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친일과 민족을 넘어서야 할 때”
“이제는 친일과 민족을 넘어서야 할 때”
  • 미래한국
  • 승인 2012.02.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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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인터뷰]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민족(民族)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더 없이 친근하고 편안한 이름이다. 민족공동체, 민족정기, 민족단결…이러한 민족은 우리에게 친일이라는 거대한 시지프스의 바위를 끊임없이 굴려, 오늘 우리의 선택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미래한국>이 근대 경제사를 연구하는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사장 이영훈 교수(서울대 경제학)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 민족공동체라는 말은 좌,우 모두에게 하나의 숙명 같은 이름으로 들립니다.민족 공동체란 무엇입니까?
학계가 지난 10년간 많은 진보를 이뤄 왔어요. 지금은 학계에 상식이 됐지만 민족이란 것은 20세기에 한국인들이 발견한 하나의 정치적 공동체 의식이에요. 19세기까지는 오늘날 민족에 상응하는 공동체는 존재하지 않았어요.

조선시대에도 공동체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아주 낮은 수준의 종족 의식이었어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를 한반도 주민집단이 가지고 있는 공동의 운명체라는 정치의식이라고 정의한다면 이 개념이 생겨난 것은 20세기 때부터 거든요. 민족이란 말 자체가 20세기에 생겨났고, 민족이라고 하는 상징 즉, 태극기와 기타 여러 가지 국가 관념 등이 개발된 것 또한 20세기의 특수한 역사적 경험이 만들어낸 공동체 의식이죠.

민족이라는 것은 이렇게 아주 가까운 시대에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매우 가변적이에요. 영원불변한 진리가 아니라는 거죠. 북한에서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나라와 상당히 달라요. 이미 95년에 개정된 헌법에서는 민족 자체를 김일성 민족으로 분류했죠. 최근 신문에서 재미 있는 기사를 봤는데 어느 사람이 중국을 여행하며 옥류관(중국 내 북한 냉면집)에 갔는데 옥류관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서울에도 냉면이 있습니까?”라고 묻기에 “같은 민족인데 당연히 있죠”했더니 종업원이 이러더랍니다.“모양만 같은 민족이지 속내는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죠.” 그래서 “아니 민족이 뭐가 다릅니까?” 했더니 종업원이 하는 말이 “북한은 자랑스러운 김일성 민족인데, 남한은 그런 정체성이 없죠!”하더랍니다.

그러니까 북한이 말하는 민족은 대한민국에서 말하고 있는 민족과 전혀 다른 개념이에요. 북한은 어느 나라 보다 강한 가족주의적 공동체의식이 뒷받침하고 있어요.이제 한국 내에 긍정적이고 통합적이고, 진보적인 역할을 해내는 민족적 개념의 시대는 지나갔어요.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매몰돼 있어 아쉽습니다. 우리는 민족으로부터 해방돼야 해요.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천부 권리의 주체로서 개별 인간을 역사의 기초 단위로 설정하는 자유주의 역사학으로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하죠. 세계를 통합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은 민족주의보다 상위의 보편적인 것입니다.

- 김대중 대통령이 민족을 키워드로 상당한 통치이론을 만들었다고 봅니다만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정치사상과 경제사상을 하나로 정의하기가 매우 애매해요. 조금은 독자적인 노선의 사상이죠. 그의 최초의 저서 <대중 경제론>은 김 대통령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경제사상이 기록돼 있는데 한마디로 말해서 혼합 경제체제론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어요.책의 내용은 부유층의 사치적 현상을 억제해 재정을 긴축하고 농업과 중소기업을 위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죠. 그런데도 석유화학과 중화학 공업은 국가가 직접 경영하는 국가자본주의 노선, 즉 내포적 공업화론의 경제 노선이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1987년에 나온 책을 보면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시장경제론자로 돌아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요. 다만 국가가 대자본을 불공평하게 재벌에게 쏟음으로 해서 공평한 기회를 억압하고 있다는 정도의 얘기를 하죠.김대중 대통령의 경제사상은 굉장히 유동적이에요. 나중에 60세가 넘어서 대통령을 세 차례, 네 차례 도전하는 과정에서는 시장경제 자유주의자로 변하는데 그런 중에도 시종일관 변하지 않는 것이 바로 민족경제론이에요.

민족경제를 가장 중요한 정치적 아젠다로 제기하면서 대중적 지지를 계속 확보하려고 했죠. 71년 대통령 선거 때부터 남북한 연합론과 통일문제를 제기하면서 까지 대중정치가로서의 대중적 지지를 확보하려고 해요. 이런 흐름이 6·15남북공동선언으로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강한 민족주의가 내포돼 있어요.

자유민주주의가 민족주의보다 상위 개념

- 민족경제론이라는 것이 실체가 있는 이론인가요?
민족경제론이 무엇인지는 당사자인 김대중 대통령도, 북한측 대표였던 김정일도 모르고 있었죠. 때문에 6·15공동선언을 발표는 했지만 더 이상 진전되지 않고 추진되지 않았죠. 실제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국가연합은 언제 오느냐며 기다렸어요. 그러나 그것은 애초에 실행될 수 없는 것이었죠.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상이한 체제를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했죠.

제가 보기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대중적인 정치 명망 속에서 자기 내부의 모순을 알고 있는 채 끝까지 갔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감성의 영역에 해당하는 민족적 문제를 가지고 통일에 접근하기 때문에 거창한 박수나 합의는 가능하지만 이성적인 정치 영역에서 구체성을 갖지 못했던 거에요. 한국인들은 민족의 이름으로 환상을 얘기하고 실제 정치에는 눈을 감고 있어요.

가능하지 않은데 대중의 표를 얻으려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많은 비용을 낳고 있는 거죠.한국인들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가진다면 북한 주민을 압제로부터 해방시키고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거죠. 여기에 더해서 민족주의 그 자체가 갖는 힘은 인정하고 대응하면서도 민족주의가 가지고 있는 마성적인 힘, 냉혹성을 경계해야 하는 거에요.

- 최근에는 경제 민주화라는 말이 공동체 논리로 제기되고 있습니다만
경제민주화는 1930년 대공황 이후 자유주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시작, 사회주의와 체제적인 대항을 하면서 조금씩 수정돼 나타나고 있는 개념이에요. 19세기 이전까지는 신체, 생명, 재산에 대한 권리 등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권리를 주장하고 있었다면, 대공황의 사회주의를 거친 19세기 이후의 권리는 없는 자가 있는 자에 대해 요구할 수 있는 적극적인 개념의 권리로 확산됐어요.

큰 흐름으로 보면 인류의 민주주의의 개념이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으로 봐야 하죠. 자유주의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는 소극적 권리의 자유가 베이스를 이루는 가운데 그것의 사회적 부작용을 치유하는 차원에서 적극적 권리로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 하고 있는 거에요. 한국 같은 경우에는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 개념이 희박해요. 그게 소위 사람들의 인상적인 정치철학으로 정착돼 있지 않습니다. 자유는 좋아도 자유주의는 싫다는 입장이죠.

대학 안에서도 공공연히 이런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강자에게 요구하는 경제적 민주주의의 권리는 자칫하면 자유주의 기본원리를 훼손할 수 있는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 균형적인 규율 능력이 얼마만큼 이 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돼 있느냐, 이것을 동시에 봐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입장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좌파의 친일문제는 사이비 문화권력

 
- <대한민국 이야기>라는 책을 쓰셨는데 특별한 동기가 있으셨나요?
이 책이 나온 지가 5년이 다 돼 가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고 영향을 주고 있어 감사합니다. 거기서 얘기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2가지인데, 첫째는 민족에 대한 개념이 20세기 특수한 역사 속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고, 둘째는 우리가 오늘날 향유하는 자유민주주의의 역사적 기원이 어디서 왔느냐 하는 존재론적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대한민국 지식인 계층과 대학 그리고 사회 어디에서도 민족성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안 던지고 있었다는 것을 큰 문제로 여겼어요. 많은 사람들은 수천 년 전부터 한반도에 단일한 민족이 존재해 왔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작된 신화죠. 사실은 한국 역사에서 민족이라는 집단의식이 생겨난 것은 일제하 식민지 시기에요.

일제의 억압을 받으며 소멸 위기에 처한 조선인들이 그들만의 정치적 운명공동체로서 새롭게 발견한 것인 민족이라는 집단의식이죠. 민족이란 것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고, 다른 모든 것이 그러하듯 성립과 발전, 좌절과 해체의 과정을 거쳐요. 따라서 식민지 시기에 발견된 민족의식이 해방 후 남과 북에서 지배적인 국가이념으로 발전해 왔고, 현재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세계화 흐름에 밀려 점차 쇠퇴한다는 것이 이 책의 전망이에요.

- 민족의 개념을 논하다 보니 과거 친일문제가 등장하는 것같습니다. 근대사의 입장에서 친일문제를 어떻게 봐야 할까요
좌파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권력이 친일문제입니다. 지난 60년간 좌파는 무슨 일만 있으면 우파를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거죠.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보수적인 이념만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친일파라는 거에요. 그러고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취지에서 지난 정부 시절 친일파를 조사하고 약 4,000명의 명단을 작성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해방 후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친일파가 지배한 역사가 아니에요.

게다가 50년대 60년대를 거치면서 새롭게 형성된 한국의 지도층은 구래의 양반세력이나 지주세력과 무관하게 새롭게 고등교육을 받아 성장한 상공업자 관료 전문가 계층으로 구성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파인사들은 친일문제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데, 여기에 대해 대한민국의 건국세력을 포함한 우파인사들은 수세적인 입장에 서 있어요.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뿌리가 흔들리게 되는 것이고, 결국 장기적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끝나게 되는 거죠.

많은 명망 있는 민족지도자들이 친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전쟁기에 일제에 의해 강요된 친일행위에 대해서는 당시의 어려웠던 환경을 감안해 너그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독립운동가를 체포하고 고문하고 탄압하는 과정에서 앞장섰던 악질적인 친일행위까지 용서할 수는 없죠.

일제시대에는 국민들이 식민지적 억압과 차별에 눌리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나 새로운 문화로 인해 뻗어나가는 양면적 모습을 가지게 됐죠. 과거 조선말의 양반과 지주에게 수탈됐던 구조가 와해되면서 이 당시 인구 증가도 많이 늘었지요.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0>이란 책을 보면 이 기간에 연평균 3.6% 정도 성장하고, 같은 기간 인구증가율은 연 1.3% 였어요.역사는 사실 그대로 해석해야 돼요. 자꾸 오도를 하면 안 되죠. 젊은 세대에게 불편한 느낌이 있을지 몰라도 진실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진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 자체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위축된 현 시점에서 좌파의 문화권력에 자꾸 휘둘려 나가는 것을 막아서는 거에요.

정치가들이 자유주의 이념 확산해야

- 올해 2012년은 매우 의미 있는 해라고 봅니다. 앞으로 10년을 바라보고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민족이라는 정치적 공동체의식이 갖는 허위성과 후진성을 국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고 국가 성장의 핵심인 자유이념과 가치를 보다 보편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자유이념을 정치적 신념으로 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양성해야 합니다. 현 정부와 이명박 대통령이 실패하는 이유는 여러 상황적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나름대로의 원칙이 없이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존재론적인 근거인 역사적 뿌리에 대한 확신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죠. 역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확신도 어렵죠. 현 정부가 자신들의 기능주의적인 능력으로 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큰 오산이에요. 만약 이번 총선과 대선에서 좌파에게 집권의 기회를 모두 내준다면 이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집요하게 북한과의 연합을 통해 국가적인 공작이 전개될 것이고 이에 따른 역사 왜곡도 굉장히 심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 정통성을 주장하기 어려워지고 오히려 정통성을 해체하는 움직임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기존의 정치가들은 이에 맞서는 자유주의 이념을 널리 확산시켜야 해요. 여기에서 실패하면 후가가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미래한국)
인터뷰 /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사진·정리 / 곽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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