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관점’에서 ‘북한혁명’을 꿈꾸자
‘한반도 관점’에서 ‘북한혁명’을 꿈꾸자
  • 황성준 편집위원
  • 승인 2012.08.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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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차(Victor Cha)의 <불가능한 국가>(The Impossible State)를 읽고
황성준 편집위원

대학교 4학년이었던 1986년 3월. 필자는 압구정동의 어느 카페에서 타임지와 프랑스어 사전, 그리고 빨간색 모나미 볼펜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초조하게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10분쯤 지났을까? 한 젊은 남자가 들어와 이리저리 살피더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강수 씨(당시 사용하던 필자의 운동권 가명), 맞죠?”

낯익은 얼굴이었다. 시위현장에서 여러 번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됐다. 그러나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이 없었기에 본명 같은 것은 알지 못했다. 이 남자는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이야기했다.

“동지의 투쟁성은 높게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사의 세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재교육 대상으로 분류됐으며 당분간 저와 1대1 학습이 진행될 것입니다.”

‘주체사상의 세례’를 받지 못한 마르크스-레닌주의자

처음에는 ‘주사의 세례’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사는 주체사상의 줄인 말이었으며, 세례란 종교의식 용어였던 것이다. 즉 “주사의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은 주체사상 신봉자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필자는 4벌식 타자기로 조잡하게 타이핑된 복사물을 건네받았다. 이날 받은 문건은 ‘주체사상에 대하여’, ‘주체사상에 대하여 해설’, ‘항일무장투쟁사’ 등 3건이었다. 주체사상 세례를 위한 교리문답 기본교재를 받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필자에게 청계천 상가에서 단파 라디오를 구입할 것을 지시하고, 라디오 청취 주파수와 청취 시간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다음 약속시간과 장소, 제2선 및 제3선 약속을 정했다. 마지막으로 접선 요령을 재확인한 뒤 헤어졌다.

이렇게 해서 그해 5월시위에서 온 몸에 최루탄 파편 100여개가 박혀 왼쪽 눈 시력을 잃는 등의 큰 부상을 입고 입원할 때까지 약 2개월 동안 이 ‘지도원 동지’와의 주체사상 학습이 진행됐다.

내용은 매우 평이하게 느껴졌으며 별다른 지적 자극을 받지 못했다. 대학 입학 이후 그때까지 ‘지하대학’에서 학습한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과 이론에 비해 조잡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특히 당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로 자처하고 있었던 필자로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는 주체사상” 운운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뛰어 넘기는 커녕, 조잡한 변형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주체사상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5월 부상당해 입원하는 덕분(?)에 ‘지도원 동지’와의 선이 끊어졌으며 필자도 ‘의식적으로’ 선을 복귀하려 애쓰지 않았다.

그리고 몸이 어느 정도 회복돼 그 해 9월 학교에 갔더니 84학번 후배 한 명이 찾아왔다. 사회대 학생회장이 되라는 것이었다.(선거란 요식행위를 거치긴 했지만 사실상 지하 운동권 지도부가 임명하던 것이 당시 학생회 조직이었다.) “아직 몸이 다 추슬러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직 ‘주사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일선에 투입되기 이르다”며 거절했다.

이 후배는 이렇게 내뱉었다. “이것은 제안이 아니라 지시입니다. 현재 83학번은 물론 84학번도 거의 전멸했기 때문에 그런 한가한 소리할 여유가 없습니다.”

당시 각종 공안사건으로 학생운동 조직이 거의 괴멸되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떠난 필자는 이 지시(?)를 거부했다. 현재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 후배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귀에 선하다.

“선배! 통일의 광장에서 만납시다! 선배 같은 종파분자는 아오지 감도 아니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사파 ‘지도원 동지’에게서 배운 것

이렇게 주사파와의 짧은 인연은 끝났다. 그러나 이것으로 좌익 운동권 생활을 정리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정통 마르크스-레닌주의자임을 자부하고 있던 필자는 이른바 ‘PD계열’에 합류해서 좌익운동권 생활을 계속 이어 나갔다.

짧은 인연이었고 결국 헤어지기는 했지만 주사파 ‘지도원 동지’로부터 그때까지 미처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았다. 첫째는 이른바 ‘전국적 관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한 일인데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른바 ‘혁명’을 꿈꾸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 조직활동을 하면서도 ‘북한’이란 존재를 거의 의식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른바 혁명 전략 전술을 논하면서도 ‘북한’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도원 동지’는 이러한 필자의 사고가 ‘반국적(半國的) 관점’에 불과한 것이며, 남한혁명은 북한민주기지 역량과 남한 혁명역량, 그리고 국제적 지원역량이 결합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북한은 남한혁명의 종속변수가 아니라 상수(常數)라는 점을 강조했다.

즉 남한만의 관점에서 혁명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체사상’ 자체는 별로 흥미로운 것이 아니었으나 이러한 ‘지도원 동지’의 문제 제기는 ‘너무나 현실적인 것’이기에 충격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남로당 ‘종파분자’의 운명

두 번째 문제는 이른바 ‘혁명 주체’에 관한 것이었다. 당시 좌익 급진학생운동권은 레닌주의를 기반으로 이른바 ‘전위조직’을 구축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지도원 동지’는 그러한 ‘전위조직 놀음’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해로운 것이라고 지적했다. ‘혁명 주체’는 ‘조선노동당’이며 또 남한혁명을 직접 이끌어나갈 ‘전위 조직’도 ‘한국민족민주전선’이란 형태로 이미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학생중심의 ‘전위조직’을 구축하려는 시도는 ‘소아병적 오류’이며 우리의 조직적 임무는 다양한 ‘대중조직’ 건설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학생운동을 마치면 이른바 ‘현장이전’을 통해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는 당시 운동권의 기본 공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당면 혁명의 과제가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민족해방 민중주의 혁명’인 만큼 다양한 계층으로의 침투가 중요하며 따라서 어설프게 노동운동을 하느니 가능하다면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 학계 등으로 진출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문제 제기는 이른바 ‘혁명무력’에 관한 것이었다. 남한혁명 과정에는 여러 경로가 있는데 이른바 ‘혁명무력’ 문제를 배제하고서는 혁명을 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혁명의 결정적 시기’에 ‘혁명무력’이 필요한데 이러한 ‘혁명무력’은 이미 준비돼 있으며(북한 인민군), 따라서 이러한 ‘혁명무력’이 ‘이동’(!)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조건을 만드는 것이 남한혁명가의 기본임무가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필자의 ‘종파성’(친PD성향)을 은근히 꼬집으면서 ‘관념’이 아닌 ‘실제 혁명’에서는 ‘혁명무력’을 확보한 측이 혁명을 영도하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한반도 혁명무력의 주체는 이미 준비돼 있다!

다시 말해 북한이란 엄연한 실체가 존재하는 남한혁명 과정에서 PD계열은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박헌영의 남로당을 ‘종파분자’들이었다고 평가하면서 그들의 운명을 따르지 말라고 은근히 협박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지도원 동지’의 충실한(?) 지도 덕분에 그 이후 북한과 조선노동당, 그리고 북한 인민군의 존재를 한국정치의 상수로 간주하고 분석하게 됐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됐다. 그런데 최근 한국정치 흐름을 살펴보면 북한을 한국정치와 무관한 존재, 더 나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눈을 감고 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이런 와중에서 읽은 빅터 차의 <불가능한 국가>는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었다. 우선 이 책은 재미 있고 정보가 풍부하다.(물론 ‘옥의 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김일성이 만주에서 사단 규모의 부대를 이끌었다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는 동북항일연군의 부대 단위였던 사(師)를 사단 규모로 오해한 결과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당시 사의 병력은 200명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빅터 차는 이 책을 통해 곧 선출될 차기 대통령은 북한의 붕괴를 경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따라서 이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빅터 차가 언급한 차기 대통령은 금년 11월에 선출될 미국 대통령이다. 그러나 이는 12월에 선출될 한국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빅터 차는 북한의 붕괴가 임박한 증거로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제시한다. 첫째,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준비되지 않는 지도자이다. 과거 많은 왕조사에서 엿볼 수 있듯이 준비되지 않은 ‘어린 왕’의 정권은 순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현재 일단 김정은을 앞에 내세우고 단결된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나 내부 균열이 일어날 공산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특히 사실상 섭정체제를 이끌고 있는 고모 김경희도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김경희마저 쓰러진다면 김정은 체제의 앞날은 매우 험난한 것이 될 것이다.

둘째,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일부 논자들은 미국의 압박 내지는 고립화 정책 때문에 북한이 핵을 개발한 것처럼 이야기하나, 이는 사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 협상용으로 핵을 개발한 것이 아니라 핵보유국으로 ‘대접’받고자 핵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북한은 인도와 파키스탄의 예처럼 미국이 핵보유국으로 인정(혹은 묵인)받으려 하고 있으나 미국은 이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빅터 차는 서술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북핵 협상을 통해 미국은 기존 방식으로 북한의 탈핵화(denuclearization)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으며, 따라서 ‘진정한 탈핵화 과정’(real denuclearization process)이 시작될 것이라는 것이다.

차기 대통령은 통일 대통령?

셋째,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북한이 생존하는 방법은 시장개혁을 하는 것인데 김정은은 이러한 개혁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정은이 가진 유일한 정치적 자산은 김정일의 후계자라는 점이기에 개혁을 위해 필요한 김정일에 대한 비판(부분적으로도)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정은 체제는 이른바 ‘네오 주체 부활’(Neo-Juche Revivalism)로 흐를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개혁 쇼’를 벌인다 해도 이는 곧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으며 체제 생존을 위해 불가결한 ‘근본적 개혁’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이 언제 붕괴될지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예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이 한 가지 있다. 남한만의 정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문제는 이제 더 이상 변수가 아니다. 바로 한국정치의 상수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애써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심지어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조차도 대다수 그러하다. 이제야말로 진짜 ‘전국적 관점’에서 ‘북한혁명’을 꿈꿔야 한다고 말한다면 지금 어디 살고 있는지 모르는 ‘지도원 동지’는 뭐라고 할까? (미래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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