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보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대학생 보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 이원우
  • 승인 2013.01.18 1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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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한국> '청춘보수 좌담회' 개최


소수(少數)로 산다는 건 긴장감을 동반한다. 비난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혼자만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불안감이 필연적으로 따라붙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20대 보수’로 살아가는 것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눈 딱 감고 주변 친구들의 의견에 순순히 따라가면 ‘개념 있다’는 말, ‘깨어 있다’는 말 정도는 쉽게 들을 수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굳이 “한국의 (자칭) 진보는 틀렸다”고 목소리를 내는 20대 보수들. 이 ‘소수자’들은 어떤 계기로 남과는 다른 경로를 걷고 됐고, 또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래한국>은 보수적 정치성향을 가지고 있는 20대 청년 네 사람을 초청해 좌담회를 개최했다.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본인의 정치적 성향을 언제 깨닫게 됐는지부터 얘기해 보면 어떨까요.

 손세준

손세준(한국외국어대학교 터키어학과) : 저는 정치성향이 성장배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데요. 제 경우 할아버지께서 국가대표 육상선수와 감독을 지내셨습니다. 그래서 방안에는 항상 태극기와 국가대표 운동복, 그리고 대한민국 대표로서 한 평생을 사신 흔적들이 녹아 있었어요.

그런 환경 속에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국가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전교조 수업, 광우병 파동, 희망버스 같은 시위현장을 경험하고도 함께 휩쓸리기보다는 그 허상에 주목할 수 있지 않았나 싶고요.

결정적으로 군복무 중에 경험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도발은 제 정치적 성향을 확실히 알게 해줬을 뿐더러 건강한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됐습니다.

보수주의자가 된 이유는…

윤희정

윤희정(중앙대학교 사학과) : 저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단, 어린 시절부터의 성격과 환경이 중요하다는 데 동감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말수가 적었고 책을 읽거나 독후감을 쓰는 걸 좋아했거든요.

할아버지의 철학에 따라 절약하는 가풍도 있었고요. 이런 성격들이 제가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에서 반공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제 가치관과 크게 갈등을 빚었던 것 같지 않아요.

그 대신 고등학교 3학년 때는 전교조 소속 근현대사 선생님과 매시간 언쟁을 벌였어요. 이런 경험이 제 성향을 표출하고 인식하도록 만든 계기라면 계기인 듯합니다.

 강동렬

강동렬(경기대학교 경찰행정학과) : 저는 제가 완전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는 보지 않아요. 여당을 지지했지만 원래 진보였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다만 예전에 생각하던 진보의 개념과 지금 생각하는 진보의 개념이 많이 달라졌어요.

저 역시 가정 형편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서 예전에 생각하던 진보(현 야당들)의 구호들은 굉장히 매력적이고 자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대안이 너무나 근시안적인 것이라 사회적인 관점에서는 퇴보나 다름없는 것이라는 판단이 서면서 여타의 ‘진보’들과는 의견을 달리하게 됐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보는 ‘차차 나아지는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더 나아지고 더 좋아지는 것 그 자체입니다. 조금 더 멀리보고 크게 보고 넓게 보는 관점에서의 ‘진정한 진보’는 현재의 여당이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양혜진

양혜진(숙명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저는 가정보다 학교의 영향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정외과에 입학해 들었던 첫 번째 전공수업이 바로 이춘근 교수님의 국제정치학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을 계기로 기존에 알고 있던 잘못된 사실들에 대해 사고의 전환을 하게 됐고 보다 더 공부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겼어요.

지정학적 조건이 대한민국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동시에 앞으로 대한민국은 국제정세 변화에 빠르고 전략적으로 대응해나가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 선택이야 자유겠지만 한국의 보수세력(혹은 현재의 여당)을 지지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예를 들면 주변 친구들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지진 않았나요? 현재 캠퍼스 내 보수‧진보의 세력분포도는 어떻습니까?

손세준 : 여전히 진보성향의 학생들이 많죠. 보수성향의 학생들은 자기 성향을 드러내길 여전히 두려워합니다.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했던 어떤 후배는 어느 순간 인사도 안하고 연락도 끊기도 하더군요.

보수인사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면 왠지 바보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요. 한 가지 위로가 되는 사실이 있다면 5년 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는 점이겠죠. 제가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성향을 드러내면 보수성향 학생들은 소심하게 쪽지나 채팅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옵니다. 보수성향 학생들도 분명히 많은데 조용히 숨어 있다고 봐야죠.

윤희정 : 제가 신입생 때 광우병 파동이 일어났는데 아무래도 진보적 성향이 강한 학과(사학과) 동기와 선배들과 의견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제 나름대로의 신념대로 발언한 것뿐인데 결국 학과 사람들과는 완전히 교류가 단절됐어요.

어느 고학번 선배가 지나가면서 “저기 한나라당 진성당원 지나 가신다”고 비아냥거리더군요.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대학가가 많이 보수화된 부분은 있어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중도보수’로 칭할 수 있을 것 같은 학생들이 늘어났으니까요.

사실 보수정당이 젊은 층에 인기가 없는 건 비단 우리나라만의 현상은 아니에요. 대학생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의 과제겠죠.

20대 끌어안기가 보수의 과제

양혜진 : 진보적 사고를 가진 친구들이 유독 많아 보이는 건 진보 측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워낙 좋은 마케팅을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보수적 성향을 지닌 대학생들은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SNS에 올라가는 내용은 문재인 후보에 유리한 것들이 훨씬 많았어요. 이러한 경향은 오프라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 정외과 학생회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간부회의에 참석해 학생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을 때 역시 진보적 성향의 학생들이 많다는 걸 느껴요.

강동렬 : 지금 대학가에서 ‘기호 1번’을 지지한다고 말하는 건, 비유해서 표현하면 부산에서 롯데 자이언츠 아닌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것과도 비슷해요. (일동 웃음) 청년들의 야권 지지세는 여전히 압도적입니다.

- 투표 얘기가 나왔으니 18대 대선 얘기를 해 보죠. 다들 대선은 이번이 처음이셨을 텐데 어떤 느낌이던가요? 또 50대의 투표율 89.9%를 보면서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손세준 : 역시 대선이라 그런지 유난히 가슴을 졸이면서 봤어요. 그게 흥미진진한 면이 되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았다는 점에서 씁쓸했습니다. 지역 중심 구도는 여전했고, 이제는 세대갈등이 새로운 문제로 부각됐으니까요.

50대의 89.9%는 흥미롭고 놀라웠습니다. 이는 이른바 ‘전원투표’, 모든 분들이 다 투표했다고 봐야 하죠.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을 지켜주셨구나 싶은 생각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지금의 국면은 한국 보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청년들이 이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대한민국에 희망이 없어지는 거겠죠. 청년들이 책임감을 느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윤희정 : 정작 박정희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그 딸인 박근혜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는데, 전교조와 종북세력들의 세례를 받은 젊은 유권자들은 문재인 후보에게 더 많은 표를 보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얼마 전에는 한 포털에서 “노인복지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무려 18만 명이나 서명했다고 하더군요. 가슴이 아픕니다. 이번 18대 대선은 대한민국과 반(反)대한민국의 일대결전이었다고 저는 감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박정희 대통령과 함께 대한민국을 세우고 일군 50대 이상 유권자 분들이 대한민국 진영의 승리에 기여함으로써 다시 한 번 나라를 구한 것이고요.

진보란?

- 거의 ‘보수주의 교과서’나 다름없는 의견들인데요. 많은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합니다. “20대에 진보가 아니면 가슴이 없는 것이다.” 이 명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양혜진 : 반드시 젊다는 이유로 진보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정치학을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사회문제란 그리 단순하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회는 다층적인 체계이고 여러 문제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에 근시안적으로 접근하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있어요.

신중하고 점진적인 자세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에서부터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사회문제를 다루는 바람직한 방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령과 관계없는 ‘합리적 사고방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강동렬 : 젊었을 땐 도전과 변화에 열려 있어야 한다는 건 지당한 말씀이라고 생각해요. 젊음은 실패에 대한 겁을 없애주고 회복을 도와줍니다.

하지만 그 도전도 어느 정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것에 대해서 추구할 때 가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전혀 실현이 불가능한, 혹은 실현은 가능하지만 득 될 것이 없는 도전과 변화는 만용과 무식의 소치밖에는 안 된다고 보거든요.

손세준 : 진보적, 혹은 이상주의적 성향을 가지는 게 나쁘다고는 보지 않아요. 개인이 살아온 성장배경과 가치 판단의 기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것과 허구, 음모론, 논리의 모순, 잘못된 프레임을 추구하는 건 분명히 다르죠. 그런 걸로 권력을 잡으려는 진보라면 허무맹랑한 궤변을 내세우는 세력에 불과하다고 봐요.

 

- 아까 ‘마케팅’ 얘기도 나왔지만 한국에서 진보임을 자처하는 세력들을 보면 참 조직화에 능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데요. 그런 좋은 부분은 배우고 벤치마킹하는 게 한국 보수의 나아갈 길이 아닌가 싶습니다. 청년 보수로서 ‘어른 보수’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어떤 걸 들 수 있을까요?

강동렬 : 여권을 지지한다 하면 고생 없이 부유하게 자랐을 거라는 선입견과 오해를 받기 십상입니다. 제 경우 완전히 그 반대임에도 불구하고요.

여권을 지지하는 20대에도 매우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수단이 있으면 좋겠어요. 거시적인 시각을 길러줄 선후배간, 동년배간 플랫폼과 허브 구축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윤희정 : 박근혜 당선인이 공약하신대로 청년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걸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기구 같은 것을 설치해 활성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것이 결국 보수진영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아직까지 20대 보수는 필요할 때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버려지는’ 듯한 느낌이 많은데 그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의 보수진영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봐요. 새누리당이 청년들의 건강한 지지를 받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고, 또 그런 사실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보수주의 조직화 필요

- 앞으로도 지금과 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갈 것이라는 전제 하에 ‘보수’를 정의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양혜진 : 제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보수의 개념은 이렇습니다. 불확실하고 예측불가능한 우리 사회에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했을 때 우선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부분에서부터 점진적으로 차근차근 개선시켜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해요.

최근 여러 가지 사회 이슈가 떠오를 때 사건의 진위를 따지기 보다는 흔들리고 휩쓸리는 모습을 보면서 국가의 근간이 되는 가치가 과연 존재하는지 의문을 품곤 했는데요. 사회 변화의 양상을 초월해서 든든하게 사회를 떠받쳐주는 에너지가 돼 주는 게 바로 보수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손세준 : 보수는 개인이 추구하는 가치와 철학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각 개인들이 스스로에게 세운 일종의 규범이 있고, 그 규범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게 해주는 선(善)이 있습니다. 사유재산보호, 법치주의와 안보 확립이 이러한 선이고, 축적된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선을 지키며 자유를 누리는 개인들의 철학이 보수라고 생각합니다.

‘20대 보수’라는 이름의 소수자로 산다는 건 말 그대로 ‘지키는 인생’을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수많은 비난과 악플, 조롱과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는 것. 이 ‘지킴의 묘미’를 깨달은 20대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대한민국에게 찾아온 또 하나의 천우신조가 아닐까. (미래한국)

“모든 걸 잃고 세상 모두가 나를 비난할 때조차 머리를 똑바로 쳐들 수 있다면 그때 나는 청춘이다.” (시인 장석주)

* 사회/정리: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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