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민주화인가 규제화인가?
경제 민주화인가 규제화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6.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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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대 국회가 개원과 동시에‘경제 민주화’홍수에 빠졌다. 지난 5월 30일 여야가 발의하려는 경제민주화 법안의 가짓수도 문제지만 내용도 천차만별이다. 민주당은 최저임금을 평균 임금의 50%까지 올리는 법안을 준비 중이고, 한나라당은 이에 뒤질세라 비정규직의 임금, 상여금, 복지, 후생에서 정규직과 차별할 경우 10배로 보상처벌하는 법안을 준비 중에 있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과 정의도 여야간, 정파간에 중구난방이어서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경제를 민주화하자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는 형국이다. 다만 크게 공통점으로 나타나는 점을 정리하자면 ▲경제력 집중 완화 ▲동반성장 ▲고용차별 금지로 요약된다. 이러한 3가지 영역에서 새누리당, 통합민주당, 통합진보당, 선진통일당 간에 스펙트럼과 강도에 차이가 있고 대선 후보들간에도 차이가 크다.

 

경제민주화, 그러나 왜곡된 사실

정치권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의 근거는 헌법 119조 2항이다. 흔히‘경제 민주화 조항’이라고 불리는 이 내용은‘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문제는 이 조항이 바로 앞에 있는 1항의 자유경제원칙과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 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며 시장자유원칙을 천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해석을 놓고 학자들의 의견은 우선이 갈린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는 경제민주화의 배경을 이렇게 말한다.

“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요즘 내세우는 슬로건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상위 1%가 점유한 부와 소득을 나머지 99%에게 재분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지지를 확대하기 위해 소득분배의 양극화가 빚어낸 국민적 분노에 호소하려는 전략이겠죠.”

실제로 민주통합당의 강령?정책의 전문에서는‘ 99% 국민을 위한 정당을 지향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득의 양극화가 그렇게 우리 사회에 심각한 문제라는 것인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소득 양극화 뿐만이 아니라 대개의 경제민주화의 배경이라고 하는 팩트들이 실제와 다르다는 점이다. 우선, 정치권은 여야할 것없이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말 그런가?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거시정책연구실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양극화에 대한 논의 중 가장 흔히 얘기되는 것이 ‘소득의 양극화’죠. 최근 한 언론은 "지난해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지니계수(소득 분배의 불균등성을 나타내는 수치)가 2010년에 비해 더 악화돼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보도했는데, 실제로는 지니계수는 2010년 0.310에서 지난해 0.311로 불과 0.001 상승했을 뿐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2인 이상 비농가의 지니계수는 전혀 상승하지 않았어요.“

변양규 실장의 설명에 의하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상승했던 양극화 정도는 2010년을 기준으로 완화되고 있는 중이다. 그 정도는 오히려 국제 경기가 좋았던 노무현 정권 시절보다 오히려 개선된 수치다. 더구나 지난해 0.001이 상승한 요인도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이들의 소득 개선이 다른 가구에 비해 양호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경제민주화의 배경으로 이야기하는 소득 양극화는 좌파진영에서 주장하는, 그리고 여,야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양상과는 다르다.

판단 기준이 없는‘경제력 집중’

전문가들은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으로 제시되는‘경제력 집중’도 주장과 사실과 차이가 있다는 주장이다. 경제력 집중의 개념은 일반집중, 복합집중(다각화 정도), 시장집중, 소유집중 또는 지배권 집중 등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 정치권에서 문제 삼는 경제력 집중은 소수 대기업군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말하는‘일반집중’이다.

다시 말해 소수 재벌 대기업들이 국민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인데 흔히 GDP 대비 이들 기업의 매출액을 비교한다. 최근 진보진영의 한 경제연구소가 “2011년 30대 재벌의 총자산은 1460조5000억원이며 이는 2011년 국내총생산(GDP) 1079조7656억원보다 26.1% 많다”라며 “2011년 매출액은 1134조원으로, 2011년 국내총생산의 95.2%에 달했다”고 발표한 것이 여야를 막론하고 경제민주화 필요성의 금과옥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비교법은 코미디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교수(전 자유기업원 원장)는 “한나라의 GDP를 기준으로 기업들의 자산이나 매출을 비교해서 경제 집중도를 산출하는 것은 마치 한 사람의 키를 다른 사람의 몸무게와 비교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한다.

설령 그런 비교를 받아들인다고 해도 이들 30대 대기업들의 매출은 대개 수출액이고 그 수출액의 상당한 부분이 해외 현지에서 발생한 점이라는 사실로부터 이들 기업매출을 로컬 프레임(Local frame)인 GDP(국내총생산)와 비교해 일반경제력 집중의 기준으로 제시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김정호 교수는 “일반경제 집중도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상위기업들의 부가가치총액을 국내 GDP와 비교해 봐야 알 수 있으나 현재 그러한 통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만 간접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조사방법으로 기업패권가설이 있다. 이 주장은 기업들이 경제적 자원을 가지고 자기들의 확대 재생산을 하기 위해서 정경유착을 하고 문화적으로는 언론을 통해서, 사회적으로 광고매체를 통해서 자기들 이익을 확대하려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갈수록 경제 집중도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패권가설이다. 이 가설은 1980년대 미국에서 한때 남아 있다가 통계적으로 부정됐으며 우리나라의 경우 1997년 IMF 이후로 기업패권가설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 한국경제연구원을 통해 검증된 바 있다.

경제민주화에 관련된 주장이 ‘공정한 시장경제’를 만들자는 취지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항상 등장하는 이슈가 대기업.중소기업간의 상생이다. 하지만 어떤 상생방법이 가장 좋은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당사자간에 합의될 문제이지 자세한 형편을 모르는 제3자인 정부나 시민단체가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이와 함께 제기되는 문제가 ‘실효성’이다.

즉 대기업.중소기업간에 초과이익 공유나 성과 공유가 실제로 부의 재분배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실제로 국내 대기업으로부터 성과 인센티브를 받았던 대부분의 중소기업은 그 성과를 근로자 임금인상이나 보너스, 주주 배당으로 분배하기 보다는 시설 재투자에 쓰는 것을 선호한다는 조사보고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개인들에게 돌아가는 부의 재분배는 기대할 수 없다. 경제민주화의 목적이 실종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북구 유럽은 소득의 재분배가 기업과 같은 법인이 아니라 개인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책을 만든다고 김경문 덕성여대 교수는 주장한다. 우리 방식의 동반성장제도는 개인의 소득 재분배와 거리가 먼 제도라는 이야기다.

대기업 축소가 아니라 중소기업 확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대기업.중소기업간의 상생은 필요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국내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이익률 차이는 사실 지난 10년간 꾸준히 좁혀져 왔다. 한국경제연구원을 비롯 여러 통계에 의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의 이익률 차이는 2001년 15.2%포인트에서 2010년 3.7%포인트로 좁혀져왔다.

문제는 수출과 내수 중소기업간의 양극화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글로벌 시장이 확대되면서 주요 부품을 해외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따라서 정부가 국내 중소기업들의 부품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한 투자와 인프라, 기술, 교육에 투자한다면 이 중소기업들과 글로벌 국내기업간에 진정한 상생의 고리를 만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으로써 국내 중소기업들의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중산층 소득 증가로 연결한다는 전략을 마련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여기에 한미 FTA는 부품산업 육성에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대기업.중소기업의 윈윈전략이야말로 진정한 동반성장의 모델이라는 점은 불행히도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가려져 있다.

경제 포퓰리즘은 독재정권보다 위험하다. 보이지 않는 위험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포퓰리즘의 가장 최악은 다수의 중소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을 규제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런 주장들은 그야말로 통찰이 부족한 지성의 소치다. 분모(중소기업)에 비해 분자(대기업)가 크다면 분자인 대기업을 축소할 것이 아니라 분모인 중소기업을 크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한 경제학자의 지적은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우리 경우 규제를 통해 기존 대기업의 규모와 범위를 줄이려 하기보다는 중소기업들이 더 많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한국의 기업분포는 小過(중소기업 과밀), 中弱(중견기업 취약), 大稀(대기업 희소)라는 표현이 있다. 한국 대기업의 비중은 1%, 독일은 4%, 독일은 5%대다. 중견기업의 비중도 이들 나라들이 우리보다 많다. 그럼에도 시장독과점이나 불공정경쟁을 제외하고 일반 규모로 경제력 집중 같은 문제는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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