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니가 오바마에게 진 까닭
롬니가 오바마에게 진 까닭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2.11.23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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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6일 대선에서 오바마를 찍은 한 아시안계 미국인에게 왜 오바마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물었다.
“오바마는 이민자들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그가 추진한 건강보험개혁법은 우리같이 보험 없이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닌가. 4년 더 하면 어려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롬니는 소수의 부자들만 대표하는 사람 같다.”

그는 주변의 다른 아시안계 미국인들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오바마를 찍었다며 오바마의 승리에 기뻐했다. 

미국에서 급속하게 늘고 있는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미국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몰표를 준 것이 롬니가 오바마에게 패한 대표적인 이유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체 유권자의 10%를 차지하는 히스패닉들 중 71%가 오바마를 지지했고 전체 유권자의 4%를 차지하는 아시안계는 73%가 오바마를 찍었다. 압도적인 차이다. 이들의 표는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룬 9-10개의 경합주들을 오바마가 싹슬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플로리다에서 히스패닉들 가운데 58%가 오바마를 찍었다. 네바다에서는 80%, 버지니아에서는 66%, 콜로라도에서는 87%의 히스패닉들이 오바마를 선택하며 박빙의 차로 승부가 나는 이들 경합주들이 오바마에게 넘어가게 했다.

백인 표 결집엔 성공했지만…

롬니가 이번 대선에서 백인들로부터 1988년 이후 최대인 59%의 지지를 얻었지만 히스패닉과 아시안계로부터 얻은 표는 역대 최소였다. 공화당은 2004년 대선에서 히스패닉으로부터 44%, 아시안계로부터는 42%를 얻었고 당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2008년 대선에서 히스패닉으로부터 31%, 아시안계로부터 33%를 얻었고 이번 대선에서는 각각 27%, 26%를 얻는 데 그쳤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표밭인 젊은층, 여성, 흑인들에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표가 더해지면서 이른바 ‘오바마 연합’(Obama coalition)이 강력하게 형성됐고 이는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가 완승할 수 있었던 주요인이 된 것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대다수가 오바마를 찍은 이유는 무엇일까? 오바마가 이민자들의 권익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히스패닉과 아시안계는 미국에서 이민자 그룹이다. 아메리칸드림을 갖고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로 그 가운데는 140만명에 가까운 불법이민자들도 있다.

이들은 미국에 정착하기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고 가정과 교육의 가치를 중시해 공화당은 이들이야말로 보수주의 가치를 대변한다며 공화당원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주장해왔다. 백인보다 평균수입이 높고 자영업을 많이 하는 아시안계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미국인들에게 공화당은 이민자들을 배척하고 미국사회가 인종적으로 다양화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백인들만의 정당으로 비쳐지고 있다. 이런 이미지는 아무리 보수주의 원칙을 공유한다고 해도 대다수 이민자 그룹들이 공화당에 등을 돌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불법이민자에 대한 입장이다. 롬니는 이번 대선에서 불법이민자들이 미국에서 합법적인 신분을 갖도록 하는 조치는 그들의 불법을 용인하는 ‘사면’이라며 반대 입장을 취했다. 불법이민자들은 스스로 미국을 떠나라고 했다. 공화당이 주정부와 주의회를 장악한 일부 주에서는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는 법안을 채택했다.

부모를 따라 어려서 미국에 왔지만 부모가 불법이민자가 되면서 같이 불법이민자가 된 젊은이들을 구제해 합법적으로 미국에 있도록 하자는 ‘드림(DREAM) 법안’도 공화당은 불법을 용인하는 것이고 또 다른 불법이민을 초래할 수 있다며 반대했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6월 이런 젊은이들에 대한 추방을 유예하고 미국에서 합법적인 신분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조치를 발동,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을 구제했으며 일부 주의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단속 강화를 월권행위라며 반대했다.

이런 차이로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그룹에게 민주당은 이민자들을 환영하고 인종적으로 다양화되는 미국사회를 수용하면서 이민자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곳인 반면, 공화당은 이민자들을 배척하는 곳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에 암운 드리운 선거

공화당은 히스패닉과 아시안계 유권자들을 자기들 편으로 끌어오지 못하면 향후 대선에서도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미국의 인구가 장차 백인은 줄고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계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기 때문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미국에서 백인은 전체 인구의 63%이고 히스패닉은 17%, 흑인은 12%, 아시안은 5%다. 하지만 2050년에 백인은 47%로 줄어드는 반면, 히스패닉은 29%, 흑인은 13%, 아시안은 9%로 증가한다.

공화당은 당장 불법체류자에게 합법 신분을 주는 등 포괄적인 이민개혁이 오랫동안 간과됐다며 이민법 개혁에 대한 논의를 바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지난 8일 내년에 이민법에 대한 광범위한 개혁을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 언론과 논평가들도 공화당은 이제 불법이민자들에 대한 ‘사면’을 약속해야 하고 이민자들을 환영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4일 사설에서 이민자들이 미국사회 실업률을 높이고 사회복지의 부담이 된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며 공화당은 미국의 발전을 위해 이민자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표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제니퍼 루빈은 지금은 공화당이 이민자들과 연결될 수 있는 후보들과 아메리칸 드림을 갖고 온 이들에게 호감을 주는 메시지를 갖고 적극 다가서야 할 때라고 분석했다.

공화당의 차기 대권주자 중 한명으로 거론되는 바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 역시 공화당은 부자와 같이 큰 사람들만의 정당이 아니라 다양한 유권자들을 수용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공화당은 보수주의 원칙들을 견지하고 이를 히스패닉과 아시안계에 잘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보수 논객인 찰스 크래스해머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가 붕괴되는 것을 보는 지금 공화당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보수주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지지세력을 인종적으로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대선에서 복음적 기독교인들이 대거 투표에 참가하도록 안내한 ‘신앙과 가족 연합’의 랄프 리드 대표는 “이번 선거 결과는 공화당이 덜 보수적이 되라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 메시지를 인종적으로 다양한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동안 다가서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좀 더 환영하면서 동시에 핵심가치를 잘 결합하는 전략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한국)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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