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공공의 노예’인가?
의사는 ‘공공의 노예’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2.10.25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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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사회주의로 가는 대한민국

서울의 한 명문 의대를 졸업하고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전공의로 있는 A씨(여성)는 요즘 고민에 싸여 있다. 자신의 앞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비싼 의대 학비를 내고 죽어라 공부해 전공의를 땄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온통 우울한 것이었다.

“불법인 낙태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버텨오던 선배님이 지난 주에 결국 병원 문을 닫았어요. 빚 정리하고 호주로 이민을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 걱정이에요.”

A씨의 선배 의사가 산부인과를 개업한 지 3년여만에 문을 닫게 된 사유는 이렇다. 먼저 우리 보험 의료수가는 의료 원가의 74% 수준이다. 이는 의료비를 결정하는 의료심사평가원의 자료이니 믿을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의료보험 환자를 받으면 받을수록 적자가 누적된다는 거다.

그러면 이 적자를 메우는 방법은 통상 비급여라고 불리는, 즉 보험처리가 되지 않는 의료행위를 많이 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법률로 모든 항목이 정해져 있어 사실상 산부인과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산부인과 개업의가 문닫고 이민간 사연

방법은 있다. 조금이라도 이익이 남는 부분에 과다진료와 과잉치료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들도 요즘엔 정보가 많아져서 금방 눈치챈다. 민원이 들어가면 환급해 내야 하고 심하면 법의 처벌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소문이 나면 끝장이다. 그러니 이 부분도 여의치 않다.

지금까지는 약처방의 리베이트가 그나마 도움이 됐다. 하지만 이제 이것도 쌍벌죄가 적용돼 더 이상 어렵다. 의사가 구속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니 남은 건 불법낙태 시술이다. 전공의 A씨의 선배는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버텨왔다.

그러다가 결국 포괄수가제라는, 정부가 치료비를 딱 정해놓고 그 이상 받을 수 없게 만든 제도로 인해 병원문을 닫을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은 비단 산부인과만이 아니다.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의사를 ‘공공의 노예’로 표현한다.

“마땅한 권리를 빼앗는 자는 강도고 저항하지 않는 자는 노예죠. 오늘 한국의 의사들은 의료를 관장하는 관료들의 노예로 전락해 있습니다. 노예는 해방을 꿈꾸기 마련이죠. 이제 이런 불합리한 한국의 공공의료제도는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노환규 의협(醫協) 회장이 의사를 공공의 노예로 규정하는 데는 지난 2002년 의사들이 헌법재판소에 제기했던 한 위헌법률심사의 판결이 결정적이었다. 그해 의협을 중심으로 의사들은 의료법에 있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가 위헌임을 판결해 달라고 소원을 냈던 것.

이 법은 일반 병의원들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공단의 의료보험 지정기관이 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즉 개인 병원들도 국가가 운영하는 공공의료보험의 가맹점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이것이 개인의 자유권과 사적 소유권을 국가가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공공의 이익과 ‘노예’ 의사들

“말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왜 의사는 자기 돈 들여 의대졸업하고 자기 빚내서 병원을 차렸는데 원가에도 못미치는 의료보험비를 강제로 받고 치료를 하라는 걸까요. 만일 변호사들이나 회계사들이 그런 대우를 받는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아무리 의료가 인술이라고 해도 의사도 사람이고 국민입니다. 정부나 국가가 제가 의사되는 데 무엇을 해준 것이 있다고 이렇게 하는 걸까요. 원가에 맞는 의료비를 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입니다.”

한 의사는 그렇게 항변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냉정했다. 의협의 헌법소원은 기각됐고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법률은 합헌결정이 났다. 판결의 이유는 ‘공공의 이익’이었다.

하지만 헌재는 판결문에 조건을 달았다. 의사들의 재산권에 침해가 없다할 수 없으므로 국가는 요양기관(병의원)별로 의료수가를 차등해서 의료 발전에 저해가 없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헌재 판결 후 10년 동안 정부는 그러한 조건을 이행했던가.

“이행은 무슨 이행입니까. 지난 10년간 의료비 상승률은 물가 상승률을 밑돌았습니다. 여기에 비급여 진료 항목은 과다진료라며 엄격하게 제한됐고 제약사 리베이트도 불법으로 제한했죠. 문제는 국민들의 의료비 지출이 줄어들지 않자 건보공단이 결국 포괄적 의료수가제라는, 그것도 원가 이하의 말도 안 되는 정책을 들고 나온 것이죠.”

의사협회 한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우리 의료제도를 ‘사회주의’라고 정의했다. 만일 이 관계자의 말이 맞다면 사회주의 의료제도는 지속 가능한 것일까. 통계를 들여다 보자.

올해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통계로 본 한국의 보건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국민의료비 지출을 GDP와 대비해 본 결과 1990~2010년에는 4%였으나 2000년에는 4.5%로 그리고 2010년에는 7.1%로 증가했다.

반면 OECD 국가는 1990년 6.9%에서 2000년에는 7.8%로, 그리고 2010년에는 9.5%로 증가해 1990∼2010년 기간 중 2.6% 포인트가 증가했으며 이는 우리나라의 증가율보다 낮다.

문제는 늘어나는 의료비에 따라 건강보험의 재정적자 폭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건보공단은 2010년에 1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건보공단이 지난 달 15일 밝힌 ‘미래환경 변화에 따른 건강보험 중장기 재정추계 연구’에 따르면 보험료 및 수가를 인상하지 않고 현 추세를 유지할 경우 건강보험 재정은 당기수지 적자규모는 점차 늘어나 2015년에는 약 5조6000억원의 적자가 예상되고 있고 2020년에는 17조원, 2030년에는 49조원의 경영적자가 예정돼 있다.

다시 말해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성공적이라는 의료보험제도가 사실상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야기다. 취재의 대상이 됐던 한 의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의 공공의료 지속 불가능하다

“우리 국민들은 의료를 인술로만 볼 뿐 그것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해야 할 서비스라는 인식이 대단히 희박합니다. 여기에 복지를 금과옥조로 주장하는 정치권으로 인해 국민들은 의료를 정부가 국민에게 베푸는 시혜 정도로 생각합니다. 즉 좋은 의료를 공짜로 서비스 받고 싶다는 것이 지금 국민들의 생각 아닙니까. 하지만 그런 것은 천국에서나 가능한 일이죠.”

이 의사의 말은 정당하다. 세상에 공짜 점심이 없다면 우리 의료 서비스도 공짜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공공의료보험 정책이 ‘내돈 내고 내가 치료받는’ 것이 아니라 남의 돈으로 내가 치료를 받거나 남이 내돈으로 치료받는 제도라는 점에 있다. 가격이 싸다 보니 의료자원이 낭비되는 현상도 통계로 알 수 있다.

국민의료비에서 차지하는 공공지출 비율은 우리나라가 1990년 38.4%에서 2000년에는 48.6%로 그리고 2010년에는 58.2%로 증가해 1990∼2010년 기간 중 19.8% 포인트가 증가했다. 이에 반해 OECD 회원국은 1990년 73.3%에서 2000년에는 71.3%로 그리고 2010년에는 71.8%로 변화해 1990∼2010년 기간 중 1.5% 포인트가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건보공단과 정부는 아예 치료항목을 자장면값처럼 지정·동결하는 발상을 하게 됐다. 바로 포괄적 의료수가제도가 그것이다.

포괄수가제는 일종의 진료비(병원비) 정액제다. 치료 과정이 비슷한 입원환자군을 분류해 질병별로 보험가격을 정한다.

반면에 환자별 질병의 정도와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과 인센티브가 없어 포괄수가 종목에 대한 의료기술이 발전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따라서 포괄수가제는 대부분 공공의료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서구 국가와는 달리 대다수 민간의료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에 적합하지 않은 제도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일본에서 이 포괄적 의료수가제(DRG)를 시범 실시해 본 결과 일반병원 보다 DRG 적용 병원에서 재입원 환자 수가 증가하거나 주사·검사·처치 감소 등의 현상은 뚜렷이 나타났던 것으로 대한의사협회가 현지시찰을 통해 확인, 발표한 바도 있다. 이에 일본의사회도 정부의 DRG 도입 움직임에 대해 우려를 표명함과 동시에 결사반대 입장을 피력하고 있었다고 당시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러한 포괄수가제의 시행은 앞으로 정부가 의료에 있어서 공공성을 더 확대할 것인지의 바로미터가 된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주장이 있다. 공공의료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국공립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동시에 사립병원을 규제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는 것.

지난 8월 김미희 민주통합당 의원 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공병원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회 정책실장은 우리나라의 공공의료가 사립병원에서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를 대신하는 보완적인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현재 민간의료가 전체의료의 90%를 넘어선 상황에서 공공의료는 응급의료, 전염병 예방 등 소위 돈이 되지 않는 부분만을 맡고 있어 적자가 늘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얼마나 타당할까. 생생한 사실을 알 수 있는 표본이 있다. 건강보험공단이 공공병원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설립한 일산공단병원이 바로 그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회의 주장대로 민간병원을 규제하고 공공의료기관의 진료영역을 확충했던 일산공단병원은 어떤 상황일까.

공익이라는 이름의 ‘밥그릇’

이번 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정림 선진통일당 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건보공단 일산병원의 2006년부터 2012년 8월까지의 재무자료를 분석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문 의원은 “일산병원이 운영 성과를 발표하면서 공공병원으로서 재정수지 균형을 달성했다고 공표하고 있지만 장례식장과 같은 시설운영수익과 공단지원금 수익 등 사업 외 수익을 제외하면 해마다 적게는 40여억원에서 2011년에는 110억원이 넘는 손실을 봤다”고 지적했던 것.

류지영 새누리당 의원이 지적한 바도 같다. 류 의원은 지난 달 국회 업무보고 자리에서 “공단 일산병원은 실제적으로는 적자운영임에도 흑자인 것처럼 포장했다는 의혹과 함께 올해는 특히 인력 운영과 예산 집행을 방만하게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한 바 있다.

류 의원은 “일산병원의 진료형태와 재정 현황을 살펴보면 공공성을 띤다는 목표와 달리 늘어난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일반 병원과 동일하게 경영수지를 위한 외래진료를 치중하고 장례식장과 시설임대 사업에 매몰돼 있다”고 지적해 일산공단병원의 경영이 보건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간의료기관의 진료방식을 도입한다고 해서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건강보험공단 입장은 정반대다. 그들은 철저하게 민간의료기관을 불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건보는 일산공단병원을 성공사례로 만들어 이 모델을 전국 병원에 적용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런 의지는 이 일산공단병원을 3차의료기관으로 승격시켜서 민간 종합병원과 경쟁하겠다는 플랜에서도 나타난다.

이러한 상황은 매우 흥미롭다. 과연 서구에서 실패를 거듭했던 공공의료 병원의 모델이 한국에서는 성공할 것인가.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다. 이 병원의 운영자들이 과연 공공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으로 생각하느냐는 문제다.

지난 11일 서울역 광장에서는 요란한 꽹과리 소음과 함께 노조 시위 집회가 열렸다. ‘노동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라!’라는 구호와 함께 ‘쟁취! 임단협’의 플래카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국민건강보험공단 일산병원 노조를 포함한 사회보험 공단노조들이었다.

전체 조합원수는 1만7915명. 이들은 준공무원들이다. 신분보장은 물론 대우도 공기업에 준해서 박하지 않다. 일산병원을 운영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경우 평균 근속연수 14년, 직원의 80%가 과장급이며 평균 연봉은 5400만원대의 준공무원들이다.

이들이 이번 달 31일 공동 총파업을 선언했다. 총파업이 현실화될 경우 건강·연금·산재·고용 보험 분야의 업무 차질이 예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 봐야 한다. 공공의 이익은 정말 존재하는가. 공익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이해관계자들의 밥그릇만이 존재할 뿐은 아닌가 라고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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