼 파벌 내지 각개 생존경쟁에 그쳤다. 비대위의 보수노선 포기시도에 대해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건 닳고 닳은 원조 ‘소장파’ 들이었고 과거 하나같이 보수를 수구꼴통으로 매도하는 데 앞장섰던 이른바 ‘쇄신파’ 들이었다. 그러다 최근 ‘외부에서 굴러온 돌들’이 당을 개혁하고 쇄신한다고 하니 이들 수구 기득권세력이 갑자기 보수의 수호자로 변신해 특정 비대위원 사퇴론, 한나라당 해체론 등을 들고 나오며 발군의 밥그릇 싸움실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더구나 한나라당 비대위의 보수노선 포기시도가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 상황에서 내린 필승의 고육책(苦肉策)도 아니었다. 만약 보수가 젊은 유권자들이나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 없는 희귀상품이라는 이유로 내린 불가피한 전술적 결정이었다면 진행과정과 인사(人事)가 잘못됐다.

 이런 가정을 해본다. 만약 김상철 본지 발행인이나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와 같은 확고한 보수주의자들이 보수의 전술적 후퇴를 주장했더라면 어땠을까. 냉전이 한창이던 1972년 닉슨 미 대통령이 국내의 반대를 무마시키고 ‘붉은용’ 중국을 전격 방문해 핑퐁외교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가 골수 반공주의자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편 김종인 한나라당 비대위원은 평소 보수진보 구분의 망국론을 펼치며 여야를 넘나들던 인물로서, 이번에 보수삭제를 주장한 것도 한나라당은 물론 국가의 이념적 정체성이 불필요하다는 평소 소신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다. 

보수란 지상지고(至上至高), 영구불변(永久不變)의 절대적 이념이나 철학은 아니다. 우리가 21세기 현 시점에서 세계와 대한민국의 발전, 개인의 행복과 신앙의 영위를 위해 가장 적절하고 유효한 정치사회 사상이라고 믿고 실현하려는 가치가 보수주의이지, 보수라는 용어나 개념 자체가 수호의 대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 사회에서 아직 보수주의의 전통과 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해나 컨센서스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보수주의(conservatism)란 일반적으로 완고하고 권위주의적 성향을 가리키는 ‘보수적’인 것과 큰 차이가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양지만을 찾아다니는 무원칙, 무이념의 기득권세력도 아니다. 요즘의 ‘강남좌파’와 ‘달동네우파’란 용어가 말해주듯 보수(우파)가 소득에 따른 구분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다.

그런 면에서 ‘보수’가 아닌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으나 혼란스러울수록 기본과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진지(陣地)를 확고히 구축하고 나면 다양한 전략전술을 구사할 수 있지만, 홈그라운드가 없는 채 벌이는 모든 싸움은 망하는 길이다.  (미래한국)  트위터_@partykorea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