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답을 찾아 서초 문화예술도시 가꾼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 서초 문화예술도시 가꾼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3.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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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가 뛴다] 진익철 서초구청장

 
진익철 서초구청장을 만나 지난해 여름 우면산 사태 얘기를 꺼내자 “전국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됐죠. 워낙 욕을 많이 먹어서…”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2011년 여름, 100년 빈도의 폭우에 우면산 토사가 밀려 내려와 아파트를 덮치는 화면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그 사태가 났을 때 진 구청장은 사방사업은 국가사업인지라 책임 소재가 서울시에 있다는 걸 알았지만 쏟아지는 비난을 고스란히 감내했다.

“8월 24일에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예정돼 있었고, 내 책임 네 책임 따지면 더 욕을 먹을 상황이었죠. 우선은 사태 수습이 급했고, 복구를 하려면 지원을 많이 받아야 하는데 떠넘기기를 해서 이득 될 게 없잖아요.”

진 구청장은 가장 먼저 수도방위사령부 박남수 사령관에게 연락해 군인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 다음에 오세훈 시장에게 전화했다. 발 빠르게 복구에 나섰고, 서울시에 책임이 있다는 게 알려지자 주민소환까지 거론될 정도로 험악했던 여론은 금방 가라앉았다.

30년 서울시 행정 경험이 우면산 사태 복구 원동력

 
진 구청장이 엄청난 사태 앞에서 먼저 해야 할 일과 나중 할 일을 구별하면서 흔들리지 않은 것은 30년 공직생활을 통해 익힌 행정 경험 덕분이다.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이래 서울시에서 법무, 문화, 공보, 기획, 재정, 환경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거쳤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 조순 시장님을 두 달 동안 수행했습니다. 당시 완벽하게 수습하는 걸 지켜본 경험을 우면산 복구에 활용하고 있죠.”

진 구청장은 30년 동안 주로 인사권자를 보좌하면서 행정을 익혔다. 사무관으로 출발해 처음 맡은 일이 염보현 서울시장 수행비서관이었다.

“염 시장님은 4년 3개월간 한강개발을 했고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 시설 준비를 했습니다. 김용래 시장님은 천재 중의 천재셨죠. 시장님들을 보좌하면서 배운 도시행정과 현안 돌파법을 서초구에서 일하며 적용하고 있습니다.”

시장들을 보필하면서 배운 진리는 ‘현장에 가면 답이 있다’는 것이다. 진 구청장의 명함에는 휴대전화번호와 QR코드가 박혀 있다. 고위공직자나 CEO들 가운데 명함에 휴대전화번호를 명기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이는 구청장 취임 때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이다. 2009년에 공직에서 퇴임한 그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 당선돼 취임할 때 7가지 약속을 했다.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구민들과 소통하겠다. 일자리 만드는 구청장이 되겠다. 아이를 낳으면 책임지고 키우는 보육구청장이 되겠다. 어르신을 다독이는 효도구청장이 되겠다. 어린이와 여성이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하겠다. 도시계획을 시원하게 해결하겠다. 문화공간을 늘이고 다양한 문화를 즐기도록 하겠다.’

한 주민이 진 구청장의 취임사를 붓글씨로 써서 액자에 담아 선물하자 그대로 해달라는 뜻으로 알고 구청장실 앞에 걸어놓았다. 실제로 그는 취임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민들과 문자와 카카오톡으로 교류하고 있으며 시급한 건이 있을 때 바로 현장으로 달려간다. 기업체, 각종 단체 등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청년 취업에 힘을 쏟고 있다. 강남역 도로를 금연거리로 선포하면서 계약직 30명에게 흡연자 단속을 시키는 등 일자리 늘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보육구청장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실시한 것이 ‘아기 돌보미 서비스’다. 대부분 셋째 자녀부터 지원을 하는 것과 달리 서초구는 두 자녀 가정도 지원한다. 소득에 관계없이 생후 15개월까지 두 자녀는 월 40시간, 세 자녀 이상은 월 60시간의 돌보미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아기의 조부모가 훈련받아 돌보미로 나서도 금전적 지원을 한다. 서초구는 2010년 ‘아이 낳기 좋은 세상 운동경진대회’에서 출산율 1위를 차지해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과거 하루 평균 10명 미만이었던 서초구의 출산율이 12명으로 늘어났다.

결혼중매상담코너도 운영해 젊은 남녀의 결혼을 독려하고 있다. 학교폭력과 범죄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구청 1층에 ‘25시 관제센터’를 설치했다. 서초경찰서와 방배경찰서의 방범 CCTV를 16명이 24시간 감시하고 있다.

빠른 행정, 투명행정

 
올해 61세인 진익철 구청장은 태플릿PC와 노트북을 사용하고 인터넷에 올라오는 주민들의 건의사항을 직접 체크한다. ‘빠른 행정, 투명행정’을 펼치기 위해 취임 직후 간부 60여명에게 스마트폰을 나눠주고 ‘스마트폰·스마트패드 활용 경진대회’를 개최했다. 취임하자마자 구청 대문과 담장을 없앤 자리에 나무를 심고 벤치를 놓았으며 구청장실 옆 국장실 자리를 ‘직소민원실’로 바꾸었다. 구청장이 솔선한 덕분에 서초구는 2010년과 2011년 연달아 한국인터넷소통협회로부터 ‘대한민국 인터넷 소통대상’을 수상했다.

현장에 빨리 달려가라는 의미에서 지난해 전 직원에게 5만5000원 짜리 업무용 운동화도 지급했다. 취임 5개월간 외부평가에서 받은 7억2400만원의 포상금 중 일부로 산 것이다.

진 구청장은 구청장실과 접견실 뿐만 아니라 청사 요소요소에 CCTV를 설치해 부패 소지를 없앴다. 청탁을 위해 봉투를 내미는 사람에게 진 구청장이 손가락으로 CCTV를 가리키면 깜짝 놀라 다시 집어넣는다. 30년 공직생활에서 익힌 솜씨로 각종 재무제표와 공사계약서의 허점을 직감적으로 찾아내는 진 구청장은 공사비를 부풀려 계약해주고 부당이득을 챙긴 직원을 찾아내 고발하고 중징계했다. 토착비리를 없애기 위해 모든 수의계약을 전자공개입찰로 전환했으며 같은 부서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공무원을 모두 전보조치했다.

“CCTV를 설치한다고 투명행정이 되는 건 아닙니다. 정책과정의 정보를 간부들에게 오픈해서 공유합니다. 여러 부서가 연관돼 있는 사업은 관계자들을 한 자리에서 모아 빨리 결론을 냅니다. 1조원을 투입해 사업을 하려는데 인가가 빨리 안 나면 그 이자만 해도 얼맙니까. 주무관부터 시작해 6단계의 결재과정을 거치다가 시간을 놓치면 망할 수밖에 없죠. 결국 사업이 돈 많은 사람에게 넘어가버립니다. 관료주의 폐해를 막기 위해 빠른 의사결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다양한 행정으로 눈에 띄는 행보를 한 서초구는 출범 1년 동안 ‘17개 분야 모범사례 선정’이라는 실적을 올렸다. 참신한 행정을 이어가자 일간지는 물론 여성잡지, 시사잡지까지 서초구를 자주 조명하고 있다.

세계적인 실리콘밸리 조성

진익철 구청장은 소프트웨어 바꾸는 일을 부지런히 진행하는 가운데 ‘초일류 도시계획 혁신, 글로벌 교육도시 창조, 문화예술특구 조성, 선진형 복지도시 육성’ 이라는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다. 눈에 띄는 사업은 우면 2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내에 조성되고 있는 우면 최첨단 R&D단지 육성사업이다.

“LG연구소, 현대차와 기아차 본사 연구소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곳입니다. 임대아파트 옆으로 5만9822㎡(1만8096평)의 부지가 있는데 4층까지만 건축허가가 나게 돼 있더군요. 그걸 1년 반 동안 청와대와 국토해양부를 뛰어다녀 10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용적률을 완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실리콘밸리를 돌아보고 스탠퍼드대 학장을 만나 민간과 기업과 대학이 어떻게 돕는지 알아봤습니다. 확신이 섰기 때문에 10층으로 바꾼 겁니다. 2014년에 건물을 준공해 삼성전자의 디자인 연구단지가 들어서면 석·박사 1만 명 이상이 근무하는 세계적인 실리콘밸리가 됩니다.”

방배지역 재건축도 10층으로 허가 난 것을 16~33층까지 지을 수 있도록 승인을 다시 받았다.
“서초구는 도심 중의 도심인데, 건물 층수 제한을 두면 개발이 어렵습니다. 공무원 생활을 하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을 둘러보며 연구를 했습니다. 특히 미국 맨해튼이 한정된 공간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필요한 건물은 높이 짓되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찾는 일에도 열심이다. 2013년에 정보사가 이전하면 166,649㎡(5만411평)의 부지가 생기는데 땅주인들이 그 땅에 아파트 등을 짓기 전에 문화예술시설이 들어설 수 있도록 구 예산으로 도시계획 용역을 의뢰했다. 그 안이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되면 땅주인들은 그 계획에 맞춰 건축해야 한다.

진 구청장은 궁극적으로 서초구를 문화예술도시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금년 상반기 중으로 예술의전당 앞을 문화예술특구로 지정할 계획입니다. 지식경제부의 지정을 받으면 규제를 대폭 완화할 수 있습니다. 남부순환도로로 인해 섬처럼 고립돼 있는 예술의전당을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일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원래 예술의전당 설계를 할 때 지하2층은 차도, 지하1층은 상가와 문화예술시설, 지상은 광장으로 조성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홍수 때는 차도가 저류조 역할을 하게 된다. 남부터미널역에서 예술의전당까지 무빙워크를 설치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설계자 김석철 교수를 직접 만나 자세한 논의를 했으나 3000억원 이상 드는 대규모 공사여서 서초구청 만의 힘으로는 어렵다고 한다. 현재 공사비 3분의2를 내겠다는 민간단체가 나서서 사업이 구체화되려는 시점이다. 서울시, 문화관광부, 예술의전당이 힘을 합쳐 꼭 추진되도록 하겠다는 각오이다.

단기성과 보다 비전 중시

무엇보다도 상습침수지역인 서초구를 안전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빗물 저류터널 만드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서초지역은 상습침수지역입니다. 한강 홍수통제 높이가 16m인데 강남역 진흥아파트는 해발 12m밖에 안 돼요. 비가 많이 오면 강남 일대의 쓰레기가 서초구로 다 몰려옵니다. 엄청난 빗물을 한강까지 운반할 대심도 저류터널을 만들어 비가 올 때 물을 담아놨다가 비가 그치면 한강으로 퍼내야 서초가 상습침수지역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연재해로부터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야죠.”

진 구청장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 차들을 분산시키면 교통 흐름이 좋아진다는 구상도 내놓았다. 호남 쪽으로 가는 차는 우면산 터널을 지나 서해고속도로로 연결하면 훨씬 빨라지지만, 사업비가 너무 많이 들어 시행에 어려움이 있다. 진 구청장은 서초구를 발전시킬 장기 구상으로 늘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선출직 공무원들은 표 관리를 위해 단기 성과를 내려는 것과 반대행보이다.

“비전 있는 리더가 필요합니다. 눈앞에 있는 표만 봐서는 발전이 안 됩니다. 구민들이 보는 눈은 정확합니다. 일시적으로 속아서 표를 주는 것으로 착각하지만 대한민국 국민들 수준은 G7에 들 정도입니다. 정면 돌파 해야지요.”

그의 이런 생각은 관선시장과 민선시장을 보필하면서 느낀 바를 적절히 배합하려는 것에서 비롯됐다.

“관선시장은 인사권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전시행정을 합니다. 민선시장은 표를 얻어야 하니 포퓰리즘에 휩쓸리기 쉽죠. 전시행정과 포퓰리즘에 휩쓸리지 않고 철저하게 현장을 중시하며 달린 시장님들이 결국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 분들을 본받고 싶습니다.”

서울시에서 세금이 두 번째로 많이 걷히던 서초구의 사정이 2007년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한 지방세법 개정 이래로 많이 달라졌다.

“세입의 절반은 구청세입으로 편성하지만 나머지 50%는 서울시에서 모아 N분의 1로 나눠 25개 구에 배분합니다. 서초구는 예전보다 세입이 700억 원 정도 감소해 세액 순위 2위에서 18위로 떨어졌습니다. 예산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야죠.”

박원순 시장으로 바뀌면서 여러 변화가 있지만 할 말은 하고 건의할 건 건의하면서 일을 진행해나가는 중이다. 테니스로 건강관리를 한다는 진 시장은 매일 다시 태어난다는 각오로 일하고 있다.

“하루를 일 년처럼, 일 년을 하루처럼 생각하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진익철 구청장은 기자 일행을 배웅을 하면서 서초구청 곳곳에 걸린 그림을 소개했다. 현대미술관 지하에 있던 유명화가의 그림을 6개월에 10만원씩 주고 빌려 전시하는 것이다. 종교를 묻는 질문에 “서초교”라고 답하는 진익철 구청장에게서 ‘서초구 사랑’이 진하게 풍겨나왔다. (미래한국)
글 / 이근미 편집위원 www.rootlee.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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