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탓’ 온정주의야말로 성범죄의 공범이다
‘사회 탓’ 온정주의야말로 성범죄의 공범이다
  • 이강호 편집위원
  • 승인 2012.08.3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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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아니에게 배우라

또 아동 성폭행이라니

어린아이에 대한 성폭행 뉴스가 아침 출근길을 분노와 우울함에 휩싸이게 했다. 불과 며칠 전 이런 문제들을 개탄했는데 또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 전남 나주에서 7살짜리 초등학교 1학년생이 납치 성폭행 당했다.

이게 나라꼴인가? 경제민주화? 복지? 무상급식? 우리의 어린 딸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따위들이 무슨 의미가 있나? 어린아이를 안심하고 키울 수 없는 나라가 온전한 나라이기나 한가?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성범죄 대책과 관련해 “결혼을 권장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심하다. 기혼자 중에는 성범죄자가 없으며 성범죄자는 미혼자에만 있나? 여당의 대표 수준이 이러니…

그러나 이를 비판한답시고 내놓은 민통당 대변인의 논평은 한심한 차원을 넘어선다. "성범죄를 비롯해 늘어나는 흉악 범죄는 사회적 고립과 민생파탄을 반영한 현상", "사회적 연대감과 공동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정책개발 논의가 우선돼야 하는데, 이를 도덕적이고 개인적인 문제, 인성의 문제로 치부하는 건 낡은 사회경제적 인식" 운운이다. 또 ‘사회 탓’이다.

아동 성범죄가 무슨 사회 탓이냐?

도대체 아동 대상 성폭력이 어떤 사회적 아픔에서 초래된 일이라는 건가? 민통당의 ‘최신의 사회경제적 인식’은 아동 대상 성범죄를 도덕적 개인적 인성의 문제가 아닌 어떤 심오한 문제로 다루는가? 물어보자. 가난하면 성범죄를 저지르는가?

그렇다면 그들이 입에 달고 다니며 읊조리는 가난한 서민들은 모두 잠재적 성범죄자겠다. 사흘 굶으면 담벼락 넘는다는 속담은 들어봤어도 밥그릇이 비었다고 성폭행을 한다는 얘기는 못 들어봤다. 하물며 아동 대상 성범죄다!

걸핏하면 ‘사회경제적’ 운운하는 이 따위의 논리야말로 흉악범죄의 진짜 공범이라는 걸 민통당은 알아야 한다.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는 사회적 이전에 그 범죄자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큰 대표적인 경우다. 굳이 사회적 요인을 따지자면 그간 각종 성범죄를 말이 안 될 정도로 느슨하게 처벌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성범죄는 정상참작과 동정의 여지가 있으면 안 된다. 그것은 개인적으로는 인격의 파탄이며 사회적으로는 문명의 양식을 파괴하는 짓이다. 특히 아동 대상 성범죄는 인간으로 간주될 수 없는 짓이다. 십계명에도 아동 성폭행은 안 된다는 계명은 언급 자체가 없다. 상상조차도 못해봤다는 것 아니겠는가?

줄리아니에게 배우라

미국 뉴욕 시는 정치적으로 민주당의 안방이요 아성이다. 이런 뉴욕에서 공화당 소속인 루돌프 줄리아니가 재선을 하고, 그 후임도 마이클 블룸버그 역시 공화당 소속이 당선되었다.

이런 이변은 결국 뉴욕 시의 악명 높은 범죄율 때문이었다. 마피아를 때려잡은 검사로 이름 높았던 줄리아니는 범죄 소탕이라는 공약을 앞세워 당선되었다. 그리고 그는 시장이 되자 실제로 범죄천국 뉴욕의 범죄율을 2/3나 낮추었다.

줄리아니는 늘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강조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곧 그 일대 전부가 난장판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원칙에 따라 사소한 경범죄에 대해서도 어떠한 온정도 보이지 않는 엄격주의를 고수했다.

우선 쓰레기를 청소하고 낙서 행위도 엄격히 단속하는 사소한 일에서 시작했다. 물론 거기에만 머물지 않고 동시에 경찰을 대폭 증원하여 치안활동을 크게 강화했다. 그리고 그의 자서전의 표현을 빌자면 “불의와 정면으로 대결했다.” 그는 “어디에나 불량배들이 있으며 이들과는 가차 없이 맞서야 한다”고 항상 강조했다.

재범률은 온정적일수록 높아진다

‘사회 탓’ 온정주의는 그 자체가 깨진 유리창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어설픈 위선 때문에 흉악 범죄의 싹을 더 키우고 있다.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아는 것은 사실이지만 의식이 족한 것만으로 범죄가 저절로 사라지는 게 아니다. 범죄의 뿌리는 비유컨대 카인 이래 끊이지 않게 이어져온 인간 본성의 취약점 그 자체에 있다. 율법을 세워 경계하고 다스리지 않으면 언제라도 폭주할 수 있는 게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약점이다.

구원은 사랑에 있다. 그러나 범죄자를 온정으로 다루는 것은 올바른 사랑의 방식이 아니다. 재범률은 온정적일수록 높아지고 매섭고 단호하게 다스릴수록 낮아진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지 않도록 올바르게 사랑을 베푸는 방법은 바늘도둑 단계일 때 뼈가 저질 정도로 매섭게 혼을 내 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범죄 양상은 점차 인내를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대선주자들은 무지갯빛 복지 공약(空約)이 아니라 ‘안전한 사회’를 위한 진지한 구상부터 내놓길 바란다.(미래한국)

이강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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