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이면 늦으리’ 100만 다문화 시대의 길
‘내일이면 늦으리’ 100만 다문화 시대의 길
  • 미래한국
  • 승인 2012.05.03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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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9대 총선에 새로운 이정표를 짚어 본다면 국회의원 가운데 최초의 탈북민 (조명철·전 통일교육원 원장)과 다문화 이주민(이자스민·필리핀 귀화) 비례대표 의원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 탄생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당선자에 대한 국민적 시각은 크게 엇갈렸다. 탈북민을 대표한 조명철 당선자가 대체로 국민들의 지지를 받았던 반면에 다문화 이주민을 대표한 이자스민 당선자는 심한 인신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이자스민 씨는 당선이 확정된 후 자녀에게 인터넷을 보지 못하게 했다고 고백했다. 그녀에 대한 막말과 욕설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필리핀 출신으로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1998년 귀화, 15년째 한국인으로 살고 있는 이 당선자는 SNS와 좌파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 “학력위조에, 이 나라에 매매혼으로 팔려온 X이 뭘 안다고 정치를 해” “불법 체류자가 판을 치게 됐다” “대한민국의 등골을 빼먹는 다문화의 실체가 드러났다”는 등의 인신공격성 비난에 시달렸다. 이 당선자는 큰 충격에 빠져 한동안 칩거했으나 이내 의연함을 되찾았다. 그녀는  “이 일로 상처도 받았지만 대한민국의 포용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증명할 수 있는 기회였다”라는 말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했다.
 
국민 86%‘토종이 좋아’…험난한 다문화
 
2010년 국내 결혼이민자는 18만1671명이었으나 지난해에는 21만1458명으로 늘어났다. 다문화가정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다문화에 대한 한국인의 생각은 상당히 부정적이다. 18일 여성가족부의 국제비교지표(EBS, ESS)를 활용한 조사에서 국민들의 86.5%가 한국인의 순수 혈통을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한국인 조상을 가지는 것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였다. 아울러 문화공존에도 부정적이었다. 국제비교지표를 활용한 조사에서 '문화공존'에 찬성한다는 비율은 유럽 18개국(74%)에 비해 한국은 36%로 현저히 낮았다.
 
반면에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의 73.4%가 자신을 ‘한국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다른 조사결과가 있다. 18일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전국 16개 시·도의 초등학교 4학년 청소년 중 다문화가족 청소년 총 15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였다.
 
한국에서 태어난 다문화 청소년들은 스스로를 한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그들을 한국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 다문화정책 앞에 대단한 험로가 있음을 말해준다.
 
유럽 역시 다문화정책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지난해 2월 뮌헨 안보회의에서 “영국은 그동안 서구적 가치를 거부하는 민족적 혹은 종교적 소수 집단에 대해 ‘불접촉 관용’정책을 써왔지만 이런 정책은 실패했다”며 “지금은 과거 실패한 정책의 페이지를 뒤로 넘길 때”라고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독일 기민당의 한 집회에서 “(이민자 정착과 관련) 우리가 단순히 같이 살면서 서로 행복하면 된다는 식의 다문화적 접근을 취해왔지만 이것은 실패했다. 완전히 실패했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지난해 집시 수천 명을 추방했고 최근엔 이민자 수용 쿼터를 연 20만명에서 18만명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사르코지 대통령이 다문화정책의 실패를 인정한 것에는 2002년 대선에서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극우파 ‘국민전선’이 제3당으로서 입지를 굳힌 배경도 작용했다. 이제 독일에는 인종차별로 악명 높은 신나치 세력이 5만명 이상 활동하고 있고 유럽연합(EU) 14개국과 노르웨이, 스위스 등 유럽 16개국에서도 다문화와 이주민 정책에 반대하는 극우주의자들이 정치 세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불황과 종교갈등으로 유럽 다문화 실패
 
이러한 유럽의 다문화정책의 실패에는 경제적 요인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펴낸 보고서를 통해 유럽의 경제상황 악화가 저소득 계층에서 자국민과 이주민들간에 일자리 경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복지혜택에 대한 쟁탈전도 치열하다.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드 니콜라 아담스미스재단 이사장은 지난 해 10월 자유기업원의 초청으로 방한한 세미나에서 “이탈리아는 공산당과의 타협 과정에서 복지가 가난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대됐다”며 “이민자들이 몰려들면서 이들과 복지 수혜로 마찰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경제적 문제로 발생하는 다문화에 대한 혐오는 유럽에서 종교 갈등의 옷마저 입고 있다. 그것은 유럽 이민자들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라는 점과 그동안 유럽식 다문화정책이 한마디로 기독교가 이슬람을 포용하는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프랑스 내 무슬림 시민들이 같이 살고 그들의 종교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은 프랑스식 이슬람이어야지 프랑스 내 이슬람이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다문화주의 실패의 대상이 자국 내 무슬림임을 밝혔다. 캐머런 총리도 영국 내 무슬림 청년들을 중심으로 자생적 테러리스트가 나오고 있다며 이렇게 된 데는 이들에게 영국 가치들을 심어주지 않고 방치한 다문화주의 때문이라고 언급, 자국 내 무슬림이 다문화주의 실패의 대상임을 분명히 했다.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적극적인 복지정책 확대로 무슬림을 보듬었고 예산을 투입해서까지 언어를 가르쳐주고 일자리도 만들어줬다. 프랑스와 독일은 상대적으로 이민자들이 본국의 문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동화정책에 초점을 맞췄지만 포용하려는 의지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이러한 점에 비춰 볼 때 우리 사회가 생각보다 종교나 인종문제에 대해 유럽보다 너그럽다는 점은 향후 다문화정책에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외국인이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경향은 프랑스, 영국 등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우리가 낮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지난 달 GH코리아가 19~74세 일반 국민 25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가 다른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39.4%로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낮았다. 
 
특히 ‘외국인 혐오증’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가운데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나면 범죄율이 올라간다는 비율도 35.5%로 다른 유럽 국가들(프랑스 49.2%, 영국 38.6%, 독일 53.1%)에 비해 낮게 조사됐다. 이러한 환경이라면 다문화정책을 적극 시행할 경우 실패한 나라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실기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그래서 나온다.
 
다문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최근 급격히 늘어난 외국인으로 인해 한국은 이제‘다문화’라는 용어는 낯설고 새로운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여 사회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2007년 7월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CERD)에서는 ‘한국이 이제 다문화사회라는 점을 정부 차원에서 받아들이고 이에 맞춰 교육,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힌 바도 있다. 현재 한국사회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및 3D 업종에 대한 노동 기피 등의 이유로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계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국제결혼 역시 늘어나는 추세이다. 2010년 현재 이주노동자·결혼이민자를 비롯해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수는 전체 인구의 약 2%에 해당하는 116만2171명에 달하며 이는 2005년에 비해 30%나 증가한 결과이다. 국내체류 유형 또한 이주노동자, 외국국적 동포, 결혼이민자, 탈북민, 난민, 여행객 등으로 다양화되고 있다.
 
특히 이주 노동자의 경우 1990년대를 기점으로 국내에 유입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한국경제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로 우리 사회 내부의 한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최근 조선족 중국교포들의 범죄에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대부분의 조선족 교포들은 열악한 근로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생산의 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들 조선족 교포들이 중소기업의 인력난을 그나마 해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중소기업들의 애타는 수요를 보여주는 통계가 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올해 상반기 외국인 근로자 배정에 따른 중소기업들의 인력난 완화 여부 및 요구사항 등을 파악하기 위해 올 상반기 신규 외국인 근로자를 신청한 7300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업체의 85%가 ‘외국인근로자를 원하는 만큼 배정받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응답업체의 평균 부족 인원은 업체당 2.9명이었다. 원하는 인력을 배정받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업체가 최초 입국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신청할 수 있는 인원(쿼터)의 제한’이 61.1%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는 점은 아직도 중소기업 생산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임을 말해준다.
 
중소기업중앙회 측은 “이는 올해부터 정부가 재입국자 재고용제도를 신설하면서 고용한도 인원을 지난해보다 1명에서 3명까지 축소시킨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실제 응답업체의 88.3%가 올해 신규 외국인 노동자 고용한도가 줄어드는 바람에 업체의 인력난이 심화됐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정부와 여·야 할 것 없이 입만 열면 ‘중소기업 육성’을 외치지만 정작 중소기업정책은 모순적이다. 전체 중소기업 가운데 10%도 안 되는 대기업 하청기업은 이익공유제로 보호하자면서 나머지 90% 중소기업들이 겪는 인력난에는 거꾸로 외국인 근로자 축소정책으로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
 
다문화정책, 이민제도와 입법으로 풀어야
 
다문화와 관련해서 이주노동자 문제 외에 농촌을 중심으로 했던 여성결혼이민자들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들은 농촌을 벗어나 도시로 확대되고 있는 실정이며 이에 그들 가정 및 그 2세들로 이루어지는 다문화가정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이 한국에서 제2의 삶을 이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다문화적 이해 수준은 그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특히 미래 세대인 대학생들이 다문화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다는 현실은 이 분야가 정부와 시민사회 모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로 제기된다. 왜냐하면 다문화정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지적되는 것이 바로 2중언어 정책과 자녀의 멘토링인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정부의 예산 투입에 한계가 있어 시민들의 자원봉사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일 김황식 총리가 문화가족정책위원회를 주재하고 다문화는 세계화시대의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외국인 혐오가 더 깊어지지 않도록 종합적인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 점은 늦은 감이 있지만 적절한 인식이었다. 이날 정부가 확정한 다문화가족 지원정책의 경우 다문화가족 자녀 10명 이상이 다니는 초중고등학교를 중심으로 글로벌 선도학교를 올해 150곳으로 확대해 한국어교육과 교과학습 지도를 중점 지원하기로 했던 점도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문제는 향후 1000억원이 투자될 다문화정책이 총괄 사령탑 없이 각 부처별로, 또 지자체별로 중구난방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서 정부 내 이민청이나 다문화청이 필요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있다. 김성회 한국다문화센터 사무총장은 “정부 다문화정책의 일관성과 장기 효율성을 위해 정책을 주도할 기관과 함께 다문화에 관한 기본 법률이 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제도적 정비가 그 어느 때보다 요청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다문화정책의 가장 성공적인 국가는 역시 미국이다. 미국의 경우 19세기 초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건너온 약 2000만명의 이민 인구가 미국의 동부와 중서부의 광공업지대에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했다.
 
또 현재 IT와 바이오 등 첨단기술을 주도하는 계층 역시 중국, 인도에서 들어온 고급 두뇌들이다. 실리콘 밸리의 경우 창업의 절반 이상이 이민자 창업이며 이들은 2005년에 이미 45만개의 일자리와 520억 달러의 매출을 이뤄내기도 했다. 이에 미국은 2025년까지 연간 70만~80만의 이민자가 계속 유입돼 2050년까지 인구는 계속 늘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다문화와 이주 노동자 문제 역시 결국은 이민정책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는 점을 말해 주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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