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미래리더캠프 - 北中접경지역을 다녀오다
통일미래리더캠프 - 北中접경지역을 다녀오다
  • 미래한국
  • 승인 2012.08.09 0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7월 통일미래리더캠프를 다녀왔다. 통일미래리더캠프는 통일부 통일교육원에서 주최하는 체험형 통일교육 프로그램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대학생을 대상으로 선발한다. 소정의 심사를 거쳐 선발된 180여명의 청년들은 1주일간 국외에서 통일에 대해 생각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통일부에서는 통일교육사업의 일환으로 평화통일대행진 등을 매년 진행해왔지만 이처럼 국외에서 대규모 캠프를 기획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평가받는다면 앞으로도 매년 2차례씩 통일미래리더캠프를 실시한다고 한다.

캠프 장소는 북·중 접경지역이었다. 도문(圖們)에서 대련(大連)까지 두만강과 압록강을 따라 접경지역의 주요 도시들을 탐방했다. 탐방한 도시는 연길-도문-용정(1일차), 숭선-화룡-이도백하(2일차), 서백두산-통화(3일차), 집안-환인(4일차), 단동-대련-여순(5, 6일차)이었다. 1,400km에 달하는 거리를 5박 6일간 횡단하려다 보니 하루 평균 도시 2~3개를 방문하는 바쁜 일정이었다. 하지만 바쁘게 움직일 만큼 충분히 의미 있고 중요한 지역들이었다.

탐방 지역은 크게 역사 유적지와 북한지역을 조망하는 곳으로 나눌 수 있다. 역사 유적지로는 고구려 시대의 유적지(집안, 환인)와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용정, 여순)를 다녀왔고,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도 올랐다.

북한지역은 강을 따라가며 수시로 내다볼 수 있었지만 특별히 관광명소화된 장소들이 있었다. 바로 도문대교에서 바라보는 남양시와 숭선의 산비탈길에서 내려다보는 무산시, 압록강 유람선을 타며 보는 신의주다. 통일미래리더캠프를 통해 많은 것을 경험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강 너머 북한 지역을 본 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허술한 국경 너머 미지의 공간

첫 일정이었던 도문대교. 도문대교에는 북중 국경선이 그어져 있었다. 철조망도 없고 장벽도 없었다. 다리 위에 그어진 선을 넘으면 북한이었고, 우리 중 몇몇은 살짝 선을 넘어 북한 땅을 밟아보기도 했다. 이런 허술한 국경이라니 어이가 없었지만 사실은 우리네 국경이 너무 견고한 것이다. 분단과 전쟁으로 인해 그어진 남북의 국경선은 전세계 그 어느 지역보다 강력한 경계선으로 존재해왔다.
국경선 너머 북한은 머리로 잘 그려지지 않는 미지의 공간이었다. 그런 북한이 바로 강 건너에 있었다. 도문대교 너머 보이는 남양시는 평온한 시골마을 같았다. 하지만 평화로워 보이는 외양 속에 우리가 모르는 비극들이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도문대교가 탈북자들이 강제북송 당할 때 지나가게 되는 다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우리가 웃고 떠들며 사진 찍었던 그 다리를 탈북자들은 죽음의 공포 속에서 건너간다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했다. 죄스러웠다.

아시아 최대의 철광 보유지인 무산시를 볼 때도 묘한 기분이었다. “사진은 버스 안에서만 찍어요. 밖에 나가서 찍으면 중국 공안이 해코지 할 수도 있으니.” 가이드의 충고로 30여명이 모두 버스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사진을 찍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우리가 북한의 모습을 렌즈에 담고자 버스 안에서 아등바등 할 때 중국 사람들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야외에서 셔터를 눌러댔다. “가이드 쌤, 저 사람들은 그냥 찍는데요?” 우리의 질문에 가이드는 간단히 대답했다. “저 사람들은 중국인이니까요.” 이 밖에도 중국인은 되고, 한국인은 안 되는 것들이 종종 있었다.

예컨대 한국인은 백두산에서 애국가를 부르면 안 되고, 플래카드도 들면 안 된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묘한 경계심이 느껴졌다. 통일을 위해서는 주변 국가들의 이런 경계심도 풀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여하튼 우리는 버스 안에서 사진을 찍고 밖으로 나갔다.

산 아래에 무산 시내의 모습이 한 눈에 펼쳐졌다. 무산 시내의 모습은 기묘하게 압도적이었는데 마치 옛날 흑백영화나 디스토피아 영화에 나오는 회색도시 같았다. 집, 공장 할 것 없이 건물들이 노후되고 색이 바래서 전체적으로 우중충했다. 하지만 마을 중앙의 대로(大路)에는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개울에서는 아이들이 목욕을 했다. 그런 사람 냄새 나는 풍경들도 어렴풋이 보였다.

단동에서는 압록강 유람선을 타며 신의주를 볼 수 있었다. 압록강의 폭은 한강 폭과 비슷했는데 배가 북한 쪽에 가까이 갈 때는 2, 30미터 앞이 북한이었다. 강가에 있는 북한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열심히 손을 흔들며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고 외쳤다. 가끔씩 손을 흔들어 화답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북측에서 손을 흔들어주는 사람이 나타나면 우리는 환호했다.

단동에서 본 신의주

강 건너 북한 사람과 작은 교감을 나눴다는 기쁨! 한편으로는 이렇게 소소한 인사마저도 특별한 일이 돼버린 현실에 마음이 아팠다. 배 위에서 큰 소리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함께 불렀으면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노래 정도는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언젠가는 배 위에서든 북한 땅에서든 남북한 사람들이 한 마음이 돼 한 노래를 부르는 날이 오기를 북한 사람들과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소원하게 됐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점은 70년대까지만 해도 신의주가 단동보다 더 발전한 도시였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단동이 신의주보다 월등히 앞선 도시이다. 단동에는 강변을 따라 높은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지금도 건축이 한창이다. 세련되고 번화한 단동과 달리 신의주는 70년대에서 별반 달라지지 못한 모습이다.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30년 만에 이렇게 큰 발전을 한 것처럼, 북한도 정책을 바꾸고 개방을 한다면 발전의 기회가 정말 많을 것이다. 북한이 어서 빨리 변해 북한 주민들이 보다 풍족하고 자유로운 나라에서 살았으면 하는 기대도 신의주와 단동을 함께 보니 더욱 간절해졌다.

확실히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책과 논문, 기사 등을 통해 북중 접경지역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접했었지만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었다.

통일미래리더캠프와 같은 좋은 취지의 행사가 앞으로도 끊이지 않고 이어져 더 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이 기회를 누리고 통일미래를 그려보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

- 전해솔 (한동대 4학년)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