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한국 10주년, 창간호를 다시본다
미래한국 10주년, 창간호를 다시본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06.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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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앞을 내다본 혜안

본지 <미래한국>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세상에는 진리가 있다’는 사시로 시작한 본지 창간호는 10년 전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을 모색하며 이슈를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한 의제들은 오늘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로 자리하고 있다. <미래한국>은 그때 무슨 이야기를 국민에게 건넸던가. 발행인 김상철 변호사는 창간사에서 ‘한국을 살리고 세계를 살리자’라고 썼다.

 

탈북자 인권과 북한 자유화

창간호 <미래한국>은 이미 10년 전에 중국의 탈북자 북송문제와 함께 중국의 북한개방에 대한 입장을 1면과 2면에 주요 기사로 배치했다. 창간일이 다름 아닌 남북정상회담 2주년을 기념하는 2002년 6월 15일이었고 당시 북한문제는 국민들에게 혼란스러움을 더해 가고 있었다.

당시 부시 미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 정부의 대북 포용정책을 적극 찬성한다’고 밝히며‘북한과 조건 없는 대화’를 제시하자, 국내 보수 언론들은 반공이념에 근거한 반발 외에 뚜렷한 아젠다를 제시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오마이뉴스가 “남북연합 훼방꾼은 바로 보수언론들“ (2002. 5. 29.)이라는 제하의 보도로 보수언론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대북정책의 대안을 묻는 연합뉴스의 인터뷰 질문에 ”남북문제는 억울하다. 우리 당의 태도를 발목잡는다고 비판하면 곤란하다“는 답변이 전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래한국> 창간호는 남북협력을 위해서는‘탈북자 인권’문제와 함께‘북한 자유화 조치’가 선결조건임을 89년 콜 독일 총리의 10개 조항원칙과 6.15선언을 심도 있게 비교 분석해 제시했다. 즉, 89년 동독이 150억 마르크의 지원을 요청해 왔을 때 콜 총리는 동독 주민들의‘탈출’과‘자유화’의 욕구를 파악하고 동독 내에 선거를 통한 합법적 민주정권을 전제로 하는 지원원칙 10개 조항을 제시했던 사실을 자세하게 보도했다.

<미래한국>은 이러한 독일의 통일정책과 6·15공동선언을 비교함으로써 김대중 정부의 일반적 대북 포용정책이 실효성과 정당성이 없음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 기사와 함께 박광작 성균관대 교수가 해설 칼럼을 실었다. 논의의 핵심은 통일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북한의 독재체제’라는 점과 ‘북한인권’이라는 점을 명백히 했다. 이러한 시각은 ‘민족공조’라는 북한의 수사 앞에 다소 무력함을 보였던 보수언론이 보지 못한 새로운 관점이었다.

 

<미래한국>의 창간호 탈북자 인권 문제 제기는 그 다음호에서도 이어졌다. 6월 22일자 발행된 제2호에서 미래한국은 사설을 통해 정부가 먼저 탈북자난민보호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당시 베이징 내 한국공관에 피신한 탈북자 처리 문제를 놓고 우리 정부의 애매한 태도에 대한 질타였다.

사설은 탈북자의 난민지위를 한국이 중국에 요청할 때 비로소 대중국외교가 균형점에 이른다는 제언을 했다. 당시 이러한 주장은 파격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미래한국>의 주요 주주들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미래한국의 발행인인 김상철 변호사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던 탈북난민보호운동본부는 그해 6월 다시 탈북자의 유엔난민지위 촉구 운동을 재개했다. 이 운동은 2012년 총선을 앞두고 중국이 탈북자를 강제북송하는 데 반대하는 범시민운동의 뿌리가 됐다.

<미래한국>이 ‘민족공조’라는 북한의 대남통일전선에 이 ‘북한인권’이라는 아젠다로 대응한 것은 탁월한 혜안이었다. 이후 탈북자 인권과 북한 민주화에 대한 목소리가 보수진영 내 특히 북한인권단체들을 중심으로 더욱 정교하게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올바른 통일에 대한 인식이 각성돼 갔기 때문이다.

예언자적 지성을 보여준 칼럼
<미래길>, 사회주의 선동 예상

<미래한국>은 매호 진리, 자유, 규범의 편집 철학이 배어 있는 고정 칼럼을 게재해 왔다. <미래길>이라고 불리는 이 권두 칼럼은 이어령, 송복, 이인호, 박을용, 백진현과 같은 당대 석학들로 구성된 편집위원들과 함께 여성 CEO로 선도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조안리 대표가 직접 집필했다.

2002년 창간호의 <미래길>은 송복 연세대 교수가 썼다. 송 교수는 ‘민주주의에 감시자 있어야’라고 하는 제하의 칼럼에서 ‘민주주의는 최선의 제도이자 최악의 제도’라는 말로 글을 시작했다. 송 교수는 여러 민주주의 가운데 ‘자유민주주의’만이 진정한 민주주의임을 설파하면서 때로 이 자유민주주의가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민주주의는 어리석을 자유가 있고, 그 어리석음이 공산주의보다 낫다는 점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송복 교수의 이러한 예언자적 메시지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사회주의 포퓰리즘에 선동될 것임을 이미 10년 전에 내다 본 것이었다.

2011년 역사교과서 개정 파동에서 자유민주주의는 우려대로 좌파의 공격 대상이 됐던 것이다. 좌파 역사교과서 편찬위원들은 고교 역사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를 삭제할 것을 주장하며 위원회를 탈퇴하는 시위를 벌였다. 다행히도 자유민주주의는 그 원안이 지켜졌는데 <미래길>은 그러한 예언적 지성을 담고 보수진영에 각성을 주문해 왔던 것이다.

 

창간호 특집기획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

미래한국 창간호는 5면에서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10회 연속기획물을 창간특집으로 기획하기도 했다. 미래한국이 이러한 창간특집에서 우리 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는가 하는 관점을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다. 그것은 당시 한국사회를 대표하는 지성인들이 갖는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창간 당시 미래한국이 제시한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은 다음과 같은 주제였다. ① 한국, 어디로 가는가? ②변화 ③배려문화 ④나라가꾸기 ⑤바른 기업관 ⑥외교전략과 수행 ⑦지방화 ⑧교육국가 한국 ⑨인재 ⑩통일

2002년 6월은 김대중 정권의 레임덕 시기였다. 2000년에 있었던 남북정상회담에서 국민들은 김정일이 쇼맨십으로 주도하는 회담 장면을 TV로 봐야 했고 금강산 퍼주기 관광이‘우리 민족끼리’라는 명분으로 시행됐다. 대마불사라는 대기업의 절반이 IMF 극복 과정에서 사라진 후 남은 대기업들은 반기업 정서에 시달려야 했다.

특히 경제면에서 김대중 정권은‘카드 남발’을 통한 신용팽창과 과소비로 경기 하강국면에 착시를 만들어 가던 와중이었다. 합법화된 전교조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며 학교를 사회주의 이념의 교육장으로 만들어 가고 있었고, 헌법정신은 도전받고 있었다.

당시 <미래한국>의 창간 특집기획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트라우마를 치료하고 건강한 시민의식을 부활시켜 헌정질서의 해체를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미래한국은 창간 특집 첫회‘한국, 어디로 가는가’에서 우리 사회의 부정과 긍정의 양면성이 갖는 심한 격차를 집중 해부했다. 급격히 팽창하는 사행산업과 점술산업, 그리고 성형과 같은 외형 중시 세태와 생명경시의 낙태, 과소비의 카드 남용과 같은 어두운 면의 현장을 짚어보고 이와는 반대로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미래에 도전하는 청년들과 퇴직후 사회봉사로 자신의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노후세대들을 찾아봤다.

동시에 입양과 외국인에 대한 봉사와 같은 이타적 삶의 현장을 조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획은‘사랑으로 화합하자’라는 창간 이념과 ‘신실하고 정직한 사회적 리더십’이라는 창간 목표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창간 이념과 목표는 10회 연속기획에 변함없이 적용됐으며 ‘지성과 믿음으로 충만한 공동체’라는 또 하나의 창간 목표를 지향하는 것이었다.

시장경제에 대한 안목
‘시장에서 듣는다’

<미래한국> 창간호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보수가치에 충실했다. 창간호에는‘시장에서 듣는다’라는 코너물이 있었다. 현상과 진단을 통한 당시 이슈는 상가임대차보호 시행의 문제점이었다. 시장질서를 인위적으로 교란하는 상가임대차보호법으로 인해 오히려 상가가격이 폭등할 것을 시장경제원리로 진단했고 거래를 시장원리에 맡길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 문제는 2006년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서 더욱 강화된 상가임대차 보호정책으로 영세상인들이 더욱 고통 받는 상황을 만들었다. 미래한국의 진단과 처방이 옳았던 것이다.

역사를 움직인 기도
대한민국 건국과 개원기도

본지 사시의 하나인 가독교적 세계관은 특집 연재 ‘역사를 움직인 기도’에서 유감없이 발휘됐다. 이승만 연구로 독보적이었던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는 창간호에서 대한민국 초대 개원의 상황을 이승만 대통령의 건국정신과 함께 자세히 소개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초대 의회 개원에서 행했던 연설과 당시 감리교 목사였던 이윤영의원의 개원기도의 국회 속기록 원문을 소개했다. 당시 모든 의원들이 이승만 대통령의 제안으로 국회 개원 감사의 기도를 올렸던 상황은 종교와 신앙을 초월한 국민적 화합이었다.

“이 민족을 돌아보셔서 오늘이 있게 하심을 감사하나이다”라는 감사의 기도가 울려퍼졌던 초대 국회는 반역 종북세력에 농단당하는 오늘 19대 국회개원을 맞이해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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