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이 실종된 사회, 그 뒤에 남은 ‘꿀꿀이 죽’ (19금)
개인이 실종된 사회, 그 뒤에 남은 ‘꿀꿀이 죽’ (19금)
  • 미래한국
  • 승인 2012.02.16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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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최신의 발명품이다. 인류는 개인으로 살기 전에 아주 오랫동안 떼로 살았다.”  

니체의 말이다. 요즘 가짜 진보 성향의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들은 개인이 무엇인지 알까?’라는 의문이 든다. 개인은 기적이다. 모든 맹렬한(hot), 혹은 진짜배기(authentic) 정치사상은 '나다운 존재' 즉 ‘개인’이 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 믿어진다고? 두가지 예만 들자. 하나는 20세기 중반 마르크시즘. 다른 하나는 20세기 후반 좌파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시즘에서는...

20세기 유럽 최고의 마르크시스트 철학자 루카치(Lukacs)는 "물신숭배(fetishism)와 자본이 지배하는 상품 사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개인의 주체성이 파괴된다"고 말한다. 이 사회 시스템에 대해 저항하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개인의 주체성 (나다움)이 회복된다고 한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마르크시스트 철학자 트릴링(Trilling)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는 현대사회가 "한 개인의 인간됨을 파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 때문에 진지함(sincerity, 바른생활 아저씨의 태도)과 진짜배기임(진솔함, authenticity)가 분리된다고 주장한다. 바른생활 아저씨는 내숭일 수 밖에 없다는 소리이다.

‘진국’, 진짜배기는 오히려 좀 양아치 같고, 쉬크하고, 쿨한, 약간 빼딱한 놈에게 존재한다는 소리이다. 허걱. 요즘 세상의 패션이 은근히 '바른생활 아저씨"를 조롱하고 깔보는 것에는 이런 심오한 철학적 관점이 있는 게다. 진지한 넘은 진짜일리 없고, 진짜인 넘은 진지할 수 없다----이 얼마나 비참하면서도 짜릿한 진실인가!

자, 요약해 보자. 마르크시즘은 이렇게 가르친다. 첫째,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물신숭배가 지배한다. 둘째, 물신숭배는 '나다움에 이르는 길'을 은폐하고 파괴한다. 셋째, 물신숭배가 지배하는 사회시스템(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오직 이를 통해서만 '나다움에 이른다'고 말한다.

좌파 포스트모더니즘

이건 좀 대책이 없다. 이 사조가 프랑스에서 맹위를 떨쳤던 이유는 사상 자체의 깊이 때문이 아니다. 하나는 프랑스 사람들의 배배꼬인 까탈스러운 열등감(French kinkiness), 또 하나는 뛰어난 문장력(style) 때문이었다. 나는 프랑스어를 못 하기 때문에 영어로 몇 권 봤는데, 문장이 정말 쥑인다. 들뢰즈의 '천의 고원' 첫문장이 이렇다. 

"Since each of us is several, two of us already makes a crowd" 우리 두 사람(들뢰즈와 가타리)은 각자 대여섯명의 사람이므로 우리 둘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군중(떼)이다. 

쥑인다. "정신분열에 걸린, 갈갈이 찢긴 자아를 가진 존재는 그 안에 이미 여러 인격이 내장되어 있지. 이런 미친 넘은 두 명만 모여도 이미 군중이야. 그래! 우리는 이런 미친 넘들이야. 꼽냐? 니가 우리 인생에 보태준 거 있어? 이 씨벌 넘아!"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나꼼수가 흉내내는 마인드가 바로 이것이다. 

한때 유럽 문명을 주도했지만, 스스로 창녀로 타락해서 나치에 나라를 봉헌했던 '노망난 제국' 프랑스의 지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다음에 들어선, 영미주도의 세게질서에 대해 극도의 열등감에 시달렸다. 이 열패감, 열등감이 이 대책없는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의 뿌리이다. 이 흉측한 심뽀와 프랑스적 세련됨, 명징한 문장, 샹송의 운율이 결합한 것이 바로 좌파 포스트모더니즘이다 - 아, 얼마나 매혹적인 칵테일인가! 

그래서 이들은 이렇게 가르친다. "진실? 조까! 진실은 존재하지 않아. 존재하더라도 알 길이 없어. 떼를 만들어 사회 시스템을 들이 받는 것! 떼를 만들어 촛불을 만드는 것! 그것 뿐이야! 그것이 인생의 의미야! 그것이 내가 '나다운 존재'가 되는 길이야!"

그래서 이들은 일체의 도덕을 거부한다. 마약, 근친상간, 범죄 등 사회의 금기를 뛰어넘는 행위-한계체험(limit experience)을 찬양한다. 
 
김일성 수령 전체주의

유자가 회수를 넘으면 탱자가 되듯이, 마르크시즘이 모스크바와 북경을 거치면 흉악한 수령전체주의가 된다. 이는 이미 마르크시즘이라 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나는 반공주의자가 아니다. 지구에서 공산당이 모두 망했는데 반공은 무슨 반공? 나는 그래서 '반전체주의자'이다. 그래서 나는 가짜진보 중 색깔이 좀 진한 인간들을 '빨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빨갱이는 진한 가짜진보에게 붙여주기에는 너무 명예스런 훈장이다. 진한 색깔 가짜진보는, 대단히 죄송한 말이지만, '전체주의 추종자'들이다.  

평양의 사정을 잘 알고, 평양과 연결된 세력의 영향력을 잘 알면서도 그 앞에 납작 업드려 비위 맞추는 가짜진보들은 그래서.....'전체주의 부역자'라고 부른다. 이건 친일부역보다 좀 심각하다. 친일이 '민족의식이 없는 출세주의자의 행태'였다면, 친북 가짜진보는 '영혼이 썩어문드러진 타락자의 행태'이다.

수령전체주의는 민족을 내세운다. 순혈의 배타적 민족성을 찬양한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민족됨' 속에서만 '나다운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성의 핵심은 민족됨에 있고, 민족됨의 핵심은 노동계급에 있고, 노동계급의 핵심은 당에 있고, 당의 핵심은 수령에 있다. 이게 수령뇌수론이다. 황장엽이 포장해 낸 주체사상의 핵심 명제이다. (이게 사상이라면, 우리집 개가 짖는 소리는 '너무너무너무 숭고한 사상'이 될 게다)

아,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수령은 영원히 죽지 않으며 백두 혈통을 통해 영생한다"는 노가리이다. 좌파 수령전체주의 중에 가족 승계가 이루어지고 있는 유일한 체제를 위한 설레발이다.  거덜난 나라(failed state)의 수령 전체주의 체제를 대대손손 상속하시니까, 김씨 가문의 영광인감요? 
 
잡탕 꿀꿀이 죽, 그리고 나꼼수

예민한 분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나다움이 파괴되는 원인'과 '나다움을 회복하기 위한 처방'이 제각각이다. 마르크스주의, 좌파 포스트모더니즘, 김일성 수령전체주의.....'나다움'에 대한 가르침이 서로 전혀 다르다. 

맹렬한 정치 사상이라면, 이렇게 전혀 다르면 철천지 원수가 되어야 마땅하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주의자는 급진무정부주의자(syndicalist)를 악마대하듯 대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쎄쎄쎄. 손에 손을 잡고 서로 너무들 사이좋게 지낸다. 가짜진보 빅텐트. 그 빅텐트 안에 뭐가 있는데? 공허함이 있다. 사상이 증발했다. '나다움'에 관한 화두 자체를 스스로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렸다. 나다움에 대한 사상 대신에 나꼼수의 욕설만 남았다.

"쫄지마 씨바. 가카 빅엿이나 드셔! 가카새끼 짬뽕 한 그릇 하시지! 옵빠! 가슴이 터지도록 젖꼭지 부풀려 인증샷 찍어 보내니까, x대가리 터지도록 발기해 보셈!"  

이런 상스런 '짝퉁 저항' '짝퉁 포스트모더니즘'을 우상숭배하는 진영이 스스로 '진보'란다. 집권을 눈앞에 두었다는 야당 대표가  이 진보적 '가카빅엿'을 감옥서 구해내기 위한 단체의 두목이란다. 

나다움(becoming oneself)이라는 화두 자체를 제거해 버린 진보. 당연히 현대의 자아-갈기갈기 분열된 자아라는 화두 역시 함께 제거해 버렸다. 왜냐? 나다움은 바로 '현대의 자아'를 성숙시키는 길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개인이 실종되어 버렸다. 오직 떼만 남아 있을 뿐이다. 떼의 천박함, 방종, 광기만 남아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떼를 이루어, 떼로 몰려다니고, 떼로 섹스하고, 떼로 주먹을 휘두르렴. 그리고 어느날 자아를 마주하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서로 물어뜯고 서로 잡아죽이렴...(미래한국)

     박성현 저술가 (http://www.bangm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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