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여성의 3대 조건
멋진 여성의 3대 조건
  • 이원우
  • 승인 2012.12.0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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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이전에 ‘개인’으로 자유할 때 세상은 더욱 멋져질 것
 

유능한 일본 개그맨들은 글도 잘 쓰는 경우가 많다. 마츠모토 히토시(松本人志)도 그중 한 명이다. 1990년대 중반에 출간한 에세이 <유서(遺書)>와 <마츠모토(松本)>의 판매량을 합치면 550만 부를 훌쩍 넘긴다.

재기 넘치는 발상으로 가득 찬 이 책들에는 성별에 관련된 파격적 주장이 있었다. ‘여자는 최고의 개그맨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견 가부장적이기 짝이 없는 이 말에 여성독자들의 항의는 빗발쳤다. 하지만 그에게도 나름의 근거는 있었다.

“아무리 재미 있는 말을 해도 귀고리나 브로치, 화장을 하고 있으면 왠지 흥이 깨져버리는 것은 나뿐인가? 어차피 남자를 의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유도 시합을 볼 때도 마찬가지다. 남자선수는 죽을힘을 다하고 있다는 게 쉽게 느껴지지만, 여자선수의 경우 도복 안에 입고 있는 티셔츠가 아무래도 마음에 걸린다.

100% 유도에 빠지지 못한 채 맨몸이 보일까봐 두려워하고 있음이 느껴진다는 거다. 유도가 그러한데 개그는 오죽할까. 수치심도 체면도 없어야 하는 개그맨에게 있어서 최종적으로 지켜야만 할 무언가가 있는 ‘여성’은 분명 약점이다.”

여성 독자들께서는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시길. 이것은 한 일본 개그맨의 20년 전 생각일 뿐이다. 여성이기 때문에 강점을 갖는 분야도 세상에는 잔뜩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켜야만 할 무언가에 천착한다는 건 리더(leader)에겐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우리는 이미 조국을 지키기 위해 두려움 없이 선봉에 나섰던 유관순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사례를 알고 있다. 영국의 대처 총리는 여론의 반대 속에서도 자기 신념을 지켰고 최근엔 독일의 메르켈이 그 계보를 이으려 하고 있다.

남성이라고 못할 건 없을 일들이지만 리더가 여성일 때 수성(守成)의 과정은 더욱 숭고하고 값져 보일 때가 많다.

멋진 여성의 3가지 공통점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각자의 인생을 이끌어가는 리더다. 당연히 모든 여성들에게는 자기만의 가치를 지키며 험난한 세상을 헤쳐 나갈 잠재력이 내재한다. 반드시 국가나 기업의 리더가 아닐지라도 삶을 능동적으로 리드하는 멋진 여성들은 많이 있다.

그렇다면 멋진 여성의 전제조건은 무엇일까. 20대의 시간을 온통 ‘멋진 여자’를 찾는 데 보낸 뒤 <연애의 뒷면>이라는 책까지 휘갈긴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드릴 말씀이 매우 많다. 적어도 나의 판단으로 멋진 여성들은 세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이다.

① 가볍지 않을 것

‘멋진 여자’를 다르게 표현하면 ‘스타일(style)이 있는 여자’다. 여기서의 스타일이란 옷이나 외모의 측면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살아가는 방식의 문제인 것이다.

스타일이 있는 여자는 인생의 수많은 굴곡 앞에서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태도를 정돈하며 방향을 가늠한다. 가볍지 않은 이 태도는 남성들을 매혹시킬 뿐 아니라 여성들에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② 어둡지 않을 것

자기 스타일을 수립하는 데 사색(思索)은 필수지만, 지나치게 생각이 많은 여자는 자칫 어두워질 염려가 있다. 너무 많은 생각은 얄팍한 비관주의로 흐를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비관적인 사람은 잠깐 만나기엔 멋지고 깊이 있어 보이지만 긴 시간을 함께 하다 보면 사람을 지치게 한다. 결국 상대방의 낙관주의마저 앗아가는 해로운 존재로 변하고 만다.

황성준 편집위원은 본지 칼럼집 <유럽과의 역사투쟁>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웬만한 일에 실망하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지독한 비관주의자이기 때문이다. 워낙 애초에 비관적이기 때문에 실망할 일도 좌절할 일도 적다.”

내공 있는 비관주의자는 어둠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다. 멋진 여자는 어둡지 않다.

③ ‘여성’에 머무르지 않을 것

마지막이 가장 중요하다. 많은 여성들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때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앞세움으로써 몰(沒)개성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개인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사회적인 문제를 논할 때에도 여성의 스펙트럼을 씌우기 때문에 깊이 있는 대화에 한계가 생긴다.

진정으로 멋진 여자는 여성임을 앞세우기 이전에 개인(individual)을 중시한다. 자기 앞에 있는 사람 또한 남/여 이전에 개인으로서 인식한다. 당연히 스스로를 여성의 틀 속에 가두는 사람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격조가 묻어난다.

여자라면 시오노 나나미처럼

위의 세 가지 전제조건을 골고루 갖춘 ‘멋진 여성’으로 가장 먼저 꼽고 싶은 사람이 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塩野七生)다. 그녀와 직접 만나 대화해 본 적은 없지만 책 속에 빼곡하게 들어찬 문장들만으로도 그녀가 멋진 여성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우선 그녀는 가볍지 않다. 1992년부터 2007년까지 <로마인이야기> 시리즈를 1년에 한 권씩 내놓겠다는 약속을 완벽하게 이행한 그녀가 아닌가. 로마의 장구한 역사를 다루는 그녀의 필치 또한 15년 동안 한 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최근 발간된 <십자군이야기>는 전작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여전히 장쾌한 매력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으로 그녀는 어둡지 않다.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가인 것이다. 그녀의 유머러스함은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남자들에게> 등의 에세이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생각은 깊게, 연구는 치밀하게 하면서도 웃음으로 긴장감을 희석시킬 줄 아는 멋진 여성이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여성에 머무르지 않고 개인을 지향한다. 그녀의 작품 <침묵하는 소수>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 보수주의에 보내는 헌정사에 다름 아니다. 그녀의 글을 읽다 보면 여성과 남성의 경계는 흐려지고 그저 글을 쓴 개인과 글을 읽는 개인만이 남게 된다. 이 정도면 충분히 멋진 여성이 아닐까.

한국인들은 지금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여성 대통령이 배출될 확률이 높은 시기를 통과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지금, 한국의 여성들에게 묻고 싶다. 이 멋진 시대에 발맞춰 멋진 여성이 될 준비가 돼 있는가?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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