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작가들의 '선비질'
한국 작가들의 '선비질'
  • 이원우
  • 승인 2013.03.05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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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제명 논란'과 한국 작가들의 폐쇄성
 

언제부터인가 한국 문학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나 관심도 없어졌다. 베스트셀러를 다루는 팟캐스트 방송을 위해서만 간신히 읽는 수준이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국 작가들의 글에는 재미와 의미가 모두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모국어로 서술된 작품이니까 애정을 가져 보자는 자기최면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대다수 현재의 한국작가들은 하나의 주제의식을 끊임없이 자기 복제하고 있다. 소통의 부재, 소외, 고독, 상처받은 현대인들, 돈이 전부인 세상, 기득권은 나쁘며 소수는 늘 정당한 것, 오늘도 상처받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나….

어떤 사람들은 “우리는 왜 <해리 포터>와 같은 상상력 넘치는 작품을 갖지 못하는가?”라고 묻곤 한다. 사실은 정답이 아주 간단한 문제다. 한국의 해리 포터는 인간소외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고 자신의 불행을 사회 탓으로 돌리느라 호그와트 마법학교로 떠날 시간이 없는 것이다.

툭 하면 독자 탓

문학계, 나아가 출판계의 오랜 침체에 대해 사람들이 ‘독자 탓’을 한지는 오래됐다. 한국인들이 책을 안 읽는 건 맞다.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의 가구당 도서구입비는 월 20,570원이었다. 이 숫자에는 학생들의 참고서와 취업준비 도서 등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마음의 양식’은 거의 안 산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스로가 얼마나 안 읽는지를 알기 때문에 독자들 역시 출판계와 언론의 ‘독자 탓’에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는다. 아니 심지어 “책 좀 읽으라”는 일침에 공감과 반성의 의사를 표시한다.

호랑이가 사라진 문학계에서 슬금슬금 왕 노릇을 하기 시작한 작가 이외수는 최근 자신의 작품성을 두고 쏟아지는 공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트윗했다.

“식당에 들어갔는데 메뉴판에 당신 구미를 당기게 만드는 음식이 없습니다. 식당 잘못일까요. 책을 구입했는데 당신 구미에 맞는 문장이 없습니다. 작가 잘못일까요.”

나는 작가 선생이니 독자들은 자신이 쓰는 대로 읽을 일이고 못 알아들어도 어쩔 수 없다는 논리다. 이 트윗은 한국의 작가들이 독자들을 얼마나 깔보고 있는지를 표상한다.

이외수를 비롯한 일군의 작가들은 지금 한국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읽고 싶어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그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쓰고 싶어 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다 보니 독자들과의 ‘수급 불일치’가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격동하는 세상을 통찰력 있게 담아내야 할 작가들은 지금 그저 ‘엣헴’ 하는 헛기침이나 하면서 ‘가난할지언정 나는 지성인’이라는 자위를 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불거졌던 도서정가제 논란은 작가들의 선비질 때문에 아사 직전에 이른 출판계의 고뇌를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재화의 가격을 규제한다는 발상 자체가 반(反)시장적이기 때문에 도서정가제에 찬성한 출판계를 비판한 바 있지만 속으로는 딱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도저히 팔릴 기미가 안 보이는 책들을 가지고 어떻게든 영업을 해야 하는 그들의 입장이 되면 누구라도 도서정가제 같은 썩은 동아줄을 붙잡지 않았겠나 싶었던 것이다.

진정으로 이 담론에 참여해야 하는 것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었다. 상품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결정하는 작가들의 마인드가 바뀌지 않으면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천천히 썩어가고 있는 출판계의 비극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편견과 아집의 카르텔

그러나 한국의 작가들은 도서정가제 같은 ‘천박한’ 논의에 참여할 생각이 전혀 없는 것 같다. 그 대신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예의 닳고 닳은 권력과 명성의 허위의식이다. 최근 불거진 한국작가회의(이사장 이시영)의 ‘김지하 제명 논란’은 그 자체로 한국 작가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메타포였다.

2월 16일 서울 마포에서 열린 정기총회에서는 안건에 없는 문제가 논의되었다.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지지 발언을 하며 여러 논란의 중심에 섰던 김지하 시인을 “작가회의 품위를 현저하게 손상시킨 회원”으로 지칭하면서 제명을 촉구한 것이다. 결국 이시영 이사장은 4월 초 열릴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1974년 11월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한 한국작가회의는 그 해 7월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지하의 구명과 석방을 목표로 출범한 단체다. 문제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명칭을 바꾼 1987년부터다.

‘자유’를 빼고 ‘민족’을 넣으면 으레 도지게 마련인 편견과 아집의 불치병이 이 단체에도 전염된 것이다. 이들은 1991년 분신정국을 ‘죽음의 굿판’이라며 비판했던 김지하를 제명했다.

그러나 김지하는 자신의 의사로 이 단체에 가입한 일이 없기 때문에 제명하고 말고 할 일도 아니다. 결국 작가회의는 다시 김지하를 고문으로 앉혔다가 이번에 다시 제명을 한다는 둥 혼자 ‘쇼’를 하고 있는 셈이다.

했던 일을 반복하는 수준이 딱 현재 한국문학의 패턴 그대로다. 작가는 고사하고 한국에서 가장 소양이 결여된 트위터리안 중 하나일 공지영이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이라는 사실에서는 더 이상 웃음도 나오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한국의 영화계와 음악계를 포함한 전반적인 문화계는 눈부신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출판계만 죽을 쑤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 차이가 있을까.

작가는 남들보다 예민한 자의식 없이는 될 수 없는 직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독자를 완전히 무시할 정도의 자의식 과잉이 용서 받을 여지는 없다. 재미와 의미가 모두 담긴 책을 쓴다면 왜 독자들이 외면하겠는가?

작가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그들만의 편견과 아집 속에서 썩어가고 있는 2013년의 한국 작가들을 모른 척 하라. 오직 그들만이 인정하는 한국의 문학상과 신춘문예를 마음껏 비웃고, 한 달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미지의 독자들에 주목하라. 이 혁신적 파괴, 파괴적 혁신이 선행될 때 비로소 한국의 해리 포터는 호그와트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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