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대 초반까지 식량난에 허덕이다 벗어난 중국의 경험은 북한에 좋은 교훈이 된다. 중국인이 기아에 헤맨 것은 모택동의 공산혁명으로 전통적 영세농이 집단농장으로 강제로 편성됐기 때문이었다. 인민의 배고픔 때문에 평소 가슴 아파하던 등소평이 하이에크(Hayek) 교수를 만나 중국민의 기아로부터의 해방 방안을 물었을 때 하이에크 교수의 처방은 농지의 사유화와 경작물의 사유화였다. 중국이 하이에크 교수의 충고를 그대로 받아들여 시행했더니 3년 만에 식량 부족과 기아 문제가 해결됐다고 한다.
김일성은 1차 7개년 계획을 시작한 직후인 1962년 북한 주민에게 “이 계획이 완료되면 쌀밥에 고깃국, 비단옷에 기와집이 돌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오늘에 이르도록 그 가운데 어느 하나 이루어지기는 커녕 수백만의 주민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고 수십만 명의 주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벌판을 헤매고 있다.
북한 식량 부족의 근본적 원인은 사유재산권과 선택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이다. 농민이 생산을 증대시키려면 동기부여가 돼야 하는데 북한의 사회주의경제는 이러한 인센티브를 부인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1954년 북한은 토지개혁을 실시하면서 개인 소유의 토지를 몰수해 모두 국가 소유로 만들었다. 생산된 농산물 또한 공산당국이 모두 가져감에 따라 북한 주민들은 열심히 일해서 생산량을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그 결과 점차 전체 농산물 생산량이 감소해 북한은 만성적인 식량 부족에 허덕이게 됐다.
북한의 식량난은 잘못된 정치제도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인민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지만 실제 북한 인민들의 의사에 따른 민주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없다. 북한 지도자는 자신의 뜻에 따라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고 있어 인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식량이 아닌 핵무기 개발 등에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식량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사유재산제도이다. 북한이 기아로부터 벗어나는 길, 아니 빈곤으로부터 해방되는 길은 식량 지원을 받는 것보다 사유재산제도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거래를 허용하는 시장경제제도를 도입하는 것임을 확실히 인지해 우리의 대북정책이 추진돼야 한다. 또한 북한 주민들의 진정한 의사가 당국이 정책을 결정하는 데 반영되도록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가 도입되는 것이다.
<자유기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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