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흔들리는 무상보육, 울고 싶은 아이들
[이슈분석] 흔들리는 무상보육, 울고 싶은 아이들
  • 미래한국
  • 승인 2012.05.14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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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보육에 대한 각계의 반응이 싸늘하다. 지자체는 정부의 일방적인 예산 편성으로 재정 고갈을 겪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혜택의 당사자인 학부모들도 보육의 질적 하락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복지 확대 분위기의 틈을 노린 일부 악덕 원장까지 등장해 학부모들의 염려를 가중시키고 있다. 보육교사들 또한 적절한 보상 없이 일의 강도만 더하고 있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반적으로 여야가 총선 대비용 포퓰리즘 정책을 대책 없이 남발했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가장 큰 피해를 입는 당사자는 말 못하는 아이들이다. <미래한국>은 5월 가정의 달을 앞두고 지난 4월말 어린이교육 현장을 방문해 실태를 파악했다.

정신과 상담 받는 아이들

“최근 소아정신과에 가는 아이들의 연령이 낮아졌습니다. 아기가 기저귀를 갈고 싶어도 말도 못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정신적인 문제로 이어지는 거죠.”
서울의 모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보육교사 K씨는 무상보육 실시 후 소아정신과에 상담을 받으러 가는 아이들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엄마와의 애착관계가 중요한 0~2세 유아들에게는 필요에 따라 즉각적으로 돌봐 주는 손길이 절실한데 어린이집의 여건상 유아들 한 명 한 명을 제때 봐주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 어린이집에서는 0~2세 유아의 경우, 교사 한 명당 세 명에서 다섯 명까지 돌볼 수 있게 돼 있다. 여기에 0~2세 영유아 무상보육이 확대되면서 가정 주부까지 아이를 종일 맡기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어린이집에 맡겨야 지원비가 나오니 안 맡기면 손해라는 학부모들의 공짜심리가 발동한 결과다.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의 몫이다. K씨에 따르면 3세 이상의 아이들 중에서도 최근 이유 없이 소리를 지르거나 할퀴는 등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는 유아들이 늘어났다고 한다. 치료법은 간단했다. 평소보다 집으로 빨리 돌려보냈더니 저절로 회복됐다고 한다. 이어 K씨는 “이러한 아이들이 자라서 청소년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라며 “왕따, 개인주의, 일진 등이 무상보육의 부작용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일부 학부모들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감안해 무상보육 실시 이후 일부러 아이들을 빨리 데려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집에 대한 수요는 전반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를 악용하는 어린이집이 줄줄이 발생하면서 보육의 질적 저하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보육의 질적 수준 하락

늘어난 수요에도 불구하고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으로서는 무상보육을 통해 이득을 보는 점이 거의 없다. 정상적인 시설과 편의를 갖추기 위해 정부 예산이 고스란히 보육비용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추가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아이들에게 투자되는 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 이를 노린 일부 악덕 유치원에서는 부실한 식단을 내놓다 적발되기도 했다. 물가상승을 이유로 급식비를 올린 뒤 식재료 예산을 줄인 것이다.

또한 각종 추가비용을 덧붙여 무상보육 지원금만큼 원비를 인상한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줄줄이 발각되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가 복지의 양적 확대에만 치중해 질적인 부분까지 신경 쓰지 못한 결과다.
보육의 질적 수준 하락은 먹는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보육교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검증되지 않은 교사들이 무작위로 양성되고 있다. 현재 군단위 지역 등 농촌지역의 어린이집에서는 보육교사가 부족해 유아를 받지 못하는 상태다. 이에 단기 속성으로 양성된 교사가 보육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 이들이 취업하는 어린이집은 대개 지방 혹은 강북지역이다.

서울, 그중에서도 강남에서는 어린이집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4년제 이상의 학력을 가진 보육교사 위주로 뽑고 있다. 교육의 빈부 격차가 줄어들기는 커녕 더욱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식교육을 받은 교사 A가 자격이 없는 B에게 이름만 빌려주는 불법취업 알선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교사 A는 검사 기간에만 나와 B의 자리를 대신하면 된다.

저임금 노동에 지친 교사들

저임금으로 고강도의 노동을 감당해온 보육교사들에게 무상보육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리는 격’이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평균 임금은 2010년 기준으로 126만1000원이다.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아이들 돌보기와 간식준비, 낮잠 재우기, 독서지도로 뛰어다니다 아이들이 돌아간 후에는 청소와 일지 작성, 다음날 수업 준비까지 마무리해야 한다. 8시가 넘어서 퇴근하는 날이 부지기수라 매일 12시간 가깝게 일하는 셈이다.

무상보육 이후에는 근무 시간과 함께 돌봐야 하는 아이들의 숫자까지 늘어났다. 이에 대한 보상은 제로에 가깝다. 복지부에서는 지난 2월 “만 5세 누리과정을 담당하는 보육교사에게 월 30만 원씩의 수당을 다음 달부터 지원한다”고 밝혔지만 실제 노동 강도에 따른 적절한 대우가 아니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또한 5세 보육교사에게만 혜택을 주는 정부의 정책에 0~4세의 교사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0~4세의 교사들은 자신들의 임금은 3년째 동결돼 있다며 항의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나마 0~5세 보육교사에게 지급되는 ‘보육환경개선비’ 5만 원도 교사에게 직접 주는 것이 아니라 원장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에 전달 여부가 불분명하다.

지자체 반발

정부의 무분별한 예산정책은 교사들에 이어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을 일으켰다. 전국 시·도지사들은 지난 19일 합의하에 무상보육 추가 지방재정 부담분을 추경예산에 편성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결정해 버린 사안 때문에 부족한 재정으로 절반을 감당해 왔지만 그나마 곧 고갈될 지경이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연말 지방예산 부담이 최대 9000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난 2월부터 전국 시·도지사들이 국비지원책을 요구했고 정부도 ‘지방재정 태스크포스’를 구성했지만 효과가 없었다. 애초에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규모를 잘 알고 있음에도 선거 민심만을 염두에 둔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반발은 앞으로 진행될 대선을 앞두고 남발되는 복지정책을 감당할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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