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영화에서조차 경찰은 들러리?
범죄영화에서조차 경찰은 들러리?
  • 이원우
  • 승인 2012.09.1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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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웃사람>, 경찰 불신의 ‘상식’이 자충수로 작용

만화가 강풀의 세계는 단순하다.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 모두에서 그렇다. 그런데 강풀의 웹툰을 거의 그대로 영화화한 작품 <이웃 사람>의 단순함은 유독 낯설다. 단순함의 전제조건은 ‘상식’에 기초한다는 점일 텐데 <이웃 사람> 속 인물들의 행동에는 보편적 의미로서의 상식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한 아파트 단지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다룬다. 범인 ‘류승혁’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같은 건물에 사는 여고생 ‘원여선’을 살해하는 사이코패스다. 단, 그는 별로 지능적이거나 치밀하지는 못하다. 단서를 곳곳에 흘리며 본인이 살해한 여고생의 귀신에 시달리는 인간적인(?) 사이코다.

생활공간을 공유하는 아파트 주민들은 거동이 수상한 류승혁을 조금씩 의심한다. 그런데 이 의심이 심화될수록 작품에 대한 근본적 의문점은 커진다. 이웃 사람 중 누구도 경찰에 신고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경찰’이라는 해결책을 아예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한다.

대신 작품 속에서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하는 것은 사채업자 ‘안혁모’다. 외삼촌마저 잔인하게 폭행하는 캐릭터로 그려졌던 그는 나름대로의 가슴 아픈 사연을 서서히 드러내며 관객들의 호감을 얻는다. 내친 김에 경찰이 해 주지 못한 ‘정의의 사도’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통쾌함을 제공한다.

경찰은 안혁모와 일군의 이웃 사람들이 정리해 준 상황을 그저 수동적으로 소화하는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일련의 설정은 영화적 측면에서 작품의 설득력을 떨어트린다. 강풀이 상식에 천착하는 작가임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 속 경찰의 무기력함은 공권력을 바라보는 우리 시대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소설가 공지영은 쌍용자동차 문제를 다룬 르포 <의자놀이>를 시작하면서 한 살인사건을 거론했다. 한 여성이 납치된 후에 범인이 화장실에 간 사이 신고를 했는데 경찰이 신속하게 대처하지 못해 결국 죽음에 이른 사건이다.

경찰이 각성해야 할 부분이 많은 사건이긴 하다. 하지만 이 사안이 쌍용자동차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음을 감안한다면 결국 그녀의 목적은 경찰에 대한 적개심을 환기하는 데 있었다고 보아야 옳다. 요즘 우리 시대가 공권력을 바라보는 방식이 대략 이러하다.

<이웃 사람> 속 경찰은 그 적개심에 짓눌려 퇴장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은 작품의 완결성을 함몰시키는 자충수로 작용하면서 관객의 뒷맛을 씁쓸하게 만든다.

최근 여러 건 발생한 흉악범죄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된다. 예방 효과가 이미 검증돼 있는 경찰의 불심검문조차 여론의 반발심을 자극한다. 이는 결국 공권력에 대한 지지기반이 약하기 때문이다.

범죄영화에서조차 들러리가 된 그들은 지금 안팎으로 설 데가 없는 상태다. 이러한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것이 새 시대의 ‘상식’이라면 그것이야말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단순한 것은 아닐까? 좋은 의미는 아니고 나쁜 의미에서만 그렇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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