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하기 쉬운 나라, 기업하기 힘든 나라
정치하기 쉬운 나라, 기업하기 힘든 나라
  • 미래한국
  • 승인 2012.03.22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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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광 편집위원
한국외대 경제학부 교수·前 보건복지부 장관

재벌과 대기업이 동네북이 된 지는 이미 오래이나 작년에 공정사회 친서민 공생발전과 관련해 몰매를 맞은 데 이어 총선 대선을 앞두고 대기업 비난이 도를 넘고 있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이고 상당수 전문가들도 대기업 재벌 때리기에 모두가 의기투합하는 것 같다.

재벌과 대기업 활동의 모든 측면이 성토의 대상이다. 제품시장이 독과점시장이다, 자금을 독차지한다, 문어발식 확장을 한다, 온갖 특혜를 누린다, 정경유착을 한다, 소유가 집중돼 있다, 경영이 투명하지 못하다,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한다 등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일자리 창출을 하지 않는 것, 양극화를 야기하는 것, 재래시장을 짓밟는 것, 중소기업을 후려치며 동반성장을 하지 않는 것 등 우리 사회 만악(萬惡)이 기업인 특히 대기업, 재벌 관련 기업인의 탓이란다.

재벌기업에 대해 쏟아지는 수많은 비판에 대해 우리는 두 가지를 짚어보아야 한다. 첫째는 비판의 내용이 각기 논리적으로 맞고 사실과 부합하며 정부정책이 문제해결에 적정하느냐는 것이고, 둘째는 재벌기업이 야기시킨다고 주장되는 각종 문제의 근원적 원인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기업에 문제가 전혀 없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수많은 비판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며 정부와 정치권이 내세우는 정책으로는 자신들이 지적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오히려 문제를 개악시킬 뿐이다.

잘못하는 집단의 잘하는 집단 호통치기

기업인은 고객인 소비자가 외면하면 하루아침에 망한다. 소비자가 자신이 지불하는 가격과 그 대가로 받는 서비스를 언제나 저울질하기에 기업가는 싼 가격에 최선의 서비스 제공에 심혈을 기울이며 소비자가 어떤 횡포를 부려도 언제나 미소로서 대한다. 기업인은 항시 경쟁 속에서 체력이 단련된다. 오늘날과 같이 국경 없는 범지구화 시대의 거센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기업인들은 참으로 처절하게 투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살아남는 기업은 대단한 저력을 갖고 있으나 그 저력도 언제 사라질지 두려움 속에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포춘 500의 세계 최고 기업들도 40년 정도면 명멸한다고 한다. 기업의 세계는 냉엄해 기술, 자금, 판매, 인사 등 어느 한 구석이라도 허점이 있으면 부도 도산이라는 처절한 결과로 귀착된다.

정치인과 관료는 어떤가? 물론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선거를 치르고 당선 후에도 주민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관료가 되기 위해서는 경쟁률이 매우 높은 시험도 치르며 승진을 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을 한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정치인과 관료는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보스나 상급자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일상의 생활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예산과 결정권의 크기에 따라 관련자들의 섬김을 받는다. 큰 잘못을 해도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퇴출이 되지 않는다. 상당수의 정치인과 관료 특히 고위직의 경우는 퇴직 후에도 높은 보수의 자리를 꿰차고 잘 나간다.

관료와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정책과 서비스는 불량품인 경우가 부지기수다. 매일 봇물처럼 쏟아 내는 정책의 대부분도 함량미달의 불량품이거나 재탕 삼탕한 것이어서 국민들이 외면하는 것이고 국가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하는 것들이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들의 실수와 실책의 결과인 불량품을 깨닫기보다는 많은 경우 잘하는 기업인들을 닦달하거나 속죄양으로 삼아 사태를 개선하기는 커녕 더 악화시키고 있다.

정치인과 관료는 국민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으로 국민의 대리인 즉 머슴이다. 머슴인 정치인과 관료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이해를 떠나 주인인 국민만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머슴에 불과한 관료와 정치인이 주인인 기업인 위에 군림하려는 데 있다. 많은 경우 머슴이 주인의 의사에 반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긴다.

관료와 정치인은 자신들은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서 여건의 변화에 민첩하게 변화하는 기업인을 호통 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우리 사회의 개혁 대상 제1호가 관료와 정치인이라는 사실은 공감대가 형성된 지 오래이다. 국가 경쟁력 또는 성장 잠재력과 관련한 국내외 기관들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정치인 또는 관료 그리고 그들이 만든 제도와 정책이 문제인 것으로 나타나는 반면, 기업과 기업인들은 언제나 상당한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잘못하는 집단이 잘하는 집단을 호통 치는 코미디가 연출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인과 관료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사용돼야지 가계나 기업의 일상적 생활과 의사결정에 개입하는 것이 힘의 용도가 아니다. 힘의 사용이 제대로 되려면 그 과정에 견제와 경쟁이 있으면 된다. 정치인과 관료가 제공하는 서비스의 대부분은 독점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이기에 애초부터 경쟁이 없으며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상호 견제하면 오류가 상당 수준 줄어들고 불량품이 퇴출될 수 있을 터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세 부가 한 통속으로 놀기에 견제는 애시 당초 기대하기 힘들다. 견제하고 감독하라고 설치한 기관들도 한 통속으로 유착해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거나 불량품 생산을 방조하고 있다. 수많은 위원회에서 혈세를 들여 작성되는 것은 탁상놀음의 로드맵이고 말의 유희와 성찬(盛饌)이 대부분이다.

기업을 길들이는 것은 정부가 아닌 소비자

대기업과 재벌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그들이 영위하는 산업의 수익성과 그들이 봉사하는 전 세계 고객들의 성원에 힘입어 그렇게 된 것이다. 오늘날과 같이 된 것이 정부가 주는 특혜 때문이라면 중소기업이 더 잘돼 있어야 한다.

재벌과 대기업이 오늘의 위치에 오른 것은 고객들에게 경쟁자들보다 더 나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더 싼 가격에 공급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외면하면 하루아침에 망하는 것이 기업이다. 정치가와 관료도 기업이 고객에게 봉사하듯 국민과 기업인에게 봉사해야 한다. 고객이 외면하는 기업은 퇴출로 직결되는데도 국민이 외면하는 정치가와 관료는 계속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문제없는 기업, 잘하는 기업을 문제시하고 시비한다.

제발 남을 탓하지 말고 자기 일을 잘 하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뒤진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상대적으로 정치가와 관료와 관련된 것이지 대기업이나 재벌과 관련된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나 재벌이 무결(無缺)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정치가나 관료가 작금에 질책하는 부분을 두고는 재벌과 대기업이 크게 잘못한 것이 없다. 정치가와 관료는 좋은 정책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고 기업은 전 세계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싸고 질 좋은 상품으로 봉사하는 봉사의 경쟁을 벌이자.

경제현상을 놓고 선한 것과 악한 것을 구분하려는 것만큼 경제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없다. 재벌경제가 따로 없으며 중산층 경제도 따로 존재하지 않는데, 재벌경제는 나쁘고 중산층 경제는 좋다는 식으로 자신들이 인식하고 이러한 몰이해를 남에게 강요하는 무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우리는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가질 수 없다.

영어에 길들이기(taming)라는 표현이 있다. 필자가 아는 한 길들이기의 대상은 정부 자체(taming the government)이다. 정부가 기업을 길들이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는 개념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사항이다. 기업을 길들이는 것은 소비자의 선호이고 기업 간의 경쟁이지 결코 정부의 몫이 아니다.
<한국경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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