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감의 ‘끝나지 않은 싸움’
서울시교육감의 ‘끝나지 않은 싸움’
  • 이원우
  • 승인 2013.01.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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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원 114명 중 민주통합당 77명…교육위원회와도 마찰


2012년 12월 19일은 18대 대선이 있었던 날로 우선 기억된다.

89.9%를 기록한 50대의 경이적인 투표율, 예상을 뛰어넘은 20대의 박근혜 지지, 아버지의 5‧16을 연상케 하는 딸의 득표율 51.6% 등이 끊임없이 회자되며 ‘대선 무용담’을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서울시교육감 재선거에 대한 관심은 턱없이 작았다. 선거 당일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던 순간부터 그랬다.

대선 결과가 박빙으로 예측되며 긴장감을 자아냈던 것에 반해 교육감 재선거 출구조사는 일찌감치 문용린 후보의 낙승을 예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과 역시 예측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문 후보는 54%의 득표율을 보이며 37%의 진보 단일 이수호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정치색이 완연했던 서울 교육의 재탈환.’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서울의 교육 문제는 그렇게 ‘해피엔딩’의 느낌으로 점점 멀어져갔다.

재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뿐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선거 다음날인 20일 오후 서울시교육청 대강당에서 짤막한 취임식과 기자간담회를 연 뒤 곧바로 업무에 돌입했다. 취임을 준비할 어떤 여유도 없이 곧바로 업무에 돌입한 이유는 이번 선거가 재선거였기 때문이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곽노현의 경우 한 달 정도 취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7월 1일에 거행된 취임식 역시 배우 권해효, 개그맨 노정렬 등이 출연해 갖가지 행사를 진행하며 약 4시간 동안 진행됐다. 혁신학교 도입, 무상급식 추진 등의 ‘곽노현표 교육’은 그렇게 처음부터 화려한 축포를 울리며 출발했던 것이다.

그에 비하면 문용린 교육감의 취임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도 화려한 축하행사도 없었다. 곽노현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것만으로도 그의 임기 1년 6개월은 턱없이 짧게 느껴질 뿐이다.

문 교육감이 “임기가 짧아 많은 일을 하지는 못한다”는 말을 자주 반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새 판을 짜기는 커녕 중심을 잃어버린 서울 교육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조차도 쉽지 않을 만큼 시간과 자원이 부족한 것이다.

서울시의회의 현재 상황을 보면 단순히 보수 성향 교육감을 선출했다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MB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면서 민주통합당에 압승을 안겨줬던 2010년 지방선거의 결과대로 서울시의회의 전체의원 114명 중 77명이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구성된 상태인 것이다.

1주일 만에 터져 나온 마찰음

야성(野性)을 가지고 15개월이나 먼저 업무를 수행해 온 서울시의회의 ‘텃세’를 뚫고서 문 교육감은 그동안 일관되게 주장해 온 ‘교육의 본질적 가치’를 지켜낼 수 있을까.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취임 후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부터 문 교육감과 서울시의회 간의 갈등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시의회 교육의원들과 처음으로 공식적인 만남을 가진 것은 작년 12월 26일의 간담회에서였다. 2013년도 시교육청 예산안 계수조정 및 의결을 앞둔 상황에서 전반적인 의견을 알아보는 이 자리에서부터 상호 간의 의견 차이는 드러났다.

문 교육감은 학력저하 등 혁신학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이미 운영 중인 61곳의 혁신학교는 유지하되 더 이상의 확대는 곤란하다는 비판적 입장을 밝혔다.

반면 교육의원들은 2013년 혁신학교 추가 지정을 위한 예산이 이미 확보돼 있음을 근거로 들면서 사실상 확대를 압박했다.

결국 해를 바꿔 1월 4일에 의결된 서울시의회-서울시교육청 간에 합의된 예산안은 ‘혁신학교 6곳 신규 지정’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문용린 교육감은 “기존에 완료된 행정 절차를 존중한다”고 말하며 신규 지정의 배경을 밝혔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들은 ‘문용린의 판정패’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한편 서울시의회 일부 의원들은 이 결정에 대해서조차도 기자회견을 열며 불만을 제기했다. 학부모들이 혁신학교 지정을 청원한 서초구 우솔초등학교와 구로구 천왕중학교 등 2개 신규학교 또한 추가 지정 대상으로 포함시키라는 것이다.

두 학교의 예비학부모 30여 명은 지난 8일 오후 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며 해당 학교들의 혁신학교 지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문용린의 딜레마

많은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역풍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문용린 교육감에게 ‘단호한 결단과 행동’을 주문한다. 전(全) 방위적으로 펼쳐져 있는 곽노현의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단호함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문용린 교육감의 딜레마는 눈앞에 펼쳐진 복잡다단한 갈등의 장벽을 그저 단호함만으로 헤쳐 나갈 수 없다는 데 있다. 그 나름의 뜻을 펼쳐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서울시의회의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문 교육감은 취임 직후부터 학교시설 및 환경관련 예산의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2011년 서울을 포함한 전국 16개 시도교육청의 경우 무상급식 등 교육복지 예산비율은 전년도에 비해 27% 늘어난 반면 냉난방 등 교육환경 개선시설비 비율은 6%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한국교육개발원). 식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는 학교가 정작 냉난방에는 소홀한 아이러니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예산이 조정이 필수적인 바, 시의회와의 관계는 문 교육감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본질적 요소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하나를 내 주어야 하는 것이 정치다.” 2012년 추석 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광해>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싫든 좋든 2014년 6월 30일까지 함께 얼굴을 맞대고 교육문제를 논의해야 할 서울시교육청-서울시의회의 ‘불편한 동거’는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그들은 서로 무엇을 받고 무엇을 양보해야 할 것인가. 서울 교육의 색채를 바꿔놓을 이 치열한 대결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심과 주목이 요청되는지도 모른다. (미래한국)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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