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는 왜 영웅이 없을까?
우리에게는 왜 영웅이 없을까?
  • 미래한국
  • 승인 2012.06.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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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전론(嫌戰論)의 함정, 애국 = 전체주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가 지난 4월 개봉해 관객수 700만 명을 돌파하며 장기 흥행 중이다. 이 영화는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 등 미국 만화제작사의 인기 영웅 캐릭터들이 단체로 나와 악당들로부터 미국과 지구를 지키는 내용이다.

이 영화의 성공을 보면, 우리나라 관객이 대의를 위해 앞장서고 희생하는 영웅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우리 영화에서는 이런 영웅을 찾기가 어렵다. 할리우드 괴수 영화와 필적할 만하다는 흥행작 <괴물>(2006)만 해도 그렇다. 한강에서 튀어나온 정체불명의 괴물을 주인공들(송강호, 배두나)이 물리치지만, 이들을 움직인 것은 가족의 복수였지 정의나 대의가 아니었다. 더욱이 주인공들에게 국가는 괴물을 잉태시킨 미국과 함께 부정적 이미지의 전체주의 집단에 불과하다.

“애국심은 유치하다”

최근 우리 영화를 보면 이런 영웅은 고사하고, 애국이라는 메시지도 사라졌다. 6·25전쟁 배경으로 한 영화도 남북간 동포의식(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 2005년 웰컴투 동막골)이나 전쟁에 피폐해진 인간성(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주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주인공은 항상 수동적이고 소시민적인 피해자로 나타난다.

지난 현충일 TV에서 방영한 6·25전쟁 소재 영화 <고지전>(2011)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모범생이던 수혁(고수)이 참전한 뒤 살아남기 위해 전쟁 기계로 변모한다는 내용. 전쟁 속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피폐하게 변화되는지를 보여준다. 물론 남북 화해나 동포 의식, 인간성에 대한 조명은 영화적으로 매우 훌륭한 테마이다. 그런데 신기한 점은 영화가 이런 영역에 집중할수록 ‘국가’나 ‘애국심’을 말하는 것은 왠지 점점 구식이고 전체주의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고지전>과 같은 날 TV로 방영한, 50년 전 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에서나 볼 수 있는 추억이 된 셈이다. 이 영화는 우리 해병대가 서울 수복 후 북진 중에 중공군을 만나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다는 내용이다. 1960년대의 스타 장동휘와 최무룡 등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영웅으로 나와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혐전론’의 방정식 ‘대한민국이 싫다’

그런데 이런 영화는 요즘 찾기 힘들다. 왜 그럴까. 국가를 위한다는 메시지가 과거에나 통하는, 영화적으로 재미가 없는 소재여서인가. 굳이 일본의 침략에 맞서는 할리우드 영화 <진주만>(2001)이 아니라도, 최근 인기작 <어벤져스>에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애국주의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가 활약하는 것을 보면 그것도 아니다.

사실 6·25전쟁 당시 북한군, 소련군, 중공군에 맞서 국가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은 정말 좋은 이야기 소재 아닌가. 그런데 지금 상황은 <돌아오지 않는 해병> 같은 주제는 마치 넘봐서는 안 될 금단의 영역처럼 됐다. 여기에 이유는 없다. 그냥 우리 영화가 국가나 애국심을 싫어하는 거다.

이쯤 되면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혐전론(嫌戰論)이다. 전쟁 자체에 대해 무조건적인 두려움을 형성해 상대방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계속 끌려 다니게 하는 고도의 심리적 전술을 말한다. 이런 시각에선 6·25전쟁은 북한의 침략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쟁이 아니다. 단지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인한 ‘재난’일 뿐이다. 게다가 은연중에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렸던 일도 무의미하게 치부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선 대한민국은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 <포화속으로>(2010)가 개봉했을 때의 일부 반응에서도 이런 ‘혐전론의 방정식’이 엿보인다. 영화는 6·25전쟁 개전 초반 북한군의 남하에 맞서 싸우던 학도병의 이야기인데, 당시 일부 평론가들은 학도병들이 목숨을 바쳐 싸우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며 평가 절하했다. 마치 “우리나라가 뭐 지킬 가치가 있냐?”고 묻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과연 외부의 침략으로 절체절명에 빠진 국가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는 이유가 따로 필요할까.

이렇게 보면 우리 영화에 ‘애국자’들이 많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그들을 원하지 않아서이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영웅들이 나타나 대한민국을 구하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은 사람들이 많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쩌면 <어벤져스>의 영웅 캐릭터들이 미국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위해 싸운다면, “도대체 왜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나” “평화를 위해 조용히 당하고 살자”라는 반응이 나올 법도 하다. 이대로라면 우리 관객은 당분간 아이언맨이 미국을 지키는 것이나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우리 영화의 주인공들은 여전히 대한민국에 대해선 ‘세련되게’ 시큰둥할 것이다.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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