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명소 고려서적 한인 문화지킴이 30년 외길
뉴욕의 명소 고려서적 한인 문화지킴이 30년 외길
  • 미래한국
  • 승인 2012.06.13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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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응표 뉴욕 고려서적 회장

뉴욕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에게 필수코스로 통하는 명소가 있다. 뉴욕 중심가에 위치한 고려서적이다. 아이비리그 대학 도서관의 한국어 서적 대부분이 이 책방을 통해 보급된다.

바꿔 말해, 한인사회 출판계의 아이비리그라고 해도 과장이 아닌 것이 변변한 책방하나 없던 70년대 초반에 문을 연 유일한 서점이었다. 먹고 살기 바빴던 이민 1세대의 눈물겨운 생활고 속에서 독서는 일종의 사치이기도 했다. 최응표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여유롭지 못한 경제사정은 어느 이민자와 다르지 않았지만 ‘사회의 문화적 척도는 출판계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는 신념으로 뛰어들었다. 번듯한 명소로 자리 잡기까지 30여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보람은 남다르다. 지난 5월 30일 서울을 방문한 최응표 회장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한인사회 문화1번지

최 회장의 이야기는 불혹의 나이로 이민을 떠난 시점부터 시작됐다.

“마흔이 됐을 때 이민을 떠났습니다. 정착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벌써 38년이 됐네요. 이민간 지 5년 만에 서점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술자도 아니고 전문직도 아닌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책이더라구요. 20대에 책과 인연을 맺어 출판사를 경영했었으니까요. 다들 말렸습니다. 뉴욕의 교포사회 규모가 6,7만 정도밖에 안 되기도 했고 다들 경제적 여유도 없는 상황이라 서점은 상상도 못할 때였죠. 그래도 저는 몇 년만 지나면 차츰 경제적으로 안정될 것이고 이후에는 정서적으로도 안정돼 문화적 욕구가 생기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루 매출 100달러를 목표로 했지만 5,60달러에 그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적자경영을 막기 위해 직원도 채용할 수 없었고 최 회장 혼자서 운영부터 판매까지 모든 일을 맡아야 했다. 그래도 1년에 두 번씩은 꼭 한국을 방문했다. 출판계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저희 서점은 30년 동안 재고가 쌓이는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늘 진열된 책이 전부에요. 다들 놀라는데 비결은 간단합니다. 고객의 성향을 파악해 그에 맞는 책을 제공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죠. 책을 구입하는 고객을 분류해 퍼센트를 분석하면 대략 몇 그룹으로 나뉩니다. 그들에게 맞는 책을 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직접 책을 선택했습니다. 서점에서 종일 책을 보면서 일일이 확인했죠. 인터넷이 발달된 후에는 컴퓨터를 배워 온라인으로 주문했구요.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책은 진열된 것으로 그치는 상품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독자에게 책이 들어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했다. 출판은 곧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이기 때문에 선택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운영한 그의 출판사도 당시 거의 유일하게 교양서적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고려서적에도 인문교양서적이 대부분이다.

“서점을 운영하다 보니 지역과 국가의 문화적 수준이 보이는 게 신기했습니다. 서부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판매되는 책을 보면 서부와 동부의 수준이 비교가 안 됩니다. 저희 서점에 진열된 책을 보고 조갑제 씨가 놀라더라구요. 어떻게 이런 높은 수준의 책이 팔리냐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안타까웠던 것은 뉴욕에 있는 일본 서점의 매출을 한국 서점이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40만에 달하는 한국 교포들에 비해 일본 교포의 수는 5만 밖에 안 됩니다. 그런데도 일본의 판매율이 훨씬 좋습니다. 한 달에 1억이 넘는 월세를 내고 서점을 운영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한국은 1년 내내 팔아도 따라잡지 못하는 매출이죠.”

그는 한국인들이 책을 읽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책을 안 사는 이유 중의 하나가 비싸다는 건데 한국 정가의 두 배를 받아야 이윤이 남는 책에 비해 소주는 열배를 받거든요. 사실 주머니에 돈이 없는 사람들이 책을 제일 잘 삽니다. 저도 처음에는 부자들이 주요 고객이 될거라는 생각에 그들 위주로 책을 골랐는데 아니더라구요. 주급으로 받는 사람들이 아끼고 아껴 사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정작 부자들은 골프 치고 술 마시고 노느라 바쁩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가게에 들어오는 도둑한테도 절대 신경을 안 씁니다. 도둑이 많은 건 아니지만 가끔 있거든요. 훔쳐 가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냥 눈 감아 줍니다. 훔쳐서라도 읽고 싶다는데 그걸 말리지는 못하겠더라구요.”

한국 문화인사 초청 강연회, 뉴욕에 <미래한국> 보급도

 

최 회장의 자부심은 한인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것에 있다. 고려서적의 캐치프레이즈도 ‘한인사회 문화1번지’다. 책으로는 양이 차지 않아 자비를 들여 한국의 문화 인사를 초청한 강연도 수차례 열었다. 한 차례 강연을 열 때마다 천명의 교포가 몰려들었다. 천명이라는 숫자는 한인사회에서는 동원하기 힘든 규모다. 그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한 이어령 씨가 왔을 때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이었다고 한다. <미래한국>도 1년 9개월에 걸쳐 매달 500권씩, 한인사회에 무료로 공급하는 일을 맡아 왔다. 책값보다 더 들었다는 항공비를 자비로 부담한 이유는 하나였다. 타지에서 자라는 재미교포 2,3세들에게 국가적 정체성과 애국심을 심어주기 위해서였다.

“외국에서 자란 2, 3세들은 거의 미국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누가 미국인이냐고 물어보면 다들 자신은 ‘한국인’이라고 대답합니다. 월드컵이 열리면 밤을 새워가며 한국을 응원하고 고추장, 된장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그렇게나 좋아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와 정치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은 매우 부족한 현실입니다. 여기에 종북세력의 장기인 세뇌교육이 주입되면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 한인사회의 정치적 성향은 7,80%가 보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에 나가면 다 애국자가 되거든요. 특히 뉴욕은 세계 정치 중심지라 UN이 있어 탈북자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자연스레 북한의 실상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보수들은 수는 많아도 정치적인 활동을 실질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체계적인 이론도 잘 모릅니다. 반면, 좌파는 2,30% 밖에 안 되지만 목소리가 매우 큽니다.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후원을 받는지 자금도 풍족해요. 이런 상황에서 재외국민 투표를 하게 되면 종북좌파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 되는 겁니다. ”

그는 해외국민투표가 시기상조라고 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국가보안법이 있어 제약을 받지만 자유를 존중하는 미국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든 막을 방법이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 투표권을 반대했었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영주권자, 유학생, 주재원들은 대개 젊은 층입니다. 이들은 투표에 열심이지만 움직이기 싫어하는 노년층은 투표하기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구요. 이것이 교포사회의 결정적인 분열을 가져올 것입니다. 북한이 존재하는 한 재외국민 투표는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청년들 국가의식부터 고취해야

이어 한국의 젊은이들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인사회는 한국의 정세를 위험하게 보고 있습니다. 해외에 있는 저희들은 한국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으니 답답한 거죠. 예전에는 ‘당신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물어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코리아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정치인들도 재미교포 사회를 무시할 수 없게 됐습니다. 힐러리 국무장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한인 행사에는 반드시 참석합니다. 친정이 잘 살아야 시댁에서 며느리를 무시하지 못하는 것처럼 한국이 잘 사니 동포들도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두 가지에 정말 놀랐습니다. 우선 전국을 여행하며 대한민국이 이렇게까지 발전했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우리나라에 대해 비딱한 정치인과 젊은이들이 있다면 국토여행을 한번 시켜주면 좀 달라질 것 같더군요. 둘째로 서울에 돌아와서 시청 앞 광장을 보고 놀랐습니다. 휘발유 병이 난무하고 혁명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니 ‘슬픈 서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은이들은 상대적 빈곤을 불평하지만 빈부의 격차는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것입니다. 경제가 발전해야 문화적인 수준도 높아지는 것이죠. 일자리가 없다고 하지만 중소기업에는 일자리가 넘쳐납니다. 블루칼라가 되기 싫다고 부모에게 얹혀사는 삶은 옳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다 보면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있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죠. 국가적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차인표가 주연해 북한의 실상을 알린 영화 <크로싱>은 그의 둘째 아들이 제작한 영화다. 어려서부터 국가적 정체성과 애국심을 강조한 교육 덕분이었다. 이제 은퇴 후 여유로운 생활을 보내고 있다는 최 회장은 삶의 질은 나아졌지만 나라의 미래가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다음 방문 때는 최 회장의 근심을 덜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기 바라며 인터뷰를 마쳤다.

글·사진 / 조진명 기자 jadu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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