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사명과 바람직한 언론인상
언론의 사명과 바람직한 언론인상
  • 미래한국
  • 승인 2013.02.1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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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모든 분야에서 언론보도만큼 시시각각 우리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매체는 없다. 언론은 우리의 삶 주변에서 일어나는 좋고 나쁜 모든 정보소식의 신속한 보도와 전달을 통해 시시각각 실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조만간 북한이 새로운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라는 안보 관련 정보뿐 아니라 이에 대비하는 우리 정부와 관련국들의 대응과 준비 상황에 대한 소식, 그리고 어느 고속도로 빙판길에서 일어난 교통사고 현장에 대한 보도며, 젊은 검사와 피의자간의 부적절한 관계소식에 이르기까지 언론은 시민의 알 권리와 필요를 만족시켜 주는 중요 정보전달 기능을 담당한다.

언론은 무명의 인사를 여론에 띄워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들기도 하고, 종래 명망이 높던 인사의 숨겨진 비리를 추적하고 밝혀내 법과 국민의 심판대 앞에 세우기도 한다. 유망 공직후보의 가족신상명세까지 들춰내 후보의 개인정보를 발가벗겨 사회적으로 망신을 주기도 한다.

총검이나 물리적인 실행도구 없이도 요즘 언론은 가히 무소불위의 막강한 힘과 영향력을 발휘하는 무제한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미디어권력에 얽힌 부패의 고리

이 언론의 힘은 공익과 정의의 편에 서서 진실과 사실을 추적하고 규명하는 책임과 역할로부터 나온다. 제왕의 권세에 버금가는 힘을 지닌 언론도 때로는 독재권력이나 부패정권의 폭력 앞에 무참히 무너질 때도 있다.

그러나 종국에는 진실과 펜의 힘에 의지해 승리를 일궈낸다. 이런 힘은 언론이 정도를 걸어갈 때 나오는 정의의 힘이다.

언론이 약자의 편에 서서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정직한 보도를 위해 전력투구할 때 언론은 여론 지지의 힘을 받는다. 언론은 여론을 선도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 국민의 공통된 감정이나 의견의 자연스러운 집합체인 여론이 정의의 편에서 정론을 펴는 언론을 부당한 권력탄압으로부터 보호하기도 한다. 그래서 언론과 여론은 상호보완적이다.

하지만 왕관 없는 언론권력이 세속권세 그늘의 힘과 돈맛을 알고 그 본연의 본분과 존재이유를 자칫 망각하게 되면, 시궁창에 버려진 썩은 생선보다 더 나쁜 악취를 사회에 풍기게 돼 여론의 지지를 상실한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으로 권력 주변을 맴돌며 권력과 타협하며 기생한 언론과 언론인은 항상 존재해 왔다.

언론과 연루돼 되풀이되고 있는 부패 역시 마찬가지이다. 1950~1970년대에 유행했던 속담 중에 ‘부패공무원은 경찰과 형사들의 밥이고, 경찰형사들은 언론기자들의 먹잇감’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떠돌아 다녔다. 요즘은 과거와 같은 밥줄의 연결고리와 형태는 많이 바뀌긴 했지만, 미디어권력에 얽힌 사회부패의 고리는 더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있지는 않는지 모르겠다.

언론은 가난하고 억압된 정치사회에서는 바른 소리를 내며 정의의 편에서 싸우려는 속성이 있지만, 오히려 무제한의 자유와 권력이 주어지면 본연의 자세에서 이탈해 속세에 동화돼 부패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 사회 현상과 다를 바 없다.

2011년 11월 1일 크리스천아카데미 주최 ‘정치권력과 미디어 권력’ 제하의 포럼에서 한국 언론계의 많은 문제점이 논의됐는데 그중에는 언론세습, 정치권과 결탁한 미디어권력, 정계진출과 외부이익에 더 관심을 두는 이른바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을 두는 언론인들’에 대한 많은 비판이 모아졌다.

지난 대선기간 중에도 종편 미디어들은 시청자들을 자기 채널에 머물게 하기 위해 시간마다 몇몇 나팔수 논객들 위주로 연일 깊이 없는 카타르시스적 담론 중심의 프로그램을 편성해 독자들을 실망시켰다.

국민의 삶과 국가의 운명이 걸린 대선에서 후보들의 정책 아이디어와 재원확보방안 등 정책의 확실한 실현 타당성에 대한 심층분석과 토론을 통해 건전한 정책을 유도하도록 언론이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었다.

그런데 종편 미디어를 비롯한 대선관련 프로그램 대부분은 후보들의 정책항목들을 흥미위주로 소개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각 정당 후보들의 정치철학이나 제시된 정책의 타당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정보나 지식을 접하지 못했다.

TV 매체는 후보들이나 논객들이 주어진 연출시간 내에 서로 인신공격성 입씨름만 하다 종료해 정작 시청자들은 각 후보의 정책내용에 대한 분석적 정보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언론 종사자들의 이념적 편향성

다시 말해 언론이 선거기간 내내 각 정당의 정책 차이점, 실현성에 대한 분석 같은 보도보다는 각 후보의 선거구호와 정책항목들만을 유권자에게 부분적으로 나열시켜 보여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 인해 공식 선거기간 내내 선거상업주의 쇼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형국이었다. 미디어 연출 앵커나 정책토론자들의 전문적인 준비도 미비했다.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한국 언론계 종사자들 중에는 소위 지식인의 아편이라고 일컬어지는 진보주의 이념에 물든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독재정권 시절에 저항정신을 가지지 않은 지식인은 자기 존재를 부각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지식인들 사회에서는 한때 정치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 것을 자기존재 현시(顯示)의 기회로 여겼던 경향이 있었다. 기존 사회질서에 저항정신을 가진 젊은이들 중에는 일종의 멋으로 좌파행세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다. 자기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탄압 받던 좌파로 동조 연상시키려는 젊은이들이 언론계로 많이 진출해 왔다.

그들은 보수를 멀리하고 진보이어야 지식인으로 사회에서 인지되는 것처럼 처신한다.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 중에는 겉으로는 청렴한 좌파행세를 하면서 실제 생활은 부패한 부르주아 계급같이 살고 있는 자들이 수없이 많다.

미디어계의 사회자 앵커와 토론자들의 주류는 유사좌파지식인으로 행세하는 사람들과 인맥중심으로 구성돼 있어서 그들의 토의논지와 논설의 흐름은 좌파적 색채를 현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유사 좌파들의 의식은 진보적 정의와 청렴 지향적인 것으로 포장돼 있지만 현실 행동이나 몸의 욕구는 보수적 안주와 부귀영화를 추구하고 있어서 다분히 이중적이다.

이들이 한국의 여론과 국민의식에 미치는 영향은 낙수가 바위를 뚫듯,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엄청난 침투력과 전파력이 있다고 본다. 정치권, 학계, 언론계, 법조계의 젊은 지식인들이 정의로 위장한 유사 좌파를 본받아 부패해버린다면 앞으로 우리나라는 어떻게 될까?

우리 사회가 균형 잡힌 건전한 사회체제의 기초 위에서 자유민주주의의 토대를 계속 지키기 위해서는 특히 사회의 여론과 언론을 이끌어가는 지식인들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서로 견제하도록 포진돼야 한다고 본다.

여론주도그룹이 좌우로 정상대칭분포(normal symmetric distribution)를 이루는 사회가 보다 건강하고 바람직한 사회의 전제조건이다. 

황의각 편집고문·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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