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과 위험의 양극화
안전과 위험의 양극화
  • 미래한국
  • 승인 2012.09.1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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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린 편집위원
전 교육부장관

위험사회론(Risk Society)은 현대사회를 비판적으로 성찰하자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한 유형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부의 생산과 분배의 양극화에만 신경쓰지 말고, 위험과 불안전의 불공평한 배분에도 관심을 갖자는 취지의 이론이다.

산업화로 특징되는 지난 100여 년 간의 근대화는 그것을 지탱시켜준 근대성(산업화) 이데올로기로서 계몽주의, 합리주의, 그리고 과학주의를 짙게 내포한다. 위험사회론의 중심에 서 있는 울리히 벡(Ulrich Beck) 교수는 근대성에 대한 새로운 판단의 기준과 준거를 제시하면서, 그간 인류가 흠뻑 빠져 들었던 근대성(산업화)이라는 신화로부터 빠져나올 것을 주장한다.

그간의 근대성이란 곧 부(富)의 총량을 증가시키고, 이 부의 배분을 정의(正義)롭게 하는 것이었으며, 선진국이란 이 두 가지 조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서 비교적 잘 충족된 나라였다고 주장한다. G7 국가들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서 부의 총량이 많고 배분이 공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험사회론의 입장에서 볼 때, 부의 총량과 배분의 공평성은 인간의 복지와 삶의 질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어느 정도의 필요조건은 성취시킬지 모르지만, 결코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부의 총량이 많아지고, 분배가 공평하다는 것과 신체적 안전이나 생명의 보장 등 기타 정신적·물리적 위해(hazards)의 가능성은 별개 사항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잘 살게 될수록 신체와 생명의 위협이 덜한 환경 속에 살게 될 것이라는 가정을 은연중에 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산업사회가 심화돼 갈수록 부(富)의 배분은 공평하고 균등하게 돼갈지라도, 오히려 위험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더 불공평하게 배분돼 간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를 위험사회론의 관점에서 보면 국가 부의 총량은 60년 전에 비하면 기적처럼 증가했고, 절대빈곤층은 단군 이래 최저 상태를 구가하고 있지만, 오히려 위험과 불안전 문제는 증가하고 있고, 사회경제적 계층에 따라 그 위험과 불안전이 불공평하게 배분돼 나타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한국사회는 지난 50여 년 동안 돌진적 발전을 이룩해 왔다. 부의 총량 확대를 위한 노력이 국가수준에서는 물론이고 기업과 개인 수준에서도 죽을 힘을 다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위험과 불안전의 총량도 함께 증가해온 게 사실이다.

성수대교 붕괴라든가 삼풍백화점 붕괴의 경우가 그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건축의 설계 능력이나 시공기술, 또는 관리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부의 총량에 대한 압도적 관심이 위험과 불안전에 대한 예민성을 갉아 먹었기 때문이다. 잘 살게 돼 누구나 자가용을 굴리게 된 것은 축복이지만, 차에 치어 죽거나 상처를 입을 확률은 훨씬 더 커졌다.

지난 60여년 간의 부의 총량 확대를 위한 돌진과 질주는 부의 증진도 이루었지만, 위험과 불안전의 총체적 증가도 불가피하게 유발시켰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한편에선 축복이지만, 그것의 오남용은 범죄로 이어져 위험과 불안전의 증가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고, 부의 쟁취를 위한 과도한 경쟁에서 유발된 승자(勝者)와 패자(敗者)의 첨예한 대립은 사회 속의 위험과 불안전의 확률을 최대화 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런데 위험과 불안전의 총량증가도 문제지만, 위험과 불안전에 대한 노출 기회가 사회 구성원 사이에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여성, 어린이, 빈곤층, 노약자, 다문화 국민 등등)가 위험과 불안전에 노출될 확률이 강자들에 비해서 훨씬 크다는 것이다. 부의 양극화 문제도 중요하지만 위험과 범죄, 그리고 불안전의 양극화 문제도 대단히 중요하다.

요즈음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세상이 이래도 되는가 싶을 정도다. 그런데, 누가 주로 피해자인지를 보라. 사회적 약자가 주로 당하고 있다. 안이한 대책에 화나는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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