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한일관계, 과거사 재인식으로 풀자
새로운 한일관계, 과거사 재인식으로 풀자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01.04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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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랍 26일 일본 총선에서 승리한 자민당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공식 출범했다. 일본 극우 정치세력의 지지를 받는 아베 총리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보여준 극우적 발언은 우리 정부는 물로 중국과 주변 아시아국으로서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다만 정부 출범 첫날인 26일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주변국과 불필요한 갈등관계를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 소장은 “아베 정부가 극우공약을 내놨고, 전보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겠지만 주변국과의 긴장관계를 원치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진창수 소장의 분석에 의하면 아베 총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일본 재무장화’다. 이를 위해 아베 정권은 헌법 개정을 통한 집단적 자위권 허용을 위해 주변국과 마찰을 빚을 수 있는 과거사 문제를 유연하게 풀어 나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이런 문제에 대응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일본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 일제강점 36년에 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생각해 볼 때도 됐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서로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또 따질 것은 따지는 합리적인 자세를 갖춰야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에 도움이 될 것이다.

미래 한일관계, 합리적 과거의 해석에 달렸다

보수우파진영에서 한일 과거사를 보는 문제에는 균열이 있다. 민족주의진영에서 해석하는 일제 36년간의 강점기는 그야말로 치욕과 고통의 세월이다. 반면에 이를 신중하게 팩트 중심으로 파악하려는 움직임도 있어왔다.

반드시 그러한 움직임을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말할 이유는 없는데, 그것은 종북과 좌파진영에서 붙인 이름이기 때문에 그렇다.

때문에 일제 36년이라는 강점기에 대한 신중한 해석은 오히려 종북-진보-좌파진영에서 일제 강점의 역사를 지나치게 체제 부정의 목적으로 해석해온 것에 대한 검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경제사를 연구해 온 서울대 이영훈 명예교수(경제학)의 이야기다.

“좌파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행사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권력이 친일문제입니다. 지난 60년간 좌파는 무슨 일만 있으면 우파를 친일파로 몰아세우는 거죠.

건국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보수적인 이념만 가지고 있으면 모두가 친일파라는 거에요. 그러고는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친일파를 청산하자고 합니다.

실제로 그러한 취지에서 지난 정부 시절 친일파를 조사하고 약 4,000명의 명단을 작성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해방 후 우리의 역사를 살펴보면 결코 친일파가 지배한 역사가 아니에요.”

실제로 친일문제는 좌파진영이 자유보수진영을 비난하는 데 있어 ‘전가의 보도’였다.

물론 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항일투사들과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노고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일본의 지배하에서 생존과 체념의 삶을 살며 자식들을 교육시켜 왔던 대부분의 조선 민중들과 그러한 가운데 근대 계몽운동을 펼쳐왔던 수많은 지식인들을 간단하게 ‘친일 부역자’ 내지는 ‘친일인사’로 몰아가는 것이 타당한가 라는 점이다.

더구나 이러한 친일공세에는 민족 공산주의와 연결된 종북이념마저 가세하고 있어 더 혼란을 주고 있다. 심지어 항일 독립운동을 했던 이승만 대통령마저 친일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세력들은 김어준, 나꼼수류의 ‘막가파 저널리즘’ 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다. 왜 일제 36년간 조선 민중들은 대규모 항일시위나 적극적인 반일운동을 펼치지 않았던 것일까. 민중들이 3.1절에 거리로 몰려 나왔던 것은 한일합방이 되고난 근 10년 후였다.

만일 그때 고종의 장례식이 없었더라도 그런 자발적 대중 집회가 가능했을까. 왜 조선 민중들은 일제시기에 그전보다 더 많은 쌀을 생산하고 소비했으며, 자식들을 일제가 세운 근대식 학교에 보내려 노력했던 것일까. 이영훈 서울대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일제시대에는 국민들이 식민지적 억압과 차별에 눌리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나 새로운 문화로 인해 뻗어나가는 양면적 모습을 가지게 됐죠. 과거 조선말의 양반과 지주에게 수탈됐던 구조가 와해되면서 이 당시 인구도 많이 늘었지요.”

이 교수가 이끄는 낙성대경제연구소가 펴낸 책, <한국의 경제성장 1910~1940>이란 책을 보면 이 기간에 조선의 경제는 일제강점기에 약 연평균 3.6% 정도 성장했다. 당시 세계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같은 기간에 인구증가율은 연 1.3%대였다.

인구가 늘었다는 점은 이전 시기에 비해 생활의 여건이 개선되었다는 지표로 해석할 수 있다. 여기에 부합되는 데이터는 바로 일제 기간 중에 조선 민중들의 쌀 생산량과 소비량이 증가해서 1915년 이전으로 하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일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일제가 곡물을 수탈해 갔다면 조선에서의 쌀 생산량과 소비량은 시계열적으로 감소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1910년부터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인 1940년에 이르기까지 조선의 경제 상황은 이전 구한말에 비해 더 나아졌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이를 바라보는 조선의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의 내면 풍경은 어땠을까. 아마도 일제강점 초기에는 울분에 휩싸였겠지만 조선 민중들의 현실적인 삶이 개선되는 상황을 목격하면서 10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 체제에 동화돼 가는 것이 정상적 아닐까.

식민지 근대화론이 아닌, 타율적 근대화론

이러한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라는 날선 비판을 받지만 정작 이 문제를 연구해 온 김낙년 동국대 교수는 잘못된 형용 모순이라고 반박한다.

“일제시대의 경제성장을 얘기하는 우리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한다고 오해받고 있는 것이죠. 일제강점은 조선 민중 의지에 반한 침탈이라는 것 하나만으로 충분히 비판할 수 있습니다.

경제가 성장했다는 이유로 일제 지배가 정당화된다면 우리는 정말 일제를 비판하지 못하게 됩니다. 다만 성장의 명백한 수치가 있는데 일제의 수탈·착취만을 주장하는 건 국제적으로 제3자가 보면 수긍하지 못하죠.”

김낙년 교수는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국내보다는 국제 학계에서 인정받으려 노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미 진영의 논리로 인해 명백한 사실도 인정하지 않는 세력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허수열 충남대 교수는 <개발 없는 개발> <일제초기 조선의 농업> 등을 통해 낙성대경제연구소 측의 연구성과를 전체적으로는 인정하면서도 “조선의 국내총생산(GDP)이 증가했더라도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의 GDP는 증가하지 않았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낙년 교수는 “일본인이 들어와 경제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경제활동의 압도적 부분은 조선에서 일어났고 조선인이 했다”고 반박한다. 조선인들의 경제활동 결과가 통계로 잡힌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낙년 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차가 멕시코에서 생산되면 그 나라 GDP로 잡힙니다. 당시에도 일본 자본이 들어왔지만 조선 내에서 고용·거래·지출이 일어났죠.”

그러자 이번에는 반대측에서 낙성대경제연구소의 통계 데이터를 문제 삼았다. 당시 일본의 제국주의 통계는 신뢰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일제가 1920년대 도입한 통계방식, 즉 ‘미조구치’방식은 당시 국제 회계기준으로 공인받은 것이었다.

아울러 당시 일제는 조선을 병합해서 근대화 발전의 플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엉터리 통계를 작성할 이유가 없었다는 것이 낙성대경제연구소의 입장이다.

이러한 공방의 핵심은 일제강점의 모습이 우리가 민족주의 교육으로 받아온 내용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자유보수진영에서 반발심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고 해서 일제강점이 정당화된다거나, 미화되는 것이 아님을 연구자들은 한결같이 주장한다. 일본의 타율적 근대화가 조선의 경제성장에 바탕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긍정적이나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 대신 당시의 현상을 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래야만 우리가 해방 후의 경제 성장과 박정희시대, 고도 산업화의 배경도 이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영훈 서울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역사는 사실 그대로 해석해야 돼요. 자꾸 오도를 하면 안 되죠. 젊은 세대에게 불편한 느낌이 있을지 몰라도 진실에 맞서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진실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극복해 나가야 하는 것은 역사적 진실 자체를 정직하게 받아들이고 위축된 현 시점에서 좌파의 문화권력에 자꾸 휘둘려 나가는 것을 막아서는 거에요.”

이영훈 교수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그것은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냈던 ‘프레이저 동영상’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지 밝혀 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한 프레이저 동영상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의 수출업적을 단지 미국의 계획과 요구에 따랐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취지로 묘사한다. 하지만 박정희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동안 수출 대박이 터진 것은 미국도 예상하지 못했던 철강분야였다.

일제 근대화-이승만 재건화-박정희 산업화의 고리

당시 제철소는 삼화제철소와 대한중공업공사 두 곳이었다. 6.25 때 이 두 곳은 거의 파괴, 방치돼 있었다. 그것을 다시 복구했던 이는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실적 부진으로 있던 삼화제철을 58년 민영화했다. 그 결과 61년 삼화제철은 3기의 용광로를 가동했고 연산 2만1000M/t의 선철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승만 정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54년 대한중공업의 제강업을 재건하기 위해 서독의 DEMAG회사에 50M/T급 평로 1기의 건설을 발주했으며 56년말에 준공했다. 뒤이어 57년에는 같은 회사에 연산 12만M/T의 분괴압연시설, 그리고 연산 10만M/T의 중형 압연시설 등을 발주해 59년 말에 대부분 완공했다.

이러한 토대에서 제선, 제강, 압연으로 이어지는 철강산업의 기본 줄기가 국민적 산업으로 확보됐던 것이다. 아울러 이러한 제철산업의 구조가 70년대 포항제철로 이어졌고 포항제철은 이후 우리 산업의 심장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이영훈 교수는 이러한 철강의 인프라가 사실은 일제시대에 이뤄진 것임을 밝힌다.

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 수출을 견인한 삼화제철소와 대한중공업공사는 모두 일제 강점기에 구축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좋든 싫든 일본의 자본이 한국 근대화에 영향을 줬다는 점을 부정하기 어렵게 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한일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시각을 좀 달리 해보자면 일본은 대륙진출을 위해 한반도를 강점했고 여기에 산업 인프라를 심었으며 이를 운용하기 위해 조선 민중들에게 근대화 교육을 실시했던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의 계획이 성공했다고 믿었으며 그러한 시기가 근 30여년간 지속됐던 것이고 이 과정에서 많은 조선의 지식인들과 엘리트들은 일본의 그러한 근대화와 선진문명에 대해 저항에서 순응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결국 42년부터 시작된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배는 조선에 산업 인프라를 그대로 조선인들에게 넘겼고 우리는 해방후 일본이 남긴 근대 산업 인프라와 인적자원을 통해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고 말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에게 ‘식민지 근대화’가 아니라 ‘타율적 근대화’라는 새로운 개념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해방후 자율적 현대화가 설명될 수 있다.

조선은 일본에 병탄되기 전에는 청의 ‘속방’(屬邦)이었다. 왕실의 중요한 인사권은 대부분 청국의 승인하에 이뤄졌다. 그래서 1896년 독립협회가 한국의 영구 독립을 선언하기 위해 청나라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迎恩門) 자리에 전국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해서 독립문을 세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작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국제정세에 어두웠던 쇄국적 조선말기의 엘리트들과 참혹한 수탈과 매관매직에 골몰했던 부패한 양반계급들의 망국적 역사가 아닐까.

이제 한일관계는 과거의 구원(舊怨)을 씻고 21세기의 동반 협력자가 돼야 할 운명에 처했다. 날로 팽창하는 중국의 경제,군사력 때문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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